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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과 언론은 일정한 패턴을 그리며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동일하게 민주당 내 갈등을 짚으며 '친노'를 언급했다. 사진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인 2013년 5월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추도식에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 고영구 변호사, 한명숙 이해찬 문재인 의원이 참석한 모습.
 새누리당과 언론은 일정한 패턴을 그리며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동일하게 민주당 내 갈등을 짚으며 '친노'를 언급했다. 사진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인 2013년 5월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추도식에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 고영구 변호사, 한명숙 이해찬 문재인 의원이 참석한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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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는 종북 버금가는 프레임이 됐다. 블랙홀이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최근 분통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슈든 '친노' 혹은 '문재인'과 엮이면 본질은 사라지고 프레임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장하나 민주당 의원 건이다. 장 의원은 지난해 12월 8일 국가기관 선거개입 관련, 대선 불복을 선언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했다.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장 의원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답변이 60%를 넘어섰다.

친노 프레임에 분통을 터트린 초선 의원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도 정치적으로는 장 의원의 발언이 올바르다고 판단하진 않았지만 여론이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것에 납득이 안 갔다.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읽힌 흐름에 따르면, 지난 대선이 공정하지 못했고, 박 대통령이 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곧장 전문가에 의뢰해 SNS 분석에 돌입했다. 그 결과, 장 의원 발언 직후 그 건으로 유통된 SNS 양이 5만 건 가량 됐는데 이 가운데 '문재인-장하나'를 엮은 내용이 2만 건에 달했다.

그는 "진영 논리가 정의를 먹어버린 행태"라고 짚었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공정하지 못한 대선' 담론 등은 사라지고 '친노'만 남았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자체를 분석한 결과도 '적절하냐' 물었기에 '부적절하다'는 답변이 나왔을 뿐, 부적절하다는 답변 내에는 '시기가 일렀다, 하야 요구는 좀 너무 나갔다' 등의 다양한 의견이 내포돼 있었다.

그는 "이같은 결과를 정부와 새누리당은 확실하게 캐치해서 '장하나-문재인(친노)' 프레임으로 밀고 갔지만 우리 지도부는 덮기 급급했다"며 "지도부가 나서서 친노 프레임을 확실하게 자르고 갔어도 당 지지율이 하락했을까? 아무런 전략이 없다"고 일갈했다.

실제 새누리당은 장 의원 발언 관련, 문재인 의원을 '배후 조종자'로 지목하며 의견 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장 의원이 스스로 당직을 사퇴했"음을 강조하며 새누리당을 향해 "정쟁의 불씨를 살려가려는 불순한 의도"를 그만두라고 촉구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친노 프레임'은 실체로서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작동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이를 분석하기 위해 대선 직후 1년 여간 새누리당이 공개적으로 '친노'를 언급한 사례와 <조선><중앙><동아><연합뉴스> 기사를 모두 살펴봤다.

민주당 내 문제 생기면 다 '친노'?... 보수언론들의 속보이는 보도

새누리당과 언론은 일정한 패턴을 그리며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동일하게 민주당 내 갈등을 짚으며 '친노'를 언급했다. 문재인 의원이 공식 행보를 할 때마다 '친노의 세결집'이라고 읊었다. 민주당 내 인사가 문제를 일으키면 이 역시 '친노'로 엮었다.

[사례 1] 민주당의 모든 길은 '친노'로 통한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3일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도입하는 등 '국회의원 특권방지법' 제정을 공식 제안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3일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도입하는 등 '국회의원 특권방지법' 제정을 공식 제안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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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내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모두 친노·강경파로 묶였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 '부정선거'임을 주장하며 장외투쟁과 특검을 요구하는 것은 의원 개개인의 선택임에도 '강경파=친노' 등식은 언제 어느 때나 통용됐다. 또 이를 통해 지도부와 친노·강경파를 갈라치기했다. 이를 주도한 건 새누리당이다.

"김한길 대표가 '대통령의 정통성과 대선에 불복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민주당 내 친노 세력을 중심으로 한 일부 세력들의 대선에 불복하는 듯한 발언이 계속 나오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2013년 7월 16일, 최경환 원내대표)

"민주당은 아스팔트 거리 정치로 나섰다. 소수 친노 강경파에 끌려 다니는 민주당 지도부가 안쓰럽다." (2013년 8월 1일, 김태흠 원내대변인)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새누리당의 선택은 '친노 갈라치기'였다. 보수 언론도 이같은 기조에 적극 발 맞췄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7월 2일 보도를 통해 "국정원 국정조사와 NLL 논란 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당내 강경파들에게 주도권을 뻬앗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신주류 측 인사의 발언을 빌려 "이러다 당 주도권이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친노·구주류에 넘어갈 수 있다"고 적었다.

<동아일보>의 보도(2013년 6월 24일)에 따르면, 당 내에서 일고 있는 국정원 국정조사 촉구 움직임은 '친노 등 구주류 세력'이 주도했다. 신문은 "강경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친노 등 구주류 세력과 6월 국회를 감안해서라도 유연한 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신주류 세력 간의 견해 차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국정원 국조 촉구' 긴급 연석회의를 다룬 해당 기사 어디에도 친노의 발언은 없었다. 우상호·김현미 의원 등 486계로 통칭되는 의원들의 목소리만 담겼다. <동아>는 이들이 "대선 때 공보단장을 맡았고, 대선 때 소통 2본부장"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친노 등 구주류'로 엮었다. 자신이 속한 당의 선대위에서 뛰었다는 이유로 '친노'로 분류된 것이다.

반면 <조선>은 국가기관 대선 개입 관련 '대여 강경 주도 세력'이 친노와 거리가 있다고 짚기도 했다. 신문은 지난해 7월 31일 "대여 강경 기류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소속 의원 박영선·신경민·박범계 의원 등이다, 친노 핵심이라 말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적었다. <연합뉴스>는 지난해 8월 5일 "친노·친문 인사들이 포진한 국조특위 위원들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라 썼다. 이처럼 언론사의 입맛에 따라 친노를 가르는 기준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3일 후 <조선>은 국정원 선거개입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장외로 나선 민주당 배후에 친노가 있다고 암시했다. 새누리당 고위 인사의 발언을 통해 "이번 장외투쟁의 배후와 동력은 민주당 지도부가 아니라 친노·강경파"라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10·30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완패하자 "당내 (강경) 투쟁 방식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있고, 문재인 의원을 위시한 친노 강경파들의 입지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내 '강경파' 때문에 민주당이 분란을 겪고 있고, 이를 '친노'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 보수언론들의 일관된 논조다.

[사례 2] 문재인만 '뜨면' 세결집... 친노의 세는 어디까지?

문재인 의원이 공식 행보에 나서면 새누리당과 보수언론들은 이를 '친노 세결집'으로 몰아갔다. 사진은 2013년 11월 "청와대 종북몰이에 분노한다"고 발언하는 문 의원의 모습.
 문재인 의원이 공식 행보에 나서면 새누리당과 보수언론들은 이를 '친노 세결집'으로 몰아갔다. 사진은 2013년 11월 "청와대 종북몰이에 분노한다"고 발언하는 문 의원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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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과 연관된 사안이 불거지거나 문재인 의원이 공식 행보에 나서면 새누리당과 보수언론들은 이를 '친노 세결집'으로 몰아갔다.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난해 7월 "문재인 의원은 당 내 친노세력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NLL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3일 "문 의원 발언 수위가 정치 금도를 넘나들고 있다, 친노 강경 일부 세력의 결집을 위해 친노 세력의 전매특허인 국민 편 가르기 병이 도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더 나아가 노무현 재단 행사를 김한길 민주당 대표 몰아내기의 일환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은 "노무현 재단 행사가 있었다, 김한길 대표를 내몰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친노 강경파의 끝이 어딘지 두고 볼 생각"이라고 일갈했다.

<조선>은 지난해 6월 27일 "민주당 내에서는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가 친노 재결집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고 적었다. <동아>는 지난해 7월 10일 보도를 통해 NLL 대화록 정국에서 '공개'를 주장한 문 의원을 두고 "친노 진영의 재결집을 꾀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문 의원이 지난 대선을 돌아보는 책을 발간하자 <조선>은 "김한길 대표 측에서는 문 의원의 이런 움직임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다수파인 친노의 세결집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썼다. <중앙일보>도 책 발간에 "당내 친노 진영을 결집하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 <변호인>개봉을 두고 "친노 결집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합뉴스> 역시 NLL 국면에 문 의원이 나서자 "친노 진영도 문 의원을 구심점으로 자연스레 재결집에 나섰다"고, 문 의원이 회고록을 출간하고 북 콘서트를 열자 "자신의 지지기반인 친노세력의 결집을 공고히하기 위함"이라고 썼다.

이와 한 묶음으로 진행된 건 '친노 세결집=당내 갈등' 구도다. <연합뉴스>는 "문재인 의원과 친노세력이 대선 1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재결집에 나서 김한길 대표의 속병이 깊어지고 있다"고 적었다. 또, "문 의원이 전면에 나설 경우 당 내 계파 갈등을 촉발시키며 지도부를 흔들 수 있다"고 썼다. <동아>도 "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노 그룹이 세결집에 나서면서 당내 친노와 비노 진영 간 계파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고 보도했다. 문 의원이 움직이기만 해도 '친노'를 결집해 당내 분란을 일으키는 문제아로 낙인찍었다. 

[사례 3] 홍익표 의원, 언제부터 친노였어요?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12일 '귀태'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것에 책임을 지고 원내대변인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힌 뒤 국회를 떠나고 있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12일 '귀태'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것에 책임을 지고 원내대변인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힌 뒤 국회를 떠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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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표 원내대변인은 친노계로 분류된다." (<동아> 2013년 7월 13일, <조선> 2013년 7월 12일)

홍익표 민주당 의원의 수식어가 친노가 된 것은 지난해 7월께다. 홍 의원이 원내대변인일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귀태(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로 표현한 직후다.  

그러나 홍 의원이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 때 그는 '임종석의 친구'로 불렸다. 홍 의원은 민주당 내 대표적인 486 인사인 임종석 전 의원이 사퇴해 공석이 된 서울 성동을에 전략공천됐다. 당시 <동아>는 "홍익표 교수는 대학 동기인 임종석 전 총장이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내에서는 '친구 공천'이냐는 비판도 나온다"고 썼다. 그랬던 그가 '귀태' 발언 후 '친노계'로 불리기 시작했다. 

대선 불복 발언 후 장하나 의원 뒤에는 '한명숙 키즈'라는 설명이 붙었다. <동아>는 "장하나 의원의 대선 불복 발언 후 초선들의 돌출행동에 대한 당내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당 내에서는 '친노가 19대 총선 공천을 좌우한 탓'이라는 평가가 많다"고 다뤘다. <조선> 역시 홍 의원과 장 의원을 언급하며 "한명숙 키즈가 19대 국회 들어 설화 릴레이를 쉼없이 이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장 의원은 청년 비례대표 몫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청년 비례대표 선발을 위해 당 내 경선을 따로 치렀고, 그 결과 장 의원은 비례대표 13번에 이름 올려 당선됐다. 한명숙 전 대표가 직접 공천에 관여한 사례가 아님에도 장 의원 역시 '친노' 범위에 묶인 것이다.

'친노' 프레임에 속수무책인 민주당 지도부

민주당 내에 '친노'는 있다. 또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의 행보에 부적절한 지점도 있다. 그러나 '모로 가도 친노로 가면 된다'는 식의 접근은 문제다. 당 내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것 혹은 당 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모두 '친노'라고 도매금으로 넘긴 후, 이를 '당 내 계파 싸움 및 갈등'으로 치환시키려는 시도는 문제인 것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에서도 이같은 구도는 반복됐다. 문 의원이 회의록을 공개하자며 동을 떴어도 최종 결정을 내린 건 지도부였다. 당시 지도부는 '구속적 당론'으로 소속 의원들이 회의록 공개에 찬성표를 던지게 했다. 회의록 공개를 처음부터 반대한 박지원 의원은 '친노세력이 회의록 공개를 주도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렇게 비약시킬 필요는 없다, 그러면 회의록 공개를 주장한 김한길-전병헌도 친노냐"고 반문한 바 있다.

그러나 보수 언론은 '친노에 휘둘린 지도부'로 몰아갔다. 국가기록원에서 정상회담 회의록을 찾지 못하자 그 프레임은 점점 더 거세졌다. 최종 결정을 내린 지도부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문 의원을 비롯한 '친노'를 성토했고, 김한길 대표 체제의 '영'이 서지 않는다고 평했다. 이같은 구도는 결정 책임자가 '지도부'가 아니었음을 암시하며 '지도부 위의 친노'를 연상케 한다. 도리어 지도부의 위신을 떨어트리는 방향이다.

문 의원도 '친노 프레임'을 성토했다. 그는 1월 초 한 언론 인터뷰에서 "친노라고 묶기 어려우니 친노를 중심으로 하는 강경파라는 표현을 쓴다, 양승조·장하나 의원 발언은 친노라 줄긋기 할 수 없으니 내가 배후조정을 했다고 하기도 했다"며 "이건 새누리당과 일부 언론이 민주당을 분열시키는 프레임이다, 친노-비노 간의 갈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대선 1년을 맞아 공식 행보에 나선 후 문 의원은 "지난 대선을 되돌아 보면서 책을 내게 된 것에 대해 '친노 차원에서' 이런 식의 해석은 하지 말아 달라"며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거치는 과정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물론 그의 당부는 먹히지 않았다.

이처럼 명확한 실체도 없는 친노 프레임이 반복 확산됨에 따라 집안 싸움만 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민주당에 국민이 신뢰를 보낼 리 없다. 김한길 대표가 신년회견에서 "내부에 잔존하는 분파주의 극복"을 강조하며 6·4 지방선거 승리의 최우선 과제로 당내 계파주의 청산을 내세운 이유다.

현 지도부 핵심 인사는 "당내에서 중도적인 목소리를 내느냐 강경하냐의 차이가 있는 거지 그걸 계파 싸움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언론이 의도적으로 친노프레임을 만든 게 크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같은 '친노 프레임'에서 벗어날 방안을 묻자 "어떻게 해결할지까지는 고민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민주당의 현 주소다.


태그:#친노 프레임, #문재인, #보수언론,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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