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드라마 <기황후>의 기승냥(하지원 분).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의 기승냥(하지원 분). ⓒ mbc


MBC <기황후> 승냥이(하지원 분)의 입궁에는 비장한 결의가 숨겨져 있었다. 자신을 도왔던 동료들이 눈앞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고려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해달라며 그들이 손에 쥐어준 서신들을 보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목숨이 날아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그들을 위한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승냥이가 원나라의 궁에 제 발로 들어온 것은 자살행위나 진배없었다. 사악한 타나실리(백진희 분)가 그녀의 존재를 알고, 또한 그녀의 배후세력들이 호시탐탐 그녀의 목숨을 노리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냥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나라 황제인 타환(지창욱 분)의 후궁을 뽑는 경연에 제 목숨을 걸고 참가하게 된다.

타나실리가 승냥이를 가만둘 리 없다. 그녀는 승냥이뿐 아니라 그 누구도 후궁으로 간택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한다. 이미 여러 가지의 꼼수를 준비해 놓고 훼방의 태세를 갖췄다. 후궁경연 자리에 홀연히 나타난 타나실리는 이번 후궁 간택이 중요한 자리인 만큼 자신도 심사석에 올라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교활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타나실리는 외모를 보고 평가를 하는 첫 경연에서부터 술수를 부린다. 황태후(김서형 분)의 계획을 뒤엎고 관상쟁이가 아닌 환쟁이에게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외모를 평가하게끔 유도를 한다. 그들을 매수하여 박색을 뽑기로 작정을 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승냥이의 지혜로움을 황태후가 수렴한 탓에 승냥이를 비롯, 미색을 갖춘 이들이 뽑히게 된다. 잘 짜 놓은 타나실리의 음모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경연에서도 타나실리의 방해는 이어졌다. 그녀는 이 황실 안에서 가장 귀중한 음식을 가져 오라는 과제를 제시하며, 오직 승냥이만은 수라간 출입을 못하도록 지시해 놓았다. 다른 예비후궁들이 수라간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동안, 승냥이는 굳게 걸어 잠긴 수라간 밖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제한시간이 다할 때쯤 수라간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곳엔 음식은커녕 마땅한 재료조차 남아있질 않았다. 

산해진미를 요리한 다른 예비후궁들에 비해 승냥이가 가져온 음식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하얀 빛깔이 곱기만 한 소금뿐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비웃고 타환은 안타까워했다. 이대로라면 두 번째 경연은 낙제점을 받고 말 테니까. 하지만 승냥이는 모든 음식에는 소금이 들어간다는 귀중한 존재감을 설명하며, 스스로를 녹여 맛을 내는 소금처럼 백성들의 마음에 녹아 들어가 성은을 베푸는 왕이 되기를 원한다는 새겨들을 말을 전한다. 전세가 바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타환과 황태후, 그리고 다른 모든 신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성공을 한 듯했다.

마지막 경연은 하나의 그림을 펼쳐 보이며 이 그림에 담겨진 의미를 적어내라는 다소 어려운 과제였다. 온화한 관음보살, 밥을 짓는 아낙네, 소로 경작을 하는 남정네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그림을 보며 다른 예비후궁들이 적어낸 답은 '태평성대'였다. 그리고 오직 승냥이만이 이와는 반대되는 답을 적어내고 말았다.

그녀의 눈엔 밥을 지을 때 사용한 땔감이 자신의 집을 부숴 얻어낸 것임이 보였고, 소를 모는 남정네는 경작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 그 소를 팔아넘기려고 흥정을 하고 있음이 보였다. '태평성대'가 아니라 지극히 어렵고 궁핍한 백성들의 삶을 표현한 그림이라는 것을 승냥이만 알아채고 만 것이다.

혼자 백색 의상 입은 기승냥, '백의민족' 강조일까?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의 한 장면.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의 한 장면. ⓒ mbc


승냥이는 반전의 예비후궁이었다. 각각의 과제를 현명함으로 대처했고, 지혜로움으로 극적인 순간들을 연출해냈으며, 그리하여 타나실리의 모든 음모를 수포로 돌아가게 했다. 후궁으로 간택이 되었는지에 대한 결과는 다음 회로 미뤄졌지만, 그 결과를 떠나 통쾌하고 후련한 후궁경연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런데 여기에 뭔가 특별함이 보인다. 다른 예비후궁들과 승냥이의 의상이 상당히 대조적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화려하고 오색찬란한 다른 예비후궁들의 의상에 비해, 후궁경연 때 입은 승냥이의 의상은 그저 하얗기만 한 것이 밋밋하고 단조롭다. 다른 색감들과 함께 있으니, 순백색의 승냥이의 의상이 마치 소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통은 여주인공의 의상이 가장 화려하고 눈에 확 들어오기 마련이다. 의상으로 여주인공의 존재감을 살리는 것은 극의 포인트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반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다른 후궁들보다는 아리따운 의상과 자태를 보여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승냥이의 의상은 이토록 수수하고 볼품없는 백색으로 치장된 것이었을까.

아마도 '백의민족'이라는 의미를 기본으로 한 의상설정이 아니었나 싶다. 예로부터 흰옷을 즐겨 입은 선조들의 취향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것은 승냥이가 고려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다시금 각인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도 이어지지 않나 싶기도 하다. 원나라에서 원나라 사람들과 함께 경쟁을 펼치는 자리라면 더더욱 드러내야만 하는 고려인이라는 정체성. 그 하나를 위해서.

<기황후>의 제작진이 역사왜곡 논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애처로울 정도다. 회를 거듭할수록 거세지는 비난과, 막장 요소까지 등장하고 말았다는 볼멘소리에 대한 대응이 버겁기만 하다. 그래서 승냥이의 백색의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 한 것일까. <기황후> 제작진이 조금이나마 자신들이 지닌 주제의식을 항변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몸부림으로 여겨지는 것. 이 또한 과한 왜곡인 것일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DUAI의 연예토픽),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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