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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생성문법 이론으로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혁명을 이룬 노엄 촘스키 교수는 언어학자로서만 머물지 않고, 젊은 시절부터 약자의 편에 서서 다국적기업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약자를 옹호하는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온 지식인이며 세계적 지성이다. 그가 세계 지성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실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덮어쓰고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탈을 벗기기 위한 노엄 촘스키 교수의 발언을 모은 책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시대의창)를 읽으면, 과연 촘스키의 '진실'이 깊이 와 닿는다. 아울러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진 세계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는 동시에,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또한 어떠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알게 해준다.  

<뉴욕타임즈> 신디케이트 기고 최신 칼럼. 미국이 쓴 착한 사마리아인의 탈을 벗기다.
▲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뉴욕타임즈> 신디케이트 기고 최신 칼럼. 미국이 쓴 착한 사마리아인의 탈을 벗기다.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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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뉴욕타임즈>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칼럼 52편을 모은 책이다. 이 시기는 조지 부시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인데, 칼럼 기고 시기를 이렇게 끊어 엮은 것은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는 이루었지만, 미국의 본질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임을 에둘러 보여주는 것으로 읽힌다.

북한 핵무기, 그리고 북한과 미국의 관계

이 책에는 한국에 관해 쓴 칼럼이 두 개 나온다. 북한 핵 문제와 해군기지 건설로 위협받는 '세계 평화의 섬' 제주도에 관한 칼럼이 그것이다. 북한 핵 문제에 관한 칼럼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협하면 그는 방어 태세를 갖추기 마련이다. 반면에 우리가 선의의 손길을 뻗으면 그도 화답의 손을 내밀 것이다. 이것은 인간사에서나 세상사에서나 자명한 이치이다.(본문 16쪽, '북한의 위협, 북한과의 대화와 바람직한 합의')

칼럼은 이런 자명한 이치가 바로 미국과 북한 간의 관계임을 보여준다. 그 한 예로 2002년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목하자, 북한은 핵무기 개발로 돌아서며 유엔감시단을 추방하고 핵확산방지조약에서 탈퇴한다. 세월을 거슬러 가서 1994년에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관계 정상화에 나서자 북한은 우라늄을 농축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화답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 후 2005년 9월, 6자 회담을 통해, 북한 경수로 개발을 위한 원조와 미국의 불가침 서약을 대가로 모든 핵무기와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로 합의한다. 그런데 이내 미국은 이 합의를 파기한다. 경수로 제공을 위해 구성된 국제컨소시엄을 해체하고 무력위협을 재개하며, 북한의 해외계좌를 동결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러자 2006년에 북한은 핵실험을 감행한다.

촘스키는 북한 핵개발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개발이 어떤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말하자면 미국은 북한의 핵 위협을 경계하면서도 부추긴다는 것이다. 백번을 양보해서 미국이 북한의 핵 위협을 오히려 조장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부시가 취임할 때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중단한 지 오래인 북한이 부시 취임 이후 6년이 지난 때에 8∼10개의 핵탄두를 제작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재개한 것은 부시 행정부의 지독한 무능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촘스키는 북한더러 핵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라는 허무맹랑한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미국의 허위와 약속 파기, 그리고 모든 나라를 미국의 지배 아래 놓으려는 제국주의적 본성을 비판한다. 도리어 평양은 워싱턴이 협력하면 화답하고, 워싱턴이 약속을 저버리면 보복하는 식으로 적대관계를 종식시키려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각성을 촉구했다.

미국 중심주의를 벗어난 균형 잡힌 관점

촘스키는 이렇게 현재 한국이 당면한 문제에서부터 미국이 관여하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문제들을 집요하고 끈질기게 다룬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 이란 봉쇄, 영화 '블랙호크 다운'과 관련이 있는 소말리아 내정 간섭, 전 세계에 대한 미국의 안보 위협으로 인한 군사력 증강과 핵무기 보유 문제 등을 파헤쳐 미국이 한 마디로 '전쟁광'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또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위선과 탈선을 비판하며, 부시와 본질적으로 동일함을 강조하고, 대기업의 자금에 포획 당한 미국 정치를 통해 미국에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없음을 선언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독자 노선과 중국의 부상,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횡포 등을 가감 없이 다루고 있다.

촘스키의 칼럼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매우 균형 잡힌 관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앞서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설명하는 글에서도 보았듯이 미국 중심의 일방적 시각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부시 행정부를 '미국에서 정권을 간신히 움켜잡은 흉악한 도당'이라고 표현하며, 이라크 침공에 이어 이란으로 전쟁을 확대하려는 미국을 비판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군역사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였는데, 인접한 국가인 이란에서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이란인들은 정신 나간 사람들일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미국이 관여한 거의 모든 국제적 분쟁은 결국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이 약속을 어기고 무력 행동을 함으로써 일어난 것임도 보여준다. 예컨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촘스키의 칼럼에서 빈번하게 다루어온 매우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국가가 공존하자는 합의를 먼저 깨고, 미국의 압도적인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의 부도덕하고 잔인한 전면적인 공격과 살상이 가장 큰 원인임을 거듭해서 밝히고 있다.

'미국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목적도 중국에 군사적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며, 중국과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하여 전방에 작전부대를 배치하는데 있음을 분명히 했다. 제주 해군기지가 미국의 '전방'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는다.

중국이 미국 해안 근처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 한다면 워싱턴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본문 313쪽, '해군기지 건설로 위협받는 세계 평화의 섬')

미국은 기업 정당이 지배하는 사실상의 일당 체제 국가

아, 물론 미국의 전쟁 행위와 분쟁 조장 행위나 폭력적인 독재 정권에 엄청난 자금과 군사력을 지원하는 행위는 모두 세계 자원을 최대한 순조롭게 독식하여 기업에게 이익을 주고자 하는 자원 전쟁, 또는 에너지 전쟁이라는 사실도 숨기지 않는다.

이런 부도덕한 행위는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파벌로 나뉜 기업 정당'만이 있는, 실질적으로 일당 체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촘스키는 미국 민주주의와 선거에 관한 다양한 발언을 통해 사회 정의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08년의 금융위기는 지난 30년간(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집요하게 추진된 금융자유화가 적지 않은 원인인데, 촘스키는 더 넓은 안목으로 금융자유화를 진단한다.

금융자유화는 경제 영역을 넘어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금융자유화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강력한 무기라는 것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면, 일부 경제학자의 표현대로 투자자와 채권자로 이루어진 '가상 의회'가 형성된다. 이런 가상 의회는 정부 정책을 면밀하게 감시하면서 정부 정책이 비합리적이라 여겨지면, 즉 '자신들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한 정책'이라 여겨지면 그 정책을 반대한다. 투자자와 채권자는 자본도피, 통화 공격 등 금융자유화로 얻은 수단들을 동원해서 반대 의사를 표현한다.(본문 111-112쪽, '선거운동과 금융위기')

촘스키는 2010년 1월 21일을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또 미국 민주주의 몰락의 역사에서 암흑의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날은 미국 연방 대법원이 선거에서 기업의 정치자금 지원을 정부가 금지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날이다. 이날 결정은 기능적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수단들에 공식적인 힘을 모아주었다고 촘스키는 탄식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제 미국 기업들은 복잡하고 간접적인 수단을 뛰어넘어 합법적으로 선거를 돈으로 매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토머스 퍼거슨이 말하는 '정치의 투자 이론'이다. 이 이론은 4년마다 있는 '선거'는 자본의 힘을 가진 기업 집단이 국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투자'라고 말한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오바마의 선거 자금은 대부분 금융기관에서 나왔고, 당연히 금융기관들은 보상을 기대했다. 그것이 2008년 금융 위기 때 오바마가 제공한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이라는 구제 금융과 그 이상의 보상이었다. 그 결과 금융 위기의 주범인 은행들은 엄청난 이익을 거두어 돈 잔치를 벌이는데, 정작 그들을 구해준 국민들은 거의 10퍼센트에 도달한 실업률 때문에 고생하고 있으며,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고 말했다.

결국 오바마는 다국적기업과 금융기관의 사람들이며, 그래서 오바마는 JP 모건체이스와 골드만삭스의 두 회장을 지목하여 '좋은 사람들'이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금융기관의 힘이 막강하여 난맥상에 빠진 의료보험체제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으며, 오바마의 국방비는 매년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미국 상공회의소와 석유협회는 지구온난화는 걱정하지 말라고 설득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인류를 위한 정책 수립을 방해하고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참여를 통해 배우는 것

촘스키는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세계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 모두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의 비판은 성역을 두지 않는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 지미 카터, 버락 오바마 등 4명의 미국 대통령들의 재임 기간에 일으킨 침략 행위를 가차 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오사마 빈 라덴 사살도 국제법의 기본 규범들을 무시한 복수극으로, 이는 계획된 암살이라고 규정한 것을 보면.

촘스키의 칼럼을 읽으면, 미국의 개혁은 세계의 개혁이며, '기업이 인수한 민주주의'를 미국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건 세계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임을 알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참여'하자고, 조직하고 깨어나 실천하자고 촉구한다. 그가 2011년 10월 22일, 듀이 광장의 '점령하라' 집회에서 강연한 다음 말은 바로 그 지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려 한다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건 단순히 강연을 듣고 책을 읽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강연과 책이 때로는 도움이 되겠지만, 세상을 이해하라는 건 참여를 통해 배우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조직화하려는 민중에게도 배워야 합니다. 미래로 나아갈 방법을 계획해서 실행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본문 320-321쪽, '미래를 점령하라')

덧붙이는 글 |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노엄 촘스키, 시대의 창, 2014년 1월 6일, 1만 6천 5백 원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 미국이 쓴 착한 사마리아인의 탈을 벗기다

노엄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시대의창(2014)


태그:#노엄 촘스키, #버락 오바마, #미국 제국주의, #기업 정당,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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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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