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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풍자하는 영상 'IDIOTS'의 한 장면. 전체영상은 http://vimeo.com/79695097에서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풍자하는 영상 'IDIOTS'의 한 장면. 전체영상은 http://vimeo.com/79695097에서 볼 수 있다.
ⓒ BLR_VF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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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마트폰 중독자였다. 화장실에 갈 때도 스마트폰을 들고 갔고, 잠들 때나 잠에서 깰 때나 내가 가장 먼저 찾는 건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걸었고, 스마트폰을 보며 TV를 봤고, 스마트폰을 보며 밥을 먹었다. 당연히 가족, 친구, 상사와 대화 중에도 수시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어느 날 TV를 보며 남편과 이야기를 하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남편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폰 그만하고 나랑 놀자."

사실 스마트폰으로 특별한 것을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뉴스 사이트 좀 들어갔다가, SNS 좀 했다가, 포털 사이트 연예 뉴스 좀 보다가, 인터넷 쇼핑 좀 하다가, 책갈피에 있는 즐겨찾기 목록 좀 들어갔다가, 모바일 메신저로 수다 좀 떨다가. 뭐, 다들 매일 해봐서 알지 않는가. 이렇게 정말 별 거 안 했는데도 어떤 날은 어찌나 스마트폰을 많이 했는지 눈이 침침하고 엄지가 얼얼할 때도 있었다(그럴 때면 검지를 사용했…). 

화장실 갈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나는 스마트폰 중독자였다

스마트폰 사용 5년차. 그동안 스마트폰을 끊어 보려는 시도도 여러 번 했었다. SNS에서 부질없이 탈퇴도 해보고, 괜스레 스마트폰을 가방 안에 넣어두기도 하고, 즐겨찾기 목록을 모조리 지우기도 하고... 하지만 스마트폰은 참 스마트하게도 내 삶 속에서 이미 전화기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음악을 들으려고 해도,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업무상 이메일을 확인하려고 해도 스마트폰이 필요했다. 심지어 얼마 전부터는 회사에서 쓰는 메신저가 모바일에서도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신혼여행까지 가서 부서 단체 채팅에 초대된, 슬픈 사연이 있다. 

2014년 1월 1일. 남편과 결혼 후 처음 맞는 새해라 남편과 A4용지 한 장을 꺼내들고 각자 계획을 적어 나갔다. 1번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는 체중을 잡으려 남편과 나 둘 다 '살빼기'를 썼고, 나는 2번에 '스마트폰 중독 탈출'을 적었다(참고로 남편은 TV 중독 탈출을 썼다).

스마트폰을 자제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지는 오래됐지만 이제는 정말 스마트폰과 멀어져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첫째, 스마트폰을 하는 행위가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습관적으로 어깨를 잔뜩 구부리고 손가락이 아프도록 스마트폰을 보고 나면 '이게 뭐하는 건가' 허무해졌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지난해 말이었던가.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갔다. 우리가 보낸 1박2일,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있었고 어쩌면 서로 대화를 나눈 시간보다 각자 스마트폰을 한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누군가 이야기를 할 때 다른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그건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집, 가족과 함께 둘러 앉아 TV를 보면서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하는 내게 엄마는 "눈 안 아프나?"라고 여러 번 물었다. 그만하라는 이야기였다. 무슨 뜻인지 다 알면서도 "어, 내는 적응돼서 괘안은데"라고 퉁명스럽게 답하고는 눈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엄마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노므 휴대폰 때문에 멀리 있는 사람하고는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옆에 있는 가족하고는 대화를 못하게 되삤네." 

대화가 끊기는 어색한 순간, 스마트폰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부서회식을 하러간 날,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동료들.
 점심시간을 이용해 부서회식을 하러간 날,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동료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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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작심 첫째 날은 순조로웠다. 황금 같은 수요일 연휴,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밀린 집안일을 하고 요즘 '핫'하다는 엽기 떡볶이도 시켜먹고('살빼기'는 내일부터!) TV 시청도 앞으로 줄이기로 했으니 남편과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었다. 화장실에서 스마트폰 하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책도 가지고 들어갔다. '스마트폰 안 하는 거, 그까이꺼 뭐. 별 거 아니네.'

다음날 아침 출근 길. 평소 같았으면 비몽사몽 버스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회사까지 갔겠지만,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스마트폰은 코트 주머니 속에 고이 넣어뒀다. 어제 잠도 많이 잤겠다, 맑은 정신으로 신문을 읽으며 출근하는 길이 어찌나 상쾌하던지. 같은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을 힐끔 쳐다보니 다들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마찬가지. 나는 멀뚱멀뚱 1층, 2층… 층수 올라가는 것만 쳐다봤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출퇴근길 그리고 회사에서는 꼭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스마트폰을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제 버릇'이 나왔다. 특히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정확히 말하자면 '감시자'인 남편이 침대에서 거실로 나오기 전 그 30분 동안 나는 '폭풍 폰질'을 했다. 그러고는 남편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면 스마트폰을 멀찌감치 놔뒀다.

1월 둘째주, 회사 선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조문을 가기 위해 전주로 가는 차 안. 잠을 자기도 그렇고, 딱히 할 말도 없고… 습관처럼 괜히 연락도 오지 않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말이 끊겨 급 어색한 상황이 왔을 때, 지하철을 탔는데 앞 사람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기가 민망할 때도 스마트폰 생각이 간절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어색한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색한 순간이 올 때마다 스마트폰 속으로 도망치는 것이 버릇이 된 건지. 내가 얼마나 스마트폰 의존적 인간인지 알 수 있었다.

새해 계획표에 '스마트폰 중독 탈출' 옆에 괄호 열고 조그맣게 적어놓은 것이 있었다. 바로 스마트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인 SNS, 그 중에서도 페이스북. 이런 말하기 민망하지만… 나는 한 때 트위터도 중독이었다. SNS가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한다고 믿던 시절, 그런 SNS 동향을 살피는 것은 이 땅의 기자로서 당연한 일이었다(며 트위터 중독을 합리화했다).

스마트폰으로는 물론이고 한창 때는 국정원 직원들이 썼다는 그 유명한 트위터 프로그램 트윗덱까지 깔아놓고(검찰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를 트위터 글 대량 확산을 위해 이용했다고 한다) 실시간으로 '트윗질'을 해대기도 했다. 누군가 내가 쓴 트윗을 실시간으로 리트윗하고, 답글을 달아줄 때면, 홀로 있어도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했을 때였다.

그렇게 끼고 살던 트위터를 그만두게 된 것은 SNS 속 '민심'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뼈아프게 깨달은 어느 겨울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야기를 주고받던 트위터 속 '관계'들도 그렇게 끝이 났다. 가끔씩 생각한다. 그 많던 '트친'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트위터를 그만둔 후 한참이 있다 다시 시작한 것은 페이스북. 남편은 "이제는 페북이냐"며 혀를 찼다. 외롭지 않기 위해 수시로 SNS를 하는 동안, 정작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외로워지는 아이러니가 계속 됐다.

고독을 잃어버린 우리, 덜 외로워졌을까

즐겨보는 '루나파크'의 홈페이지. 그녀도 새해 결심 중 하나로 TV, PC, 스마트폰을 보며 '멍~'하는 시간을 줄이겠다는 내용의 일기를 그렸다. 그래,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어.
 즐겨보는 '루나파크'의 홈페이지. 그녀도 새해 결심 중 하나로 TV, PC, 스마트폰을 보며 '멍~'하는 시간을 줄이겠다는 내용의 일기를 그렸다. 그래,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어.
ⓒ 루나파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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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그 시간에 스마트폰을 하는 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찌됐건 정보를 얻게 되니까,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 같지 않은 느낌? 하지만 그 정보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분명히 '아, 그거 검색해봐야지'하고 폰을 열어놓고 정신 차려보면 실시간 검색어, '짧아도 너무 짧은 하의' 사진이나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제는 스마트폰을 안 하는 시간, 책을 읽거나 아니면 그냥 멍하니 있으려고 한다. 꼭 24시간 뭔가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눈도 머리도 쉴 시간이 필요하다. 덕분에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언제나 온라인에 연결돼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세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략)...당신이 일단 온라인에 '상시로 접속해' 있다면 어떤 면에서 당신은 충분하면서도 진실하게 혼자 있을 수 없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중략)...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그러한 고독의 맛을 결코 음미해본 적이 없다면 그때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늘 누군가와 '접속'해 있으면서 우리는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덜 외로워졌을까.  

'작심' 한 달. 여전히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은 스마트폰이고, 나도 모르게 홈버튼을 누르고 잠금 번호를 풀고 있을 때가 많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스마트폰과 조금은 멀어진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더 멀어지고 싶다. 제발.


태그:#스마트폰, #스마트폰 중독, #새해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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