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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 표지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 표지
ⓒ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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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제목 한번 잘 지었네!"

'흔들리는 부모들을 위한 교육학'.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책의 부제다. 보는 순간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대한민국에서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과연 몇이나 될까. 크게는 바뀌는 교육 정책에도 오락가락하고, 작게는 학교 선생님의 말에 노심초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곧 서열을 결정하는 냉혹한 경쟁이기에, 부모는 무릎을 꺾어놓는 현실 앞에 좌절하기도 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나약한'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내 속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던 '아직 덜 자란 아이'가 성숙하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매일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바라보고 싶지 않은,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밑바닥'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어쩌면 아이들은 내가 이제껏 만난 스승 중에 가장 두렵고도 큰 스승일지도 모른다.

현병호의 책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오늘날 아이들이 처한 현실과 우리 교육의 현 주소에 대해 되짚어보는 책이다. 특히 대안교육잡지 <민들레>의 발행인이기도 한 저자는 날카로운 시각으로 대안학교의 문제점을 들춰내며 올바른 대안교육 실현을 위한 과제를 모색한다.

진짜 교육 그리고 진짜 배움

요즘은 정상적으로 잘 크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사회가 워낙 비정상적이다 보니 생겨난 씁쓸한 말이다. 교육이 소비상품으로 전락해버린 학교 현실은 '배움의 실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린다. 일본의 교육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자본주의 등가교환의 논리에 익숙한 아이들의 '배움으로부터의 도피'가 커서는 '노동으로부터의 도피'로 연결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교육당국과 교사, 부모가 모두 공범이다.

"그동안 우리가 아이들을 제물로 바친 곳은 '학교'나 '학원'이라는 괴물이 아니라, 바로 부모들 자신이 만든 '욕망의 제단'이 아니었나 싶다."(본문 84쪽)

이 책에서 저자는 '배움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지 않는다면 학교 교육 정상화는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배움이란 자기가 배운 것의 의미와 가치를 삶과 연결시켜 이해함으로써 '주체'를 세우는 과정이다. 때문에 배우기 전과 배우고 난 후에 다른 사람이 돼 있어야 비로소 공부가 의미를 갖는 것이다. 내일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오늘을 거세해버리는 학교에서 실제 삶과 동떨어진 교육은 '성찰의 힘'을 잃은 지 오래다.

저자는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식이나 기술에서 뛰어난 능력, 관계를 잘 맺을 줄 아는 능력,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며 "'전인(全人)'이란 이런 능력을 고루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고 또 주위와 자기 자신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을 길러내는 '전인교육'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구현되도록 하는 것이 대안교육"(31쪽)이라고 말한다.

'대안학교'만이 전부는 아니다

생각해보면 궁극적으로는 '대안교육'이라는 말도 사라져야 한다. 기존의 교육시스템이 워낙 문제가 많아 다른 길을 찾다 보니 교육이라는 이름 앞에 '대안'을 붙인 것이 아닌가. 대안 교육이라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교육이 '정상화' 되는 날, 학교는 진정한 배움의 터전이 될 것이다. 최근에는 공교육 안에서 대안교육 실현을 위한 공립 대안학교 설립이나, 혁신학교 확대와 같은 긍정적인 시도도 늘어나는 추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늘날 '대안학교'의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만만치 않은 재정부담으로 인해 정작 대안교육이 필요한 소외계층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점은 여전히 대안학교의 그림자로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아야 할 배움과 성숙의 과정이 오히려 '대안학교'라는 또 다른 '획일성' 때문에 삶과 유리될 수 있는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대안'이라는 말이 진입 장벽이자 '그들만의 울타리'가 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대안이 아니다.

"그래서 배움터에서는 빨간약을 제공할 필요가 있지만, 파란약을 원천 봉쇄하려 들어서는 곤란하다. 인간이 성장하는데는 파란약도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약을 주느냐보다 서로 다른 약을 구분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략) 그런점에서 안정된 대안학교가 꼭 바람직한 교육환경이라고는 볼 수 없다. 경제적 환경이나 문화가 비슷한 학생들,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교사 집단으로 이루어진 대안학교는 삶의 다양성이 거세된 온실같은 교육환경일 수 있다. 그런데서 자라 험한 세상에 나가 어떻게 살겠느냐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삶과 동떨어진 교육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삶과 하나 된 교육을 지향하는 대안교육이 또 다른 의미에서 삶과 유리된 교육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할 지점이다."(본문 169쪽)

저자는 "성숙에는 역동적인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삶이란 것이 본디 죽음과 함께 하는 역설적인 과정이듯이 갈등과 긴장은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이라며 "학교는 세상과 갈등하는 곳이 돼야 한다, 삶의 다양성이 거세된 안온한 온실이 아니라 세상의 논리와는 다른 논리로 작동하는 곳, 다른 가치관이 지배하는 곳이어야 한다"(본문 171쪽)고 충고한다.

내가 사는 영광군 묘량면에는 폐교 직전까지 몰렸다가 기사회생한 '작은 학교'가 있다. 농촌 시골마을에 학교마저 사라진다면 결국 마을공동체마저 소멸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한 인식이 모여 주민들은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다행히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보태져 학교는 살아났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마을이 곧 학교'라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폐교를 막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학교 운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는 마을에 문호를 개방하고 마을은 학교와 자원을 공유하며 '공동체'라는 울타리에서 마을과 학교가 함께 함으로써 아이들 교육 환경도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 '대안학교'의 간판을 달지는 않았지만 교육철학과 교육내용, 학교 운영방식에 이르기까지 대안교육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삶이 곧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가치에 기반해 보면, '삶의 질'이 곧 '교육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학교가 이웃,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가 아이들의 교육 환경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바로 세우기'는 학교 현장 안에만 맡겨져야 할 과제가 아니다. 기존 시스템이 싫다해서 무턱대고 대안학교만 찾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지금 아이들의 삶의 터전이 얼마나 좋은 교육 환경이 되고 있는가에서부터 성찰을 시작해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길은 바로 여기, 우리 발 밑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에도 http://blog.yes24.com/xfile340 게재했습니다. 격월간 <민들레>는 http://mindle.org/xe/main/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 - 흔들리는 부모들을 위한 교육학

현병호 지음, 양철북(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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