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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개인정보유출 확인 사이트에서 확인한 내용
 개인정보유출 확인 사이트에서 확인한 내용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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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화면은 제가 오늘 낮에 찾아본 국민카드사의 피해자 확인 사이트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저 역시 열다섯 건의 정보가, 흔히 하는 표현으로 털렸습니다."

지난 20일 JTBC <뉴스9> 손석희 앵커가 뉴스 첫 멘트로 자신도 카드사 정보 유출 피해자라는 걸 밝혔을 때만 해도, '설마 나도 털렸을까?'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마주한 인터넷 화면은 나도 피해자 중 한 명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난 국민카드와 롯데카드를 통해 개인정보가 유출됐고 농협카드까지 소지하고 있는 아내는 세 군데서 모두 정보가 유출되는 기분 좋지 않은 '기록'을 새겼다. 정보 유출 소식이 알려진 직후 "나 대통령과 동급됐다"는 지인의 말을 웃어 넘겼건만, 나도 아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업카드(법인카드)를 조회보고자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런데 카드 유출을 확인 사이트에는 기업카드의 유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창이 준비돼 있지 않았다. 카드회사에 전화를 했다. "모든 상담원이 상담중"이라는 멘트만 계속 나왔다. 결국 20여분을 기다린 뒤 상담원과 통화할 수 있었다. 상담원에게 기업 카드 정보 유출에 대해 묻자, 그는 "기업카드 정보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내가 기업카드 담당자와 통화하고 싶다고 하자, "통화중이라고 불가능하니, 자기가 다시 확인해 주겠다"고 했다.

한 시간 후 카드 상담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기업카드 정보 일부가 유출되었으나 상호와 사업자번호, 기업등록번호 등 이미 공개된 정보가 유출되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처음엔 기업카드 정보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발뺌하더니 나중에는 유출된 정보가 이미 공개된 것이라서 문제없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기업카드의 정보유출 확인 창은 마련하지도 않은 그들의 무성의함에 놀랐다. 상황이 이러니,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감을 잡기도 힘들다.

자본의 욕심에서 비롯된 카드사회, 결국 이렇게...

대규모 개인정보유출 사태로 인해 2차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는 21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카드센터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롯데카드, '사과 드립니다' 대규모 개인정보유출 사태로 인해 2차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는 21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카드센터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양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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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에 따르면, 기업카드 정보도 1966만 건이나 유출됐다고 한다. 문제는 기업카드의 결제 한도가 크다는 점이다. 물론 해당 카드사들은 2차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피해자들을 다독이고 있고, 정부는 사건 발생 일주일도 안 된 22일 관련 대책을 내놓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뒷맛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특히 앞서 말했듯이 법인 카드는 한도가 수천, 수억 원인 데다 법인 이름만 적힌 무기명 카드가 여러 장 발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카드번호와 유효기간 등이 유출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불법으로 사용돼도(구매 상황에 따라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곳도 있다) 확인이 늦을 수밖에 없다.

'신용사회'라고 불리는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서 신용카드는 자본의 필요에 따라 급속하게 확대돼 왔다. 소수의 사용자들 사이에서 신분 과시용으로 사용되던 신용카드가 전 국민의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소비 촉진을 통해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한 자본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정권은 거래의 투명성과 신용사회를 정착시킨다는 미명하에 현금의 대체수단으로 카드 산업을 육성해왔다. 지갑에 두둑하게 꽂힌 지폐는 시대를 적응하지 못한 모습처럼 각인되었고 신용카드 몇 장은 당연히 있어야 할 현대인의 필수품처럼 취급되었다.

그러나 개개인의 신용상태를 평가해서 제한적으로 발급되어야 할 신용카드는 길거리에서 놀이공원 무료 이용권과 맞바꿔지기 일쑤였다. 먼저 만든 신용카드를 보여주면 새로운 신용카드를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카드 판매사원들은 시장이나 사무실을 돌면서 끝도 없이 새로운 카드 개설을 독려했다. 개인의 신용을 길거리에서 평가 받는 사회라니... 개인정보가 카드사에서 '소중한' 정보로 취급되길 바라는 건 애초 무리였다.

길거리에서 무분별하게 남발된 신용카드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수많은 신용불량자 양산과 후불제만 믿고 카드 돌려막기를 일상화 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빗나간 신용사회의 한 단면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출을 비롯한 스팸 문자메시지를 받아야 하는 불편한 일상도 카드사의 허술한 정보관리가 낳은 장면이다.

은행의 대응과 정부의 대책, 너무 한심스럽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고 종합방지 대책 당정협의에 참석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현 부총리는 "이번 사건이 발생해 매우 유감이고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사과를 했다.
▲ 현오석 부총리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고 종합방지 대책 당정협의에 참석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현 부총리는 "이번 사건이 발생해 매우 유감이고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사과를 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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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금융권의 개인정보 유출은 생경한 장면이 아니다. 일일이 손으로 꼽기엔 민망할 정도가 돼 버렸다. 정부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색하며 각종 대책을 내놓았다. 카드대란과 돌려막기에 몸살을 앓는 사람들이 늘었을 땐 카드 발급 제한과 길거리 모집을 중단하라는 대책을 내놨다. 또 수천 만 건의 개인정보유출 사건이 터졌을 땐 번번이 카드사의 책임소재를 확실하게 묻고 보안 관리에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희미해질 때면 다시 카드 발급은 남발됐다. 또 개인정보를 소중하게 다루겠다고 했으면서도 개인정보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카드사의 정보가 유통업체로 흘러 들어가고, 보험회사 영업에 활용되었던 건 동의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었던 고객이 울며 겨자 먹기로 입력한 개인정보였다.

사실 이번 카드3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정부 등의 대응은 신속했다. 일부에서 터져나온 '대통령 신상이 털렸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문제가 된 카드 3사 임원진들은 하루 저녁에 모두 옷을 벗었다. 정부는 연일 정보가 담긴 USB 메모리가 회수됐기 때문에 2차 피해는 결코 없을 거라며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면서 이번엔 정말 특단의 대책을 내놓겠다며 국민들의 이해와 믿음을 요구했다. 그러나 은행의 대응이나 정부의 대책은 신뢰하기 힘들 정도로 한심스럽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이 불온세력들 때문인 것처럼 때아닌 색깔공세에 나선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의 모습만 봐도 그렇다.

22일 카드사 개인정보유출 정부종합대책을 들고 나온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유출된 고객 정보가 전량 회수돼 피해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서 "개인 정보가 유통되지 않았다는 것을 수사당국이 수차례 확인했으며 사고 발생 이후 1년이 지나도록 단 한 건의 피해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앞서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복사본까지 압수했기 때문에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고 밝혔다.

정부 대책, 국민들을 안심시키기엔 역부족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 단편적인 진단이다. 이번 유출 사태를 이용해 스미싱이나 보이스피싱이 더 활개를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유출된 개인정보를 이용한 것이 아니더라도, 카드3사와 감독기관을 비롯한 정부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대책에 신뢰가 안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대책에는 ▲카드사 3개월 영업정지 ▲정보 유출 금융사에 대한 징벌적 과징금 및 처벌 강화 등이 포함돼 있어 그동안 내놓은 대책보다는 강력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카드사의 무분별한 확장 영업이나 개인정보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제재가 빠져 있다. 특히 금전적 피해를 제외한 정보 유통으로 일어나는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가장 씁쓸하다.

길에서 사람의 신용을 평가하고 개인정보를 기업의 독점 자산처럼 취급한 카드사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자다. 또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이번 대책에는 금융위원장 등이 책임을 지는 모습이 포함돼 있어야 했다. 따라서 22일 발표된 정부의 종합대책은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믿음을 주기엔 역부족이다.

문명의 이기가 된 신용카드. 카드사의 탐욕을 제어하고 국민의 안전과 신용이 보장되는 진정한 카드 대책이 절실하다.


태그:#카드 정보 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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