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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작품 무대는 '피스'라고 하는 숲이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숲통령 먹바위 딸과 평화를 염원하는 숲민들의 한 판 대결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숲을 무대로 한 우화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필자말

평화를 달라
▲ 우리에게 평화를 달라
ⓒ 이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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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의 안개가 날 죽이러 왔구나

숲민들이 폭도로 돌변하여 먹바위 궁을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에 먹바위 딸은 대노했다.

"그러니까 저놈의 안개는 언제 걷히냔 말이야! 그거라도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것 아닌가!"

먹바위 딸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각하,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으로 까마귀를 급파했으니 곧 소식이 올 겁니다."

궁정장관이 말했다.

"각하,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안개가 물러날 때까지 만이라도 잠시 피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숲경찰과 숲얼단도 대책 없이 당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는지라……."

경호실장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내가 도망쳐야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단 말인가?"

"그런 건 아니지만 워낙 안개가 심한데다, 폭도들의 수가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터라……."

경호실장이 답했다.

"저놈의 안개가 날 죽이려 드는구나."

"송구합니다. 각하."

"송구하면 숲군대라도 동원하여 폭도들을 막으라고 해!"

"각하, 안개 때문에 숲군대를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런 상황에서 군대를 움직였다가 N·피스 놈들이 전쟁을 일으키기라도 한다면 자칫 피스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저 아둔하고 못난 놈들이 궁 담을 넘어 오는 걸 지켜보고만 있으란 말인가?"

먹바위 딸의 말에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때 숲경찰청장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각하, 큰일났습니다!"

"뭐야 또!"

"숲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이 탈옥을 했다고 합니다."

숲경찰청장의 보고에 다들 깊은 탄식을 쏟아냈다.

"죄수들이?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궁정장관이 나섰다. 먹바위 딸은 할 말을 잃은 듯 한숨을 토해냈다. 가늘고 길게 토해지는 한숨은 숲경찰청장과 궁정장관의 귀에도 들렸다. 

"말씀 드린 대로 죄수들이 탈옥하여 먹바위 궁으로 오고 있다는 연락이 방금 왔습니다."

숲경찰청장이 가뿐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허참, 아무리 안개가 지독하다 해도 감옥을 지키는 자들이 뻔히 있는데 감옥을 대체 누가 엽니까? 안개가 죄수들을 탈옥 시켜요? 바람이 죄수를 탈옥 시킵니까?"

궁정장관이 답답하다는 듯 숲경찰청장을 다그쳤다.

"자세한 건 안개가 걷혀 봐야 알 수 있는 지라……."

숲경찰청장이 먹바위 딸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각하, 죄수들이 탈옥을 했다고는 하나 안개가 워낙 짙은데다 오랜 감옥생활로 방향감각 또한 무딜 터이니 이곳까지 당도하는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숲감옥이 만들어진 이래 지금까지 숲감옥을 탈출해 살아남은 자 또한 없으니 죄수들에 관한 사안은 크게 염려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궁정장관이 먹바위 딸에게 말했다. 죄수들이 먹바위 궁까지 올 수 없다는 사실은 먹바위 딸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멀리 있는 죄수들이 아니라 곧 들이닥칠 숲민들이었다. 먹바위 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안개야. 안개만 걷힌다면 모든 게 단 번에 해결되겠지…….'

안개로부터 시선을 거두며 먹바위 딸이 중얼거렸다. 그때 궁 수비대장이 뛰어 들어왔다.

"각하, 궁 수비대를 증강하여 외곽까지 배치완료 했습니다!"

"폭도들은?"

먹바위 딸이 물었다.

"숲 광장까지 몰려왔다고 합니다."

폭도들이 숲 광장까지 왔다면 먹바위 궁까지는 순간일 것이었다. 먹바위 딸이 궁정장관에게 물었다.

"까마귀로부터의 소식은?"

"곧 당도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각하."

먹바위 딸은 다시 안개에게 시선을 던졌다. 안개를 바라보며 저 몰상식한 안개에 대한 대비를 해야겠다고 먹바위 딸은 생각했다. 먹바위 딸은 숲총리를 불러 기상예보에 관한 대책을 세우라는 지시를 급히 내렸다.

궁정장관의 비서가 급히 뛰어왔다. 안개가 먼 곳부터 걷히기 시작했으니 아마도 서쪽 지역부터 걷힐 것이라고 비서는 보고했다. 궁정장관은 비서의 보고를 먹바위 딸에게 들은 대로 전했다. 먹바위 딸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늑대와 숲경찰청장을 불렀다.

"곧 안개가 걷힌다. 각자 위치를 잡아 안개가 걷히는 순간 숲을 서성대는 놈들은 다 「꽃바람 1호」 위반으로 처분하라. 내게 반기를 들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어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도록 하라. 알겠나?"

먹바위 딸의 명이 있자 늑대와 숲경찰청장이 급히 궁을 나섰다.

"각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비서실장 너구리가 다가왔다. 원숭이 앞잡이 노릇을 했던 비서실장은 친원파의 일원으로 먹바위 때부터 대머리 독수리를 거쳐 시궁쥐가 숲통령을 할 때까지 먹바위 궁을 지켜온 자였다. 노회했지만 따르는 이들이 많고 상황 판단 또한 비상하여 비서실장에 등용되었다.

"뭔지 말해봐."

먹바위 딸이 말했다. 그 말투에서 비서실장은 먹바위 숲통령을 읽어 내려갔다. 아무리 부녀지간이라고 해도 이렇게 닮을 수 있다니, 비서실장은 먹바위 딸이 행동하는 것과 말투까지 먹바위 숲통령과 한 치도 다르지 않구나 라고 생각했다. 비서실장이 입을 뗐다.  

지금이 숲통령 후보 '느릅나무 후손'을 없앨 기회

"안개로 인해 숲이 잠시 혼란스럽긴 했지만 오히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어 집니다."

"더 큰 것이라……그게 뭘까?"

먹바위 딸이 관심을 나타내며 비서실장을 바라보았다. 비서실장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말을 이었다.

"피스는 하루 태어나는 숲민이 수십만이고 제 명을 다해 죽어가는 숲민이 또 수십만입니다. 저들을 죽이는 일이야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옵니다. 허나 오늘 수백만을 죽인다면 내일은 그 배로 태어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안개가 곧 걷힌다니 이번 폭동을 단순히 안개로 인한 폭동 정도로 보실 것이 아니라 대어를 낚는 기회로 활용하심이 좋을 듯싶습니다."

"대어라면?……느릅나무 후손을 말함인가?"  

"그러합니다. 느릅나무 후손을 이번 폭동의 배후로 지목하여 이참에 제거해 버리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 외 골치 아픈 놈들까지 느릅나무 후손과 줄줄이 엮어 반역죄로 다스리면 그들도 꼼짝 못할 것입니다."

"반발이 클 텐데 괜찮을까?"

"이미 느릅나무 후손의 아비가 반역을 일으킨 전력이 있으니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각하께서 윤허만 하신다면 그 일은 제가 만들어 보겠습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먹바위 딸은 좋은 계획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느릅나무 후손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에 원숭이나라 노래도 절로 흥얼거려졌다. 비서실장은 그 모습을 보며 먹바위 아버지 숲통령 각하께서도 즐거운 일이 있으면 저러셨지, 라고 중얼거렸다.

"훌륭해. 아주 멋진 구상이야. 기왕이면 숲감옥의 죄수를 탈출시킨 것도 느릅나무 후손의 짓이라고 엮으면 되겠군."

먹바위 딸에게 느릅나무 후손은 여간 신경 쓰이는 존재가 아니었다. 독립운동가 아들인 것도 그러하고 숲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도 먹바위 딸로선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먹바위 딸은 그가 부정선거라며 선거무효를 주장하지 않은 걸 내심 고마워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고마워 할 대상이 아니라 하루 바삐 제거해야할 대상인 것이었다. 그 일을 공작 전문가인 비서실장이 해결하겠다니 먹바위 딸로서는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각하의 말씀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부정선거니 뭐니 떠들던 놈들은 물론이고 느릅나무 후손의 정치 생명 또한 그날로 끝날 것입니다."

"듣던 중 반갑고 기분 좋은 말이로군."

먹바위 딸은 느릅나무 후손만 제거된다면 숲통령을 현행 선거제에서 종신제로 바꾸는데 있어 걸림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비서실장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답했다.

"난 실장을 잘 알아. 그러니 이번 일도 잘 마무리 하리라 믿어. 느릅나무 후손이 제거 된다면 내 동쪽에 있는 느릅나무 후손 소유의 숲을 실장에게 선물하지."

먹바위 딸이 비서실장의 등을 두드리며 깊은 애정과 신뢰를 보냈다.

"큰 광영입니다. 각하. 이 너구리 성심을 다해 각하를 보필하겠습니다!"

늙은 비서실장의 이마가 바닥에 닿았다. 비서실장이 나가자 먹바위 딸은 안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호호, 느릅나무 후손을 제거 한다…… 이제 보니 저 안개가 날 죽이러 온 게 아니라 선물을 주려고 왔군.'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최근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태그:#국정원, #비서실장, #박근혜, #박정희, #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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