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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공항에 마중을 나오는가에 이민 인생이 달려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미국 교포들 사이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과거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들이 첫발을 내딛은 관문은 십중팔구 LA 톰브래들리 공항이나 뉴욕의 JFK 공항이었다. 낯선 땅으로 이민 온 신참 교포를 이곳에서 맞이한 사람들은 대개 먼저 미국 땅에 정착한 이들의 친척이나 친구들이었다.

이러니 아메리칸 드림의 출발점은 자엽스럽게 마중 나온 교포가 종사하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세탁소나 리커스토어(구멍가게), 가발 가게 등으로 과거 미국 교포들의 비즈니스가 집중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약 20년 전 미국 출장길에 자동차로 네브라스카의 시골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두 시간 이상 시골길을 달려야 할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백인 이외의 인종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농촌 마을. 그곳의 한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 먹는데, 뒤통수가 근질근질 했다. 왜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누군가 나를 주목하고 있는 것 같은 직감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스윽 훑어 보니, 내게 고정했던 시선을 황급히 돌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미국 중부의 시골 같은 곳에서 아시아 사람은 말 그대로 '희귀종'이었다. 아시아 사람이 TV나 영화를 통해서가 아닌 실물로, 그것도 자기네들 음식인 햄버거를 먹는 모습이 다소 신기했을 터.

그러나 지난 20여 년 사이 미국은 달라졌다.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한국인 교포들이 더 이상 LA나 뉴욕에만 사는 것은 아니다. 10개월 가까이 북미 대륙을 여행하면서, 한국 교포들이 없는 곳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인구가 5000명만 되는 소도시에서도 최소 한두 명의 한인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미국의 뒷길에서 만난 교포들은 독특한 직업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또 민들레 홀씨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도 적지 않았다. 미국인들보다 더 미국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분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미국 동남부 지역에서 만난 분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김만섭씨
 김만섭씨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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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찰스턴에 거주하는 김만섭씨. 미국 동부 전역을 통틀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앤티크 가구 제작 전문가다. 종합상사 주재원으로 있다가 미국에 눌러 앉아 독학으로 가구 장인의 위치에 올랐다.

엄태곤씨
 엄태곤씨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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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주의 아팝카에서 대형 꽃농장을 운영하는 엄태곤 사장. 7만2000평 규모로, 꽃 숫자만 수십만 본에 이른다. 한국에서 화훼 관련 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도 전공을 살린 사례다.

이재열씨
 이재열씨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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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주 잭슨빌의 이재열씨. 구조설계 엔지니어로 허리케인 내습이 잦은 플로리다 주에서 튼튼한 건무를 설계하는 것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유학 와서 미국에 정착했다.

이복선씨
 이복선씨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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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선씨. 사우스 캐롤라아나 주 컬럼비아에서 '솔잎 공예'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평범한 가정 주부였다가, 한국적인 소재를 찾아 현지에서 알아주는 유명 공예가로 발돋움 했다. 그의 왠만한 작품은 차 한대 가격에 맞먹는 고가로 팔리고 있다.

김용선씨
 김용선씨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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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손녀가 여럿인 김용선씨. 플로리다 주 파나마 시티에 산다. 건설업을 하는데, 거친 남성인부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여장부다. 자동차도 탱크 같은 차로 유명한 허머이다.

신대용씨
 신대용씨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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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탬파에서 방산물자 생산 회사를 운영하는 신대용씨. 1·2차 이라크 전쟁에서 사용된 벙커버스터 가운데 절반이 신씨가 운영하는 DSE사 제품이었다.

박문순씨
 박문순씨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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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 캐롤라이나 주 윌밍턴에서 광어를 키우는 박문순씨. 현지 유력 신문에 커다랗게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나에게 물릴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광어회를 대접해 줬다.

덧붙이는 글 | 세종시 닷넷(sejongsee.net)에도 실렸습니다. 세종시 닷넷의 또 다른 연재물, 조여사의 촌철살인도 일독을 권합니다



태그:#교포, #미국, #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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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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