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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 생가터 비석에는 '118-1번지'라 되어있으나 실제 비석은 '246-1번지'에 있다.
 이봉창 의사 생가터 비석에는 '118-1번지'라 되어있으나 실제 비석은 '246-1번지'에 있다.
ⓒ 양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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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 의사의 생가터가 엉망진창이다. 애국의사를 이리 막 대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서 만난 주민 박아무개(44)씨의 목소리는 분노에 차 있었다. 박씨는 "일본의 아베도 선조들에게 이렇게는 안 한다, 이봉창 의사가 살지도 않았던 곳에 표지석만 세워놓고 '생가터'라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용산구청 "이봉창 열사 표지석, 한 달에 한 번 청소"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앞역 1번 출구 뒤쪽에는 가로·세로 50cm 크기의 표지석이 있다. 지하철역 화단 한편에 마련된 표지석 주변에는 먹다 버린 귤껍질, 음료수병, 담배꽁초 등이 너저분했다. 표지석에는 "용산구 효창동 118-1번지는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가 태어나 살던 곳"이라는 글귀가 선명했다.

2010년부터 이 표지석 앞에서 청과물 장사를 해온 김명호(55)씨는 표지석 주변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하루이틀 된 것도 아니"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길을 가던 한 중학생은 먹던 소시지 막대기를 표지석 쪽으로 툭 던졌다. 기자가 다가가 "혹시 여기가 이봉창 의사 유적지인 것을 아냐"고 물었다. 그 학생은 "몰랐다"며 급히 자리를 피했다.

한 달에 한 번 청소하고 있다?
▲ 외면받는 항일투사 한 달에 한 번 청소하고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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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동 주민이라 밝힌 김미정(30)씨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주민들은 이봉창 의사 생가 터인지 몰라요. 모르고 싶어 모른다기 보단 마땅한 표식도 없고 관리도 엉망이니까요. (효창동에) 김구 선생 기념관도 있는데 (이봉창 의사 생가 터에 대해) 이렇게까지 무관심한건 심각한 문제라고 봐요."

이봉창 의사의 생가터 관리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봉창 의사의 생가가 원래 이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종래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회장은 "원효로 2가 1번지가 원내 이봉창 의사가 태어난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사는 9세 무렵 현재 표지석이 세워진 '효창동 118-1번지'로 이사왔다. 엄밀히 따지면 효창동 118-1번지는 이 의사의 '집터'인 것이다.

"아파트 재개발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 다른 위치, 틀린 표지석 "아파트 재개발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인근 동사무소를 찾아 '이봉창 의사 생가'에 대해 문의했다. 동사무소 직원은 기자의 질문에 난감해 하며 용산구청 문화체육부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용산구청 문화체육부 측은 "관리가 소홀한 것도, 표지석 지번이 잘못된 것도 다 알고 있다"고 인정했다. 문화체육부의 한 관계자는 "(이 의사의) 생가 터는 아파트가 재개발되고 있는 골목 입구라서 (복원이) 사실 어렵다"며 "그래도 (표지석 주변을) 한 달에 한 번은 청소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김동영 '이봉창의사생가보존추진위원회' 회장은 "부끄러운 일이다, 살신성인해서 나라와 민족의 자긍심을 높인 분인데 어찌 이리 무시하는지… 스스로 정체성을 상실하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만해 선생 표지석 잘못 세웠다가, 지금은 골목 벽에 동판으로....

이봉창 의사 생가터만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 선생의 집터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머물렀던 만해당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만해의 유적? 동판 하나만 덩그러니 만해 한용운 선생이 머물렀던 만해당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양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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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계동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유리(46)씨는 "서울시가 과연 문화재와 사적에 관심이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만해 한용운 선생이 기거하며 3·1운동을 도모했던 곳은 이씨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자리(종로구 계동 43번지)인데, 전혀 엉뚱한 곳에 표지석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표지석이 세워졌던 자리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석정보름우물(종로구 계동 58번지 뒷길)' 바로 옆이었다. 관광객들이 보면 이 우물이 만해 선생이 기거했던 집터로 오인할 만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제보가 계속되자, 서울시는 지난 2012년 원래의 자리(계동 43번지)로 표지를 옮겼다. 그러나 골목이 좁아 표지석을 세우는 대신 게스트 하우스 대문 옆에 동판을 붙여놨다. 유적에 대한 관리를 담당하는 관련기관의 고증이나 연구가 부족했음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해 선생의 표지석이 잘못 세워져 있던 근방에서 55년째 살고 있는 이춘식(72)씨는 "표지석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런 게 있었냐, 누가 관리하는지도 모르겠다"며 의문을 가졌다. 송영혜 서울시 문화재연구팀 주무관은 "현재 표석 디자인 개선사업을 하면서 설치 주체를 알 수 있도록 기관명과 설치 일자를 표시할 것"이라 밝혔다.

지난 7월 '효창공원국립묘지' 추진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김광진 의원실 고상만 보좌관은 "일본의 야스쿠니 비판 이전에 우리 항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예우가 우선"이라며 "말로만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위하지 말고, 실제 독립운동하신 분들을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그 첫 번째"라고 말했다.

문화재발굴현장에서 연구작업을 해온 전영호 연구원 역시 "표지석 하나로는 안 된다, 학생과 시민들이 항일독립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스토리로 이해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생가터나 기념관 같은 역사문화 현장에 대한 문턱부터 대폭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범김구기념관>을 찾으면 이봉창 의사의 거사 직전 모습을 볼 수 있다.
▲ 이봉창 의사 <백범김구기념관>을 찾으면 이봉창 의사의 거사 직전 모습을 볼 수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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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종훈, 박윤정, 양태훈 기자는 오마이뉴스 19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이봉창, #백범, #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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