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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하시는 어머니
▲ 머리 머리 하시는 어머니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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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1월 8일. 어머니 머리를 했다. 정말 대단한 외출이었다.

어머니 모시고 한번 집 밖에 나가려면 그야말로 크나큰 행차가 된다. 미용사 두 분이 달라붙었다. 눈 감아요. '고개 들어요. 고개 숙여요. 옆으로 돌려요.' 미용사의 지시를 다소곳이 따른 울 엄니. 이쁜 울 엄니가 더 이뻐지셨다.

치매 부모와 관계된 험악한 소식들이 들려오는 요즘, 나는 어머니랑 여행을 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송구영신 여행.

작년 12월부터 장장 1달여에 걸친 여행이었다.

여행지도 다양하다. 도시도 갔고 시골도 갔고 온천도 갔고 바다에도 갔다. 그리고, 어머니 친정도 찾아갔다. 내겐 외갓집이다.

대구에서 간 곳은 천도교 대명교구였다. 2층까지 어머니가 올라가는 길은 험난했다. 남정네들이 달라붙어 휠체어를 좁은 계단으로 올렸다. 내가 설교하는 동안 어머니는 '저 놈 또 지껄인다'는 듯이 비스듬히 휠체어에 기대 조시는 듯 했다. 대전도 갔다. 대전에서 공주로, 공주에서 홍성으로. 그리고 다시 부안 대명리조트도 갔다.

남원도 갔고 학교도 갔고 교회도 갔다. 내 강의 일정 따라 곳곳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다 보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닌 셈이다.

중학생들과 어울렸다. 저녁에는 교사들과 '위기의 교육.....' 하는 모임 갖고.
▲ 거창 대성중학교 중학생들과 어울렸다. 저녁에는 교사들과 '위기의 교육.....' 하는 모임 갖고.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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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몸 상태도 고려해야 하고 내 강의 일정도 있고 해서 집에 들러 며칠 쉬었다가는 다시 여행을 이어갔다. 내가 운전하는 동안 얌전하시다가도 수가 틀리면 어머니는 난리를 친다. 운전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러면 얼른 휴게소에 들어가거나 길가에 세우고 어머니 달래는 비상요법을 동원한다.

비상요법이라는 게 별거 아니다. 기저귀 검사를 하고 뒤처리를 해 드리는 것과 갖가지로 준비된 음료나 과일을 드리는 것이다.

천도교 대명교구 계단 오르기
▲ 천도교 대명교구 천도교 대명교구 계단 오르기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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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휴게소마다 장애인 주차장은 장애인 표지판도 없는 승용차들로 가득 차 있기 일쑤고 아기들 젖 먹이는 수유실은 있으되, 치매노인 기저귀 갈 공간은 전국 어디에도 없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행사장도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어 수유실로 들어갔다가 쉬고 있던 젊은 여성 행사요원과 당황스런 조우가 있기도 했다.

자연재배 농부 모임에 강의를 하기 위해 갔던 홍성에서는 우리 딸이 다니던 풀무학교 홍순명 전 교장선생님을 만나기도 했다. 어머니는 멋진 게스트하우스에 계시고 나는 선생님의 서재에서 차를 마셨다.

대명리조트의 기억도 새롭다. 광주광역시 여성단체 대표단 강연이었다. 좀 일찍 도착하여 배정 해 준 객실에 드니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강의 준비를 하는 동안 어머니는 배가 움직이는 것을 보시고는 놀랍게도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 시대에 관부 연락선을 타고 일본 건너가셨던 기억을 되살려내셨다. 여러 번 들었던 얘기였는데 앞뒤가 잘 안 맞긴 해도 부안 앞바다에서 70여 년 전 탔던 관부연락선을 떠 올릴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고급스런 부안의 대명리조트에서 어머니랑 1박을 했다.
▲ 대명콘도 고급스런 부안의 대명리조트에서 어머니랑 1박을 했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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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생활인문학 협동조합(준)' 조합원연수 때도 같이 가셨다. 우리 집에서는 샤워시설이 없어 목욕을 마음대로 못하는데 여행을 하면 욕조에 들어가 맘껏 목욕을 하니 더 없이 좋다.

거창 가조면 온천에 갔을 때는 물이 참 좋았다. 해외 연수 때 유명한 외국 온천도 몇 군데 다녀보고 국내 온천도 여러 곳 다녀봤지만 가조온천만 한데가 드물었다.

2박3일씩 두 번이나 갔는데 그래서인지 어머니 다쳤던 다리도 부드러워지고 어머니나 내 얼굴도 윤이 나고 혈색이 좋아졌다고들 주위에서 말했다. 애로사항은 엘리베이터가 어머니 휠체어 들어가기 좁아서 고생했고 욕조 바닥이 미끄러워서 어머니를 안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가 너무도 위험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의가 있었다.
▲ 영승마을 고택 여기서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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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작년 말에는 거창 마리면에서 하는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에 어머니랑 갔던 일이다. 어려운 인문학 강의까지 어머니가 다니느냐고 할지 모르나 마음먹기 나름이다. 영승마을에 있는 종가댁이었다. 미리 연락을 받아서인지 이장께서 우리 어머니 쉬실 집을 안내 해 주셨는데 그 집에 정선전씨 우리 가까운 종씨 집안이었고 더구나 할머니가 100세 잔치를 막 끝낸 집이었다.

영승마을에 사시는 할머니시다.
▲ 100세 할머니 영승마을에 사시는 할머니시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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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어찌나 귀도 밝으시고 정정하신지 내가 큰 절을 드리고 절값 달라고 손을 내 밀자 내 손을 잡고 깔깔 웃으시기도 했다. 기념사진도 찍고 나중에 용돈도 좀 쥐어 드렸더니 어쩔줄 몰라하셨다.

내가 강의장에 있는 동안 어머니는 이곳 할머니들과 어머니 특유의 입담으로 재밋게 노셨다고 한다. 우리 집에는 아들이 다섯이다. '우리 집에는 곶감도 많고 된장도 많다. 우리 집에는 알밤도 많다...' 우리 어머니의 자랑이 끝이 없었다고 한다.

인문학 강의 끝나고 칼국수 집 뒷풀이
▲ 칼국수 집 인문학 강의 끝나고 칼국수 집 뒷풀이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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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문학 강의가 끝나고 마리면 소재지 해물칼국수집으로 갔다. 인심좋으신 주인장께서는 좌식 식당인데도 어머니 휠체어를 끌고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어머니가 뜨거운 칼국수를 어찌나 잘 드셔서 내 몫이 많이 줄었지만 다행이었다.


돌고 돌아 집에 돌아 온 다음날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바람(?)이 나 계셨다. 친정에 가자시는 것이다. 친정은 경남 함양 안의다. 어머니의 친정은 곧 내 외갓집. 차를 몰았다. 나중에는 어디건 가고 싶어도 못 갈 때가 올 테니 어머니 가자고 할 때 맘껏 다녀보자는 심사였다. 육십령 고개를 넘자 쌓였던 눈들이 옅어지고 차창으로 논밭이 나타났다.

이때 하신 어머니 한마디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육십령을 넘어 서상면을 지날 때였다. 우회도로를 거치면서 멋진 풍경에 마음이 크게 고양되신 때문인듯 하다.

하늘을 보고 어머니가 탄성을 내셨다.
▲ 멋진 하늘 하늘을 보고 어머니가 탄성을 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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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 밭을 사흘 밤낮으로 매느라고 애 먹었구마~"
"어머니가 밭 맸어요?"
"응. 내가 맸지. 그때 욕 봤구마~"
"에이~ 무슨!! 아니에요!"
"에이는! 너는 몰라!"
"왜 몰라요? 저거 우리 밭 아니에요."
"니가 내 뱃속에 생기기도 전인데 너는 몰라!"


자식 입막음 용으로 이보다 더한 말이 있을까? "니가 생기기도 전에...."라고 하는데 뭐라 반박 할 건가. 나도 언제 한번 써 먹어야겠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옷 매무새를 고친다. 뒷 건물이 새로 완공된 된장 등을 만드는 시설이다.
▲ 외사촌과 형수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옷 매무새를 고친다. 뒷 건물이 새로 완공된 된장 등을 만드는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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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도착한 어머니 친정은 70대 후반으로 들어 선 외사촌 내외만 계신 곳이다. 참 사연 많은 집이다. 면서기를 하던 외사촌 형님은 형수랑 같이 늘그막에 옛 솜씨를 살려 된장에 고추장, 쌈장과 곶감까지 해서 주변에 팔았는데(관련기사 : "면서기를 몇 년 하셨으면서 이것도 못해요?") 식파라치가 신고를 해서 된통 욕을 봤다. 그래서 2년여 동안 교육도 받고 사업자 등록도 하고 된장,고추장 등 시설도 완성해서 얼마 전에 재 개업을 하셨다. '물방아골식품'이라는 카페도 다시 열었다.

곶감이 주렁주렁이다.
▲ 곶감 곶감이 주렁주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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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곶감을 만들어 막 출하하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큰 기업이나 어디 많이 팔아달라고 했지만 삼성이니 엘지니 현대니 내가 아는 기업이 많긴 해도 그네들이 내 말 들을 것 같지는 않고 카페에 사진이나 올려 드리기로 했다. 노인네 부부가 하두 대견하여 수의사 같은 하얀 일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어 드렸다.

곶감이 종류별로 포장지에 담겼다.
▲ 포장지에 담은 곶감 곶감이 종류별로 포장지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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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형수가 만들어 두었던 단술(식혜)를 두 그릇이나 마시고 아랫목에 눕더니 일어 날 생각을 안 하셨다. 덕분에 나도 밥을 얻어먹고 자리에 누웠다.

오늘은 어머니 생신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왔다. 어머니 덕분에 가족들은 이 기막힌 덕유산 기슭으로 새하얀 겨울 여행을 왔다. 그동안 다녔던 숱한 여행지도 사실은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다기 보다는 어머니가 나를 이끌고 다니셨다고 해야 옳다. 어머니 덕에 호사스런 대명리조트에 1박 할 수 있었고 평시에 엄두도 못 낼 유명 온천엘 두 번이나 다녀왔다.

어머니 아니었으면 해인사 대장경 축제에 비싼 입장료를 낼 뻔 했다. 장애3급 우리 어머니 덕분에 공짜로 입장했고 어느 식당 마음씨 좋은 주인장께서는 나랑 어머니를 갸륵하게 여기시고 밥값도 안 받으셨다.

어머니랑 사는 이야기를 주제로 하게 되는 강의 역시 결국은 어머니 은덕에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주어지는 만큼 여행을 계속 할 생각이다.


태그:#어머니, #치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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