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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개국 공신'이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8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빛나는 모습은 없었고, 내용에서도 총체적으로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 '개국 공신'이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8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빛나는 모습은 없었고, 내용에서도 총체적으로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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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개국공신'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미스터 쓴소리'가 됐다. 언론접촉을 꺼리는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 달리 그는 줄기차고, 일관되게 박근혜 정부를 비판해왔다.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열렸던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6일)을 향해서도 "빛나는 모습은 없었고, 내용에서도 총체적으로 후퇴했다"라고 꼬집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8일 오전 서울 청계천변의 한 찻집에서 만난 이상돈 전 비상대책위원(현 중앙대 명예교수)의 목소리톤은 아주 낮았지만 비판에는 진심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는 "(경제민주화·복지 후퇴 등이) 전부터 계획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어떤 '여건'이 대통령을 구속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라고 박 대통령의 후퇴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기자가 "박 대통령의 후퇴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뜻인가?"라고 캐묻자, 그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라고 답한 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전 정권과의 관계에서"라는 말을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후퇴를 가능케 한 배경이 이명박 정부와 관련이 있다는 얘기로 들리는 대목이다.

그는 "2012년 9월 박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났는데 (그 직후인) 10월부터 변화를 감지했다"라며 "그 이후 과거사뿐만 아니라 색깔론이 나오는 등 대선캠페인 자체가 바뀌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지난해 7월 (4대강 사업 관련) 감사원 2차 감사 때 '실기'한 측면이 있다"라며 "이재오 의원,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 이정현 홍보수석 등이 한마디 하고 난 다음에는 흐지부지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MB정부의 2대 아킬레스건'이라고 지목한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것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명박 정부를 우회적이지만 처음으로 비판한 것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는 "그 말 때문에 이명박 정권 사람들이 긴장하고 있지 않겠나?"라며 "이제 그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4대강 사업 등) 정책 실패로 얻은 적자는 정부가 그것을 인정하고 해소해줘야 한다"라며 "다만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동시에 (정책 실패와 관련된 인사들을) 단죄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천문학적인 세금이 투입된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경우 '총지휘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조사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 대목에서 그는 "정의를 세울 때 국민이 제일 공감한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 전 비대위원은 최근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는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 논란'에도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교학사 교과서 사태를 주도한 사람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이들이다"라며 "식민지근대화론은 일본 아베 총리의 역사관과 똑같은 건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라고 진단했다.

다음은 이상돈 비대위원과 2시간 동안 나눈 대화 전문이다.

"기자회견, 빛나는 모습이 없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어떻게 봤나.
"대개 기자회견을 하면 '변화'를 기대한다. 그런데 그 기대가 무산됐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언급한 것 빼고는 새로운 게 없었다. 청와대 수석은 물론, 국무위원까지 배석하고 있었던 것은 오버였다. 권위주의 정부 때나 있던 일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 표정이 지금까지 봤던 것 중 가장 안 좋았다. 말하자면 뭔가 좀 빛나는 모습이 없다고 할까. 수세에 몰려 있다고 할까. 복기해보면 박 대통령의 표정이 바뀌는 계기가 몇 번 있었다. 지난 2012년 4월 총선 후 표정 밝아졌고 7월 영등포 타임스퀘어 출마 당시엔 정말 좋았다. 그러나 그 후에 <손석희의 시선집중> 라디오 인터뷰로 '인혁당 판결 논란'이 불거졌을 때나 정수장학회나 과거사 사과 관련 기자회견을 겪으면서 밝았던 표정이 사라졌다."

- 지난해 연말까지 수세에 몰리고 있던 상황이 얼굴에 드러난 것 아니겠나.
"임기 첫 해에 자신의 정책이랄까 어젠더를 추진해야 하는데 사건사고가 많았다. 또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나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같은 대통령의 '대리인'들이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등에) '대선불복', '색깔론'을 펴온 것에 국민들은 식상해 하고 있지 않나.

표정뿐만 아니라 기자회견 내용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총체적으로 후퇴했다. '생애주기 복지'나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강조했던 2009년 5월 스탠포드대 연설 때가 가장 좋았다. 그리고 대선 출마선언 내용도 굉장히 좋았다. 그런데 그 때 얘기했던 것들이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는 다 사라졌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 기자회견에서 (국정운영 기조) 바뀔까 기대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아니었다."

- 지난 총·대선 당시나 취임사 등을 비교할 때 '경제민주화'·'복지'는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고, '기업'은 총 22회나 언급됐다. 특히 비상대책위 당시 마련했던 '국민과의 약속'(당 강령)과 비교시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 사라졌을까.
"내 해석이지만, 2012년 9월 과거사 논란 당시 박 대통령이 충격 받지 않았나 싶다. 대선캠페인도 그 다음부터 답보에 빠졌다. 그래서 그 이후 김무성·권영세 의원을 영입했다. 김무성 의원만 해도 대통령 본인과 멀어졌던 사람이고 권영세 의원도 대선 본선 캠프 초기엔 없었던 사람이다. 또 김경재·한광옥 등 구(舊) 정치인을 영입했고. NLL 문제도 쟁점화됐고, 막판에 가서는 댓글사건도 터졌다. 그러면서 병역기간 단축 같은 공약도 쏟아지고. 그렇게 승리했다. 그래서 당선인 시절에 지금의 국정 밑그림을 그리지 않았나 싶다. 처음부터는 아예 (지금과 같은 그림은) 생각 안 했지 싶은데 잘 모르겠다."

-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이란 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경제민주화·복지 후퇴 논란으로 '신화'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과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과거사 논란 전까지 모든 언론과 '밀월관계'를 형성했다고 본다. 진보언론들도 '야당 대표' 때나 이명박 정부 때 박 대통령을 그렇게 비판하지 않았다. 대통령 당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박 대통령의 신뢰와 원칙, 그런 이미지가 흔들리는 시점은 본선 때인 것 같다."

"어떤 '여건'이 박 대통령을 구속하고 있는 것 같다"

-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박 대통령이 '대선 때는 포퓰리즘에 휩싸여서 지키지 못할 공약 했다'고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도 '쌀개방 저지'를 대선공약으로 걸었지만 못 지켰다. 그러나 당시 국제적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못 지킬 것이라고 봤다. 한계니깐. 그런데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이건 공약 중 일부가 아니라 전체니깐. 역대 대통령들이 공약을 못 지켰더라도 아예 바꾼 적은 없다."

-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복지 공약 후퇴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동의 안 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 같은 경우, 몇 가지 입법을 하지 않았나. 문제는 다수 국민이 그것을 이행할 의지가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기업도 (경제민주화에) 무게가 실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아닌가. 껍데기는 있지만 속알맹이가 없어진 것이다. 검찰개혁 같은 건 아직 나오지도 않았고. 그러나 본인의 생각은 알 수 없는 거다. 다만 나는 (경제민주화·복지 후퇴가) 전부터 계획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여건'이 대통령을 구속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 이런 상황을 만든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뜻인가.
"그럴 가능성이 많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전 정권과의 관계에서. 2012년 9월 청와대에서 만나지 않았나. 짐작컨대 박 대통령은 듣고만 왔겠지. 그런데 전 정권과 갈등이 처음 불거진 사안이 4대강 사업이다. 감사원 2차 감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도 세게 얘기했다. 그런데 이재오 의원,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이 한 마디씩 하고 난 다음에는 흐지부지됐다. 그런 것을 보면 뭔가 한계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또 하나는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왜 특검을 받지 못하느냐다. 특검만 받아주면 깨끗하게 털어질 문제인데."

-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떼 쓴다고 적당히 받아주는 건 소통이 아니다"고 했는데 어떻게 봤나.
"문제는 원칙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본적인 원칙이라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아니겠나. 그런 점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맞다. 철도 문제는 그동안 한 게 없던 이 정부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 그런데 민주주의 원칙을 지켰느냐. 또 공론화 과정을 안 거치면서 (정부의 경쟁 체제 도입) 논리마저 막히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사회의 대 원칙은 헌법이고 민주주의는 제1원칙이다. 새누리당은 마치 '다수결'이 민주주의 원칙인지 알고 있지만(웃음)."

- 가끔 박 대통령이 헌법을 제대로 다 읽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더라.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했던) 인혁당 발언 때 등을 보면 법률 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해. 지난 총선 후 통합진보당 의원 제명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그랬다. 국회법 등 법치주의에 맞지 않다는 지적 있지 않았나. 순 '법조인당'인 여당마저 똑같았다. 아이러니한 거다. 법조인당인데도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전체라고 본다. 그런데 '다수결'이 민주주의라면 (야당 대표 당시) 사학법 개정에 반대했던 논리가 힘을 잃는다. 사학법 개정안도 다수결로 통과됐던 건데 '사적 자치 훼손' 등을 이유로 반대했던 것 아닌가. 야당일 때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정의가 달라지나. 이는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집권세력이 지금처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생각한다면 문제가 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경제민주화·복지 후퇴 등이) 전부터 계획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어떤 '여건'이 대통령을 구속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라고 박 대통령의 후퇴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경제민주화·복지 후퇴 등이) 전부터 계획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어떤 '여건'이 대통령을 구속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라고 박 대통령의 후퇴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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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이 없는 정부... 초유의 사태"

-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는 사실 비상대책위나 총·대선 당시에도 불거졌던 문제다. 비대위원 당시 경험을 반추할 때 그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진 않았나.
"그렇지만 비대위 때는 김종인 박사(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나 내가 대신 그것을 해소한 측면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 많이 했나? 아니다. 대통령이 자주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대변인이나 장관, 총리 등이 대신 하면 된다. 문제가 커지면 그들이 TV에 나와서 30분 대담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총리가 하는 일이 뭐 있나. 이들의 언론 기피도 문제라고 본다."

- 소통 문제가 대통령 기자회견 한 번으로 해소되는 건 아니니까. 
"(기자회견 문제는) 대통령 개성에 따른 측면이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경우, 너무 (토론을) 좋아해서 부작용이 나왔고 스스로 자충수를 두기도 했다. 문제는 대변인이 없는 정부다. 언론인 출신이 청와대와 내각에 없다. 초유의 사태라고 본다."

- 대통령보다 이 정부 자체가 '불통정부'다?
"그렇게 돼 버렸다. MB 때보다 더 나빠진 것 같다."

- 청와대 측에서는 '불통 이미지'를 세종시 수정안 파동 당시 MB 측에서 덧씌웠다고 항변한다. 실제로 대통령은 현장에서 열심히 소통하고 있는데, 과거 만들어진 '불통 이미지'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는 얘기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 그 당시에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박근혜의 원칙'이라고 많이 다루긴 했지.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박 대통령이 MB정권 때 말을 아낄 수밖에 없지 않았나. 그래서 그때그때 촌철살인 같은 언급만 했다. 그를 통해 얻었던 것도 있지. 그 상황에서는 언론 접촉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박 대통령이 원래 언론이나 대중과 소통을 잘 하는 스타일도 아니지 않나.
"그런 스타일은 아니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아래서부터 올라온 스타일도 아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대통령 개성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그렇다면 그걸 해소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취임 이후 그 무언가가 사라졌다고 본다. 그를 보완할 수 있는 사람을 대변인으로 임명해야 하는데…."

- 지금 이정현 홍보수석이 열심히 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홍보수석이 '나는 내시가 아니다' 말할 정도면…. '나는 불통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불통'이란 뜻이고 '나는 내시가 아니다'면 '내시'란 거 아니냐. 해적두목이 보물을 묻어두고, '여기에 보물 없다'고 팻말 박는 것이랑 뭐가 다른가. 그리고 지금의 논란에는 박 대통령에 실망한 언론들의 영향도 일부 있다고 본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비판언론과도 '밀월관계'라고 할 만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박 대통령이 들어오면 해직기자 문제 등 언론문제도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부분에서 실망이 있지."

"자력으로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들어"

- 박 대통령이 대선 전후로 변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나는 대선 중인 2012년 10월부터 그런 변화를 감지했다."

- 박 대통령이 대선 전에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스타일을 지향하다가 대선 후에는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 스타일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던데. 
"아니, 대처를 자꾸 팔아(웃음). 대처 얘기를 자꾸 하는데, 대처는 수상에 취임했을 땐 영국이 너무 치우쳐 있었다. 대처가 상대적으로 균형을 맞춰준 것이다. '대처형'이라고 해석하려면,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무너진 우리 사회의 균형을 맞춰줘야지. 그런데 지금 모습을 놓고 대처와 비교하는 건 잘못됐다고 본다."

- 그러면 박 대통령은 대처도 아니다?
"대처가 취임했을 때 영국은 모든 기업을 국유화했고 공무원 조직이 너무 방만했다. 민영화도 공약이었다. 정부가 자동차회사까지 갖고 있었다. 노동당 정권이 들어와서 일반 기업을 국유화해서 30년 끌고 가다가 다 거덜났다. 대처는 그 기울어진 걸 회복한 것이다."

- 박 대통령의 '비정상의 정상화'도 균형을 되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보기 힘든 것 아닌가.
"균형 문제에서 한국의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아카데미(학계)와 미디어(언론)이 좌편향돼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세계 어디를 가도 아카데미와 미디어는 좌편향 돼 있다. 그건 컴퓨터의 '디폴트값(프로그램에서 사용자가 값을 지정하지 않아도 시스템 자체에서 저절로 주어지는 값)'과 같다. 거기에 손을 놓고 있어서도 안 되지만 그건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개입하면 (보수의) 입지가 줄어든다. 우리나라에서 보수담론이 생긴 것도 노무현 정부 때다. 정부까지 그리로(진보) 갔으니깐. 보수담론이 MB정부 들어 사그러들고 이제 소실돼 버렸다. 교학사 교과서가 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자충수를 뒀다."

-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이 정부가 실용을 중시하는 '합리적 보수'에서 이념을 중시하는 '신념의 보수'로 회귀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의도된 건 아니겠지만 거기에서는 여권의 책임이 상당히 크다. 정확히 아는 바는 없지만 전 정권과의 문제나 대선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부분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 '비정상의 정상화' 주장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논리 아닌가? 
"그런 분위기가 대선 중간에 생겼다. 그 전까지는 없었다. 총선 때 공식 회의석상에서 어떤 사람이 '좌파'란 말을 썼다가 박 대통령한테 혼났다. 박 대통령은 총선 당시에 (서울 노원갑에 출마했던) 김용민 사태 때 '막말하는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하거나, 제주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놓고 '말 바꾸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만 표현했다고. 경선과정에서도 (좌우를 구별하는) 표현을 한 적 없다. 그런데 대선 막판에 '모드'가 바뀌었다. 나는 대선 끝나고 나서 회복될 수 있을지 지켜봤다. 그런데 인수위 당시 윤창중 대변인 인사를 보고 뭔가 잘못 가고 있다고 느꼈다."

- 지금은 기대감이 없어졌나.
"철도파업 사태나 신년 기자회견만 보면, 자력으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엔 힘들지 않을까. 어떤 충격이 있지 않다면 어렵지 않을까 싶다."

- 김종인 박사가 '메르켈형'을 박 대통령에게 오래 전부터 권유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갈 수 없다는 뜻인가.
"메르켈처럼 될 수 없는 거다. 다 알겠지만 독일은 여당인 기민당과 야당인 사민당이 크게 다르지 않다. 기민당은 창당 당시 '노사정 대타협'을 강령으로 삼았으니깐. 또 내가 볼 때는 메르켈이 동독 출신이라 우파 정당에 들어간 것이지, 사민당의 슈뢰더 전 총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설적으로 총선 당시 과반수 의석을 못 얻었다면 타의에 의해서라도 (박 대통령은) 메르켈형이 됐을 거다.

난 과반수 의석에 너무 의존한 게 비극이라고 본다. 그나마도 알량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152석 외에도 민주당이 더 있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 새누리당 의석수는 너무 너무 알량한 과반인 거다. 그것을 믿고서 정치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양당의 기본구조가 독일과 다르지만 당시 박 대통령의 행보를 볼 때 그런 대립 구도를 해소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하지만 이제 보면 그런 기대는 떠났다고 봐야지."

"4대강-해외자원개발은 MB정부의 아킬레스건"

-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외교를 언급한 건 전 정권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 아닌가.
"그렇게 볼 수 있다. 나는 그게 제일 잘 들리더라. 이제 그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지켜봐야지. 그 말 때문에 이명박 정권 사람들이 긴장하고 있지 않겠나(웃음)."

- 신년 기자회견을 계기로 전 정권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지난해 7월 감사원 2차 감사 때 '실기'한 측면이 있다. 그런 건 분위기가 왔을 때 해야 하는 것이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전두환·노태우 구속·기소할 수 있었던 건, 당시 민자당 박계동 의원의 '비자금 통장내역 공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은) 계기를 놓치고 그냥 보냈다. 만약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 할 때 4대강 사업에 따른 수자원공사의 부채 문제를 얘기 안 하고 공기업 개혁을 말했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지가 관심 포인트다."

- 4대강 관련 검찰 수사도 지지부진한 편이다.
"이재오 의원,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이 말한 다음부터다. 이후 채동욱 사건이 터졌고 4대강 사업 관련 수사는 뉴스에서 사라졌다.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 박 대통령이 언급한 이상 검찰이 그것을 '4대강 사업 수사'와 관련한 정권의 뜻으로 인식할 수 있겠다.
"대통령의 뜻이라고 보겠지. 현 정권에서는 전 정권의 문제를 어느 누구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 총리고 부총리고 말할 인사도 아니다. 대통령의 뜻인 거지."

- 이명박 전 대통령과 직결된 사안인데 검찰이 적극적 의지를 보인다면 이 전 대통령이 수사를 받을 수도 있겠다.
"해외자원개발 문제는 외국에서 벌어진 일이라 잘 안 보여서 그렇지 규모가 더 큰 문제다. 실종된 돈의 액수는 더 클 것이다. 핵심은 이 전 대통령과 전 정권의 핵심인사들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개발 문제를 MB정권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봤다. 예단할 수 없지만 지켜봐야지."


태그:#이상돈, #박근혜,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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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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