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가진 신년 기자회견은 실망스럽고 황당하기까지하다. 작년 한 해 동안 그토록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외쳤던 국가기관 대선개입, '댓글 대통령' 지적에 대해 '소모적'이라고 일축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80분간 회견에서 '경제민주화'가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아서만이 아니다.

지난 해 1년은 종북몰이, 공안통치의 시기였다. 대통령과 정부, 새누리당은 일체가 되어 대선 댓글 부정선거, 국정원 개혁과 특검을 요구하는 국민들을 모두 종북으로 몰았다. '종북시민운동', '종북정당', '종북언론', '종북의원', '종북교사'... 심지어 '종북사제'까지.

작년 이 땅의 화해론자, 평화통일론자는 모두 한국판 메카시즘 종북주의의 그물에 갇혔다. 이뿐만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인사 실패, 서민경제 파탄, 특정지역 편중인사로 인한 지역갈등, 교학사 교과서 갈등 등에 대한 비판을 종북몰이로 매도했다. 박근혜 청와대는 종북몰이를 묵인하고 방조하고 새누리당을 통해 부추겼다. 종북몰이를 정권의 방패막이로 삼았다.

그러던 그가 느닷없이 '통일 대박론'을 들고 나왔다. 남북의 화해, 평화, 통일을 이야기하면 종북으로 몰아가던 세상이 갑자기 '통일 대박'의 새 지평이라도 열린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에 공허하고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지어 또 하나의 종북 함정을 파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까지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회견을 보면서 그의 아버지 박정희의 7·4공동성명과 10월 유신이 데자뷰처럼 스쳐지나간다. 1972년 박정희는 7·4공동성명으로 통일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고 10월 유신으로 국민의 뒷통수를 쳤다. 박정희는 당시 결코 북한과 평화통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북한과 적대적 공존을 하면서 북한의 위협을 선전하여 유신독재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다.

'통일대박론', 흡수통일?

<조선일보> 2014년 1월 7일자 1면. 박근혜 대통령의 이산가족상봉 제의 톱뉴스 아래에 "주한미군, 경기북부 기계화부대 배치 추진"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 2014년 1월 7일자 1면. 박근혜 대통령의 이산가족상봉 제의 톱뉴스 아래에 "주한미군, 경기북부 기계화부대 배치 추진" 기사를 실었다.
ⓒ 최경환

관련사진보기


7일 아침 신문을 보면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보다 눈에 먼저 띄는 것은 <조선일보>의 보도다. <조선일보>는 7일자 1면 '주한미군, 경기북부에 기계화 대대 추가 배치 추진' 기사에서 "북한의 국지도발 및 급변사태에 본격 대비하기 위해 실전태세를 한층 강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며, "현재 미국은 시퀘스터(예산 자동삭감조치) 등으로 국방예산이 대폭 삭감돼 미군병력과 장비가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미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말하고 이산가족상봉을 제기하는 시점에 주한미군이 경기북부에 부대를 추가 배치한다는 것은 당황스러운 메시지다.

박근혜의 '통일대박론'을 들으며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생각을 한다. 남북관계가 진전될 것 같지도 않고, 진전 시킬 의사도 없으면서 신년에 의례적으로 하는 대통령의 레토릭(수사)일 것이라는 것이 그 첫 번째 생각이다. 심지어 오히려 다음 수순으로 예비된 대북 적대정책, 종북몰이 선동의 명분쌓기일 것이라는 불신마저 있다.

둘째는 박근혜 정부의 흡수통일론의 본심이 드러났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대박'이라는 표현은 예상치 못한 일확천금을 얻는 것을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장성택의 처형 등 북한의 상황을 보면서 '흡수 통일의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갑작스런 통일, 급변사태에 의한 대박은 결코 우리에게 대박일 수 없다, 오히려 재앙에 가까운 쪽박일 수 있다. 더욱이 미중일러 주변국의 역관계를 볼 때 그 대박이 우리에게 떨어진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저작권 침해

통일대박론은 유라시아 철도, DMZ세계평화공원만큼이나 공허하다. 당연한 전제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철도든 DMZ세계평화공원이든 그 전제는 남북관계의 상당한 발전, 즉 남북의 신뢰와 협력이 쌓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남북의 철도가 가로막혀 있는 상태에서 '유라시아 철도'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유라시아 철도는 하늘을 나르는 '은하철도'가 아니다. 남북의 휴전선과 철조망을 뚫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DMZ세계평화공원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면 이 두 가지 프로젝트는 남북간 정치적, 군사적 신뢰 조치가 쌓일 때 가능한 일이다. 남북정상회담도 하고, 교류협력을 활성화시키고, DMZ를 가로지르는 동서 철도와 도로도 정상화시킬 때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서 밝혀둘 것이 있다. 유라시아 철도, DMZ세계평화공원은 모두 그 저작권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있다. 유라시아 철도는 김대중의 '철의 실크로드' 복제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의 철도를 연결하면 부산과 목포를 출발한 열차가 서울과 평양을 거쳐 중국, 몽고, 러시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의 파리, 런던까지 가는 철의 실크로드 시대를 구상하고 실천했다.

세계적인 시사 만화가 라난 루리가 2006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을 찾아와 선물한 'DMZ세계평화공원' 조감도. 이 조감도에는 '코리아의 위대한 아들 김대중 대통령에게. 2006.5.8. 라난 루리'라고 쓰여 있다. 이 그림은 동교동 김대중 대통령 사저 응접실에 걸려 있다.
 세계적인 시사 만화가 라난 루리가 2006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을 찾아와 선물한 'DMZ세계평화공원' 조감도. 이 조감도에는 '코리아의 위대한 아들 김대중 대통령에게. 2006.5.8. 라난 루리'라고 쓰여 있다. 이 그림은 동교동 김대중 대통령 사저 응접실에 걸려 있다.
ⓒ 최경환

관련사진보기


DMZ세계평화공원은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후 김대중 정부가 유엔(유네스코)에서 환경보호구역으로 지정하거나 남북이 평화공원으로 조성하는 방안으로 추진한 일이다.

이처럼 유리시아 철도나 DMZ평화공원은 모두 김대중에게 저작권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두 가지 프로젝트는 전 정권에서, 특히 김대중 대통령께서 하시려고 한 일이지만..."하고 말하면서 그 일을 시작했다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 '통일이 대박'이라고 생각한다면,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앞선 지도자들의 통일을 위한 헌신과 업적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통일 대박'을 말하며 통일 대박의 실질적 기초를 쌓은 김대중의 업적을 외면한다면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이산가족상봉, 금강산관광도 함께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북에 이산가족상봉도 제의했다. 통일부도 곧바로 북에 실무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우리측의 이산가족상봉 제안에 북측이 금강산 관광을 연계해 논의하자고 해서 이산가족상봉이 무산된 바 있다. 이번에도 벌써부터 우리 정부에서는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 관광을 분리해서 대응하겠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이 신년 덕담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박근혜 정부의 담대한 구상과 실천이 요구된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관련국의 즉각적 협의, 5·24조치 해제 등이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금강산 관광도 다시 시작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게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을 대박이라고 생각하고 통일을 그렇게 열망한다면 먼저 북한 동포와 더불어 살려고 하는 마음, 그리고 냉전적 사고를 벗어나 북한과 화해 협력하려는 평화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고 철학을 가져야 한다.

한쪽에서는 북핵해결을 위한 6자회담 수레바퀴를 돌리고, 한쪽에서는 금강산관광 재개, 이산가족 정례상봉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수레바퀴를 동시에 돌려야 한다. 이 정도는 해야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진정성과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경환은 김대중 대통령을 마지막까지 보좌한 비서관이다. 지금은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겸 대변인, 사단법인 민생평화광장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최경환 이야기>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통일대박, #종북몰이, #박근혜, #DMZ세계평화공원, #김대중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한 마지막 비서관이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