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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작품 무대는 '피스'라고 하는 숲이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숲통령 먹바위 딸과 평화를 염원하는 숲민들의 한 판 대결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숲을 무대로 한 우화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필자말

염원하는 목소리
▲ 평화를 염원하는 목소리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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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흔적을 찾고 있는 저 아이는?

늙은 고라니는 광장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났다. 망고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인지 잠도 달게 잤다. 늙은 고라니의 단잠을 깨운 건 노루였다. 눈을 뜨니 하늘빛은 흐려있었다. 그들은 일가족인 듯 아이부터 어른까지 일곱이나 되었다.

이어 달려온 이들은 사슴가족이었다. 그들 역시 광장엔 처음인 듯 아름답게 꾸며진 너른 광장을 보며 탄성과 환호를 질렀다. 잠시 후엔 청설모와 다람쥐까지 광장으로 몰려들어 광장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늙은 고라니는 그들을 피해 망고나무 뒤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들이 광장을 뛰노는 사이 노루와 사슴은 가족이 남긴 흔적을 찾아 나섰다. 늙은 고라니는 저들도 가족을 찾아 나섰구나 생각했다. 흔적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사슴이었다. 피에 굳은 사슴의 털은 몇 가닥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가족을 찾았다는 기쁨에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그 기쁨의 눈물도 잠시였다. 더 이상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사슴은 늙은 고라니가 그러했듯 통곡하며 광장 바닥을 쳤다. 같은 시간 광장엔 흔적을 찾지 못해 울먹이는 다람쥐가 있는가 하면 흔적을 발견한 노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속 깊은 울음을 쏟아냈다. 그들은 아침 내내 흔적을 찾았다며 울고 흔적을 찾지 못했다며 울었다. 

늙은 고라니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피가 멎으며 몸도 한결 가벼워졌다. 몸을 살피던 늙은 고라니는 광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광장은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찾는 이들로 가득했으며, 울고 웃고 떠들고 통곡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광장을 바라보던 늙은 고라니의 시선이 눈이 유난히 큰데다 얼룩 문양이 곱게 퍼진 고라니에게 머물렀다. 몸을 보아 고라니는 아이를 배고 있는 듯했다. 눈이 큰 고라니는 광장을 이리저리 오가더니 광장 중앙쯤에서 멈추었다. 눈이 큰 고라니를 쫓던 늙은 고라니의 시선도 거기에서 멈추었다.

'저긴 아이의 흔적이 있던 곳인데 저 고라니가 왜?'

광장 중앙엔 많은 핏자국이 섞여 있었지만, 고라니의 피는 아이 피 밖에 없었다. 눈이 큰 고라니가 광장 바닥으로 몸을 한껏 낮추었다. 고라니는 코를 벌름거리는가 싶더니 바닥을 긁어 피 묻은 털을 찾아냈다. 눈이 큰 고라니는 피 묻은 털을 가슴에 품더니 터져 나오는 울음을 큭큭 삼켰다. 한참을 울던 눈이 큰 고라니는 핏자국을 따라 한발 한발 옮겼다.

늙은 고라니는 눈이 큰 고라니가 자신이 걸었던 자리를 따라가자 괴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눈이 큰 고라니는 가는 도중 잠시 멈칫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했지만, 아이의 핏자국을 따라 가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대체 누구지?'  

숲경찰, 실종자 가족을 도륙 내다 

광장이 시끄러워지자 몽둥이를 든 숲경찰이 몰려왔다. 그들의 몽둥이엔 여전히 철심이 박혀있어 보기만 해도 공포가 몰려왔다. 늙은 고라니는 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예 광장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광장을 에워싼 숲경찰은 숲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부터 광장을 폐쇄한다. 속히 광장을 떠나라. 불응시엔 숲보안법 위반으로 도륙할 것이다."

숲경찰의 발표에 다들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광장을 폐쇄하다니 지금까지 이랬던 적은 없잖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게 분명해."

청설모와 다람쥐가 말을 주고받았다.

"우린 실종된 가족을 찾으러 왔소. 가족을 찾게 해주시오!"

청설모가 숲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노루와 사슴도 이에 가세했다. 요구가 거세어지자 광장에 긴장과 함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었다. 숲경찰과 숲민들의 거리는 불과 오십 보 정도였다. 청설모가 맨 앞에 서서 다시 소리쳤다.

"우리 가족들이 어디론가 사라졌소. 숲경찰은 우릴 떠나라 하기 전에 우리 가족들이 어디로 갔는지부터 밝혀야 할 것이오."

청설모의 목소리는 힘차고 견고했다.

"우린 당신들의 가족에 대해 아는 바 없다. 마지막 경고다. 어서 광장을 떠나라!"

숲경찰이 대열을 갖추며 몽둥이를 일제히 치켜들었다. 숲경찰이 알아들을 수 없는 구호를 외치면서 한 발 전진했을 땐 모두가 움찔했다. 숲경찰이 금방이라도 진압에 나설 기미를 보이자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어른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고, 광장은 이내 술렁거렸다.

눈이 큰 고라니도 겁을 집어먹었는지 불안한 표정으로 광장을 둘러싼 숲경찰을 바라보았다. 우는 아이를 달래던 사슴이 앞에 나서며 외쳤다. 결의에 찬 목소리였다.

"우린 가족의 행방을 알기 전까진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오!"

사슴의 외침이 끝나자 숲경찰 대장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부하에게 말했다.

"얼른 해치우고 말어."

명령을 받아든 부하가 숲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작전 개시!"

명령이 떨어지자 숲경찰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그들은 빈손으로 서 있는 숲민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숲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곳을 찾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늙은 고라니도 겁을 먹긴 마찬가지였다.

늙은 고라니가 더 멀리 도망치려고 몸을 일으킬 때 눈이 큰 고라니가 시야에 들어왔다. 눈이 큰 고라니는 배를 감싼 채 바닥에 바싹 엎드려 있었다. 숲경찰이 휘두른 몽둥이가 눈이 큰 고라니의 등허리를 비켜 지나갔다. 눈이 큰 고라니가 울부짖으며 더욱 낮게 엎드렸다.

'저러다 뱃속의 아이까지 큰일 나겠군.'

보다 못한 늙은 고라니가 광장을 향해 뛰어들었다. 숲경찰 하나를 밀친 늙은 고라니는 눈이 큰 고라니를 이끌었다.

"여기 있다간 죽어. 날 따라와!"

눈이 큰 고라니가 늙은 고라니를 따라 광장을 나섰다. 늙은 고라니가 앞장을 서고 눈이 큰 고라니가 뒤따랐다. 그 움직임이 워낙 빨라 몽둥이에 맞지는 않았다. 숲경찰은 쫓는 일도 귀찮았는지 도망치는 늙은 고라니를 뒤쫓지는 않았다. 늙은 고라니는 눈이 큰 고라니를 데리고 한참을 달려 근처의 대숲으로 들어갔다. 대숲 깊숙이 들어선 후에야 둘은 숨을 몰아쉬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이 큰 고라니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고맙긴, 같은 고라니끼리 그 정도야 뭐."

늙은 고라니가 흐르는 땀을 털어내며 말했다.

"어머, 아주머니 몸에 상처가 났어요!"

눈이 큰 고라니가 늙은 고라니의 몸에 난 상처를 보며 울먹였다.

"아, 이건 새벽에 당한 상처야. 정신없이 뛰느라 상처가 덧난 모양이네."
"새벽에요?"
"그래. 광장에서 숲경찰에게 된통 맞았구나." 

늙은 고라니가 상처를 핥으며 말했다.

"그때도 숲경찰이 몰려왔어요?"
"아니다. 아이의 털을 발견하곤 울고 있는데 숲경찰이 시끄럽다며 오더구나. 그래서 내가 먼저 숲경찰에게 시비를 걸었단다. 우리 아이를 찾아 달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날 빨갱이로 몰아 부치며 몽둥이질을 하더구나."

"아이요?"
"그래, 엊그제 우리 아들이 숲얼단에게 당했거든. 그 아이를 찾아 여기까지 왔는데 찾을 길이 있어야지……. 그래, 넌 광장엔 무슨 일로 왔니?"

"남자 친구를 찾으러 왔어요. 친구가 광장에 간다고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연락조차 없기에……."
"남자친구?"

늙은 고라니가 눈이 큰 고라니의 배에 시선을 둔 채 물었다.

"예, 우린 곧 결혼할 사이거든요."

눈이 큰 고라니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래, 남자친구는 찾았니?"
"아뇨. 바닥에 떨어진 친구의 털은 찾았는데 숲경찰이 몰려오는 바람에 잃어버렸어요."

눈이 큰 고라니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표정이었다.

"혹시, 이 털 주인을 찾는 것이냐?"

세상이 친원파 투성인데... 아이가 그 일을 했다니

늙은 고라니가 광장에서 주운 아이의 털을 내밀었다. 눈이 큰 고라니가 털을 받아 들더니 코 가까이에 댔다. 두어 번 코를 흠흠 거리던 눈이 큰 고라니가 "맞아요!" 하고 소리쳤다.

"남자친구 것을 아주머니께서 어떻게……."
"내 짐작이 맞았구나. 네가 찾는 친구가 바로 내 아들이란다."

늙은 고라니의 말에 눈이 큰 고라니는 "예?" 하곤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가 찾고 있는 남자친구가 내 아들이라는 말이다."
"아…예……어머니 안녕하세요. 어머니를 여기서 뵐 줄은……."

눈이 큰 고라니가 벌떡 일어나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아이가 며칠째 들어오지 않아 찾아 나섰는데, 너도 그랬구나."
"예……."
"보아하니 태기가 있는 듯한데, 아이의 씨더냐?"

늙은 고라니가 눈이 큰 고라니의 배를 만지며 물었다.

"예, 그러합니다."

눈이 큰 고라니가 부끄러운 듯 몸을 틀었다.

"아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게 많았구나. 녀석이 이렇게 고운 색시를 감춰두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네. 어미로서 미안하구나."  
"아, 아닙니다.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건 저희들인 걸요."
"우리 아인 어디서 만났더냐?"

늙은 고라니가 물었다.

"친원파 재산 몰수위원회라는 단체에서 만났습니다."
"건 뭐 하는 곳인데?"
"말 그대로 친원파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피스를 위해 쓰자는 단체인데요. 먹바위를 비롯하여 여우 늑대 등의 친원파 재산을 일일이 확인하여 정리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세상이 친원파 투성인데 그 일이 이루어지겠느냐?"
"언젠간 피스를 아끼는 숲민이 숲통령에 당선되지 않겠어요. 그땐 그 자료가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
"친원파들이 알면 그냥 두지 않을 일이로구나."
"예, 그들에게 걸리면 죽음뿐일 것입니다."

늙은 고라니는 아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위험한 일을 아이가 했다니 놀랍구나. 그게 언제부터였지?"
"단체가 만들어진 건 오래되었는데, 그이가 단체에 들어온 건 한 1년 쯤 되었습니다."

"그럼 너는?"
"저는 어릴 때부터 따라다녔어요. 아버지께서 단체에서 일을 하셨거든요."
"에구, 어미라는 게 아이가 그런 일을 하는 줄도 모르고 이번 선거에서 먹바위 딸을 찍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구나."

늙은 고라니는 눈이 큰 고라니의 배를 쓰다듬었다.

"아니에요. 그 일이라는 게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거라 가족에게도 말하면 안 되었거든요. 그래서 어머니께도 말씀드리지 않았을 거예요."
"아이가 집을 자주 비운 게 이제야 이해가 되는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만날 싸돌아다닌다고 욕만 했는데, 허허……."  

늙은 고라니는 아이가 보고 싶어 자꾸만 눈이 큰 고라니의 배를 쓰다듬었다. 눈이 큰 고라니의 배는 따듯했으며 숨결도 골랐다. 바람이 이는지 사각거리는 소리가 대숲 사이로 스며들었다.

'광장은 지옥이더니 여긴 평화구나…….'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고라니는 중얼거렸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태그:#국정원, #경찰, #박근혜,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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