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용의자>의 원신연 감독이 24일 오전 서을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용의자>의 원신연 감독이 24일 오전 서을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그동안 '한국형 액션'이라는 말에는 여러 부정적 의미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할리우드와 견주어 한참 못 미치는 예산과 기술력이었기에 한계 내에서 어떻게든 악으로 깡으로 맨땅에서 헤딩했던 우리 액션 영화의 현주소를 의미하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영화 <용의자>를 두고 나오는 공통된 반응 중 하나는 "확실히 다른 액션"이라는 것. 마치 제대로 판을 벌이고 작정한듯한 장면과 움직임이 여럿 있었던 것이다. 연출을 맡은 원신연 감독은 "액션만큼은 최선을 다해 만족시켜드리고 싶었다"며 속마음을 드러냈다.

"<용의자>가 거창한 기획이긴 했죠. 드라마를 중심에 세워 놓고 액션 장치를 배치하는 건 기존 액션영화와 같지만 한국 영화가 표현했던 한계를 넘고 싶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탄을 우리 영화에서도 발견하고 싶어 하는 열망이 큰데, 한국 액션 영화가 이걸 얼마나 채워줬을까요. 그 부분을 만족시켜드리고 싶었습니다."

기본은 드라마의 힘...그 위에 탄탄한 액션 입혔다

 영화<용의자>의 원신연 감독이 24일 오전 서을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용의자>의 예산은 턱없지만 현물 투자가 전폭적이었어요. 공군 수송기라든지 특전사 관련 장비들을 지원받았죠. 과학 장비들은 직접 만들기도 했고요. 특수효과 전문가 분들도 이번 영화의 의의에 공감해주셔서 예산과 관계없이 헌신적으로 능력을 담아주셨어요. 많은 분들의 도움이 담겼습니다." ⓒ 이정민


액션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원신연 감독은 <용의자>가 일단 드라마가 좋은 작품임을 짚었다. 원 감독은 "그동안 액션 영화 시나리오를 많이 받았지만 액션만 가득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거절했었다"며 "<용의자>는 이야기의 매력이 훨씬 컸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북한을 다룬 이야기라며 새로울 게 없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여기에 액션을 자연스럽게 배치하면서 힘을 극대화할 수 있었죠.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액션이야기를 해보자. 원신연 감독은 영화 <테러리스트>(1995) <넘버3>(1997)의 무술감독을 맡기도 했던 골수 액션파 영화인이다. 연출에 뜻을 품고 다수의 단편을 발표하면서도 제대로 된 판을 벌이고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 시발점이 바로 <용의자>였다. 그간 한국 액션 영화에서 아쉬웠던 점을 복기하며 원신연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공을 들인 지점을 설명했다.

"액션은 그 자체로 돈입니다. 할리우드처럼 예산을 들일 수 없으니 규모에서 뒤질 수밖에 없죠. 예산에 맞추기 위해 가장 먼저 액션을 줄이는 게 다반사였어요. 또 뭔가 머리에서 그려지는 액션을 구현하고는 싶은데 그걸 위한 기술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기에 쉽게 가기 위해 기존 영화를 답습하기 마련이죠. 오늘날의 한국 액션 영화는 스태프와 배우들이 현장에서 위험에 노출되면서 그나마 한계를 극복해왔습니다. 답습과 극복의 반복이랄까요.

<용의자>에서 보이는 액션만큼은 예산이 얼마나 들어가든 기술이 어떻든 할리우드와 견주어도 손색없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장르 영화는 결국 뿌리가 하나로 인식될 수밖에 없잖아요. 정면 승부하겠다고 마음먹었죠. 쉽게 말해 <007>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본> 시리즈 등과 맞장을 떠보고 싶었어요.

그 영화들에 비하면 <용의자>의 예산은 턱없지만 현물 투자가 전폭적이었어요. 공군 수송기라든지 특전사 관련 장비들을 지원받았죠. 과학 장비들은 직접 만들기도 했고요. 특수효과 전문가 분들도 이번 영화의 의의에 공감해주셔서 예산과 관계없이 헌신적으로 능력을 담아주셨어요. 많은 분들의 도움이 담겼습니다."

"작위적 설정 없다"...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살아 움직이는 게 매력

 영화<용의자>의 원신연 감독이 24일 오전 서을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 북한을 다룬 이야기라며 새로울 게 없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여기에 액션을 자연스럽게 배치하면서 힘을 극대화할 수 있었죠.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 이정민


장르 영화, 특히 대중성을 노린 상업 장르 영화는 기본적으로 소구 층에 따라 유머나 슬픔을 적절히 가미하거나 빼기도 한다. 일종의 톤 조절인데 흥행을 위해 눈물을 짜내거나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는 상업 영화에서 하나의 필요악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용의자>를 가만 들여다보면 그런 억지웃음이나 슬픔 코드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때문에 사람에 따라 영화가 담백하거나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다.

"관객 분을 현혹시키는 작업을 잘 못해요. 저는 그냥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살아서 움직이도록 만들죠. 이야기 안에서 코미디가 화학적으로 일어난 것 외에는 의도적으로 뭔가 만들지는 못합니다. 물론 <용의자>에서 개그적으로 더 나갔다면 대중들이 더 좋아했을 수도 있겠지만요. 제 입장에선 조심스럽더라고요."

사실 원신연 감독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지고 작품을 찍기 보다는 스스로 각본을 쓰고 촬영하는 쪽에 속했다. 앞서 언급한 <구타유발자들>이 그랬고, 연출을 결심한 직후 촬영해왔던 여러 단편 작품들 역시 본인이 직접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쓴 사례였다. <용의자>의 경우는 기존 시나리오를 받아서 만든 작품. 그래서 원신연 감독은 이번 작품의 결과에 따라 <용의자> 후속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고, 그 내용은 직접 써내려가고 싶었다.

"<용의자>가 대중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어느 정도 성취만 이룬다면 속편은 나올 거 같아요. 저 역시 연출하고 싶고, 이야기도 처음부터 쓰고 싶습니다. 보다 글로벌한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어요. 할리우드에서 개봉할 수 있을 정도로요. 우리만의 시리즈가 아닌 세계 시장에서 시리즈물로 인식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북한의 최정예 요원 지동철(공유 분)이 정치적 이유로 국가 권력에 의해 가족을 잃고 복수를 결심한다는 설정. 동료 요원에게 아내와 딸이 죽는 경험을 한 지동철은 <용의자> 이후 어떻게 달라질까. 영화는 죽은 줄만 알았던 지동철의 딸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끊임없이 던졌다. 결국 영화 말미에는 타국의 인신매매단에게 잡혀 있는 한 소녀가 등장한다. 지동철의 딸인지는 분명히 드러나진 않는다. 원신연 감독이 생각한 후속편은 바로 그 지점부터 시작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어둡고 슬픈 정서를 영화로 승화시켜 왔다"

 영화<용의자>의 원신연 감독이 24일 오전 서을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관객 분을 현혹시키는 작업을 잘 못해요. 저는 그냥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살아서 움직이도록 만들죠. 이야기 안에서 코미디가 화학적으로 일어난 것 외에는 의도적으로 뭔가 만들지는 못합니다." ⓒ 이정민


원신연 감독은 <용의자>를 놀이기구에 비유했다. 놀이공원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구들이 각각의 영화 장르를 상징한다면, <용의자>는 롤러코스터에 가깝다면서 말이다. "회전목마를 타고 무서운 기구를 못타는 사람에게 분명 <용의자>는 비호감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원 감독은 "그래도 눈 감지 말고 드라마를 충분히 즐기면 액션은 쾌감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드라마는 마음으로 공감하면서 액션의 쾌감에 눈을 떠도 좋겠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용의자>는 절대 밝은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묘하게 희망적이기도 하다. 복수의 끝에 선 지동철이 자신의 딸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지 않나. 동시에 이 작품은 원신연 감독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두어 번의 싸움으로 짱을 먹고 외부의 간섭과 압력을 차단했던 그였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영화에 대한 꿈을 가졌고, 무술 감독을 지나 이젠 연출자에 이르렀다. 액션과 이야기는 그에겐 마치 지동철의 잃어버린 딸과도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연출을 독학하면서 무술감독으로 번 돈을 다 썼어요. 결국 연출 공부의 밑바탕이 된 건 액션이었던 거죠. 한때는 스턴트맨, 지금은 무술지도로 불리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중 하나고요. 언젠가 액션 영화를 만들 날이 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게 <용의자>로 귀결됐네요(웃음).

학창시절 때부터 가정환경이 워낙 안 좋았어요. 하위 1%에 속했죠. 그래서 제겐 어둡고 슬픈 정서가 많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그 정서를 공감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성난황소> <택시 드라이버> <대부> 시리즈 <람보> 1편 등을 보면 왠지 제 정서를 그 영화들이 인정해주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영화를 해보겠다고 그때 결심했고 그때부터 매일 작품을 읽고, 토론했습니다. 그러다보니 20년이 지났네요. 제가 당구, 포커 등 신변잡기를 전혀 못해요. 그냥 영화를 준비하는 순간, 만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살아있는 거 같더라고요. 앞으로 나올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제게는 큰 동력입니다."


용의자 원신연 공유 박희순 유다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