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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학, 속과 통하다
 역사문학, 속과 통하다
ⓒ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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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역사적 사실로만 만들거면 다큐를 만들지 왜 드라마를 만드나."

'역사왜곡' 논란을 빚은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 제작발표 때 왕유 역을 맡은 주진모씨가 한 말이다. 기황후만 아니라 사극은 항상 왜곡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역사는 사실에 바탕하지만, 드라마는 극화이기 때문이다.

역사드라마만 아니라 '역사소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집념>을 지은 이은성 선생은 <소설 동의보감>(2001·창비)을 썼다. 처음에는 4권을 쓰려고 했지만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완성하지 못했다. <소설 동의보감>은 <허준>(1999·MBC)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 하지만 유의태가 허준 후세대 인물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역사드라마이든, 역사소설이든 왜곡 논란은 피할 수 없다. 사실 역사와 소설이 한묶음이 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역사는 사건에 대한 사실을 담은 것이지만, 소설은 '픽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실로서만의 역사보다는 픽션이 가미된 역사소설을 바랐다.

사실과 픽션의 만남...'역사소설'

역사소설이 독자들에게 다가온 것은 언제부터일까? <역사소설, 자미(滋味)에 빠지다>(2011·삼인)을 쓴 김병길 숙명여대 교수는 <역사소설, 속(俗)과 통(通)하다>(삼인)에서 19세기 초, 대략 나폴레옹 몰락과 같이하여 발생했다고 말한다. 이는 게오로그 루카치 주장으로 루카치는 "월트 스콧의 역사소설을 18세기의 위대한 사실주의적 사회소설의 정통후계자로 꼽았다. 그 이유는 역사적·사회적 전형에 인간적인 생동감을 부여한 점 때문"이라고 말한다.

"역사소설의 중요한 특징을 거대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건 속에서 활동했던 인간들에 대한 문학적 환기의 측면에서 찾았던 루카치의 역사소설관이 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어떤 사회적·인간적 동기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가를 실제 역사적 현실에서의 경우와 똑같은 것으로 체험할 수 있게끔 하는 데 역사소설의 의의가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14쪽)

'역사의식'이 결여된 작가는 역사소설을 쓸 수 없다는 말이다. 역사소설을 단순히 '픽션'으로 접근하면 진정한 역사소설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같은 역사소설에 대한 루카치 인식은 "역사소설론은 사실의 전거성에 경사되어 역사소설의 미학적 특수성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김병길은 주장한다. 그러므로 역사와 문학이라는 두 범주의 결합과 충돌은 역사소설에서 필요하다.

"역사와 문학이라는 두 범주의 결합과 충돌의 글쓰기가 역사소설인 만큼 그 성격을 규정하는 논의들은 하나같이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데 모아져왔다. '사실성과 허구성의 모성을 조화시킨것','이름 그대로 역사와 특별히 연계된 소설, 사실성과 상상성이란 이중성을 함께 갖고 있는 특이한 서사문학 형태, 그리고 '역사와 소설이 결합된 것, 즉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요소가 합해서 이루어낸 것 등의 정의들이 말해주듯이 역사와 문학의 차이가 소멸되는 지점으로 역사소설을 상정하는 데서 논자들은 대체적으로 일치를 보인다."(18쪽)

우리나라 근대 역사소설은 "서구로부터 수입된 글쓰기"

그럼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일까? 김병길은 "한국의 근대 역사소설은 신문 저널리즘에 의해 일본을 경유하여 서구로부터 수입된 글쓰기였다"면서 "루카치가 정의한 서구의 역사소설과 한국의 역사소설이 다른 출발점에 서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와 문학의 길항이라는 측면에서 시도되는 역사소설에 관한 정의가 지극히 공허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근대적인 매체에 의해 번역되어 장형의 서사로 발화한 점, 전대 서사문학의 전통과 거리 두기를 시도하며 근대소설의 한 글쓰기 양상으로 성장한 점, 그리고 신문소설로서 연재란의 고정 지면에 안착한 점 등과 같은 특질을 고려하여 한국의 근대 역사소설을 정의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소설을 정의하는 일이 곧 한국 근대 역사소설사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20쪽)

이렇게 역사와 문학이 만나 '역사문학'이 된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문학은 "전통적인 동양의 서사양식이라 할 야담, 군담소설, 그리고 전 등의 양식이 서구적인 근대문학에 삼투되고 혼효되는 과정"이었다. 홍명희의 <임거정전>(1928, 조선일보), 염상섭의 <사랑과 죄>(1928, 동아일보), 윤백남의 <대도전>(1931, 동아일보) 등등. 역사소설은 "다양한 장르적 분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섰"다.

김병길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기(해방한전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소설은 신문연재소설 간판격이 위치를 내려놓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해방전후사는 정치격변기였다. 신문지면에 이데올로기적 색채가 강했지만 신문사들은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당면한 과제 앞에 민족서사가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더 없이 좋은 소재로 인식했기 때문에" 역사소설 연재를 중용했다.

"해방전한기 역사소설 민족국가 건설 당면과제"

윤백남의 <회천기>(1949, 자유신문), 박태원의 <임진위란>(1949, 서울신문), 박태원의 <군상>(1949, 조선일보), 홍목춘의 <취향정>(1949, 국도신문), 윤백남의 <야화>(1952, 동아일보), 박태원의 <태평성대>(1946, 경향신문), 박용구의 <제물>(1953, 서울신문) 등등이 해방한전기 신문에 연재된 역사소설들이다.

해방한전기 신문 연재 역사소설의 역사는 전대와 단절적 국면보다는 연계적 국면이 더 강하다. 특히 신문 연재소설 일반의 특징에서 연속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전대 식민 시기 역사소설이 신문 연재소설의 사실상 대표 주자였듯이 해방 이후에도 역사소설은 그 확고한 위상에 변함이 없었다. 양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결코 소소하지 않다. 무려 십여 편에 가까운 장편 역사소설이 연재되었다.

연재란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것이다. 주요 일간지 연재소설 가운데 어느 한 지면에는 늘 역사소설이 연재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비록 연재되지는 못하였지만 이태준의 연재 예정작의 경우 박종화의『民族』과 동일 제목 아래《중앙신문》창간 기념작으로 사전 기획됨으로써 신문 연재소설에서 역사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을 단적으로 과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대중적으로 포용력이 가장 큰 연재물이 곧 역사소설이라는 데 신문사들은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신문에 등장한 이래 연재소설의 총아로 주목받았던 역사소설의 전통이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119~120쪽)

김병길은 역사소설은 "역사와 문학을 길항 관계로 보는 균형 감각이 유지될 때, 역사소설이라는 글쓰기의 개별성은 확보될 수 있다"면서 "사실성과 소설미학적 문제를 동시에 가로지르는 개연성이 역사소설의 특징적인 국면으로 중시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성과 미학성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역사소설로서 생명성을 이어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역사소설은 사실과 허구의 구분 너머에 있는 글쓰기"라며 "그 구분은 다만 작가의 의식상에만 존재하는 서술 태도의 차이에 불과하다. 허구의 비중이 높은 경우 작가는 이를 역사적 상상의 힘을 빌린 창(創)이라 칭할 것이고, 기록적 전거의 의존도가 클 경우 충실한 기(記)이라 확신할 것"라는 데까지 나아간다.

역사소설, 사실과 허구의 구분 너머에 있는 글쓰기

'역사'라는 단어가 오직 사실만으로 소설에서 드러나야한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역사소설은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다. 더구나 역사교과서도 아니다. 사실과 꾸며낸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그 옛날 그 때로 돌아가 자신을 투영할 수 있다. 그럴 때 읽기 재미는 더 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명심할 것은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의식 없이 사실과 허구만으로 역사소설을 쓴다면 '왜곡'일 뿐이다. 허구와 왜곡은 엄연히 다르다.

이 분열의 봉합이 가능한 것은 내적으로는 역사의식을 내세워 스스로를 역사가로 가장하는 역사소설가의 신념이 그만큼 강고한 탓이고, 외적으로는 소설의 담화구조에 의탁하여 역사가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역사소설의 작가는 공히 이러한 창기(創/記)에 불가피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 모순된 조화가 하나의 역사소설 텍스트를 잉태시키는 셈이 된다. 독자는 역사가로서의 의식이 투사된 이 글쓰기에서 사실의 지식을 얻는다는 지적 만족과 함께 허구가 생생하게 부여한 극적 재미를 일시에 맛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과 허구는 결코 길항하지 않는다. 철저히 공모한다. 역사소설의 대중성은 바로 이 소비 메커니즘의 위대한 승리이다.(339쪽)

<역사소설, 속(俗)과 통(通)하다> 조금 읽어내려가 힘들었지만, 사실과 허구가 공모된 역사소설은 분명 옛날 사람과 지금을 살아가는 나를 함께 묶어주는 재미있는 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덧붙이는 글 | <역사문학, 속(俗)과 통(通)하다> 김병길 지음 ㅣ삼인 펴냄 ㅣ 2만3000원.



역사문학, 속과 통하다 - 한국 근현대 역사문학의 갈래와 전개 양상

김병길 지음, 삼인(2013)


태그:#역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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