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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2015년 3월 17일 오후 2시 15분]

추운 겨울에도 활기가 넘치는 항구도시 통영.
 추운 겨울에도 활기가 넘치는 항구도시 통영.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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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처럼 중간여행자 혹은 장기체류자로 살고픈 도시를 들자면 항구도시 통영이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추운 겨울에도 여행하기 좋은 통영은 요즘 같은 한파의 날씨에도 따듯한 남쪽나라를 떠올릴 정도로 춥지가 않고 - 십 년에 한 번 눈이 내릴까 말까하는 도시다 -, 통영이 품고 있는 수많은 섬들만큼 겨울에도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부럽게도 통영의 장기체류자가 된 강제윤 시인은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다. 음식에 관한 한 경상도의 전주'란다. 나라 안에서 음식이 맛있기로 첫손 꼽히는 전주와 대등하다고 주장한다. "통영은 가만히 앉아서도 여행을 떠나게 하고 술을 마시지 않고도 취하게 만드는 곳"이라 정의한다.(책 <통영은 맛있다> 에서)

지난 주말(12월 22일) 겨울 한파가 활개치는 서울에서 피한(避寒)할 겸, 애마 자전거와 통영을 구석구석 달려보고 싶어 찾아갔다가 통영의 풍성한 먹거리들에 빠져 페달 밟는 것도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계획에도 없던 미식 여행을 저절로 하게 되는 곳이다.

시락국, 우짜, 빼떼기죽, 충무김밥... 다양한 시장밥집들 

새벽시장인 서호시장의 대표적인 시장밥집 메뉴 시락국.
 새벽시장인 서호시장의 대표적인 시장밥집 메뉴 시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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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이나 고구마 앙금이 들어간 달콤 쫀득한 꿀빵.
 팥이나 고구마 앙금이 들어간 달콤 쫀득한 꿀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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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통영에서 제일 처음 마주친 곳은 서호동 서호시장. 새벽 4시면 열리는 새벽시장인 서호시장의 부지런한 상인들이 신 새벽 허한 속을 덥히는 '시락국'이 있는 시장이다. 시락은 시래기(혹은 무청)의 음률 있는 사투리다. 시장 통 안에 모여 있는 시락국 집은 밤새 통영의 선술집 다찌에서 술을 마셨거나, 거친 파도를 헤치고 밤샘 조업을 하고 돌아온 어부들, 시장 새벽 경매를 끝낸 사람들이 아린 속을 움켜잡고 몰려드는 '해장 성지'였다가 한낮이 되면 통영의 다른 맛집들이 그렇듯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통영에 가면 제일 먼저 먹게 되는 시락국은 장어머리를 푹 고아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끓여낸 대표적인 시장밥집 메뉴다. 계란말이, 멸치볶음, 가시리 무침 등의 뷔페식 반찬에 부추를 듬뿍 얹어 밥 한 그릇 말아 호호 불며 먹다보면 뚝딱 비우게 된다. 진한 국물과 구수한 시래기가 위속으로 들어가며 포만감과 만족감을 준다. 시장밥상답게 반찬 인심도 좋은데다 4000원으로 가격도 저렴하다. 옆 자리에 앉은 시장 상인들이 꺼내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 보따리는 보너스다.

이외에도 통영 어부들의 점심이었던 충무김밥이며 우동과 짜장이 따로 또 같이 모인 음식 우짜, 달콤한 팥 앙금이 들어있는 꿀빵 등 종일 입에 달고 다닐 만한 '한 끼 형 간식'이 서호시장 가까이에 수두룩하다. 나와 같은 백패커(배낭 여행자)들에겐 먹거리 천국. 작은 도시 통영에 여러 개의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날만하다.

1960년 대 어선을 타고 멀리 나가는 어부들을 위해 상하지 말라고 만들어낸 충무김밥.
 1960년 대 어선을 타고 멀리 나가는 어부들을 위해 상하지 말라고 만들어낸 충무김밥.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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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은 마음을 해결해준 '우짜'
 우동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은 마음을 해결해준 '우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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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항남동엔 현재와 같은 통영 꿀빵의 호황기를 이끈 꿀방의 원조 '오미사 꿀빵'집이 있다. 오미사란 이름은 원래 세탁소 이름이었단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는 꿀빵 할아버지의 딸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데 사업이 번성하면 흔히 할법한 리모델링을 하지 않고 소박한 가게의 옛 모습 그대로라 반가웠다. 그래서인지 꿀빵 맛도 변한 것 없이 옛 명성 그대로다. 팥 앙금이 입안에서 달콤하고 쫀득하게 녹는다. 찾아와서 사먹는 사람보다 전국에서 택배로 주문해 시켜먹는 사람들이 많을 만하다.

통영시에서 감사패를 줄 정도로 오미사 통영 꿀빵과 뚱보할매 충무김밥은 이 도시를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강구안 앞 중앙시장 차도변에 한 집 건너 한 개씩 꿀빵과 충무김밥집이 들어서 있다. 1960년대 배를 타고 멀리 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쉽게 쉬지 않도록 밥과 소를 따로 만들어 판 것이 유래가 된 충무김밥. 통영 멸치젓으로 담근 깍두기, 갑오징어 무침으로 단출하게 만들어 팔던 김밥은 밥도 밥이지만 술꾼들에게 안주로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시민탕, 대성탕 등 굴뚝이 높이 서있는 목욕탕과 '공작소'라 써있는 대장간이 남아있는 정겨운 동네 항남동엔 이외에도 우동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은 마음을 해결해준 '우짜'집, 통영의 큰 섬 욕지도에서 온 맛난 고구마로 만든 '빼떼기죽'집 등도 모여 있어 통영에 왔다면 꼭 들려야할 동네다.

바다의 맛, 통영의 맛  

굴구이, 굴밥, 굴국, 굴젖 등 다양하게 굴을 맛볼 수 있다.
 굴구이, 굴밥, 굴국, 굴젖 등 다양하게 굴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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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겼다는 이유로 10여 년 전만 해도 어부에게 찬밥 대접을 받았다는 물메기.
 못생겼다는 이유로 10여 년 전만 해도 어부에게 찬밥 대접을 받았다는 물메기.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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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 자주 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충무김밥이나 꿀빵, 우짜 같은 것들은 실제로 통영의 대표 음식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겨울에도 풍성한 통영의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들에서 느껴지는 바다의 맛이 진짜 통영의 맛이다. 남해의 바다는 사철 풍성한데 특히 겨울이야말로 제철이다. 동서남해 모든 바다의 어류들이 모여드는 까닭이다. 그 남해에서도 통영은 가장 많은 해산물들의 집산지이다.

작은 어선들이 모여 있는 강구안이 한 눈에 보이는 중앙시장은 시작부터 끝까지 해산물 세상이다. 통영하면 굴도 빼놓을 수 없다.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바닷가로 가면 통영 앞바다가 온통 '굴밭'이다. 통영 앞바다의 굴 양식장 면적은 축구장 8000개 크기인 5371㏊에 달한단다.

동네 마트에서 자주 사다 먹는 통영 굴은 싱싱하고 씨알이 크다. 서해안의 굴은 밀물 때만 바닷속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반면 통영 굴은 항상 바닷물 속에 담겨 있어 씨알이 굵다고 한다. 굴의 물컹하고 비릿한 맛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중앙시장엔 굴밥, 굴국, 굴젓, 구이 등 다양한 요리가 있으니 골라먹는 재미도 있다. 통영에서 굴의 지위는 각별하다. 껍데기를 벗기는 작업을 탈각(脫殼)이라 하지 않고 '박신(剝身)'이라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껍데기에 조각 작품이 그려진 조개들.
 껍데기에 조각 작품이 그려진 조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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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생선들과 들고 나는 어선들로 분주한 통영의 명소 강구안.
 말린 생선들과 들고 나는 어선들로 분주한 통영의 명소 강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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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죽처럼 부드러운 물메기탕 또한 통영의 겨울 별미다. 강구안에 들어선 어선들에서 상인들이 물메기를 작은 카트에 싣고 부지런히 가지고 나온다. 길쭉하고 큰 덩치에 비해 눈이 무척 작고 입은 매우 큰 게 아귀처럼 못난이 과의 물고기다. 물메기는 지역마다 그 이름도 각각인데, 동해에서는 곰치나 물곰이라고 부른다. 통영에서는 흔히 '미기'라 부른다. 물메기는 동중국해에서 여름을 나고 겨울이면 산란을 위해 한국의 연안으로 올라오는데 이맘 때가 산란철이라 살이 올라 가장 맛이 있어 많이 잡는 모양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어부들은 그물에 이 못생긴 생선 물메기가 올라오면 재수 없다고 여겨 다시 물속에 던졌다고 한다. 그때 '텀벙' 소리가 나니 생선이름은 고민할 필요 없이 물텀벙이가 되었다. 흔했던 아귀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반이나 되는 이 흉측한 생선 또한 물속에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그래서 서해안 사투리로 물메기는 물텀벙이고, 아귀 또한 같은 물텀벙이다.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해장국으로 즐기는 이 바다 생선의 정식 명칭은 쏨뱅이목의 꼼치과로 '꼼치'로 불러야 옳다고 한다.

두 명이상 여행을 가게 되면 꼭 들려야 하는 곳이 통영의 다찌집 혹은 실비집이다.
 두 명이상 여행을 가게 되면 꼭 들려야 하는 곳이 통영의 다찌집 혹은 실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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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몸을 꿈틀거리는 싱싱한 전복, 조개, 해삼, 개불 등으로 가득한 중앙시장 통을 걷다보면 통영의 바다가 느껴지는 맛있는 해산물을 조금씩 다양하게 맛볼 수는 없을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

통영 여행의 정점은 항남동과 해변가에 있는 '다찌집'이다. 실비집이라고도 불리는 다찌집은 전주의 막걸리집처럼 상차림이 포함된 술을 시키면 계속 안주가 나오는 보기 드문 술집이다. 바닷가 도시다 보니 싱싱한 안주들이 여느 일식집에서 나오는 음식 못지않다. 하지만 홀로 여행자라면 아쉽게도 이곳을 이용하지 못한다. 최소한 두 명 이상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통영 사람들도 잘 모른다는 '다찌'란 말이 너무 궁금해 찾아보니 일본어 '다치노미(서서 마시는)'에서 유래가 되었단다.

해마다 철마다 많은 여행객들의 발걸음으로 북적거리는 통영은 매물도, 비진도, 욕지도 등 풍광 좋은 여러 아우 섬들과 푸짐한 인심, 다양한 먹거리로 가득한 곳이다. 단순히 관광만 즐기는 것을 넘어 여유롭게 도시 곳곳에 숨은 맛집을 탐방하고, 맛깔진 추억을 만들고자 하는 이에게 더없이 여행하기 좋은 곳이지 싶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22일에 다녀 왔습니다.



태그:#통영, #강구안, #서호시장, #중앙시장, #시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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