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한 장면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다다쇼


사람들은 왜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까? 조금만 분별심을 가져도 엉터리임을 알 수 있을 텐데... 영화 <사이비>는 이러한 물음에 답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 영화로서 미국 디즈니나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빼어난 화면들과 비교하기에는 투박하고 거칠지만, 사이비 종교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주제의 완성도는 매우 뛰어나다.

이 영화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설명해주는 매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퇴행적이고 실망스런 모습에도 박근혜 정부에 대해 보여주었던 높은 지지율의 이유를 짐작케 해준다. 그것은 희망이라는 믿음이다.

삶의 불안이 사이비 종교에서 희망을

영화 <사이비>는 댐 건설로 수몰 예정인 암울한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살아왔던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이주 보상비를 받았다지만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요양원을 건립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교회가 나타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죽어서도 천국에서 영원히 평안하게 살 수 있다는 약속이다. 겉모습만 보면 '예수천국'을 외치는 신실한 교회 같지만, 사실은 마을 주민들의 보상비를 챙길 목적으로 나타난 사기꾼들이 만든 교회다.

불안한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사이비 교회가 내세우는 달콤한 약속에 빠져든다. 폐병이 있는 마을 아낙네는 교회에서 가져온 생명수를 마시곤 폐병이 일시적으로 호전된다. 가짜 약도 믿으면 실제로 임상적 효과를 보인다는 '위약효과'다. 효험을 본 아낙네는 더욱 확실한 믿음으로 요양원 자리가, 천국의 자리가 얼마 안 남았는데 왜 보상비를 빨리 헌금으로 내지 않느냐며 주저하는 남편을 닦달한다.

남편은 평생 힘들게만 살아왔던 아내가 교회를 다니고부터는 희망에 부풀어 기뻐하는 모습에 흔들린다. 아내는 결국 호전되는 듯한 폐병이 악화되어 죽지만 너무나 평온한 얼굴이었다. 이 모습을 본 남편은 "이러면 됐지" 한다. 평생 자기와 살면서 한 번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는데, 요 며칠 아내가 희망에 부풀어 행복해하다가 편안하게 죽은 것이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굳이 진실을 따져 무엇 하겠는가. 자기로서는 해줄 수 없는 일인데, 인생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갔다는 사실에 남편은 그저 만족하게 된다.

사이비 교회의 장로의 꾐에 빠져 술집에서 일하게 된 여공도 아버지한테 붙잡혀 집에 와선 도리어 저항하며 울부짖는다. "나도 하나님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목사의 말을 되새기면서. 그녀는 여공 생활로 학자금을 어렵게 저축해 왔고 대학시험도 마침내 합격했었다. 하지만 술주정뱅이에 폭력이나 일삼는 아버지는 그 소중한 돈을, 희망을 도박으로 다 날려버렸다. 실의와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자매님에겐 아무런 죄가 없다"는 목사의 위로와 "자신도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은 거부할 수 없는 희망이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사이비 종교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어리석어 보이기 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이해가 일어난다. 그만큼 영화는 잘 만들어졌고, 또 그 내용들이 사이비 종교를 고발하는 다큐 프로그램들에서 본 것들과 통하기에 더욱 현실감이 있다. 아울러 이것이 비단 일부의 사람만이 아닌 보통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심리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우리 정치의 모습을 만드는 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불안한 사람들이 희망을 놓고 싶어 하지 않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도 삶에 대한 불안에서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 가운데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 가운데 ⓒ 스튜디오 다다쇼


박근혜 정부가 시작했을 땐 오히려 지지율이 낮았다. 세대별로 확연하게 갈린 표심에 잘못 찍은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자 투표했을 때의 기대와 믿음이 다시 일어났다. 특히 외국에 나가 국빈 대접을 받는 모습은 그런 기대를 고조 시켰다. "나라의 발전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운 세대들은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영국 여왕의 마차를 타는 대접에 높아진 국격을 상상했고, 국가의 위상이 올라간 만큼 자신의 삶도 나아지리란 희망을 품게 된다. 그래서 외국 순방만 갔다 오면 지지율이 상승하곤 했다.

지도자가 나라를 잘 이끌어 내 삶도 나아지길 크게 기대하는 사람들일수록 그에 반대되는 부정적인 모습은 외면하게 된다. 영화 <사이비>에서도 경찰이 사이비 장로의 사진이 있는 수배전단을 내밀며 본 적이 있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부인을 한다. 확실하지도 않은 사실에 자신들의 믿음을 버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장로를 걱정한 것이 아니라 장로가 사기꾼이라면 자신들의 믿음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직면해야 할 것은 불안하고 힘든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에도 그런 비슷한 믿음이 작동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정치와 국가에 관한 한 박근혜 정부가 유일한 기대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부도 겪어 보았지만 실망스러웠고, 안철수의 '새정치'는 여전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현실에 대한 분노만을 말하는 운동단체에게서 희망을 찾기도 힘들다.

그랬을 때 그들의 경험에 맞는 유일한 기대로서 제시된 것이 유신시절 경제성장의 기억이다. 사람에겐 지금 현재 내 처지가 곤궁할수록 과거 특정 시절의 기억을 편향적으로 미화하는 경향이 있고, 그것이 희망으로 자리잡게 된다. 지금 현 상황에서 그것마저 아니라면 결국 남는 것은 불안해하며 늙어가는 삶뿐이다. 그러니 그 시절의 통치자를 '반인반신'으로 기리는 현상도 나타난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 보여주었던 견고한 지지는 잘했다는 평가라기보다는 잘하기를 기대하는 희망의 크기와 절박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보통 몇 개월 만에 지지 철회여부를 결정했던 과거와 달리 '아직 1년도 안되었다'며 계속 지지할 것을 밝히는 지지자 인터뷰 기사들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그 희망의 크기가 크다고 해도 정권에 대한 기대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믿음과는 다르다. 천국에 대한 믿음은 죽기 전까지 계속될 수 있지만, 정권에 대한 기대는 아무리 길어도 지금으로부터 3~4년을 넘기 힘들다. 12월 들어 빠지기 시작하는 지지율은 변화의 방향을 보여준다. 기대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깨달음이 확산된다면 사람들은 차갑게 등을 돌릴 것이다. 그 기대의 크기만큼.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는 보기에 불편한 영화다. 희망을 위해 차라리 맹목적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에서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고 본다. 불안한 사람들은 희망을 찾고 싶어 한다. 불안한 사람들이 찾은 희망이 '과거'였다는 사실이, 또 그것밖에 설득력 있는 희망이 제시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가 앞이 아닌 뒤로 가고 있는 이유다. 영화 <사이비>는 이런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도 불편하지만 차분히 살펴볼 만한 영화다.

사이비 연상호 박근혜정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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