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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인 대한민국 교육의 실체
▲ <나는 한국경제보다 교육이 더 불안하다> 경제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인 대한민국 교육의 실체
ⓒ 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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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대한민국 교육의 실체를 정신과 의사의 눈으로 바라본 책 <나는 한국경제보다 교육이 더 불안하다>(참돌)가 한국 사회에 던져졌다. 저자인 최환석은 왜곡된 우리 교육과 사회 문제로 인해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자살을 생각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가정이 붕괴되는 현장을 목격하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고민하다가, 속에서 들끓는 말들을 담아두기에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대한민국 교육은 '가슴이 터질 것' 같다는 표현이 영락없다. 정말 교육이 어떠하기에 어린 아이들이 헤어나지 못하고 자살하는 것인가. 교육이 무엇이기에 수많은 아이들의 인권이 훼손될 정도로 경쟁해야 하고, 부모들이 미치고, 온 나라가 뒤집어지는가. 무엇 때문에 대한민국은 사교육의 천국이 되어 학부모와 학생들의 고혈을 빨고 있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아이들의 죽음과 분노와 절망의 도가니를 어찌 그대로 두는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들이 이 책에 촘촘히 박혀 있다.

저자는 교육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혹자는 정신과 의사가 교육을 어찌 안다고 '불행한 교육' 운운하느냐며 백안시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전문가가 아닌 것이 다행스럽다. 소위 교육 전문가는 기존 체제에 포박되어 있어서 체제 안을 성찰하기 어렵다. 체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객관적이 눈이 필요한 이유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읽는 순간 나는 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자살 테러와 우리 교육, 터널에 갇혀 있다

초등학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어린 아이들을 자살로 내모는 교육, 그런 교육을 떠받치고 있는 사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좋은 교육 제도가 있다고 해도 아이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교육은 교육이랄 수 없는 것인데도 왜 우리 사회는 이런 교육을 용인하고 지속해 나가는 것일까. 왜?

저자는 이에 대해 '터널론'을 제기한다. 터널론은 이스라엘의 심리학자 아리엘 메라리가 자살 테러를 감행했다가 실패한 후 체포된 여러 명의 젊은이를 인터뷰하고 난 뒤에 밝힌 이론이다. 메라리는 그들이 광신도이거나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편견이라며, 그들은 미치지도, 광신도이지도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보다 정신장애도 덜 겪고, 신앙심도 그다지 깊지 않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상당히 부유하거나 특권층 출신으로 대학을 졸업한 전문직 종사자도 많았다고 하니, 이는 참으로 놀랄 일이다.

메라리는 결국 그들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 자살 테러를 하는 게 아니라, '터널'에 갇혀 있다고 결론 내린다. 이 터널은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분위기, 방송, 집과 이발소나 카페에서 나누는 잡담과 전쟁 이야기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 터널에 갇혀, 스스로 자살 테러리스트가 되어 알카에다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교육을 자살 테러리스트처럼 터널에 갇혔다고 한다. 터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과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잃게 된다. 개방된 사회에서는 여러 의견들이 충동하면서 사물을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지만 터널 안에서는 오직 하나의 사고, 획일적인 행동을 자기도 모르게 요구받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을 가두어놓은 터널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을 통해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앨리스가 카드게임의 '붉은 여왕'과 미친 듯이 달리다가 깜짝 놀라서 묻는다. "붉은 여왕님, 이상해요. 지금 우리는 아주 빨리 달리고 있는데 주변 경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아요." 여왕은 대답한다. "제자리에 남아있고 싶으면 죽어라 달려야 해."(본문 26-27쪽)

어떤가. 두렵지 아니한가. 무의미한 경쟁으로 내달리는 터널 안의 모습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 있을까. 저자는 단언한다. 탈출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그것은 이 터널을 허무는 것이라고.

사교육의 성행, 교육이 아닌 게임을 조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터널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뇌 과학과 심리학적인 방법을 통해, 우리 교육의 모순을 파헤친다. 청소년들을 자살로 몰고 가는 교육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를 알면서도 왜 사람들은 경쟁과 사교육의 터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를 파헤친다. 왜 맹목적 터널에 갇히게 되었으며, 어떤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터널은 여전히 완강한지를 보여준다.

특히 우리나라 교육을 결정적으로 눈멀게 하는 사교육의 모습을 발가벗긴다. 사교육의 상업적 전략(공포 마케팅, 후광효과, 선행 마케팅, 끼워 팔기 전략 등)과 이 사교육의 성행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아이들에게 미치는 심각한 부작용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교육의 성행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게임'이라고 규정한다. 누가 먼저 앞서느냐를 결정하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게임이라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EBS가 고려대 심리학과 김학진 연구팀과 공동으로, 한국 어머니 11명과 미국 어머니 11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보여주었다. 두 그룹 다 자녀에게는 강한 모성애적 반응을 보여준 것은 동일했다. 차이는 어머니들의 태도에서 차이가 났다.

두 그룹 자녀에게 단어 퍼즐 맞추기 능력 측정을 한다고 하자, 미국 어머니들은 대부분 자녀가 스스로 문제를 풀도록 지켜보는 반면, 한국 어머니들은 직접 힌트를 줘서라도 자녀들이 맞출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감독자가 짐짓 자리를 비우자 아예 대놓고 가르쳐 주거나 대신 풀기까지 했다. 이는 성취의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시하는 태도다. 한국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퍼즐을 맞추는 동안 평가에 대한 말이 2배나 더 많았고, 부정적인 말과 태도 역시, 미국 어머니들보다 4배 정도 많았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의 어머니들은 자녀가 얼마나 잘 하느냐보다, 자녀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잘 하느냐에 관심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를 통해 우리 사회는 남보다 조금 더 앞서 가는 게 중요한 사회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래서 교육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것이다.

엄청난 사회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이런 게임이 한순간에 폐기돼도 마땅찮을 판에 어쩐 일인지 '교육게임'은 누군가가 비호하고 우리 눈을 가리면서 계속 이끌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교육은 카지노보다 더 지독한 게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해서 10대가 지나도 끝나지 않는 지독한 게임이다. 여기서 지면 희망이 없어지는 무서운 사회에서 살고 있다. 아무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싶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이 게임으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본문 108쪽)

특권층 교육, 영어와 교육부, 서울대를 해체하라

아무튼 저자의 진단은 맹렬하다. 터널이 형성된 역사와 최근 정부들의 교육정책을 분석하고 가하는 비판은 매우 정확하고, 그래서 매섭다. 특목고와 자율형고등학교를 대거 도입하여 교육에 자본이 쉽게 침투하도록 하는 것은 특권층 교육을 인정하는 것이고, 경쟁은 더욱 심화되어 더 많은 아이들은 죽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이제 비싼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국제중학교, 특목고, 자율고를 갈 수 없게 되고, 이것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으로 가는 일방통행이라는 말에 새삼 섬뜩해진다.

그리고 멕시코와 스파르타, 그리고 베네치아의 실패를 보여주며, 거기서 교훈을 찾아 잘못된 미래를 경고하는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저자는 분명히 외친다. "교육이 정상화되면 거기에 기생하여 살던 관료들과 이익을 얻던 사학 및 학원기업들, 그리고 연관된 정치인까지, 힘을 잃거나 문을 닫아야 하고 자신의 기반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그리고 많은 돈을 써서 차별화된 중고등학교를 다니게 하여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 남들은 할 수 없는 특권층의 무기인데, 이걸 못하고 공평한 경쟁을 해야 하니까, 올바른 교육개혁에는 무조건 저항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깨뜨려야 할 첫 번째 터널로 '영어'를 지목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영어몰입교육을 강조하여 한국에 영어 열풍을 불게 하였는데, 영어를 해체하라니! 저자는 영어 해체는 영어시험 폐지로부터 시작하자고 주장한다. 이는 영어공부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입시에서 없애자는 것이라고 했다.

한 예로 미국교육평가원이 2009년에 발표한 영어 말하기 순위에서 핀란드는 3위였고, 한국은 121위에 그쳤다고 했다. 핀란드도 1980년까지 문법 위주의 교육을 하다가 의사소통에 전혀 도움이 안 되자, 실용 영어 위주로 바꾸고 거의 모든 영어 시험을 없애 버렸다.

공무원 채용시험에서도 영어시험을 없애야 한다. 대부분 국민에게 봉사할 사람들인데 영어는 왜 테스트하는가. 법관이 되는데 왜 토플이나 토익 고득점이 필요한가. 왜 국가가 나서서 영어에 특혜를 주려 하는가. 결론적으로 영어가 입학시험이나 공무원 채용시험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은 영어교육의 목표에 어긋난다는 것이 확실하다. 과학적인 증거도 있으며 외국의 사례도 풍부함에도 수십 년간 우리 교육 당국이 이런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대국민 사기이다.(본문 240쪽)

이밖에 저자는 교육부를 해체하여 '국가교육위원회'를 창설하고, 평준화교육을 복구해야 하며, 국공립대학 통합 네트워크를 통해 서울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서울대를 서른 개 이상 만들자고 했다. 또한 복지를 확대하자는 정치적인 문제까지 주장하는데, 이들 모두 매우 굵직한 교육 개혁 방안들이라 논란이 얼마나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통하지 않고 인공호흡으로 연명하는 한국 교육을 과연 살려낼 수 있을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나는 한국경제보다 교육이 더 불안하다>는 교육의 비전문가가 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가지고 교육문제를 파고든 책이다. 그래서 더 객관적일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저자의 열정과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담겨 있어, 그의 진정성이 엿보이고 믿음이 갔다. 결코 두껍지 않는 이 한 권의 책 속에서 한국 교육의 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지 모르겠지만, 불행한 교육을 성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덧붙이는 글 | <나는 한국경제보다 교육이 더 불안하다>, 최환석, 참돌, 2013년 12월 5일, 1만 8천 원



나는 한국경제보다 교육이 더 불안하다

최환석 지음, 참돌(2013)


태그:#불행한 교육, #사교육 천국, #터널에 갇힌 교육, #영어시험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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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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