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드라마 업계에 매우 다사다난한 해였다. 김수현, 김은숙 등 유명작가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졌고 김수현, 전지현, 송혜교, 조인성 등 그동안 TV에서 보기 힘들었던 톱스타들이 컴백을 결정하는 등 반가운 소식도 들린반면 <야왕><오로라 공주> 등으로 촉발된 막장 논란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한 해기도 했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2013년 방송된 드라마는 무엇이 있었고, 또 어떤 결과를 받아들었을까. 여기, 바로 그 정답이 있다.

SBS 월화드라마, 시청률-작품성 2% 아쉬웠다

2013년 SBS 월화드라마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 대거 등장했다. 색다른 소재와 신선한 접근이 인상적이었고, 평단의 반응이 우호적인 작품도 꽤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장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한 마디로 반쪽짜리 성공에 머문 것이다. 주중 드라마에 공을 들였던 SBS로선 아쉬운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수애-권상우 주연의 <야왕>

수애-권상우 주연의 <야왕> ⓒ SBS

올해 첫 농사는 <야왕>으로 시작했다. <미스토큐><토마토><명랑소녀 성공기><옥탑방 왕세자>로 유명한 이희명 작가가 집필을 맡고 수애와 권상우가 각각 투톱으로 활약한 <야왕>은 최고 시청률 25.8%를 기록해 2013년 방송된 SBS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올린 드라마가 됐다. 종방연에 참석한 구본근 당시 드라마국장이 "어려운 시기에 <야왕>이 잘해줘서 많은 신세를 졌다"고 말했을 정도로 흥행에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았다. 강렬한 복수극을 표방했던 초반과 달리 중후반에는 주다해(수애 분)의 악행만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되며 수준 이하의 스토리 전개를 보인 것이다. 주연 배우 권상우조차 "이해하려고 노력한 작품"이라고 토로할 정도였던 <야왕>은 종영 후에도 표절 논란으로 큰 홍역을 치르며 '시청률이 모든 것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수애의 농익은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도 저도 되지 않았을 '막장 드라마'로 남아 버린 셈이다.

<야왕>이 작품성에 발목을 잡혔다면 후에 방송되는 작품들은 줄줄이 시청률에 발목이 잡혔다. SBS가 야심 차게 내놓은 최고 기대작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새롭게 해석하는 나름 신선한 시도를 했지만 주연배우 김태희의 연기력과 역사 왜곡 논란에 시달리며 방송 내내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장희빈은 흥행불패'라는 공식마저 깨져버린 것이다.

 고수-이요원 주연의 <황금의 제국>

고수-이요원 주연의 <황금의 제국> ⓒ SBS

2012년 <추적자> 신화를 만든 박경수 작가의 <황금의 제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간 심리를 냉철하게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각각의 이익을 대변하는 강렬한 캐릭터들의 향연, 여기에 고수, 이요원, 손현주, 박근형, 김미숙 등 연기파 배우들이 훌륭한 연기를 펼쳤으나 시청률 면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엔 이야기가 너무 난해했던 데다가 경쟁작 <굿 닥터>가 워낙 인기몰이를 했기 때문이다.

'지우히메' 최지우를 원톱으로 내세운 <수상한 가정부>의 성적도 아쉬웠다.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가정부 미타>를 리메이크했지만 무리한 스토리 연장과 지루한 전개가 시청자들의 외면을 샀다. 최지우의 색다른 변신이 그나마 눈길을 끌었지만 그것만으로 시청자들을 붙잡기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상한 가정부>의 바통을 이어받은 <따뜻한 말 한마디> 또한 주부층에게 인기가 좋은 불륜극 장르로 기대를 모았지만 한 자릿수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각 인물 군상의 관계를 내밀하게 파헤치며 불륜극이 아니라 심리극이라는 찬사까지 받는 실정이지만 이 같은 호평이 시청률로 직결되지는 않는 모양새다. 이 같은 SBS의 상황은 작품성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단적으로 바로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SBS 수목드라마, 시청률-작품성 모두 잡았다

부진했던 월화드라마와 달리 SBS 수목드라마는 그야말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작품성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승승장구했고, 그 어렵다는 20%대 시청률을 돌파한 작품도 4편이나 됐다. SBS로선 월화의 아쉬움을 수목으로 충분히 만회한 셈이다. 스타작가와 톱 스타들을 고루 배치한 전략이 맞아 떨어졌다.

 송혜교-조인성 주연의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송혜교-조인성 주연의 <그 겨울, 바람이 분다> ⓒ SBS

그중에서도 첫 스타트를 기분 좋게 끊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공이 크다. 일본 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 없어..여름>을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거짓말><바보 같은 사랑><그들이 사는 세상> 등으로 유명한 스타작가 노희경과 톱스타 조인성-송혜교의 만남으로 일찌감치 상반기 최고 기대작 중 하나로 손꼽혔던 작품이다.

다만, 노희경 작가가 워낙 시청률과 인연이 없고 경쟁작으로 대형 블록버스터 <아이리스2>가 버티고 있어 흥행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 이미지가 강한 송혜교가 섬세한 감정 연기가 가능하겠냐는 냉소 섞인 시선도 존재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는 기우였다. 첫 주 방송분부터 같은 시간대 1위로 치고 나가며 승부를 가른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방송 내내 안정적 시청률로 수목 드라마 시장을 선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취월장한 송혜교의 연기력이었다. 송혜교는 처연한 눈빛과 섬세한 표정 연기로 시청자들의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 냈고, 여배우로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데 극적으로 성공했다. 그 결과 현재 송혜교는 SBS 연기대상의 강력한 대상후보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이후, SBS 수목드라마는 약간의 슬럼프를 맞이한다. 신하균-이민정을 내세운 <내 연애의 모든 것>이 예상외로 부진하면서 한 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SBS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이어 2연타석 홈런을 노린 야심작이었기에 실망감이 컸다. 신하균의 연기력도, 이민정의 이름값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까닭이다.

 이보영-이종석 주연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보영-이종석 주연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 ⓒ SBS


이후에는 승승장구였다. 기대치 않았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초대박'을 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내 딸 서영이>로 흥행 보증수표로 떠오른 이보영과 <학교 2013>의 청춘스타 이종석이 손을 맞잡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로맨틱 코미디와 스릴러, 멜로와 법정물을 절묘하게 섞어내며 시청자들의 폭발적 사랑을 받았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신드롬급 흥행이 이뤄진 것이다.

한 자릿수로 시작한 시청률은 2회 만에 두 자릿수로 올라섰고, 11회에 20% 고지를 넘어서더니 결국 최고 시청률 24.1%라는 대박을 쳤다. 박혜련 작가의 세련되고 탄탄한 극본과 조수원 PD의 섬세한 연출, 여기에 연기 내공 20년을 자랑하는 이보영의 안정적 연기가 더해져 만들어 낸 기적과도 같은 결과였다. 이보영이 올해 SBS 연기대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항간에서는 이보영의 연기가 "딱 기대만큼"이었다고 평하기도 하는데, 이 같은 야박한 평가에 선뜻 동의하기는 힘들다. 이보영은 코믹과 비극을 넘나들며 극의 중심을 잡는데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담담한 일상연기부터 극적인 법정신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낸 걸출한 여배우였다. 단언컨대,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이보영의 연기에 많은 부분을 빚진 드라마다. 작품선택을 잘한 것도 물론 그의 복이겠지만 작품을 살린 그의 연기는 충분한 '대상감'이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바통을 이어받은 <주군의 태양>도 대박을 쳤다. 홍자매가 야심차게 들고 나온 <주군의 태양>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 귀신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입힌 파격적 시도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진지한 이미지를 벗어던진 소지섭의 연기 변신과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공블리' 공효진의 능수능란함 또한 장관 중 장관이었다. 결국 이 드라마는 마지막 회에 21.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20%대 드라마 대열에 합류하는데 성공했다.

 전지현-김수현 주연의 <별에서 온 그대>

전지현-김수현 주연의 <별에서 온 그대> ⓒ SBS


후속작 <상속자들> 또한 성공적이었다. 물론 고비는 있었다. <비밀>에 밀려 같은 시간대 2위를 기록하자 곧바로 '김은숙의 굴욕'이라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비밀> 종영과 함께 20%대 시청률로 직행한 <상속자들>은 김우빈 신드롬을 탄생시키며 승승장구했고 최고 시청률 25.6%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마지막 회 수도권 시청률은 무려 28.6%로 30%에 육박할 정도였다.

2013년 SBS 수목 라인업의 마지막을 책임지고 있는 <별에서 온 그대> 역시 기세가 매섭다. <내조의 여왕><역전의 여왕><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박지은 작가가 집필을, <뿌리 깊은 나무>의 장태유 PD가 연출을, 톱스타 전지현과 김수현이 각각 남녀 주인공을 맡은 이 드라마는 첫 회부터 15.6%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하더니 방송 2회 만에 수도권 시청률 20%를 넘기며 20% 드라마가 됐다. 눈에 띄는 상승세가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다.

물론 표절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박지은 작가가 워낙 검증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작가다보니 '믿고 보는' 분위기가 여전히 탄탄하다. 13년 만에 TV로 돌아온 전지현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고, 청춘스타 김수현 또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어 잘하면 30%대 시청률 대박도 기대할 만하다. SBS로서 <별에서 온 그대>가 2013 수목 라인업의 '화룡점정'이 된 셈이다.

SBS 일일-주말드라마,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지아 주연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이지아 주연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 ⓒ SBS

SBS의 일일-주말 드라마는 KBS나 MBC보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일일 드라마 <가족의 탄생>과 <못난이 주의보>의 시청률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고, 주말 드라마 역시 침체 일로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힐링 드라마'를 내세우며 시종일관 착한 드라마로서의 정체성을 견지한 <못난이 주의보>가 더 많은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주말 드라마 라인업은 <돈의 화신>을 제외하곤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성유리 주연의 <출생의 비밀>은 잘 만든 드라마라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물렀고, 남상미 주연의 <결혼의 여신>은 경쟁작 <스캔들>에 완패했으며, 기대를 모은 김수현 작가의 신작 <세 번 결혼하는 여자> 또한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SBS는 현재 방송 중인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뒷심에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새인데 과연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의 흥행 마법이 후반부에 들어 폭발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황금 무지개>와 <개콘>이 버티는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웬만큼 재밌지 않고서야 같은 시간대 1위 자리를 탈환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SBS 드라마, 그래도 활짝 웃을 수 있는 이유

2013년 SBS 드라마는 대체로 훌륭한 수준과 흥행력을 담보했다. 완전한 '망작'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대중에게 외면받은 막장 드라마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오히려 수목 라인업을 중심으로 대중적으로나 작품적으로나 매우 수준 높은 작품들이 대거 출현했고, <황금의 제국><못난이 주의보>처럼 요즘 보기 드문 중심이 탄탄한 드라마들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상파 방송 3사 중에 SBS 드라마만 방송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품격과 도덕률을 견지하며 적절히 대중과 타협했다고 볼 수 있다.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SBS가 활짝 웃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도 방송사라면 이 정도 작품들은 내놓아야 체면이 서지 않을까. 2013년 드라마 경쟁 속 최후의 승자를 꼽으라면 첫 손에 SBS부터 꼽아야 옳다.

이제 2013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각 방송사는 2013년 드라마 라인업을 대부분 마무리 짓고 새로운 2014년 드라마 라인업 준비에 분주하다. 과연 내년에는 어떤 방송사가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만족시키며 훌륭한 드라마를 여럿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상파 3사를 비롯한 많은 방송사의 '총성 없는 전쟁'이 다시금 시작되고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별에서 온 그대 상속자들 주군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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