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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즐거움? '정치'와 '즐거움'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생경하다. 그동안 '정치'는 즐겁지 않은 단어였다. 정치를 하는 정치인도, 그 대상이 되는 일반인도 즐거움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정반대의 단어인 '괴로움, 슬픔'과 맞닿아 있지 않았나? 하지만, 여기 한 늦깎이 정치인의 고백이 신선하다. 그리고 반갑다.

근면은 즐거운 근면이어야 오래갑니다. 노동은 사실 지겨운 일일 수 있거든요. 단순노동일 때는 더욱 그렇죠. 그래서 어떻게 즐거운 노동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p.42)

즐거운 근면을 펼치는 박원순 서울시장, 또 즐거운 언론인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이 둘은 주말도 반납한 채, 30시간에 걸친 대담을 펼쳤다. 주제는 박원순 시장과 그가 바꾸어 놓은 서울의 모습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정치의 즐거움>이다.

그의 야심은 무엇인가?

정치의 즐거움 오연호 기자가 묻고, 박원순 시장이 답한 <정치의 즐거움>
▲ 정치의 즐거움 오연호 기자가 묻고, 박원순 시장이 답한 <정치의 즐거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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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야심이 있다>. 1장의 제목이다. 야심? 사실 '야심'은 그동안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는 단어였다. 소망이나 희망보다 왠지 불순물이 첨가된 것 같은. 하지만, 책의 시작부터 야심이라는 단어를 언급한다. 박원순 시장이 이야기하는 야심은 과연 무엇일까?

사실, 박 시장은 어려운 시기에 서울 시장으로 부임했다. 전임 시장들로부터 고스란히 넘겨받은 골머리 썩이는 숙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수많은 서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뉴타운 문제이다. '오랜 시간, 시민 운동의 최전선에 있던 사람인데 제대로 시정을 펼칠 수 있을까?'하는 우려의 눈빛도 컸다. '민주주의 시계가 거꾸로 도는 것 같은, 먹빛 정치판에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나 있을까'라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이런 가시방석 같은 서울시장에 당선된 후, 박원순 시장은 뚜벅뚜벅 행보를 시작한다. 그런데, 전임 시장들과 비교해 볼 때, 약간 특이한 점이 있었다.  

박 시장은 의외로 작은 데 초점을 맞췄다. 보도블록 10계명까지 만들며 보도블록 개선을 진두지휘했다. 처음에 담당 공무원들과 시민들은 "서울시장이 뭘 그렇게 좀스럽고 쫀쫀하냐(p.118)"고 했지만, 차차 시민들의 만족도가 커져 갔다. 박원순 시장의 의도는 이러했다.

이번 기회에 '작은 일을 제대로 하는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집중해서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고치면 다른 행정 영역에도 이런 문화가 파급될 것이라고 봅니다.

보도블록, 사실 작은 일이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서울시장이 뭘 그렇게 좀스럽고 쫀쫀하냐고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달라요. 작은 것도 안 되는데 어떻게 큰 것이 되겠습니까? (p.118) 

랜드마크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다. '어떤 지역을 식별하는 데 목표물로서 적당한 사물(事物)'이라는 뜻이라는 랜드마크. 보통 랜드마크라면 큰 건축물을 상상하기 쉽다. 그러기에 대부분 공직의 수장들은 주목할 만하고, 커다란 랜드마크 만들기에 치중했었다. 그것도 자기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랜드마크와 자기의 성과가 비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시각은 남달랐다. '자연, 역사, 사람'을 랜드마크로 정의한 것이다.

대개 랜드마크라고 하면 무슨 건물부터 생각하지만 저는 사람이야말로, 서울의 시민들이야말로 랜드마크라고 생각해요. …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멀리 가지 마라, 우리 안에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다! 랜드마크 세우지 마라, 우리 안에 랜드마크가 있다!" (p.224)

이렇듯 박원순 시장의 시정을 훑어보자면, 그동안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단어, 야심이 친숙히 다가온다. 오연호 기자는 이 단어를 새롭게 정의한다.

야심, 마음에 듭니다. 소망보다 활달하고 욕망보다 고급스러워요. 당당함, 배짱이 있어 보여 좋습니다. 책상머리나 지키는 게 아니라 실천을 강조하는 듯해 더 마음에 듭니다. 한자 야(野)에는 현장성과 함께 대안성이 내포돼 있으니 더욱 그렇고요. 거친 들판에서 실천하며 대안을 만들어낸다! (p.32)

그의 마음이 향한 곳은?

그의 성공적인 시정과 함께 눈여겨볼 것이 있다. 바로 그의 마음결. 그는 사람에게로 마음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시정을 대표하는 단어는 다름 아닌 '소통'과 '참여'이다. 

제가 추구하는 새 정치의 핵심은 소통과 참여, 거버넌스(Governance, 공공경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하는 행동, 위키피디아(Wikipedia)식 행정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처음 정책을 입안할 때부터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p.94)

박 시장은 누구보다도 시민의 말을 듣고 싶었다. 정보공개정책과를 신설해 시민이 참여하는 행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한마디로 신문고로서의 시청의 역할을 공고히 다져간 것이다.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민의 의견도 항상 듣고 있다. SNS의 순기능이 아닐까. 거기에서 더 나아가 박 시장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가갔다.

제가 시위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 통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서울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시장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민을 피해 도망간다면 무엇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p.96)

저는 그분들이 애초부터 보수나 진보로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그저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어요.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제대로 대우하지 않고 어느 쪽이든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고 했으니까요. (p.282)

이것이 박원순 시장이 갖는 최대의 장점이자 무기 아닐까? 측근은 물론이고, 자신을 괴롭히고 음해하는 적까지 끝내는 자신의 편으로 받아들이고야 만다. 이런 박원순 시장이 모델로 삼은 이가 바로 조영래 변호사이다. <전태일 평전>을 썼던, 한 시대 불꽃같이 살아간 그! 조영래 변호사의 삶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박원순 시장의 행보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분에게 대단한 점이 또 있어요. 통찰력, 집요함에다 대인관계의 폭이 굉장히 넓다는 거예요. (p.64)

역시, 대가는 대가를 낳는 법이다. 과거의 구습을 바꾸고, 끊임 없이 안주하지 않는 박원순 시장의 얼굴에서 조영래 변호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시대와 맞짱 뜬 '최고의 사령관'의 진면목(p.63)"의 모습 말이다. "역사는 이렇게 앞선 자들을 본받는 사숙(私淑)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나갑니다."(p.56)라는 박원순 시장의 고백을 가만히 곱씹어본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박원순 시장만큼 드라마틱하게 정치판으로 뛰어든 사람이 있을까? 오세훈 전 시장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면서 주민투표를 강행했고, 그 여파로 서울시장 자리에서 물러나 보궐선거가 이루어졌다(p.219). 그 보궐선거를 앞둔 2011년 8월 28일, 백두대간 종주 41일째 날에 출마할 마음을 굳혔고, 이후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시장에 당선된 것이다.

그동안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면서 의심의 눈빛을 던지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도 조금씩 색안경을 벗고 박원순 시장을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맹목적으로 다른 나라의 도시를 부러워하고, 그 도시의 시장을 부러워했던 나를 포함한 많은 이에게 박원순 시장은 랜드마크가 되어 주고 있다.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시민들의 눈물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시민들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을 배우고 제가 가야 할 길을 보게 됩니다. 그동안 정치는 제가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는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줄을 선 반면, 제가 서 있던 시민사회는 늘 사람이 부족해서 허덕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치 권유를 여러 번 받았지만 시민사회를 지키는 일이 제 소명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피와 눈물로 이룬 이 땅의 민주주의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시대적 요구와 역사적 소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p.6~7)

부디, 이렇게 절절한 그의 목소리가 바뀌거나 끊이질 않길 바란다. 나 자신도, 우리들에게도 각자 몫의 시대적 요구와 역사적 소임이 놓여 있다. 겸허히 짊어져 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었습니다. http://blog.naver.com/clearoad



정치의 즐거움 - 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하다

박원순.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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