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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미국의 동물보호 활동가 중에 헨리 스피라라는 사람이 있다. 헨리 스피라는 동물에게 제도적으로 가해진 수많은 잔인한 관행을 철폐하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다. 평생 인권을 위해 싸웠던 그는 50세가 넘어서 동물보호 운동에 투신했다. 그를 동물보호 활동가로 변화시킨 것은 친구가 유럽에 가면서 그에게 떠넘긴 고양이 '새비지'였다.

헨리 스피라는 고양이를 키우면서 어떤 동물은 쓰다듬고 어떤 동물은 포크와 나이프로 찌르고 자르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물을 위해 싸우는 것을 인권을 위해 싸웠던 삶의 논리적 확장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 나는 헨리 스피라의 평전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피터 싱어 지음, 김상우 옮김, 오월의봄)를 읽다가 인상적인 구절을 발견했다. 원래 새비지를 맡기로 했던 사람에게 사정이 생겨 자신이 맡게 된 때를 회고하는 헨리 스피라의 말을 옮긴 것이다.  

"뭐랄까, 지금 고양이와 노닥거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고양이는 몇 분이 지나는 동안 나를 매혹시켰고, 이후 줄곧 나는 고양이에게 사로잡혀 지내게 되었죠."
  
나는 "사로잡히다"라는 표현에서 전율을 느꼈다. 고양이 덕분에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내게 이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 역시 고양이에게 "사로잡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고양이를 만난 후 나는 아주 많이 변했다. 인생의 뚜렷한 목표가 생기면서 일상의 사소한 행위들이 의미를 갖게 되었고 소중해졌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건강해야 하는지, 왜 잘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행복을 알게 되었다.

헨리 스피라의 이야기에 나 자신을 빗대어 거창했지만, 나는 이제 막 목표를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한 동물보호 활동가이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동물관련 활동을 한다.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는 것이 그런 활동이다.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인간 사회의 최하층민으로 전락한, 그러나 그에 대해 아무런 항거도 못하는 '동물'이라는 약자를 알리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전방에서 싸우는 동물보호단체들을 후방에서 지원하고 싶다.

반려 고양이 '애기'

'애기'는 원래 동생이 키우던 고양이다. 2008년 11월 서울 본가로 데려오면서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원래 고양이라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고, 부정적인 선입견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정이 들었고,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애기는 가족이 되었다. 

나름 잘해준다고 생각했지만 가끔은 안쓰럽기도 했다. 자기도 좋고 싫은 게 있을 텐데 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당할 거라고 생각하니 짠했다. 곁에서 느끼는 따뜻함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유를 받는다고 할까. 애기를 위해서라도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게 되었다. 비관적이고 쉽게 우울해지던 성격도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사랑은 그렇게 나를 변화시켰다.

나의 반려고양이 '애기'
▲ 애기 나의 반려고양이 '애기'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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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아이가 생기고 나서 굶주림이나 불치병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의 사연에 눈물을 쏟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가 된 경험은 없지만 이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고통 받는 동물을 보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 무엇을 해야 할 지는 몰랐다.

"고기, 그 맛있는 걸 어떻게 끊어?"

그러던 중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났는데, 바로 고양이 털 알레르기였다. 재채기와 결막염으로 시작된 알레르기는 급기야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던 심각한 두드러기로 발전했다. 가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피해야 할 식품목록이 생겼다. 그 중에는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돼지고기, 닭고기는 물론 햄, 소시지 등의 가공식품도 있었다. "채식이 몸을 맑게 해준다던데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에 채식 커뮤니티에도 가입했다.

언젠가부터 동물을 먹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자칭 "고기 킬러"였던 내게 채식은 알레르기 극복을 위한 일시적인 방편이었다.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넘지 못할 산처럼 느껴졌다. 좋아하는 음식을 포기할 자신도 없었을 뿐더러, 채식주의자는 속세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알레르기와 만성 두드러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 2010년 10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채식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지구생명체(Earthlings)>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숀 몬슨이 감독을,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우하는 사람들)의 대변인이자 영화배우인 호아킨 피닉스가 내레이션을 맡은 이 독립 다큐는 "채식주의자 제조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 애완, 식용, 모피, 오락, 실험동물로 희생되는 동물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다큐를 통해 나는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잔혹한 학대에 가담해 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 충격은 머리를 망치로 세게 얻어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생명'을 '기계' 또는 '소비재'로 전락시키는 오늘날의 산업 시스템은 말 그대로 "동물학대 시스템"이었다. 가령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잔혹한 사육, 도살 방식은 내가 건강이나 자연의 약육강식을 근거로 지지했던 육식의 정당성을 박살내 버렸다. 비용과 노동력은 최대한 낮추고 생산성은 최대한 높이는 시스템에서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은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공장식 축산은 제3세계의 기아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동물을 좋아한다고 믿었던 나는 공장식 축산에 반대할 이유를 먼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보다 싸게, 많이 먹기를 원했던 나의 욕망이 동물을 학대하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는 시스템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넘겨버리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이제 그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와 이별하는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더 이상 먹는 것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 해야겠다는 의지가 마구 솟아났다.

"식물은 불쌍하지 않냐고요?"

"차별은 그것이 무엇이든 부당하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는 이 다큐는 인간이 동료 지구생명체인 동물을 착취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 나의 삶을 변화시킨 다큐, <지구생명체> "차별은 그것이 무엇이든 부당하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는 이 다큐는 인간이 동료 지구생명체인 동물을 착취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 Nati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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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에게 "식물은 불쌍하지 않냐"며 논쟁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완벽하지 않을 바에는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채식을 한다 해도 살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사람은 살면서 알게 모르게 살생을 한다. 채식주의자라고 해도 곡식을 재배하는 농기구에 희생되는 동물의 죽음까지 막을 수는 없다. 살생을 완전히 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식물은 불쌍하지 않냐고 묻는 것만큼이나 완벽주의에 기인한 강박증이다. 

동물의 고통을 눈으로 확인한 내게 중요한 것은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김치에도 젓갈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채식을 포기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젓갈이 들어간 김치는 먹지만 고기라도 먹지 않는 것과 둘 다 먹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내게 채식주의는 더 이상 속세와 인연을 끊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습관이 되었다. 고기든, 우유든, 계란이든, 모피든, 현재 가능한 것부터 줄이기 시작해서 실천의 폭을 최대한 넓혀가는 과정이 채식주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채식주의자에게 가장 힘든 상황은 아마도 직장 회식일 것이다. 점심 식사는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 덕분에 문제가 없지만, 회식은 내 입맛에만 맞출 수 없다. 직장을 핑계로 해산물은 어쩔 수 없이 먹고 있는데, 동료들의 배려 덕분에 지금까지 어려움은 없었다. 오로지 설렁탕이나 삼계탕만 판다면 모를까, 어지간한 식당에는 해산물을 먹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는 있다. 고깃집은 오히려 편하다. 동료들이 고기를 먹는 동안 나는 쌈채소에 밥과 된장찌개를 먹으면 되니까.

동물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에게 나 자신의 실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동참자를 늘리는 것이다. 동참이 늘어날수록 몇 배의 동물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참을 늘리려면 사람들에게 "채식이 다소 불편해도 즐겁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동물성 성분을 골라내는 데에만 집착하는 채식은 이런 인상을 주기 어렵다. "일체의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비건이 아니면 채식주의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며 "나도 해봐야겠다"는 용기를 내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유를 갖되 중심을 잃지 말고 어떻게 하면 동물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도 약자의 처우에 절박한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그러한 인식을 동물에게 확장시켜 변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내 절친한 친구가 그런 경우인데, 그 친구는 사회문제를 위해 투쟁하는 운동권이다. 그 친구는 내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동물에 대한 억압과 인간에 대한 억압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친구는 나처럼 도시락을 준비할 형편이 못 된다. 고등학교 교사라서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메뉴가 절반은 고기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영양사가 채식 위주로 메뉴를 짜도 "아이들이 먹을 게 없다"고 학부모들이 항의를 한다고 한다. 친구는 정 어쩔 수 없을 때는 밖에 나가서 김밥을 사먹는 불편을 감수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나와 함께 가시밭을 걷기를 마다하지 않는 친구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고맙다.

"도살장 벽을 유리로 만들면 사람들은 전부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다"

비틀즈 멤버이자 동물보호 활동가인 폴 매카트니는 "도살장 벽을 유리로 만들면 사람들은 전부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생산과 소비가 완벽하게 분리되어 불편한 진실이 은폐되는 현실을 지적한 말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유래 없이 많은 동물을 소비하고 있지만, 그들을 사육하고 도살하는 과정에 만연하는 잔인 무도함에는 놀랄 만큼 무지하다. 마트에 진열된 계란을 보고 날개조차 펼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철장에 구겨 넣어진 채 평생 "알 낳는 기계"로 살아가는 암탉의 비참한 삶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 몸을 감싼 부드러운 모피가 살가죽이 벗겨지기 전 어떤 비명을 질렀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다.

오늘날 동물을 수단으로 하는 산업은 전부 동물학대 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나는 식품산업과 모피산업의 학대를 줄이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선택한 이유는 '식용동물'과 '모피동물'의 고통은 개인의 결심만으로도 상당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부터 수요를 줄이면 그만큼 고통을 막을 수 있다. 따로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일상에서 동물을 구하는 실천이다. 

물론 근본적인 변화는 법제도의 개선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법이 바뀌려면 사회에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변화를 요구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요구하지 않는 일을 정치인이 나서서 해준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 활동가로서 나는 불편한 진실을 알리고 가능한 실천을 촉구하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이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동물을 사람보다 우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운동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나는 살면서 이보다 큰 보람과 행복은 아직 느껴보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에서 언급된 다큐 <지구생명체>는 제 유튜브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 주소: http://youtu.be/YlGAxXdvApM)



태그:#반려 고양이, #동물복지, #지구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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