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TV 방송에서 어떤 제품의 소비를 자제해 달라는 말을 듣기는 쉽지 않다. 

1996년 미국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토크쇼에서 전직 목축업자 하워드 리먼과 함께 광우병과 식품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는 햄버거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격분한 미국 목축업계가 수십만 달러 상당의 TV 광고를 취소하고 소송을 제기한 것은 국내에도 알려진 유명한 사건이다.

소송은 오프라 윈프리의 승리로 종결되었지만, 이 사건은 광고료의 큰 수혜자인 TV 방송이 정직한 목소리를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예인이 자신의 소신을 선언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가수 이효리는 채식주의를 선언한 후 광고 섭외가 끊긴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먹고 입는 행위가 알게 모르게 "정치적인 행위"가 되어버리는 오늘날, 지난 18일 모피의 불편한 진실을 알린 MBC <컬투의 베란다쇼>(181회)는 뜻깊은 방송이었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겨울 패션 소재인 모피는 거위, 밍크, 여우, 캐시미어 염소, 앙고라 토끼, 양, 소, 앙고라 염소, 라쿤을 비롯한 '모피동물'의 털가죽이다. 거위털 및 오리털 패딩 점퍼, 모자에 달린 라쿤 털 장식, 여우털 코트, 캐시미어 코트 등이 모피를 소재로 한 의류이다.

우리나라에서 모피는 단순한 패션을 넘어 재테크나 결혼 예단으로도 활용된다. 얼마 전 어느 홈쇼핑 방송에서는 500만 원 짜리 모피코트가 15분 만에 모두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 모피 소비량은 2011년에는 모피수입액 4조4천억 원으로 전 세계 1위를, 2012년에는 2위를 차지했다.  

모피를 입는 사람들은 동물의 털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따뜻하기 때문에 입는다고 한다. 사람과 동물이 풍성한 털을 나눠 갖는 것에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오리나 거위는 생후 10주부터 6주 간격으로 일생 동안 5-15회 털을 뽑힌다. 사람으로 치면 머리털을 쥐어뜯는 고통에 비유할 수 있을까?
▲ 오리털, 거위털 채취 모습 오리나 거위는 생후 10주부터 6주 간격으로 일생 동안 5-15회 털을 뽑힌다. 사람으로 치면 머리털을 쥐어뜯는 고통에 비유할 수 있을까?
ⓒ MBC

관련사진보기


털을 잡아 뜯기는 토끼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른다. 토끼는 황량한 철장우리에 갇힌 채 주기적으로 털이 뽑히는 고문을 당한다.
▲ 앙고라 토끼털 채취 모습 털을 잡아 뜯기는 토끼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른다. 토끼는 황량한 철장우리에 갇힌 채 주기적으로 털이 뽑히는 고문을 당한다.
ⓒ MBC

관련사진보기


세계 최대 모피 생산국인 중국의 모피 시장에서 동물들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진다.
▲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너구리 세계 최대 모피 생산국인 중국의 모피 시장에서 동물들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진다.
ⓒ MBC

관련사진보기


문제는 모피를 잔인하게 얻는다는 것이다. 패딩 점퍼, 이불, 베개 충전재로 쓰이는 깃털은 오리나 거위의 가슴털을 마구 뜯어내는 방식으로 채취된다.

흔히 '앙고라'라고 불리워 그것이 토끼의 털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은 앙고라 털도 살아있는 토끼의 털을 잡아 뜯어서 채취된다.

죽이지 않고 있는 산 채로 뽑으면 털을 여러 번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 생산성이 중시되는 오늘날의 시스템에서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라쿤(너구리) 모피 채취 과정에는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조차 없다. 평생 비좁고 더러운 사육장에 갇혀 있던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죽음이다. 죽은 후에는 가죽이 경직되어 벗기기가 어렵고, 털의 윤기가 사라져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양털도 잔인하기는 마찬가지다. 양의 피부 주름 사이에 번식하는 구더기에 의한 감염을 줄이기 위해 어린 양의 피부와 살점을 마취도 없이 도려내는 '뮬레징'은 양모의 생산성과 질을 높이기 위해 자행되는 학대이다.

가방, 지갑 등에 쓰이는 뱀 가죽은 또 어떤가. 뱀에게 물을 먹여 부풀린 후 가죽을 벗겨내 는데, 껍질을 벗기는 동안에도 뱀은 살아있다. 그 후 쇼크와 탈수로 서서히 죽는다.

전 세계 모피의 80%는 '공장식' 모피 농장에서 생산된다. 대량생산과 소비, 이윤 극대화의 논리에 따라 가동되는 공장식 농장에서 동물의 불편과 고통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곳에서 동물은 '모피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싼 값에 많이 소비하려면 인도적인 사육과 도살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노동과 비용을 요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예로부터 동물의 털가죽을 이용해왔다. 그러나 과거의 모피 소비가 동물의 고기를 취하고 남은 털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는 "생존을 위한" 소비였다면, 오늘날의 소비는 "과도하고 불필요한" 소비이다.

따뜻하면서도 가벼운 코트에 대한 욕망 때문에 토끼, 밍크와 같이 작은 동물이 대규모로 학살된다. 토끼털 코트 한 벌을 위해 토끼 30마리, 밍크 코트 한 벌을 위해 밍크 55마리, 친칠라 코트 한 벌을 위해 친칠라 고양이 100마리가 죽는다. 

이런 불편한 진실이 알려지면서 비윤리적인 패션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스웨덴의 유명 브랜드는 "앙고라 제품 생산 중단"을 선언했다. 영국, 크루아티아,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에서는 모피 농장 운영이 금지되었다.

먹는 것에서 입는 것으로... '비건패션'을 해야하는 이유

현대인은 모피 없이도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모피 없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견디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을 위한 대안으로 '비건패션'이 있다.

'비건패션'은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비거니즘을 의류에 적용한 것으로,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사용하지 않는 패션이다. 대표적인 비건패션 소재인 인조모피는 진짜모피와 기능, 디자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세탁 등 관리가 편하고 색감, 디자인의 제약이 적으며, 훨씬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이전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진짜모피와 쉽게 구별되지 않는 인조모피가 진짜모피 소비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관련기사 : '모피 반대' 나체 시위, 그들을 이해합니다).     

"나 하나의 실천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효리가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나라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듯이, 나 자신부터  동물소비를 늘리지 않으면 그만큼 고통을 막을 수 있다. 따로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나의 선택만으로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렇게 따지면 비윤리적인 일이 어디 한 둘이냐?"라며 기존의 소비습관을 정당화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할 수 있는 일까지 포기하는 것은 나의 편의를 위한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고통을 전부 없앨 수 없으니 모두 누리자"는 생각보다 "불필요한 고통은 줄이자"는 생각이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 것이다.    

"동물이 사람보다 먼저라는 말이 아니다. 어디선가 모르게 이런 동물들이 학대 받고 무분별하게 학살당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컬투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불필요한 학대는 줄여야 한다는 생각은 인간 사회에도 중요한 진실이다. 희생되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이기도 하다.

'사랑'이나 '더불어 살기'의 중요성을 가르치면서 정작 본인은 학대를 거두지 않는 어른들로부터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컬투의 말대로 "마음의 옷을 잘 입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고 지각 있는 소비를 촉구한 <컬투의 베란다쇼>에 박수를 보낸다.


태그:#컬투의 베란다쇼 , #모피, #불편한 , #진실
댓글1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