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피운 배우자, 그에게 복수하면서 자신도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 그 상대였으면서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그의 가엾은 배우자, 그리고 아들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비이성적 시어머니. SBS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그 내용을 얼핏 듣게 된다면, 이 드라마는 흔히 얘기하는 막장의 삼박자를 다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흔한 불륜 드라마의 내용과 별 다를 바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냥 외면해버리기에는 뭔가 아쉬운 것이 남는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 모든 것들을 매우 직설적이지만 설득력 있는 대사와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문제 다루는 드라마, 정공법이라 더 설득적


아무리 열렬한 사랑이었다 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점차 그 감정이 옅어진다고 한다. 씁쓸한 일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두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과 무게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결국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쪽이 더욱 심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관계에서 약자가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송미경(김지수 분)이 바로 그러하다. 그는 사랑하는 남편 유재학(지진희 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았고, 그가 불륜을 저질렀음에도 가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그것이 수면 위로 드러난 후에도 남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시어머니의 적반하장의 질책을 듣게 된다. 

송미경의 비참함은 남편의 불륜상대였던 나은진(한혜진 분)의 회복된 결혼생활을 지켜보면서 증폭된다. 정작 피해자인 자신의 처지는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한창 회복 중이며 아직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나은진과 김성수(이상우 분)의 관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아내의 행동에서 수상함을 느낀 김성수의 뒷조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복잡하고 머리가 어지럽다. 결코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그러나 현실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기에 좀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에둘러 말했으면 싶기도 하다. 그러나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 모든 것들을 돌려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공법으로 치고 나오는데, 그것이 아프게 느껴지면서도 뭔가 따뜻하고, 지켜보기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뭔가 현실적인 대안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괜찮은' 드라마의 힘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만드는 드라마의 힘


각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지극정성으로 집안을 돌보는 며느리 송미경을 향해 극악무도한 말을 예사로 퍼붓는 시어머니 추 여사(박정수 분)의 입장을 지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각자 처해진 입장에 따라 때로 매우 이기적이 되기도 하는 것이 얄팍한 우리네 심성이 아니던가.

그러나 자신의 입장에 선 인물들에만 철저히 감정이입하는 것, 그것은 결코 어른스러운 일이 아니며, 권장할만한 일 또한 아니다.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울부짖으며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달라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돌아보게 만드는 것, 우리네 드라마들이 그것을 설득하고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드라마들에는 애초에 욕받이 캐릭터가 있는데, 그들은 공공의 적이 되곤 한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의 행복은 철저히 당하기만 하던 선한 캐릭터의 차지가 된다. 그러나 또 어떤 드라마들은 다층적인 인물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선과 악을 극명히 나누지 않는 데서 출발하며, 그것이 결코 이분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한다. 괜찮은 드라마와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분명 마구 욕을 퍼붓고 싶은 극단적 캐릭터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막가파 인물들이라지만, 이 드라마에는 그 이유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미 굳어져 불가능해 보이는 인간 됨됨이나 마음 씀씀이, 그것이 노력 여하에 따라 조금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따뜻한 말 한마디>는 바로 그것을 전한다.

김성수는 자신의 불륜 사실에 뒤돌아섰던 아내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지극정성을 다한다.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 그는 아내에게 "인간이 어디 쉽게 변하니? 그래도 난 변하고 있잖아"라고 말한다. 이 대사, 바로 <따뜻한 말 한마디>의 백미다. 그것이 실현불가능한 판타지면 어떠랴. 바보상자가 비소로 철학적 공간이 되는 순간을 우리는 그저 즐기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