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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진당은 입향조인 류종혜가 처음 터를 잡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겸암 류운룡이 생전에 지은 집으로 흔치 않은 조선 전기의 주택이다.
 양진당은 입향조인 류종혜가 처음 터를 잡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겸암 류운룡이 생전에 지은 집으로 흔치 않은 조선 전기의 주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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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이 즐비한 안동 하회마을에서 두드러진 건축물을 꼽으라면 충효당과 양진당일 것이다. 하회마을 중앙의 너른 거리마당에서 마을길을 사이에 두고 두 고택은 나란히 붙어 있어 하회마을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꼭 들러보게 마련이다. 양진당은 풍산 류씨의 대종택으로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1539~1601)의 종가이고,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종가이다. 각기 보물 제306호와 제414호로 지정돼 있다.

이른 아침 마을 산책을 나갔을 때만 해도 양진당의 솟을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렸었는데, 아침을 먹은 뒤에 부용대에 올랐다가 느지막이 다시 들렀을 때는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양진당이라는 당호는 겸암의 6대손인 류영의 아호에서 비롯됐다. 사랑채에 걸린 '입암고택'이라는 편액은 류성룡과 류운룡의 아버지 입암 류중영의 고택이라는 뜻으로 조선의 명필 석봉 한호의 글씨이다.
 양진당이라는 당호는 겸암의 6대손인 류영의 아호에서 비롯됐다. 사랑채에 걸린 '입암고택'이라는 편액은 류성룡과 류운룡의 아버지 입암 류중영의 고택이라는 뜻으로 조선의 명필 석봉 한호의 글씨이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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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이 두 채 있는 '입암고택' 양진당 땅에서 우뚝 솟은 대문채는 하늘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규모 있는 집답게 어느 것 하나 거침이 없다. 땅과 하늘 사이에 어떤 군더더기도 없이 오래 전 인간이 세운 건축물만이 그 경계를 메우고 있었다.

땅과 하늘, 그 사이 인간의 공간. 그러한 여백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더욱 확연해진다. 드넓은 마당 끝으로 막돌로 꽤 높이 쌓은 기단 위에 우람하게 서 있는 사랑채는 '입암고택'이라고 씌어 있는 편액이 선명하다. 류성룡과 류운룡의 아버지 입암 류중영의 고택이라는 뜻으로 조선의 명필 석봉 한호의 글씨이다. 양진당이라는 당호는 겸암의 6대손인 류영의 아호에서 비롯됐다.

왼쪽으로는 안채와 이어지고 오른쪽으론 담장을 둘렀다. 사랑채 옆으로 난 작은 일각문이 안으로 닫힌 공간에 잠시 숨통을 틔어준다. 이 협문을 나서면 넓은 후원과 함께 사당으로 이어진다. 양진당에는 특이하게도 사당이 두 채 있다. 류중영(1515-1573)과 그의 아들 류운룡을 불천위로 모시는데, 부자를 한마당에 모실 수 없다 하여 류운룡을 별묘를 모셨기 때문이다.

 양쪽으로 낸 층계로만 사랑채를 오를 수 있는데, 계자난간의 동,서 두 군데를 뚫어 출입을 하게 한 점도 이채롭다.
 양쪽으로 낸 층계로만 사랑채를 오를 수 있는데, 계자난간의 동,서 두 군데를 뚫어 출입을 하게 한 점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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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택다운 권위가 있는 사랑채의 중후함

고택 마당에서는 외부의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빈 공간인 넓은 마당의 끝으로 북쪽은 사랑채가, 사랑마당과 경계를 짓고 있는 서쪽은 안채의 동쪽 벽면이, 건물이 없는 동쪽은 낮은 담장이, 남쪽은 대문채가 마당을 가운데로 빙 둘러싸고 있다. 사방이 닫혀 있음에도 그 너머로 푸른 하늘이 넘나들고 있어 답답하기보다는 외려 시원스러운 눈 맛이다. 마당 한편의 작은 화단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공간에 쉼표를 준다.

'입암고택'이라고 적힌 사랑채는 높은 기단 위에 자리하고 있다. 우람한 집의 자태만큼이나 현판의 글씨 또한 힘이 있다. 굵직한 기둥에다 4분합 여닫이문을 둔 앞면 4칸, 옆면 2칸의 사랑채는 쪽마루를 두르고 계자난간을 내어 위엄을 갖추고 권위를 드러냈다. 서쪽 2칸은 온돌로 방을 두었고 나머지 6칸은 대종택답게 너른 대청을 두었다. 쉽게 근접할 수 없는 중후한 기운이 느껴진다.

앞쪽의 문과 마루와 방 사이의 장지문을 들어 올리면 사랑채는 공간이 넓게 트여 한 공간이 된다. 예전 문중이 모여 대소사를 의논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양쪽으로 낸 층계로만 사랑채를 오를 수 있는데, 계자난간의 동·서 두 군데를 뚫어 출입을 하게 한 점도 이채롭다.

 서쪽의 안채는 사랑채와 내부공간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두 건물 사이에 있는 외닫이 판문만 열면 하나로 이어지는 연결된 공간이다.
 서쪽의 안채는 사랑채와 내부공간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두 건물 사이에 있는 외닫이 판문만 열면 하나로 이어지는 연결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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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채는 전형적인 ㅁ자형으로 대문채 옆 중문을 통해 들어간다. 안채는 앞면 7칸, 옆면 3칸으로 규모가 크다.
 안채는 전형적인 ㅁ자형으로 대문채 옆 중문을 통해 들어간다. 안채는 앞면 7칸, 옆면 3칸으로 규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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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 있는 굴뚝과 여자를 배려한 일각문

서쪽의 안채는 사랑채와 내부공간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바깥에서 보면 서로가 분리된 것처럼 보이나 실은 사랑채와 안채의 대청마루를 같은 높이로 해서 두 건물 사이에 있는 외닫이 판문만 열면 하나로 이어지는 연결된 공간이다. 이 판문은 주로 제사를 지낼 때 열린다고 한다. 일종의 중사랑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굳이 중문을 통하지 않고도 사랑채와 통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안채는 전형적인 ㅁ자형으로 대문채 옆 중문을 통해 들어간다. 안채는 앞면 7칸, 옆면 3칸으로 규모가 크다. 사랑마당으로 모습을 드러낸 안채의 동쪽 벽면은 각기 다른 형태의 창문과 문으로 멋스럽다. 채광과 환기뿐 아니라 안채에서 바깥의 동정을 살필 수 있도록 만든 작은 창도 보인다. 창 좌우로는 여닫을 수 있는 문이 둘 달려 있고 그 아래로 각기 섬돌을 놓아 안채와 사랑채를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안채의 벽면에는 안채로 통하는 문 옆으로 자연스런 경사를 이용해 층계를 만들었다. 마당에서는 곧장 오를 수 없도록 기단을 높이 쌓았고, 다만 중문 옆으로 난 비스듬한 층계로 조심스럽게 오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외부인들이 이용하기보다는 사랑채의 식구들이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랑마당으로 모습을 드러낸 안채의 동쪽 벽면은 각기 다른 형태의 창문과 문으로 멋스럽다.
 사랑마당으로 모습을 드러낸 안채의 동쪽 벽면은 각기 다른 형태의 창문과 문으로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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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단의 돌 틈 사이 검게 그을린 부분은 굴뚝이다. 기단을 쌓은 돌과 돌 사이의 작은 틈으로 굴뚝을 만든 재치가 돋보인다.
 기단의 돌 틈 사이 검게 그을린 부분은 굴뚝이다. 기단을 쌓은 돌과 돌 사이의 작은 틈으로 굴뚝을 만든 재치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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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의 돌 틈 사이 검게 그을린 부분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굴뚝이다. 사랑채의 경관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굴뚝을 낸 것이다. 기단을 쌓은 돌과 돌 사이의 작은 틈으로 굴뚝을 만든 재치가 돋보인다. 행랑채는 마구간과 광, 하인들이 거주하던 방이 있다. 이 또한 바깥에서도 출입할 수 있게 했다.

양진당에서 특이한 점은 사랑채의 솟을대문을 통하지 않고 바깥마당 왼쪽으로 안채로 통하는 일각문을 별도로 내었다는 것이다. 일단 행랑채를 들어선 후 행랑채와 사랑채 사이에 안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낸 충효당과는 달리 양진당에서는 바깥에서 곧장 안채로 이르는 문을 냈다는 점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사랑채 앞을 거쳐 안채로 향하는 옛 가옥과는 다른 동선을 취하고 있는 양진당은 아녀자들이 사랑채를 거치지 않고 곧장 안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양진당에서 특이한 점은 사랑채의 솟을대문을 통하지 않고 바깥마당 왼쪽으로 안채로 통하는 일각문을 별도로 내었다는 것이다.
 양진당에서 특이한 점은 사랑채의 솟을대문을 통하지 않고 바깥마당 왼쪽으로 안채로 통하는 일각문을 별도로 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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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은 입향조인 류종혜가 처음 터를 잡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겸암 류운룡이 생전에 지은 집으로 흔치 않은 조선 전기의 주택이다. 그래서일까. 하회마을에서는 보기 드물게 정남향을 하고 있는 집이다. 양진당은 연화부수형인 하회마을에서 꽃술에 해당하는 자리라 하여 가장 명당으로 꼽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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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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