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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A(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 이하 피사)라는 평가가 세상에 등장한 지도 어언 십년이 넘었다. 2012년 피사 결과가 발표된 지난 6일, 기자는 한국과 핀란드의 주요 일간지에서 피사 결과를 보도하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두 나라 언론 모두 초미의 관심사는 '우리가 몇 등을 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국 언론들은 한국 학생들이 성적은 최상위권이나 학습에 대한 흥미도는 최하위권임을 일제히 보도했다.

어떤 언론사는 핀란드의 성적 추락까지 아주 친절하게 보도했다. 핀란드의 대표 일간지인 <헬싱키사노맛>과 영자신문인 <헬싱키타임스> 역시 핀란드의 성적 추락을 전면에 내세워 보도했다. 피사 공식 발표 후 열흘이 지난 지금, <헬싱키사노맛>은 후속 기사들을 내보내며 이번 피사 결과에서 주목해야 하는 결과들을 보도하고 있다.

피사가 말한 것.... 한국 학생들은 행복하지 않다

교실 풍경.
 교실 풍경.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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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언론사들이 피사에 대해 보도하는 근거자료는 바로 OECD가 공개한 피사 결과 보고서이다. 피사가 OECD 회원국과 비회원 참가국을 합친 총 65개국의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학력 평가다 보니 자료가 실로 방대하다. 이번 피사 결과 보고서는 개론 성격의 요약 보고서 한 권(PISA 2012 results in focus)과 읽기,수학,과학의 세 영역에 걸쳐 실시된 본시험 분석, 형평성을 통한 수월성, 학생들의 정의적 영역에 해당하는 배경 설문조사 분석, 그리고 성공적인 학교교육을 위한 정책 제언에 해당하는 총 네 권의 각론 보고서로 이루어져 있다.

32쪽 분량의 개론 보고서는 기자처럼 통계를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게 자료들을 표와 그래프로 변환해 놓았다. 그 중 하나로, 우수 학생만이 아닌 모든 학생들이 골고루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했을 때(형평성을 통한), 전체적인 학업 성취도가 향상된다는(수월성 향상) 분석처럼, 의미와 흥미 둘 다를 충족시켜줄 결과들이 많이 담겨있다. 나는 정의적 영역에 해당하는 학생 설문조사를 분석한 각론 보고서 제3권(volume 3)원자료(PISA 2012 database)를 활용하여 한국, 핀란드, 덴마크 세 나라 학생들의 학교 생활의 질과 관련된 자료를 간략하게 분석해 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나는 학교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라는 학생 설문 문항이다. 이에 대해 덴마크는 86%, 핀란드는 67%, 한국은 오직 60%의 학생들만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매우 동의한다'와 '동의한다'에 응답한 학생 수를 비율로 계산, OECD 평균:80%).

다음으로, '나는 학교 생활에 만족한다'라는 문항에서 덴마크는 79%, 핀란드는 72%, 한국은 65%의 학생들이 그렇다고 답했다(OECD 평균:77%). 이 두 문항에서 한국은 전체 참가국 중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예상했지만 결과가 어둡다.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을 쉽게 사귈 수 있다'라는 문항에서도 한국에 비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핀란드가 84%, 덴마크가 82%의 긍정적인 응답을 보인 반면, 한국은 78.6%로 전체 참가국 중 최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OECD 평균:85.5%).

이 정도의 양적 자료를 가지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학생들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핀란드 학생들 역시, 다시 말해 근 십 년간 피사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달려온 이 두 나라의 열 다섯 살 짜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별로 행복하지도 않고 학교에 대한 만족감도 다른 나라의 학생들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학생들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정의적 영역에 해당하는 여러 문항에서 65개 참가국 중 최하위권에 머무름으로써 학력과 행복감(만족감)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핀란드 학생들 역시 학교생활 만족도가 낮다는 것이 핀란드 국내 연구자료를 통해서도 몇 차례 밝혀진 바 있는데,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지적되어 온 것이 교사-학생 관계이다. 다른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핀란드 교사들이 권위적인 성향을 띠고 있어 학생들이 교사와의 관계 형성에 다소 어려움을 느껴 왔으며, 역시 교사 주도형 수업방식이 보편적(여기에 부진 학생들을 위한 개별 지도가 따라붙는 형식)으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소개하고 싶은 결과가 몇 가지 더 있긴 하지만 지면 제약이 있으니 이번 피사 결과 보고서가 얼마나 유용한 자료들을 담고 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

피사가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은 것

핀란드 타흐티엔종합학교 학생들 모습.
 핀란드 타흐티엔종합학교 학생들 모습.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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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피사의 시행 기관인 OECD는 이 결과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피사 결과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OECD의 홈페이지 곳곳에서 피사 관련 소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피사의 총 책임자인 안드레아 슐라이허(Andreas Schleicher)는 '피사 결과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동아시아의 강세, 특히 상하이 중국의 탁월한 성취를 언급했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중국 학생들은 단순 암기 실력과 시험 대비 훈련 때문에 성적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결과에서 중국 학생들이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성취는 지식 응용 및 추론 능력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이번 피사에서 상위권에 속한 나라(이를테면 동아시아)의 학생들이 보여준 탁월한 결과는 물려받은 지적 재능보다는 '열공(hard work)'이 바로 그 열쇠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번 피사 결과는 각국이 우수한 결과를 보여준 나라들의 교육 시스템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피사 연구진 역시 보고서(volume 3)에서 동아시아의 우수한 성취를 언급하면서,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학생들의 지각률과 결석률이 낮으며 사회가 교육과 학업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 나라들은 유교 전통을 바탕으로 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고 기술한다(p.184). 또한, 일반적으로 부모들이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 기대치를 높게 가질 때 그것이 자녀에게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데, 이를테면 자녀가 대졸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부모를 둔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끈기와 자아 효능감이 그렇지 않은 부모를 둔 학생들의 그것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분석을 내리고 있다(volume 3 p.186).

하지만, 동아시아 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과 경쟁심리가 사회적으로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번 피사 결과는 앞으로 북유럽의 스칸디맘· 대디와 동아시아의 타이거 맘 중 누구의 교육철학을 지지하는 쪽으로 활용이 될까. 교육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되는 대목이다.

초국가 기관인 OECD가 각국의 교육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피사 결과는 여러 나라들이 자국의 교육 정책을 개편하거나 유지하는데 근거를 제공하는 강력한 장치로 자리매김한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이 학생, 체험 중심을 강조한 여유('유도리') 교육의 기조를 폐기할 때에도, 핀란드가 종합학교모델을 근간으로 하는 형평성 중심의 의무교육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도 피사 결과가 결정적인 근거(혹은 핑계)로 작용했다. 이 지점에서 바로 '교육'은 '정치적인 교육'이 된다.

피사와 모든 표준화 시험의 태생적 한계

유튜브와 페이스북 접속을 국가가 차단하는 중국에서 과연 상하이시의 표본 학교 선정은 공정하게 이루어졌는지, 상당수의 동아시아 학생들이 경험하는 사교육과 부모들의 교육 경쟁열, 특히 선행 학습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맥락이 열심히 공부(hard work)한다는 긍정적인 어휘로 묘사될 수 있는 것인지, 교육이라는 것이 경제적 효과 및 가치로 치환될 때에만 그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론적 지식과 문제해결 및 응용으로서의 지식 이외에 실천적(윤리적) 지식 또한 젊은 세대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대해 피사 보고서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더구나, 각기 다른 인간, 그것도 전세계 청소년들의 지적 성장과 발달을 표준화된 시험문제로 측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관련 기사 : 인간의 모든 능력을 측정할 수 있을까?)에 대해,  그리고 표준화된 측정이 비교와 서열을 불러오는 지금의 사태가 각국의 교육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 OECD가 내놓은 입장을 아직 찾아볼 수 없다. 물론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글자 그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를 뜻하는 OECD가 주관하는 표준화 평가인 피사가 가진 태생적 한계는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OECD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는 다른 기사 역시 아시아 국가들이 피사 성적의 상위권을 차지하였음을 강조함과 동시에 글로벌 경제 시대에 경쟁력은 지식의 응용에서 비롯된다며 문제해결기술, 즉 기술로서의 지식에 무게를 싣는 모양새다. 피사 보고서 역시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즉, 과학이나 수학영역의 지식이 갖는 중요성을 취업과 관련하여 설명한다(Volume 3, p.187).

미래를 예측하긴 힘들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라면 OECD는 앞으로 동아시아 국가의 교육 모델에 상당한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또, 이미 피사로 인해 읽기,수학,과학 성취 수준을 놓고 국가 간 경쟁 구도가 조성된 상황에서, 그리고 이미 세계적으로 과학기술 분야가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비해 압도적인 지원과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쏠림 현상을 더욱 부추김과 동시에 교육과 지식의 존재 목적을 경제적 가치 쪽으로 몰아가는 게 아닌지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더불어, 스마트 러닝, 문제해결 기술, ICT, 읽기, 수학, 과학이 절묘하게 결합된 (지식 경제의 부흥과 직결되는) 온라인 학습 및 교수법이 각광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안 그래도 스마트폰 없이는 잠시도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학생들이 현실 속에서 친구들, 선생님과 교류, 협력, 공감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기회가 줄어들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학교교육과 지식의 존재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피사 2012가 엄청난 자료와 결과 분석을 내놓은 채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다.

덧붙이는 글 | 윤정현 기자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핀란드 투르크대학 교육학 박사과정에 재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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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자료>

OECD (2013), Asian countries top OECD’s latest PISA survey on state of global education

Schleicher, A. (2013), Lessons from PISA outcomes, (http://www.oecdobserver.org/news/fullstory.php/aid/4239/Lessons_from_PISA_outcomes.html)

Shimazu, A. (2011). Analysis of educational transfer and policy changes after PISA in Japan and Finland. University of Turku, Finland



태그:#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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