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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자식이 커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하지만 이와 비례해 아이가 커 갈수록 부모의 마음은 더 무거워진다. 학원을 보내자니 스스로 학습이 안 될 것 같아 찜찜하고, 안 보내자니 왠지 두렵고….

사교육은 대한민국 모든 부모의 고민 아니겠는가. 우선 성적이 좋아야만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가장 큰 문제다. 이런 불안 뒤에는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만의 다른 모습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을까. 

아들은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보습학원을 한 번도 다니지 않았다. 기껏해야 피아노와 미술이 전부였다. 아내는 아들의 학력 신장이 학교 수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불안해 했지만, 사교육은 어디까지나 '선택'일 뿐이라며 위안을 얻었다. 역시 판단은 주효했다. 보습학원 한 번 안 다녀본 아들은 6년 동안 상위권을 지켰다.

보습학원 한 번 안 다녀본 아들, 6년간 상위권 지켰지만...

출신이나 실력검증이 되지 않았지만 부모들로서는 사교육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사진은 아파트 곳곳에 나붙은 과외 광고지.
 출신이나 실력검증이 되지 않았지만 부모들로서는 사교육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사진은 아파트 곳곳에 나붙은 과외 광고지.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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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학원을 다니며 이룩한 결과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아들의 초등학교 성적에 아내는 교육부장관상을 받은 것보다 더 우쭐해 하며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건 다름 아닌 엄마의 힘이었으니까. 직장 일과 집안일, 아이 선생님으로 1인 3역을 하느라 고됐지만 집에서도 충분히 사교육을 능가할 수 있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예측불허 '엄마표'의 행운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거기까지였다.

수험생이라는 말은 고3에게만 쓰이는 말인 줄 알았다. 역시 아들이 중학생이 된 지난해부터 수험생은 수험을 준비하는 모든 예비학생이라는 뜻임을 실감하고도 남았다. 중학교 진학 후 난이도는 물론 공부할 과목이 많아지니 도저히 '엄마표'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따로 아들의 공부까지 미리 해서라도, 차근차근 지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지난해 중학교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시험 D-2일, 이때쯤이면 시험 결과는 이미 예측되는 상황이지만 마지막까지 고삐의 끈을 늦출 순 없었다. 아들은 엄마와 함께 요점 정리를 놓고 밤 늦게 씨름을 하지만 문답식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시간은 자정이 가까워오는데도 온통 짜증 섞인 말투로 중얼거린다.

좋은 말로 타이르던 엄마가 답답해서 혼을 내는가 싶더니, 아들은 책상을 '탕탕' 쳐가며 그만하면 안 되냐고 알아서 할 거라며 맞선다. 사교육 타도를 외치던 엄마는 서서히 아들의 눈에 '자식 잡는 엄마표'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학생된 아들, '자식 잡는 엄마'된 아내

D-1일 밤, 우여곡절 끝에 전 과목 예상문제를 모두 풀고 이제 마지막 관문만 남았다. 정답지를 보며 답만 맞추면 되는 것이었다. 아들은 답안지를 보는 둥 마는 둥 빨간 펜으로 잽싸게 채점을 해댄다. 그런데 몇 문제를 지났을까. 기초문제를 넘어 심화문제에 들어서자 사선이 한두 개씩 늘기 시작한다. 곁눈질로 틀린 문제 개수를 하나하나 흘겨보던 엄마는 점점 흥분한다.

이쯤 되면 '엄마표'는 '상처유발자'이고, '엄마'는 '사랑'의 반대말이다. 중학생 아들의 반항에 아내가 감정적으로 대처하게 될 때가 많아지니, 아들의 학습을 통제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아니, 아내는 이미 통제 불능 상황이다.

거실에서 안 보는 듯 지켜보던 내가 "SKY 보낼 것도 아닌데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냐?"라며 살짝 끼어드니 이번에는 여지없이 나에게 화살이 돌아온다. 평소에 아들 공부에 신경도 안 쓰면서 그런 소리 내뱉지 말란다. 으레 그럼 당신이 직접 가르쳐 보라는 잔소리가 딸려 나온다.

결국 아들은 2학년에 올라가더니 골리앗과 같은 학업의 장벽들을 넘어설 수 없었다. 학력 위주의 이 살벌한 사회에서 아내는 아들이 학원 한 번 안 다녀본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었건만…. 급기야 1학기 성적은 참담했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엄마표'는 이제 아득한 추억일 뿐이었다.

2학년이 된 아들은 엄마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며 점점 공부에 싫증을 내더니 가족들과 사이까지 나빠지며 신경전이 잦아졌다. 아들은 휴대폰 압수, TV 시청 중지, 컴퓨터 사용 금지, 외출 금지, 용돈 금지 등의 가혹한 형벌을 이해 못할 엄마의 독재라 여길 뿐이었다. 이미 엄마는 아들 못 잡아 안달난 존재로 비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자 아내의 고충과 모든 짐을 포함한 모든 화살이 다 내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빠라는 사람이 말이야, 만날 바쁘다는 핑계로 방관하는 게 아빠야? 아빠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좀 깨닫길 바라…. 훈육과 병행해서 아들 공부를 적절하게 이끌어주면 얼마나 좋아!"

"너 진짜 모르겠어?" - "저도 짜증 나 죽겠어요" 

아내의 이 한 마디, 그저 수수방관했던 나에게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내가 양심 있는 이 시대의 아빠라면, 그저 남의 일이라 무책임하게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2학기에 들어서면서 위기를 겪고 있는 아들의 학업 문제 해결에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기말고사를 앞둔 10월부터 일단 영어를 같이 공부하기로 했다.

이공계 출신의 변변치 않은 영어 실력으로 아들의 우수한 성적을 기대하기엔 너무나 뻔한 결과가 예상되니 후환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미 호언장담을 한 상황이라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는 돌팔매를 맞을 각오로 그 선봉에 나서야 하는 순간이다. 일단 평일 오후에 잡힌 약속은 최대한 주말로 늦췄다. 두 달 동안 모든 사생활을 포기한 채 아들과 함께 영어 공부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아빠표'의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두 달 동안 아빠가 중학생 아들을 가르친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은 선생님도 아닌 아빠의 지도에 반항하기 일쑤였다. 처음에야 교과서 위주의 공부보다는 스스로 동기 부여하는 능력을 키우고 함께 고민하며 습관을 잡아주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그건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단어실력은 물론 기초적인 문법부터 빈약했다.

"너 진짜 모르겠어? 이건 주격 관계대명사잖아?"
"…."
"아빠가 이 문장 외우라고 한 것 같은데…. 현재완료에 대해 수업시간에도 충분히 들었을 텐데 똑같은 문제를 몇 번을 풀어야 알아듣겠니?"
"저도 짜증 나 죽겠어요."
"뭐?"
"…."

영원히 착하고 말 잘 들을 것 같던 아들, 이제는 윽박이라도 질렀다간 반항의 강도만 더 높이게 될까 무섭다. '자식 교육, 마음 공부가 먼저다'라고 외친 퇴계 이황 선생의 말씀은 역시 이론에 그치지 않는 진리였다. 이러니 원칙적으로 부모가 모든 것을 가르치며 따르라는 강요는 애초부터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역시 며칠 전 치른 기말고사에서 아빠의 노력은 그저 그런 평범한 수준만 확인하고 말았다. 나름대로 시험 패턴을 분석해 제시했지만, 아들에게서 노력만큼의 결과를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무리였다.

결국 영어 성적을 받고 보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시험지를 훑어 보니 좀 어려웠긴 해도 모두 한 번쯤은 짚어봤던 문제였다. 영어 교과서를 분석하고 문제를 수백 문제나 풀지 않았던가. 아들의 말로는 들으면 이해가 되는 것 같다가도 결국에는 헷갈렸단다. 아,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란 말인가. 이제 나도 다른 부모들처럼 사교육의 노예로 동참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번 겨울, 한 번 더 도전해 보리라

기말고사 영어시험지
 기말고사 영어시험지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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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부모들을 성적의 근심으로부터 해방 시켜 주는 확실한 처방은 사교육일까? 누가 뭐라 해도 사교육에 의존하는 해법만이 아이를 우등생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 학부모가 그 주범이다.

특히 지역 소도시에서는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대도시 아이들에게 뒤처진다는 상대적 불안 심리도 한 몫을 한다.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내 아이만 뒤처진다는 불안감으로 앞 다투어 선행학습을 시키는 부모들이 두려운 건 나 또한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겨울방학에 아들과 함께 '아빠표' 영어 공부에 한 번 더 도전해 보리라.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하지 않았던가. 오늘 나는 다시 싸움을 시작한다. 사교육보다 수준이 떨어진다 할지라도, 아직까지는 사교육의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는 이유다.

모두 100점을 맞을 수는 있지만, 모두 1등이 될 수는 없다. 결코 이번 도전을 통해 어린 중학생 아들에게 등수 놀이를 강요하지 않는 아빠가 되어 보리라. 원초적 반응으로 제압해 버리는 권력자가 아닌 이성적으로 진심으로 다가갈 때 공부하는 방법을 반드시 터득하리라 기대해 본다.

아들아, 성적 안 나오는 아들 바라보는 부모 근심만큼 너는 또 얼마나 힘들었니?


태그:#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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