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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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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4일 '신앙의 해' 폐막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급한 '신앙권고문(Esortazione Apostolica)'인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이 26일 발간된 후 각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교황이 작성한 '복음의 기쁨' 원문은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로 돼 있으며, 5개의 큰 주제를 부연 설명하는 288개 조문들이 220여 페이지에 빼곡하게 적힌 방대한 양의 권고문이다. 교황의 신앙권고문은 교황이 작성하는 가장 권위있는 문서 중 하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앙권고문을 통해 "교회가 손에 흙을 묻히는 것을 주저해선 안 된다"며 현실 참여를 강조했으며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라고 비판해 반향을 일으켰다.

한편 페이스북이 1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에 전 세계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한 주제는 '교황 프란치스코'로 나타났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권고문이 던진 질문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교황의 '신앙의 빛(Lumen Fidei)'에 대해 설명한 바 있는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교구 신학원의 루치오 칠리아(L.Cilia) 총장신부를 지난 6일 다시 만나 교황 프란치스코 신앙권고문의 의미를 짚어봤다. 칠리아 총장신부는 바티칸을 빈번히 방문해 교황을 접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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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베네토교구 베네치아는 '마르코(Marco.마가)' 성인의 첫 복음 사역지였던 아퀼레이아(Acquileia)가 있는 곳이며, '죠반니 빠올로1세'(GiovanniPaolo I, 본명/Albino Luciani)를 배출한 곳이다. 죠반니 빠올로1세는 교황 취임 후 33일만에 과로로 서거했으며,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그는 베네치아 주교 시절 노동자,농민들 편에 서서 베네치아 귀족 및 권력자들과 맞섰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혹자는 1980년대 이탈리아 글라디오 반공사건의 배후세력으로 드러났던 귀족들이 교황의 죽음과도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기도 한다.

그후 베네치아에는 차기교황이 유력했던 안젤로 스콜라(A.Scola) 추기경이 오랜기간 주교로 임하기도 했다. 베네딕토16세 전 교황의 제자인 스콜라 추기경 역시, 임금체불 노동자들과 정기적 만남을 갖는 등 지역의 사회·환경문제에 직접적인 관심 표명을 해왔다. 이렇듯 베네토 교구는 성서를 삶에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실천신앙'을 그 역사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기자가 만난 칠리아 총장신부는 인터뷰 직전 바티칸에서 막 돌아온 상태였다. 총장 신부의 대부이자 멘토는 서거한 전 교황 '죠반니 빠올로1세'다. (본 기사는 천주교 용어가 아닌 개신교 및 비신자들까지도 이해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어휘와 단어를 사용했다.이것은 바티칸을 비롯한 베네토 교구 고위 성직자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누구도 예외 없이포용하고자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이기도 하다.)

- 또다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반적으로 역대교황들은 권고문을 작성하기 전에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에서 초안을 잡은 내용을 초석으로 삼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 6월에 그런 초석이나 건의안들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직접 권고무을 작성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교황이 그때부터 내심 작정한 뜻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 꼭 그렇진 않습니다. 2012년 10월 7일부터 28일까지 '새로운 복음화, 세계복음사역'을 주제로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가 있었고, 이곳의 논의 결과를 최대한 수용했습니다. 다만, 교황은 그 건의안들을 하나하나 다루고 언급한 게 아니라 본인의 사제경험과 의견들을 폭넓게 다루겠다고 밝히기는 했습니다. 그 덕분에 이번 권고문에는 상당히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행동강령 문구들이 담기게 된 것입니다.

교황 자신이 각 나라, 각 지역에 대한 건의에 모두 일일히 답을 해줄 수는 없습니다. 이는 각 나라의 특수성과 지역현안 등의 고유성에 기인하며, 각 지역의 사안들은 주교들에게 위임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질 우상주의 비판, 높게 평가한다"

전임 교황인 베네딕스 16세와 베네토교구 신학원 루치오 칠리아 총장신부가 다른 신부들과 함께 찍은 사진.  베네딕스 16세(가운데) 오른쪽 옆이 인터뷰를 진행한 루치오 칠리아 총장인부.
 전임 교황인 베네딕스 16세와 베네토교구 신학원 루치오 칠리아 총장신부가 다른 신부들과 함께 찍은 사진. 베네딕스 16세(가운데) 오른쪽 옆이 인터뷰를 진행한 루치오 칠리아 총장인부.
ⓒ 신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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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국가에 10개의 교구가 있다면 그 각 교구는 자신의 고유성과 자율권이 있기 때문에 상대 다른교구에 대해 압력이나 비판을 가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굳이 문제가 되는 사안이 있다면 10개 교구의 주교들이 모두 모여 전체회의를 열고 거기서 나온 의견을 특정교구에 전달할 수는 있지만, 압력을 행사할 수는 없습니다. 각 교구들은 바티칸 휘하에 있지만, 그렇다고 시시콜콜히 바티칸에 묻고 대답을 기다리는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주교의 고유성이자 전통성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대로 우리 몸의 각 기관들 가령 눈 코 입 손 발 등이 모두 제각각이지만 몸 전체을 이루고 있듯이, 전 세계 각 나라의 지역 교구들 역시도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각 나라마다 특수성과 지역성이 다르기 때문에 한 가지 잣대로 규정할 순 없다는 것입니다."(이번 권고문 16항에도 분산 즉 중앙집중배제(decentalizzazione)가 언급돼 있다.)

- 이번 권고문이 꽤 충격적이란 평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웃음) 사람마다 입장마다 좀 다를 수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율법적이고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갇혀 종교성을 중시해온 사람에게는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교황 취임 이후 그 분의 행적이나 발표문, 강론들을 보면 이미 그런 뜻이 드러났습니다. 이번 권고문은 그 모든 걸 모아서 더 보편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지난 번 발표된 '신앙의 빛'에도 이미 그분의 취지들이 드러나 있습니다."

- 총장님 개인이 이번 권고문에서 인상깊게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첫째, 역대교황들의 권고문과는 달리 단순명쾌한 직설법으로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유추해석이나 오해의 여지조차 나올수 없도록 아주 깔끔하고 명료한 문구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또한 성서말씀을 직접인용했고, 종교논리나 신학적 학설,단어, 문구들은 일체 배제했습니다. 본질적인 것(성서)에 충실한 점이 인상 깊습니다.

둘째, 교황이 사회문제(52~58항목, 경제불평등 언급)에 관해 직접 단호하게 언급한 점입니다. 물론 교황자신도 밝혔듯이, 교황이 전 세계의 모든 문제들을 바꿔낼 수도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늘 현실적인 한계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직접, 잘못된 경제관을 '물질 우상주의'라고 표현한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용기있고 높게 평가할 대목이라고 봅니다. 대단한 용기죠. 깊이 감명받았고 이 점을 참 존경스럽게 생각합니다.

셋째,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는 점입니다. 항목 11번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들은 그간에 '종교적 상식'으로 예수를 한정된 틀에 가두었습니다. 종교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각자 대답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교황은 이제는 성서본연의 복음정신으로 돌아가 생활신앙으로 내가 살아나고, 그렇게 살아난 내가 내 곁의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삶 속에서 실천하는 신앙인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죠. 강요가 아닌, 상대방이 믿고 싶어지도록 신앙인이 먼저 가정 지역 사회 국가에 영향을 끼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럴 때 전도 또한 저절로 되는 게 아닐까요?

넷째, 신앙생활에서 '기쁨'을 언급한 점입니다.(1~10 항목). 이것 역시 복음정신에 기초합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그 구원의 기쁨을 아는 사람, 예수를 인격적으로 체험한 사람, 영생의 감사함을 아는 사람은 그 기쁨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내 곁의 이웃의 문제와 아픔에 무관심할래야 할 수가 없는 거죠. 비록 현실에서 여러문제가 산재해있고, 답답할지라도 신앙인이라면 그것들을 통해 나를 새롭게 하고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신과의 친밀한 교제를 꾸준히 지속하는 신앙인이 되어야한다는 것이죠."

- 총장신부님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제들을 양성할 계획이신지요? 이번 권고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궁금합니다.

" 일반인들과 눈높이를 함께 하며 소통하고, 그들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예민하게 반응할 줄 아는 영성과 심성의 사제들이 양성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사제인 '내가 한다'가 아니라, 사제는 그저 신께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통로일 뿐이라고 인식해야 할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본받아 그처럼 '겸손한 사제'들을 양성코자 합니다. 신학적 지식으로 상대를 '지적질' 하는 율법학자가 아닌, 내가 알고 깨달은 것으로 상대를 도울 수 있는 겸손한 사제들이 배출되길 희망합니다.

제가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생활속의 신앙, 그것의 작은 실천이죠(웃음). 천주교신문이 아닌 일반 언론매체에서 교황의 행적과 신앙문에 관심 갖는 것도, 사제인 제가 먼 한국의 일반독자들에게 다가려고 하는 것도 모두 그런 차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황의 뜻은 교회 본연의 뜻에 주력하는 것"

지난 11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시티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알현 행사 말미에 피부병에 걸린 사람을 껴안고 있다.
 지난 11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시티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알현 행사 말미에 피부병에 걸린 사람을 껴안고 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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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고문 이후, 천주교에 개혁의 바람이 분다고 볼 수 있을까요?
"권고문이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방대한 양이고 깊이가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왈가왈부하긴 어렵습니다. 저 자신도 권고문을 통독했지만, 다시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정독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번 인터뷰에서도 설명드렸듯이 교황의 행적, 뜻, 신앙문 등 이 모두는 보수, 진보, 개혁의 문제가 아니라 '성서본연'의 뜻에 충실한 복음화 즉 교회본연의 사명에 주력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 고아와 과부들, 버림 받은 자들, 환란과 고통에 처한 자들, 외로운 나그네들, 외면 받는 창기,세리들,병들고 신음하는 자들과 함께 하셨던 것이 그 본연의 뜻일 겁니다. 이는 성서에 열거된 본래의 복음정신에 입각해 교회가 사회안으로 소외된 작은 자들을 향해 나아가고 함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교회본연의 사명이죠. 교회마저도 이들을 외면하면 도대체 이들은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

- (이 때 총장신부가 필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국의 사제들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여기서 잠시 대화는 2012년 4월 27일 선종한 안동교구 정호경 루도비코 신부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단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진리안에서 살기를 희망했던 사제다. 그는 생명공동체운동을 통해 농민과 함께 했고, 스스로 농민이 돼 살았던 인물이다. 철학, 문학외에 공예,영화에도 조예가 깊었던 신부다. 몇년 전 필자는 어느 추기경과 그의 측근들에게 인상깊은 사제로 김수환 추기경과 정호경 신부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 천주교 한 간부가 이를 거북해 한 기억이 있다.

- 총장 신부: 루도비코 신부님의 사례는 죠반니 빠올로1세 교황이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힘없고 억압받는 자들 편에서 그들과 함께 했던 이유로 권력층으로부터 보이콧 당했던 것과 비슷한 경우인 것 같군요. 루도비코 신부님처럼 훌륭하신 천주교 신부님들이 한국에 많은지 궁금합니다.
"정말로 훌륭하신 신부님들, 목사님들이 계신 반면에 인격조차 의심되는 분들도 많습니다. 사람들의 직위와 인품이 비례하지 않듯이,종교적 직분이나 종교성이 그사람의 신앙의 주소, 믿음과 늘 비례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종교인들에 대한 회의가 심하기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신앙권고문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의 종들인 사역자들은 '둘로스'(Doulos. 헬라어로 '종'을 의미함)이며, 이는 새 한마리의 값어치였다는 걸, 사역자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역자들이 아닌 예수님이라면 어떡게 하셨을까를 물으며 묵묵히 가는 작은 둘로스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 총장 신부 (웃음으로 뒤집어지심^^) : "프란치스코 교황만 돌직구를 날리시는 줄 알았는데 여기 또다른 선수가 계셨네요! 유쾌한 인터뷰를 갖게 해준 오마이뉴스에 감사합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태그:#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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