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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9일 오후 춘추관에서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언어살인이며 국기문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9일 오후 춘추관에서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언어살인이며 국기문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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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 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의 '대선 불복'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주장으로 시작된 정국혼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있는 주체가 박 대통령의 복심인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지난 2월 정무수석으로 지명됐을 때 그의 첫 일성은 '소통수석이 되겠다'는 것. 그러나 불과 10개월 만에 그는 '아버지의 전철'이란 표현을 '암살의 전철'로 둔갑시키고는 '국기를 문란케 하는 행위'라며 격분했다.

8일 장하나의 성명서, 그리고 9일 양승조의 '아버지의 전철'

장 의원 발언의 후폭풍은 참으로 컸다. 장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반장선거에서도 부정은 인정 안 한다"며 "이미 검찰 수사 결과, 부정선거임이 확인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현역 국회의원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우리 국민 중 과반 이상이 지난 대선에 대해 '불공정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크게 문제되는 주장은 아니다. 장 의원은 국정원 트위터글이 2200만 건에 달한다는 보도를 접한 뒤에 대선불복 결심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대가 있는 발언이었고, 그 상대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발언의 파문은 컸다. 발언이 알려진 직후 새누리당은 이튿날인 9일 오후 2시 의원총회를 열고 '장하나 징계'를 논의한다고 밝혔다. 의원직 제명까지 검토할 것이라면서 분위기를 조성했다. 여권의 대응 중에서 특이한 점은 '윗분'에 대한 공개적인 사퇴를 주장한 대사건인데도 이정현 홍보수석이 이날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9일 오전 민주당이 최고위원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양승조 최고위원의 발언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양 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교훈을 타산지적으로 삼아야 하는데, 국정원이라는 무기로 신공안통치와 신유신통치로 박정희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국민적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 중 '박 대통령의 전철'이라는 표현이 이날의 열쇳말로 부각된다.

양 위원의 '아버지의 전철' 발언이 조금 '센' 발언일 수 있겠지만 '국정원 특위'가 출범하는 시점인 만큼 그것이 새롭거나 놀라운 내용은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중앙정보부를 만들었고, 그 기구를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했고, 결국에는 그 기구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 내용은 역사 교과서에도 기술돼 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현재의 교훈을 이야기한 것이다.  

긴박하게 움직인 새누리당, '목표'는 민주당

박근혜 대통령도 불행했던 '선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한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이 10일 소집된 긴급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취재진에 둘러싸인 양승조 최고위원 박근혜 대통령도 불행했던 '선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한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이 10일 소집된 긴급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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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 발언에 이어 양승조의 발언이 공개되면서 새누리당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의원총회가 열렸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도 열렸다. 새누리당은 세 가지 항목을 특정해서 민주당에게 사과와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 오늘 중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사과와 양승조·장하나 의원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
▲ 대선 불복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 발표
▲ 문재인 의원 입장 표명

재미있는 것은 각각 다른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동일한 요구사항이란 점이다. 결국 그들이 요구한 것은 '내게 대선불복이 아니라고 말해봐'에 다름 아니다. 장 의원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한 것도 앞으로 내부단속을 잘 하겠다는 신호를 보여달라는 것이고, 이어서 민주당 이름으로 '대선불복 아니다'라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에게 입장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뜬금없이 문 의원에게 입장을 요구하는 게 스스로도 겸연쩍었던지 장 의원 '배후'로 문 의원을 의심한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요구에 나섰다.

이쯤되면 문재인 의원이 불쌍하다. 지난 6일부터 서점에서 판매중인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문 의원은 여러 차례 힘주어 '선거를 다시 치를 순 없다'고 대선불복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혔기 때문이다. 문 의원은 "현실적으로 선거를 무효화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사태가 올 경우 그로 인한 혼란을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도 힘듭니다"('부정 불복의 마음들을 보며' 중, 책 72쪽)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공격이 시원치 않았던지 9일 오후 5시 30분, 논란의 화룡점정인 이정현 홍보수석이 브리핑석에 섰다. 이 수석은 "양 최고위원이 대통령에 대해서 암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발언까지 한 것은 언어살인과도 같다"며 "그 자체가 국기문란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 도대체 누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암살의 전철' 운운하며 위협을 했던가. '소통의 수석'이 되겠다고 다짐한 그는 도대체 왜 하지 않은 말까지 가져다가 공격을 하는 처지가 됐는가.

'아버지의 전철'→'암살의 전철'... 이 수석이 하고 싶었던 말은

이날 오후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도 '아버지의 전철'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유감은 최소한의 상식선에서 이뤄졌다. 최 대표는 "(양 위원의 발언은) 박정희 대통령의 불행했던 과거사조차 들먹이면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저주를 퍼부었다"며 나름 거세게 비판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이 수석의 '암살의 전철'과는 차원이 다른 표현이다. 

자신의 발언이 이 수석에 의해 '암살의 전철'로 각색된 것에 대해 양 위원은 성명을 통해 "어떻게 그런 끔찍한 발언을 입에 올릴 수 있는지 무섭다"며 "그런 생각은 발언 당시는 물론이고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정현 수석의 대통령 암살 가능성 발언에 대해서는 '지나치고 과한 상상력의 표현'이라며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은 발언'이라고 거듭 해명했다. 양 위원은 "왜곡과 과장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왜 이렇게 격심한 반응과 왜곡을 하는지 묻고 싶다"고 되레 공을 이정현 수석에게 넘겼다.

장하나 민주당 의원이 12월 8일 지난 대선에 대해 '불복'을 선언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했다.
 장하나 민주당 의원이 12월 8일 지난 대선에 대해 '불복'을 선언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했다.
ⓒ 장하나 의원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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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의 전철' 발언에 이어서 나온 내용을 보면 이정현 수석이 집중하고 있는 대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는 '겉으로는 양승조'를 말하나 '실제로는 장하나'를 말하고 있었다. 브리핑 말미에 등장하는 민주당에 대한 그의 질문을 보면 그가 실제로는 장하나에 집중하고 있음이 보다 명확해 진다.

이 수석은 양승조 위원 발언에 대해 맹렬히 비판한 이후 화제를 180도 바꿔서 장하나 의원에 대해, 정확히는 '박근혜 퇴진' 발언에 대해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가, 이 나라 국회의원 맞느냐"며 "대통령을 끌어 내리는 것이 민주주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빼놓지 않고 "민주당은 대선 불복(과 양 위원의 대통령 암살 가능성 발언)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암살 가능성이야 본인도 믿지 않을 테니까 넘어가고 결국에는 '대선 불복'만 남는다.

'아버지의 전철'을 '암살의 전철'로 해석한 이 수석은 '역사 교과서'까지 제멋대로 해석하고 싶었던가. 상황에 따라서는 대통령을 끌어 내리는 것이 곧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우리 역사교과서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민주의 승리'로 , 박정희 사망으로 '서울의 봄'이 왔다고 기술돼 있다. 대통령 유고는 헌정사의 불행한 기록일 테지만 대통령이 자리를 굳게 지키는 것이 꼭 민주주의는 아니라는 것이 우리 역사의 기록이다.

'부정한 대선'에 대한 강박관념, 심각한 수준

이날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보노라면 정부 여당의 곤혹스러운 처지가 느껴진다. 장하나 의원이야 본인 스스로 '대선 불복'을 선언했으니까 그렇다 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불행했던 전철을 밟지 말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집권여당의 결론도, 청와대 홍보수석의 결론도 동일하게 '대선 불복에 대한 민주당 입장 묻기'였다. 문재인 의원에 대한 입장 묻기는 덤이다.

애초에 지난 정권에서 저질러진 일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사과'하면 됐을 텐데, 지금은 사과하기도 이미 늦었다. 그 과정에서 검찰 수사에 대한 부당한 개입과 압력도 이뤄졌다. 여론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집권 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 결과 '부정한 대선'에 대한 이들의 강박관념은 심각한 수준이다. '아버지의 전철'을 '암살의 전철'로 해석하고는, 곧이어 '대선불복에 대한 민주당과 문재인의 입장은 무엇인지'를 묻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렇게 집권 1년이 지나고 있다.


태그:#아버지의 전철, #암살의 전철,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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