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독립영화(independent film)는 할리우드의 '스튜디오시스템'으로부터 독립된 영화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업영화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화들을 통칭 독립영화라 부른다.

의식 있는 작가들은 영화자본의 상업적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창작을 위해 독립영화를 선택한다. 대량소비를 목표로 제작되는 상업영화는 마치 컨베이어벨트에서 제조되는 공산품처럼 표준공정에 따라 대중의 기호에 맞게 천편일률적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안전하고 미학적으로 평균적인 작품들을 양산한다.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철저히 문화소비자들의 평균적인 취향과 수준에 조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병적으로 행복한 결말(happy ending)에 집착하는 이유는 제작자들의 낮은 지적 수준 때문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윤의 증식을 위해서 영화자본은 작가들의 지적·예술적 열망을 철저히 통제한다. 할리우드에서 제작자, 즉 자본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영화를 창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충무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거의 모든 영화작가들은 자본으로부터 해방을 꿈꾼다. 그리고 독립영화는 작가들의 예술적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작은 공간 중 하나다.

 '장산곶매'가 만든 두 독립영화. <파업전야>(왼쪽)과 <닫힌 교문을 열며>(오른쪽)

'장산곶매'가 만든 두 독립영화. <파업전야>(왼쪽)과 <닫힌 교문을 열며>(오른쪽) ⓒ 장산곶매


1980년 말, 1990년대 초 '장산곶매'와 같은 전투적 영화 창작 집단들에 의해 시작된 한국의 독립영화 운동은 애초 저항영화의 성격이 강했다. '장산곶매'에 의해 제작된 1990년 <파업전야>, 1991년 <닫힌 교문을 열며> 등의 작품들은 비록 완성도는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주류사회에 대한 치열한 비판의식과 전투적 저항정신으로 한국 독립영화 운동의 지평을 열었다.

이 시기 초의 전투적 저항영화들을 1세대 독립영화라고 한다면, 2세대 독립영화들은 1세대에 비해 정치적 독립성보다는 미학적 독립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충무로에서 예술영화의 입지가 현저히 좁아지면서 예술영화와 독립영화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저항영화보다는 예술영화나 B급영화들이 독립영화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잉투기>는 어쩌면 독립영화 2세대와 3세대를 구분 짓는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1세대는 물론 2세대 독립영화와도 일정하게 다른 경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잉투기>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중간지대에 새로운 생존공간을 확보하려는 대중적인 독립영화이라고 할 수 있다.

2% 부족한 <잉투기>의 독립정신

 지난 11월 14일 개봉한 독립영화 <잉투기>

지난 11월 14일 개봉한 독립영화 <잉투기> ⓒ KAFA Films

<잉투기>는 아무런 목표도, 열정도 없이 '잉여인간'으로 무의미하게 삶을 소비하는 청춘군상들의 '찌질한' 일상을 통해 현대 젊은이들의 소외와 단절을 그리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칡콩팥'으로 활동하는 태식(엄태구)은 온라인에서 사사건건 대립하던 '젖존슨'에게 속아 급습을 당한다. 태식이 젖존슨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힌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고 치욕감과 분노에 사로잡힌 태식은 복수를 위해 선배 희준(권율)과 함께 무작정 젖존슨을 뒤쫓는다. 젖존슨을 쫓는 과정에서 격투소녀 영자(류예영)를 만나고 태식은 영자의 도움으로 젖존슨과의 격투시합을 통해 복수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태식의 찌질한 복수극은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엄밀한 의미에서 <잉투기>는 2% 부족한 독립영화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충무로 영화자본과는 별개의 시스템에서 제작됐다는 점에서 <잉투기>는 분명히 독립영화다. 하지만 1세대와 2세대에 비해 독립정신은 다소 약해졌다. 반면 대중성이 강해졌다.

<잉투기>는 엄태화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11회 미장센영화제에서 단편영화 <숲>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전에 <쓰리 몬스터> <친절한 금자씨> <기담> 등의 상업영화에서 연출 경력을 쌓았다. 때문에 엄태화 감독은 순수한 독립영화작가로 보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잉투기>는 충무로의 자장이 오히려 독립영화로 확장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엄태화 감독의 충무로 경력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잉투기>의 주제의식과 이야기 방식·영상문법은 상업영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류혜영의 연기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만큼 인상적이다.

류혜영의 연기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만큼 인상적이다. ⓒ KAFA Films


<잉투기>는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독립영화다. 저예산 영화임에도 만듦새는 충무로 상업영화에 큰 차이가 없다. 영화적 재미도 쏠쏠하다. 재기발랄하고 유머러스하며 경쾌하다. 배우들의 연기도 수준급이다. 특히 류혜영의 연기는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하지만 독립영화 특유의 불편함은 다소 부족하다. 정치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신선하다고 할 만큼 도발적이지는 않다. 주제의식은 모호하고 비판의식은 피상적이다. 인터넷 언어들을 구현한 영상기법도 독특하기는 하지만 참신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잉투기>는 독립영화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정치적·미학적 독립성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 즉 상업성을 획득하는 것은 한국의 독립영화가 자생력을 갖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기 때문이다. 영화가 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수는 있지만 자본 없이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중간지대에서 대중과 소통하려는 <잉투기>의 시도가 성공한다면 아마도 한국 독립영화의 생존공간은 좀 더 넓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독립영화의 생존을 위해서 그런 시도는 유의미하다. 그런 면에서 "한국 독립 영화 역사의 또 한 챕터가 시작됐다"는 박찬욱 감독의 평가는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한국 잉여계급의 상태

 태식은 젖존슨의 습격이후 '안면타격공포증'에 시달린다

태식은 젖존슨의 습격이후 '안면타격공포증'에 시달린다 ⓒ KAFA Films


잉여가치설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정수다. 제 아무리 지적인 독자라도 주눅들게 만드는 <자본론>의 방대한 내용은 결국 잉여가치설로 수렴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잉여가치는 지불되지 않은 노동에 의해 창조된다. 자본가는 노동에 의해 창조된 가치의 전부를 임금으로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잉여가치, 즉 이윤을 획득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설령 고임금 노동자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창조한 가치의 전부를 임금으로 보상받을 수 없다. 가치는 오직 노동을 통해 창조되며 노동자가 자신이 창조한 가치의 전부를 임금으로 가져간다면 자본가는 이윤을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착취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데 투입된 노동을 잉여노동이라고 한다. 노동자는 잉여노동을 통해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잉여노동의 확대를 위해서 자본주의 사회는 잉여계급, 즉 대규모의 '산업예비군'을 육성(?)한다. 실업에 대한 공포는 임금인상의 압력, 즉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잉여계급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엄밀한 의미의 잉여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실업자와 반(半)잉여계급라고 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특히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청년 실업률은 7~8%정도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3년 3/4분기 청년 실업률은 7.7%였다. 하지만 청년 고용률은 2012년을 기준으로 40.4%에 불과해 실질 청년 실업률은 훨씬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자본주의 정부가 실업률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 청년 실업률은 아마도 30%에 육박할 것이다. 즉 20대의 3명 중 1명은 엄밀한 의미의 '백수'라고 할 수 있다.

청년 비정규직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2012년 8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843만 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47.5%였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비율은 49.6%로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 현재 20대 임금노동자는 약 367만 명으로 그중 53%인 약 193만 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정부 통계에 따르더라도 20대 3명 중 2명은 실업자이거나 아니면 '88만원 세대'라고 할 수 있다. 20대의 70%이상이 잉여계급 혹은 반잉여계급인 것이다.

청년잉여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청년 실업률은 2012년 7월 현재 13.4%였다. 특히 재정위기로 국가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은 50.9%였고 그리스는 무려 64.2%에 달한다.

잉여자본은 잉여계급을 생산한다

 태식의 삼막사거리의 난동을 영자가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다

태식의 삼막사거리의 난동을 영자가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다 ⓒ KAFA Films


자본주의 생산체제 하에서 잉여계급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잉여계급의 소멸은 잉여가치의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잉여계급도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청년잉여의 급속한 증가는 자본주의의 역사에서도 매우 특수한 현상임에는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잉여계급은 상대적으로 노동능력이 떨어지는 중, 노년층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잉여계급의 급격한 증가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에 하나는 잉여자본의 폭발적 증가 때문이다. 사회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잉여가치의 대부분을 극소수의 부유층이 독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잉여자본이 증대되고 잉여자본의 증가로 금융자본은 점점 비대해지고 있다.

금융자본은 자본을 수탈하는 자본, 한 마디로 기생자본이다. 비대해 질대로 비대해진 금융자본은 아무런 가치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잉여가치의 대부분을 독식하고 있다. 그리고 산업자본은 금융자본에 상납한 몫을 충당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짜고 있다. 금융자본의 몫이 점점 커지는 만큼 노동자의 몫은 줄어들고 있다. 즉 잉여자본이 잉여계급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지만 임금은 절반에 불과하다. 자본의 입장에서 비정규직은 황금을 만들어내는 도깨비 방망이와 다름없다. 청년 실업도 잉여자본에서 비롯된다. 잉여자본이 증가하고 금융자본이 비대화되는 만큼 사회적인 재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잉여자본은 잉여계급을 낳는다. 잉여자본이 늘어날수록 잉여계급도 점점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잉여계급의 증가는 자본주의 사회를 점점 공황의 수렁 속으로 밀어넣게 될 것이다. 수요 없는 생산은 공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젖존슨의 습격 이후 태식은 '안면타격공포증'에 시달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태식은 젖존슨에게 공격당한 삼막사거리에서 '묻지마 폭력'을 휘두르다가 행인에게 안면을 무차별 공격당한다. 그리고 태식은 날아오는 주먹을 그대로 직시하면서 마침내 '안면타격공포증'을 극복한다. 하지만 날아오는 주먹을 직시하는 것만으로, 즉 계속 싸우는 것(ING+투기)만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은 결코 잉여상태에서 해방될 수 없다. 잉여는 두려움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 여기에 마르크스가 살아있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잉여계급이여, 단결하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silchun615 중복게재됩니다.
잉투기 류혜영 잉여계급 엄태화 엄태식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