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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읽다 보면, 문제 거리를 줄줄이 성토해놓은 긴 논설보다 기발한 만평 하나가 더 속 시원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좋은 만평은 현대 사회가 가진 병폐와 모순을 날카롭게 짚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대의 유행과 절묘하게 버무려놓는다. 사회 문제와 유행. 그 무게감의 차이 때문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결국 두 모습 다 우리 삶의 반영이기에 보는 이들은 금방 무릎을 친다.

그래서였을까. 지난달 26일 열린 박순찬 화백의 만평집 <5·16 공화국>(비아북) 출판기념회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한데 어울린, 딱 '만평 같은' 분위기였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차가운 날이었지만, 출판기념회 장소인 서울 시내 한 작은 카페는 40여 명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모인 이들의 연령대와 직업은 신기할 정도로 다양했다. 주부와 학생, 회사원부터 기업인에 시인, 작가와 배우며 전직 판사까지.

<5·16 공화국> 출판기념회 현장 지난 11월 26일 만평 <장도리>의 오랜 팬들과 함께 한 출판기념회에서, 박순찬 화백과 참석자들이 축배를 들고 있다.
▲ <5·16 공화국> 출판기념회 현장 지난 11월 26일 만평 <장도리>의 오랜 팬들과 함께 한 출판기념회에서, 박순찬 화백과 참석자들이 축배를 들고 있다.
ⓒ 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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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아서는 전혀 접점이 없을 듯한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반갑게 맞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은 박 화백이 경향신문에 연재해온 만평 <장도리>의 오랜 팬으로, 이 작품을 계기로 SNS를 통해 친분을 쌓아왔다고 했다. 이들 사이에서는 일상에 관한 가벼운 대화부터 현 시국을 비판하는 묵직한 이야기까지가 격없이 오갔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이토록 짧은 시간에 가까워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이 시사 만화 하나를 계기로 이렇게 모일 수 있던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이제껏 살아온 삶의 차이를 따지기 이전에 지금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만평 <장도리>가 고민하는 사회 문제들이 그만큼 넓은 계층에 공감을 얻고 있다는 증거도 될 게다.

'5·16 정신'과 '민주사회', 그 어색한 공존

<5·16 공화국>의 표지 만평집 <5·16 공화국>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는 표지. 박순찬 화백은 이 표지 그림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했다.
▲ <5·16 공화국>의 표지 만평집 <5·16 공화국>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는 표지. 박순찬 화백은 이 표지 그림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했다.
ⓒ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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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박순찬 화백이 소개한 신간 <5·16 공화국>은 작년부터 올해 중순까지의 경향신문 만평 <장도리> 연재분을 일곱 가지 주제로 나눠 갈무리한 것이다. 이야기의 초점은 우리 사회가 지닌 모순에 맞춰졌다. 서민의 탈을 쓴 채 뒤로는 거대 재벌과 유착하는 정치권, 늘 '민주'를 외치지만 한편으로는 과거 독재 시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네 컷의 프레임마다 빼곡히 담겨 있다.

책의 제목인 <5·16 공화국>은 책 속 만평에 드러난 이 비뚤어진 모습들을 함축하는 단어다. 기자와의 대화에서, 박순찬 화백은 "군부독재의 시발점이 된 '5·16'과 민주정을 상징하는 '공화국'이라는 단어는 본래 공존할 수 없는 말"이라며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살아가는데, 그 모순을 꼬집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 화백이 많은 공을 들였다는 표지 삽화에도 이런 주제의식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를 본따 그린 그림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아래서 떠받들고 있는 관료, 언론, 역사왜곡 세력들이 중심을 차지한다. 그들의 발 밑에는 눈을 감고 현실을 견디는 이들과 눈을 뜬 죄로 포박당한 이들이 깔려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위에는 '5·16 공화국'의 상징인 박정희가 당당하게 버티고 있다.

MB 정권 말기와 대선 과정에서의 권력다툼, '갑'의 횡포와 역사 왜곡 등 7장의 주제로 분류된 책 속 만평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어두운 단면이 보다 세밀하게 표현된다. 그런데 이 만평들을 보며 가장 크게 다가 오는 것은, 하루하루 신문에서 접했을 때는 별개의 이슈라고 여겼던 문제들이 실은 매우 닮은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복되는 모순... '기록'으로서의 만평을 기대한다

이전 정권의 도덕성 논란과 이번 대선의 과정, 상위 1%들의 횡포와 역사 왜곡 문제 등은 표면적으로 분명 결이 다른 이슈다. 그러나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과 그 과정은 유사하다. 바로 기만과 망각이다. 위해를 가하는 쪽은 언제나 당하는 이들을 기만하고, 피해를 받은 이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그 사실을 잊는다. 그 결과 비슷한 기만은 다시 일어난다.

매번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들이 바뀌고 배경이 달라지기에, 새로운 사건의 개요를 이해하고 따라가기 바쁜 우리가 그 메커니즘을 자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사안의 전말을 설명하기보다 사건의 본질적 모순을 꼬집는 데에 능숙한 만평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온갖 분석으로 가득한 긴 글들이 오히려 놓치는 '큰 그림'을 보여줄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5·16 공화국> 출판기념회 박순찬 화백이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사인이 담긴 책을 주고 있다.
▲ <5·16 공화국> 출판기념회 박순찬 화백이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사인이 담긴 책을 주고 있다.
ⓒ 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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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연재작 <장도리>를 재정리해 출간한 일에는 단순한 단행본 발간 이상의 의미와 가능성이 있다.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정도로만 여겨지던 만평의 역할을, 우리 시대의 병폐를 보여줄 '기록'까지로 확장시키는 까닭이다. 매 편에 큰 이야기를 담지 않아도 꾸준히 쓰다 보면 훌륭한 기록이 되는 일기처럼, 매 하루의 우리 사회를 담은 만평 뭉치는 현재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전부터 '시사만화의 휘발성'을 개선하고자 많은 고민을 했다는 박순찬 화백은, "이런 시도들을 통해, 한 편씩 쉽게 찾아 보고 가볍게 넘기던 시사만화들이 '소장'의 개념으로 재인식되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한국의 먼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5·16 공화국>은 그 시도로 손색없는 작품이다.

이제 과제는 이 책을 읽은 이들에게로 넘어왔다. 매일 일어나는 기만에 씁쓸해하기만 하면서 고통 받을 것인가, 그 뿌리를 뽑기 위해 행동할 것인가. 같은 모순이 반복되는 한국 사회의 한복판에, 만평집 <5·16 공화국>은 돌멩이처럼 던져졌다. 그 파장이 최대한 넓어지길 기대해 본다.

<5·16 공화국> 출판기념회 지난 11월 26일 있었던 <5·16 공화국> 출판기념회에서, 박 화백이 출판사 관계자 및 참석자 등과 함께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 <5·16 공화국> 출판기념회 지난 11월 26일 있었던 <5·16 공화국> 출판기념회에서, 박 화백이 출판사 관계자 및 참석자 등과 함께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 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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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공화국 (장도리의 대한민국 생태 보고서)

박순찬 지음, 비아북(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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