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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8년간의 연애 끝에 남자친구 '곰씨'와 결혼식을 했습니다. 신부와 신랑이 주인공이 되는 결혼식,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는 결혼식, 모두가 즐거운 결혼식. 제가 꿈꾸던 결혼식인데요.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는 성공했을까요? 그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 기자말

나는 웨딩플래너와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 없이 결혼준비를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내추럴 본 귀차니스트'이기는 하지만, 언젠가부터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돼버린 웨딩산업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결혼준비를 하고 싶었다. 우리가 상견례를 한 게 3월, 결혼식이 10월이니까 시간도 많겠다, '까짓 것 뭐,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다 어느덧 9월. 신혼집 먼저 구하고, 집 채우고, 집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다.

화려하고 비싼 드레스, 입고 싶지 않았다

한창 결혼준비를 할 때 가수 이효리의 웨딩사진이 화제가 됐었다. 이효리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고가의 명품드레스가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의 드레스를 해외에서 직접 구매한 거라고 한다. 그게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창 결혼준비를 할 때 가수 이효리의 웨딩사진이 화제가 됐었다. 이효리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고가의 명품드레스가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의 드레스를 해외에서 직접 구매한 거라고 한다. 그게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 이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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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일단 드레스. 나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싶지 않았다. 화려한 것보다는 심플한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드레스에 대한 '로망'도 딱히 없었다. '결혼식에 꼭 드레스를 입어야 하나, 그냥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예쁜 옷 한 벌 사서 입으면 안 돼?'라는 생각도 있었다. '일생에 단 한 번'이라는 이유로 빌리는 데만 백만 원이 넘는 드레스를 입는 신부들도 있다는데, 단 하루를 위해 그 정도 비용을 쓰고 싶지 않았다. 결혼식 때 비교적 고가의 드레스를 빌렸다는 한 친구는 말했다.

"사실 드레스라는 게, 그게 비싼 건지 좋은 건지는 신부 본인만 알거든. 친한 친구들 몇 명이랑. 결혼식날 신부 드레스 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밥 맛있는 게 중요하지. 자기만족인 것 같아."

'드레스 투어(드레스샵을 돌며 드레스를 입어보는 것)'도 엄두가 안 났다. 옷가게에서 점원들이 따라 오는 것도 불편해하는 성격인데 심지어 '투어'라니. 나는 평소에 옷을 살 때 자유롭게 옷을 구경하고 입어볼 수 있는 스파(S.P.A) 브랜드나 '인쇼(인터넷 쇼핑)'를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그렇게 오랜 '인쇼' 경력을 살려(?) 웨딩드레스도 '인쇼'를 했다. 요즘 결혼하는 커플들 사이에는 '셀프웨딩 촬영'이라는 게 유행이다. 스튜디오가 아니라, 야외 혹은 추억의 장소에서 신랑신부가 직접 콘셉트를 잡아서 자연스럽게 하는 웨딩촬영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도 이제는 하나의 시장이 돼서 셀프웨딩 촬영할 때 착용하는 웨딩드레스·베일·구두 등을 판매하는 쇼핑몰, 셀프웨딩 촬영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진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는 해외까지 나가서 셀프웨딩 촬영을 해주는 업체도 있다고 하니, 웨딩산업은 정말 무궁무진한 것 같다.

남들은 셀프웨딩 드레스는 말 그대로 셀프웨딩 촬영할 때만 입고 본식 때는 따로 드레스를 대여한다는데, 내 기준에서는 셀프웨딩 드레스 정도면 됐다 싶었다. 오랜 시간 '폭풍 검색'을 하다가 내 마음에 쏙 드는 스타일의 셀프웨딩 드레스 쇼핑몰을 발견했다. 대여도 할 수 있고 구입할 수도 있고. 딱 하나, 직접 입어볼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는데 계속 지켜보다 보니 이 쇼핑몰이 내가 살고 있는 동네 근처에 피팅룸을 오픈하는 것 아닌가.

'뭐 어때, 내 결혼식인데' - '내가 이렇게 귀가 얇았나'  

포털에 '셀프웨딩 드레스'를 검색하면 나오는 쇼핑몰들.
 포털에 '셀프웨딩 드레스'를 검색하면 나오는 쇼핑몰들.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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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을 하고 곰씨와 함께 피팅룸을 찾았다. 미리 점찍어뒀던 드레스 몇 벌을 입어보고, 마음에 드는 아이보리색 시폰 드레스 한 벌을 구입했다. 보통 신부들이 많이 입는 '벨라인(허리에서부터 넓게 퍼지는 종모양)' 드레스 대신 치마 부분이 좁게 퍼지고 많이 끌리지 않는 드레스를 택했다. 이른바 '헬퍼이모'라고 불리는 도우미 없이 결혼식을 할 예정이라 최대한 활동하기 편한 드레스가 필요했다. 신부 대기실에만 있는 게 아니라 신랑과 나란히 서서 손님도 맞고, 사진도 찍는 게 내 '로망'이었다. 드레스 가격은 12만9000원. 중간 마진이 없어서 저렴하단다. 비싸게는 30만 원대도 있었다.

피팅룸을 나오자 '잘한 걸까' 싶었다. "요즘에는 본식 때 이런 심플한 드레스 찾는 신부님들도 많다"는 쇼핑몰 사장님 말을 떠올렸다. 왠지 용기가 생겼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동지가 생긴 기분이랄까.

'그래, 보통 웨딩드레스랑은 다르지만 뭐 어때. 내 결혼식인데, 내 맘대로 하면 되는 거지 뭐.'

하지만 이후 가족 친지에게 '왜 이렇게 밋밋한 드레스를 샀냐' '뭐가 이렇게 싼 거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흔들렸다. 나는 늘 내가 '귀가 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괜스레 불안한 마음에 쇼핑몰을 계속 들락날락했다. '그냥 남들처럼 드레스샵에 가볼까' 생각도 했다. 곰씨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존중하겠다고 했다. 드레스를 다시 고르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하지만 아무리 다른 드레스를 봐도, 이미 구입한 드레스가 내가 정말로 원했던, 좋아하는 스타일인 것은 분명했다. 지금 내 안에 있는 '욕구'가 정말로 내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것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타인의 욕망을 마치 내 욕구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드레스야 고생 많았다

드레스를 산 나는 '이건 내 체형에 최적화된 드레스야, 다이어트 필요 없겠네'라며 마음을 놨다. 하지만...
 드레스를 산 나는 '이건 내 체형에 최적화된 드레스야, 다이어트 필요 없겠네'라며 마음을 놨다. 하지만...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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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난관은 추석 후에 닥쳤다. 구입했던 드레스가 배송돼 와서 입어봤는데 그만…. 드레스 지퍼가 터진 것이다. 내가 구입한 드레스는 어깨와 팔만 드러내는, 정확하게는 내 신체에서 지방이 가장 적게 자리 잡은 곳만 노출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드레스를 사놓고도 '이건 내 체형에 최적화된 드레스야, 다이어트 필요 없겠네'라며 마음을 놓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녀석은 늘 방심하는 순간 뒤통수를 친다.

'추석 기간 동안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했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는 구나. 아니야, 내가 오늘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래. 지난번에는 딱 맞았는데…. 그새 이렇게 살이 쪘을 리가 없어. 혹시, 드레스 사이즈가 잘못된 것 아닐까.'   

머릿속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음날부터 아침을 안 먹었다. 매일 마시던 카페라떼도 끊었다. 퇴근할 때는 버스 대신 40분을 걸어 집으로 갔다. '퇴근하고 떡볶이 먹으러 갈래?' 동기 언니의 메신저에 매몰차게 답했다(언니 미안…).

'안 먹어. 그만 좀 물어봐.'

그러나 청첩장을 돌린다며 지인들을 만나면 뭔가를 안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술도 꼭 한 잔씩 하게 됐다(결혼 앞두고 한 달씩 굶는 여자들, 존경한다). 청첩장을 받은 지인들은 초대의 말에 적힌 '화려한 드레스도 없지만'이라는 문구를 보며, "드레스 안 입어? 그럼 한복 입고 결혼해?"라고 물었다. 그 때마다 곰씨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드레스를 사기는 했는데…, 못 입고 입장할지도 몰라"라며 나를 놀렸다.

이제 결혼식까지 한 달 남짓. 살이 빠지기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지퍼를 고쳐야 하니까 드레스를 수선집에 맡겼다. '명품수선'이라고 적힌 수선집 아주머니는 지퍼가 있는 부분 천을 최대한 늘려주겠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일주일 후, 명품수선 '신공' 덕분인지 아니면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살이 빠진 것인지 드레스는 여유 있게 들어갔다. 오히려 조금 더 커졌다. 이 정도면 뭐, 옷핀으로 집으면 되니까. 그렇게 드레스는 수선비 1만1000원을 더해 14만 원이 됐다.

이제, 드레스에 대한 고민은 싹 사라졌다. 이 드레스는 꼭 결혼식날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게는 추억이 담긴 특별한 드레스가 됐으니까. 드레스도 나도, 고생 많았다.


태그:#소박한 결혼,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 #결혼, #스드메, #웨딩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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