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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담은 아르헨티나의 국기

아르헨티나에 처음 오면 두 가지에 놀란다. 비행기 요금만큼 비싼 아르헨티나의 버스 요금, 그리고 비행기만큼이나 좋은 아르헨티나의 버스 시설.

  일찍 일어난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2층 맨 앞자리 좌석에서 바라보는 풍경.
 일찍 일어난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2층 맨 앞자리 좌석에서 바라보는 풍경.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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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동안 온 이과수 공원 안을 뛰어다닌 끝에 겨우 탑승한 2층 버스의 맨 앞 좌석은 상상 이상이었다. 침대가 부럽지 않을 만큼 가로로 눕혀지는 좌석과 답답한 의자등 대신 자리잡은 뻥 뚫린 유리창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풍경. 버스에서 제공하는 커피 향을 한 가득 느끼며 탁 트인 앞유리로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좋은 영화관에서 한 편의 대자연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자 버스는 실내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휴게소에라도 들리나 싶어 밖으로 나왔지만 도착한 곳은 버스회사의 차고였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한참을 서성이고 있으니 한 직원이 와서 말을 건다. 스페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의 당황한 표정을 읽었는지 그는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두 마디를 영어로 꺼냈다. '프리'와 '디너'.

그가 가리킨 곳에는 식당이 있었고 우리는 그 곳에서 메인 요리와 음료, 후식까지 제공되는, 제법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아르헨티나의 장거리 버스 요금에는 이 저녁식사가 포함되는 모양이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음료일까. 준에게는 와인과 맥주 중 뭘 마시겠냐고 묻던 종업원은 맞은편에 앉은 나에게 말없이 콜라를 따른 것. 그는 뒤늦게 맥주를 요구하는 나에게 손가락을 흔들며 '노' 라고 대답하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완전히 어둠이 내린, 인적도 없는 도로 위를 버스가 다시 달릴 때쯤 어느새 달이 떠올랐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 강렬했던 숲의 푸름조차 어둠에 삼켜지고 도로는 마치 미지의 세상으로 가는 차원문 같다. 길인지 숲인지 분간도 안 되는 어둠이 확 트인 앞유리 가득 밀려오자 나는 그만 눈을 감아 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마도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을 테니까.

  흰 구름과 푸른 하늘, 노랗게 타오르는 태양까지, 아르헨티나의 국기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하늘을 그대로 담았다.
 흰 구름과 푸른 하늘, 노랗게 타오르는 태양까지, 아르헨티나의 국기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하늘을 그대로 담았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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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과 푸른 하늘, 노랗게 타오르는 태양까지. 아르헨티나의 국기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하늘을 그대로 담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처음 만난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 도시의 이름은 '맑은 공기'라는 뜻이란다. 컴컴한 어둠과 전혀 다른 세상,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쏟아지는 햇빛 때문에 마치 온 도시가 반짝거리는 착각마저 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도심은 참으로 눈부셨다.

19시간의 답답함을 털어 버리려는 듯, 나는 터미널을 벗어나자 배낭을 내려놓고 간밤에 입었던 자켓을 급하게 벗어 젖혔다. 마치 날벌레를 털어 내듯이. 그러다 우연히 올려다 본 곳에서 나부끼는 아르헨티나의 대형 국기와 하늘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무릎을 치며 준을 향해 외쳤다.

"하늘이야, 하늘. 아르헨티나 국기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하늘이라고!"

파스텔 빛깔의 향연

유럽과 아시아에 비해 남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아르헨티나라고 하면 체 게바라와 축구, 그리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탱고 정도. 그러나 이런 것들은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이미지를 대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러모로 파리를 닮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도심
 여러모로 파리를 닮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도심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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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침략으로 형성된 도시는 모두 중심에 큰 광장이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가지의 시작이자 중심은 5월의 광장(Plaze de mayo). 바로 이 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스페인 식민시절의 고대 건축물과 그 곳에서 꽃핀 예술 덕분에 혹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가리켜 '남반구의 파리'라고도 한다.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이라는 꼴론 극장과 팔레르모 공원, 오벨리스크 그리고 매트로폴리탄 대성당 등. 복잡한 도심 사이를 늘어선 유럽 양식의 건축물들을 보고 있자면 실제로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유럽과 많이 닮았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유럽과 달리 침략을 당하는 입장이었기에 아르헨티나는 한 때 혹독한 시기를 겪어야 했다는 점이다. 그런 자신들의 강력한 독립의지를 보이고 싶었던 걸까. 뜻밖에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궁의 불빛은 우리네 옛 시절 정육점의 불빛 같은 진한 핑크 빛이다. 얼핏 촌스러운 이 핑크와 조화를 이루는 국회의 파란 불빛은 언제나 도심의 밤을 밝힌다.

  현란한 빛을 발하는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궁과 국회
 현란한 빛을 발하는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궁과 국회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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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혁명' 이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독립선언은 1810년에 벌어졌다. 이후 5월의 광장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발달됐지만, 정작 독립한 이후의 아르헨티나는 이른바 '백호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 때문에 정작 남미 인디오(인디언의 라틴어)들은 설 자리를 잃고, 지금도 백인이 아닌 인종에 대한 차별대우로 뉴스에 오르락 거리는 국가가 되어 버렸다. 유럽 백인들에 의해 침략 받다가 독립한 나라가 백호주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탱고의 탄생지, 보카 카미니토(La Boca)

  온통 색깔로 가득한 탱고의 발상지, 보카 카미니토(La Boca) 거리.
 온통 색깔로 가득한 탱고의 발상지, 보카 카미니토(La Boca) 거리.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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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재즈가 있다면 아르헨티나에는 탱고가 있다. 어쩌면 이런 것까지도 파리를 닮았을까 싶지만 탱고의 발상지는 다름아닌 부에노스 아이레스다. 지금은 예쁘게 채색된 문화거리인 보카 카미니토(La Boca)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탱고.

그 시작은 1930년대의 어둡고 침침한 뒷골목이었다고 한다. 당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머물던 유럽 출신의 항구 노동자들이 향수에 젖은 마음을 노래와 춤으로 풀어내고 환락가에서 그 시름을 푸는, 누구도 함부로 지나다닐 수 없는 그런 뒷골목. 그런 노래와 춤이 탱고로 재탄생하면서부터 거친 환락가의 벽은 어느 순간부터 화사한 색깔로 변하고, 거리는 길거리 연주자와 댄서, 예술가들로 가득 찬 관광지가 되었다.

  보카 거리 가득 들어찬 식당 한 켠에서는 언제나 라이브 탱고 공연이 벌어진다.
 보카 거리 가득 들어찬 식당 한 켠에서는 언제나 라이브 탱고 공연이 벌어진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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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다'는 건 탱고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태어난 아르헨티나 탱고(현지어로는 '땅고'에 가깝다)는 전 세계의 여행객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묶어두는 최고의 관광자원이 되어 버렸다. 낮에는 거리 카페에서, 밤에는 실내의 탱고 클럽에서 하루 종일 이어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탱고는 한 번, 두 번, 세 번, 보면 볼수록 사람을 중독되게 하는 마성의 춤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최초의 카페, 토르티니(Cafe Tortini)
 부에노스 아이레스 최초의 카페, 토르티니(Cafe Tortini)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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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한 낮의 탱고는 왠지 모르게 어딘가 부족한 느낌. 출신을 속일 수 없었는지 특유의 끈적한 음악과 몸짓은 역시 밤에 빛을 발한다. 아르헨티나 최초로 세워진 카페 토르티니(Café Tortini)는 커피를 마시기 위한 명소이기도 하지만 역시 메인은 해가 진 뒤 지하의 무대에서 열리는 탱고 쇼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담겨져 있는 탱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담겨져 있는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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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 날도 카페 토르티니의 지하 공연장은 탱고 쇼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 들어찼다. 언제 다시 보게 될지 알 수 없는 본고장의 향취를 느끼고 싶었던 우리는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 제일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기본적으로 탱고 쇼는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 공연이지만 사회자가 맛깔 난 멘트로 극을 진행시키면서 상황극이 들어간 연극의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카페 토르티니의 탱고 쇼는 후자.

불빛이 꺼진 무대 위를 잘 차려입은 남자가 걸어나오면서 쇼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계속 해서 바뀌는 조명의 색과 열기를 더해가는 탱고의 춤사위, 그리고 거칠어지는 배우들의 숨소리 덕분에 머리로 전혀 알 수 없는 내용들을 가슴이 저절로 이해 시킨다. 그렇게 약 70분 동안 나는 내가 눈을 깜빡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몰입되어 있었다. 쇼가 시작되기 전에 주문한 와인은 첫 모금 이후로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배우들의 몸짓에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녹아난다. 스칠 듯 말 듯한 남녀 배우의 발놀림이 눈을 어지럽히고 스텝이 엉켰다 싶은 그 순간 두 배우의 다리가 하나가 된 듯 교차하며 마침내 정열의 탱고가 된다. 탱고 쇼를 보기 전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후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전혀 다르다. 탱고 쇼를 보기 전에는 이 정열의 도시를 떠날 수 없다. 과거에 이 도시에 왔던 많은 이들이 탱고에 빠져 과거의 시름을 잊고 새 삶을 시작했듯이.

기타여행정보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출발하기 전부터 '안전할까' 를 고민해야 될 정도의 도시는 아니다. 음식이라곤 소고기 밖에 없으니 그저 채식주의자만 아니면 되는 곳. 더군다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한인숙소 '남미사랑'이 한국인 여행자들의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한다.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위치 덕분에 오고 가기에도 좋은 데다 많은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마다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한편 브라질보다는 저렴하지만, 한국과 같은 수준의 높은 물가를 자랑하는 아르헨티나 여행을 한결 가볍게 하는 방법이 있다. 정부가 개인이 미국 달러를 소유하지 못하게 차단한 아르헨티나의 특성상,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미국 달러가 은행의 공시환율보다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되므로 가기 전에 모든 경비를 미국 달러로 들고 가자. 2012년 10월 기준 은행의 공시환율이 1USD = 4AR 이었지만, 당시 거리의 수많은 환전소에서는 1USD = 6.2AR 이라는 높은 금액으로 환전할 수 있었다.

탱고와 더불어 아르헨티나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값싸고 맛있는 소고기와 와인이다. 우리나라의 패스트푸드 햄버거 가격정도면 마트에서 제법 훌륭한 아르헨티나산 소고기와 와인을 살 수 있으니 꼭 맛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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