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우승후보 현대캐피탈을 완파하며,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우리카드 배구팀

28일 우승후보 현대캐피탈을 완파하며,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우리카드 배구팀 ⓒ 한국배구연맹 제공


배구판이 요동치고 있다. 대반란의 기운이 태풍으로 돌변했다. 배구팬들은 환호와 흥분을 감추지 못 하고 있다. '용병 몰빵 배구'가 무너지고, 토종들의 스피드 배구 시대가 도래할 수 있을까.

프로배구가 출범한 지도 올해로 10년째다. 그동안 프로배구는 눈부신 양적 성장을 거듭해왔다. 한때 겨울 시즌 절대 강자였던 프로농구의 인기를 추월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배구팬들 가슴 한편에는 커다란 응어리가 하나 생겼다. 이른바 '몰빵(沒放) 배구'다. 신장과 파워에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인 외국인 용병 선수 한 명에게 공격을 집중적으로 몰아주고, 국내 토종 선수들은 리시브나 거들면서 실력이 도태되는 현상에 분노한 팬들이 붙인 이름이다.

특히 안젤코-가빈-레오로 이어지는 몰빵형 용병의 힘으로 최근 6시즌 연속 챔피언을 거머쥔 삼성화재의 장기집권은 몰빵 배구 논란을 더욱 심화시켰다. 삼성화재가 올 시즌도 우승하면, 국내 프로스포츠 전체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7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이는 동전의 양면이다. 삼성화재에겐 큰 영광이자 대기록이지만, 한국 프로배구의 장래를 생각하면 그늘도 존재한다.

물론 삼성화재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있다. 김세진, 신진직 등 불세출의 스타가 대거 은퇴하고, 우승을 계속하다 보니 드래프트에서 좋은 신인을 얻을 수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게 바로 높이와 파워를 갖춘 용병을 최대한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팬들은 비난할 수 있지만, 구단 입장에선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여기에 우승에 목말라 있는 다른 팀들도 세계적인 용병에 거액을 쏟아부으며 몰빵 배구 대열에 속속 합류하면서 프로배구판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모든 팀들이 용병 한 명에만 의지하고 국내 선수는 보이지 않게 되면, 머지않아 배구의 인기도 하락세를 걷게 될 거라는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다. 대중의 인기란 한 번 내리막길을 타면 회복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날개도 없이 추락하게 된다.

프로배구 흥행의 '오아시스'... 엄청난 시청률에 방송사도 싱글벙글

이런 가운데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팀이 나타났다. 용병? 있으면 좋고, 없어도 잘하는 팀. 주전선수 6명 전원이 용병 같은 토종 팀. 바로 올 시즌 프로배구판에 지각변동을 몰고 온 우리카드다.

우리카드는 1라운드에서 용병 루니가 미국 국가대표팀의 국제 경기에 차출되면서 빠졌음에도, 4승 2패로 1위 삼성화재와 불과 승점 3점 차이로 4위를 기록했다. 29일 현재 순위는 한 계단 더 뛰어올라 3위를 달리고 있다. 여전히 삼성화재와 3점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한 경기 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1위로 올라설 수 있다.

올시즌 초, 배구 전문가와 기자들은 이번 시즌을 전망하면서 3강 대열에 우리카드를 껴주지 않았다. 대부분 삼성화재, 현대캐피탈, 대한항공의 3강 싸움으로 정리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우리카드는 지난 28일 우승후보인 현대캐피탈마저 3-0으로 이기며, 삼성화재의 독주를 저지할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이제는 누구도 우리카드를 3강 대열에서 함부로 제외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카드의 돌풍에 배구팬들은 10년 묵은 체증이 쓸려나가는 상쾌함을 느낀다. '우리카드 배구'는 어느 팀을 응원하든 관계 없이, 배구팬들을 매료시킬 만한 흥행 요소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용병에 의존하지 않는 토털 배구, 속이 뻥 뚫리는 센터진의 강력한 중앙속공, 세터의 빠르고 현란한 볼 배급, 젊은 선수들의 호랑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파이팅….

현대캐피탈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우리카드의 스피드한 벌떼 배구는 그동안 많은 배구팬들이 꿈꿔왔던 '로망'이었다. 국내 V리그에서 그런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도 황홀한 순간이었다.

이날 경기를 생중계한 방송사는 엄청난 시청률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 하고 있다. 스포츠 전문채널 KBSN Sports는 29일 "2013~2014 V리그 우리카드-현대캐피탈 경기(11.28)의 시청률이 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 1.643%를 기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V리그 개막 이후 최고 시청률이다. 케이블TV에서 시청률 1%대는 소위 '대박'으로 불린다. 1.6%대 시청률은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의 웬만한 1경기 시청률보다도 높은 수치다.

드라마보다 슬프고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는 팀

우리카드는 가슴을 저미는 스토리가 있는 팀이다. 우리카드 배구팀과 선수들은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드라마' 같은 팀이다.

14년 만에 창단된 신생팀(2009.7), 모기업 부도(2010.4), JB전북은행의 배구팀 인수 포기(2011.7), KOVO 관리구단으로 전락-창단 2년 만에 해체 위기(2011.7), 관리구단 상태로 V리그 2시즌 참가(2011~2012,2012~2013시즌),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 여파로 인수작업 진행중 무산(2012.2), 러시앤캐시 네이밍스폰서 지원으로 2012~2013 V리그 겨우 참가(2012.8), 감독과 선수의 불화 사태(2012.8), 김호철 감독과의 만남(2012.10), 2012~2013시즌 8연패 끝에 돌풍-인기팀 급부상, 우리금융지주(우리카드)의 인수(2013.3), 우리금융지주 신임 회장 배구단 인수 백지화 발언(2013.6), 우여곡절 끝에 우리카드의 배구단 인수 결정(2013.6), 2013~2014시즌 강력한 태풍으로 등장….

길지도 않은 역사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깨알 같은 사연들이 가득하다. 그동안 선수들이 겪은 마음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훈련장으로 달려가야 할 배구 선수들이 혹시 인수 기사 안 떴는지 인터넷 검색부터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새 모기업인 우리카드의 지원으로 비시즌 동안 훈련을 제대로 한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원정 경기까지 따라가 열정적으로 응원해주는 구단주(강원 우리카드 사장)의 관심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마음이 안정되자 선수들은 가지고 있는 실력을 100% 이상 코트에 쏟아붓고 있다.

삼성화재를 이기지 못하는 태풍은 '바람'도 아니다

이제 우리카드에게 남은 과제는 오직 하나. 삼성화재의 장기집권에 균열을 내는 일이다. 어느 한 팀의 장기 독주는 팀에겐 영광이지만, 전체에겐 독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 독주를 종결시켜줄 때 팬들은 열광하고, 그 자양분으로 프로스포츠는 발전을 이어간다. 삼성화재를 이기지 못하는 태풍은 아무리 강력해도 의미가 없다. 그것이 현재 V리그의 엄혹한 현실이다. 이겨야 산다.

그러기 위해선 '용병 중의 용병' 레오를 넘어서야 한다. 지난 19일 대전에서 열린 삼성화재와의 1차전에서 우리카드는 레오를 넘지 못 했다. 용병이 없는 상태에서도 삼성화재와 대등한 접전을 펼쳤지만, 레오의 무차별 폭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완패를 당했다.

오는 12월 4일 수요일, 우리카드는 다시 삼성화재를 만난다. 이번에는 루니가 가세한 데다 아산 홈구장에서 맞대결한다. 루니의 활약이 아직 다른 용병들에 미치지 못 하고 있지만, 삼성화재전이기에 루니는 반드시 필요하다. 레오가 국내 선수들의 낮은 블로킹 위에서 편안하게 폭격하지 못 하도록, 공격할 때마다 부담감을 느끼도록 해주는 게 루니의 역할이다. 루니의 신장은 206cm로 레오와 같고, 블로킹 능력도 있는 선수다.

선수 전원이 컨디션과 사기가 최고인데다 루니까지 가세한 우리카드와 삼성화재의 맞대결. 최고 용병과 최고 토종들의 한판 승부. 단언컨대, 이 경기는 2라운드 최대 빅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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