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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의 날인 2013년 5월 1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서 열린 제1회 알바데이 '알바도 노동자다'에 참가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최저임금 1만원'을 배경으로 아르바이트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근로자의 날인 2013년 5월 1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서 열린 제1회 알바데이 '알바도 노동자다'에 참가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최저임금 1만원'을 배경으로 아르바이트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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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이 7천 원이래. 한 달 동안 하면 백만 원도 더 벌 수 있어!"

대학생이 되고 맞은 첫 여름방학.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 갈 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던 나는 친구의 권유로 한 회사를 알게 되었다. 대형 이동통신사 계열 회사로, 피처폰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 스마트폰으로 교체해주는 일로 초보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게다가 법정 최저시급 4860원을 주는 곳이 대부분인 지금 시급 7천 원이라니! 귀가 솔깃해져 당장 지원을 했다.

며칠 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러 가니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고객센터인 줄 알았는데 썰렁한 사무실이 하나 나왔다. 'A컴퍼니'. 공고에 올라왔던 회사 이름과 다른 이름이었다. 뭐지?

"김정은씨죠? 저희 회사는 피처폰을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전화를 해서 스마트폰으로 바꾸게 유도해서 판매하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김 대리라는 사람이 나와서 현란하게 말을 시작했다.

'판매라니? 여기 ○○텔레콤이 아닌가?'

공고에는 이동통신사 계열사라더니 막상 와서 얘기를 들어보니 말이 달랐다.

"시급은 기본 6000원부터 시작합니다. 근데 이게 사실 최저시급이구요, 보통은 다들 실적 채워서 7000원은 기본으로 받아가세요. 더 잘하시면 잘하시는 만큼 더 많이 벌어 가시는 게 이쪽 일이세요."

시급도 공고와 말이 달랐다. 그래도 법정 최저시급보다 천 원이나 더 많으니까, 하는 마음에 친구랑 같이 마음에 든다고 하겠다고 했다.

"오늘 7시 이후에 합격 불합격 여부 전화로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친구와 나는 다음 날인 7월 6일부터 출근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바꿔드립니다~" 여행 가려고 시작한 TM 알바

"안녕하세요. 고객님 ○○텔레콤에서 연락드렸습니다. 전화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고객님께서 저희 ○○를 오랫동안 이용해주셔서 고객님 사용하시는 피처폰을 최신 스마트폰으로 무상 교체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이 멘트로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 일주일간은 운이 따랐는지 실적이 매우 좋았다. 나는 일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1위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것도 한 순간이었다. 일은 생각보다 매우 힘들었다. 전화로 욕을 듣는 일은 익숙해질 정도였다.

"야 이 XXX야 니들 내가 찾아가서 죽여버릴 거야! XX! 전화 좀 고만 하라니까. 에이 재수 없어. XX들 다 뒈져버려라."

그냥 죄송하다는 소리밖에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진상 고객들과 통화한 뒤로는 하루 종일 우울했다. 또 일을 하는 내내 말을 하는 직업이다 보니 친구와 나는 시작한 지 3일 만에 인후염이 왔다. 말을 하면 목이 너무 아프지만 말을 안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준비해 틈만 나면 마셨고, 친구는 관리를 하지 않아 인후염이 심해져 7월30일에 일을 그만두었다.

대리의 압박 또한 매우 스트레스였다. 실적이 좋았던 처음 일주일간은 대리의 눈빛이 달라진 게 보였다. 하루에 9건을 성공한 꼴이어서 시급 약 9000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근데 점점 직원들의 실적이 떨어지자 대리는 직원들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실적에 신경 좀 써라."

결국에는 실적이 제일 저조한 사람들을 따로 불러내 개별 상담까지 실시했고 그 개별 상담자들은 하나둘씩 그만두기 시작했다. 7월 말이 되자 나에게도 점점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실적이 저조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요새 컨디션이 별로니?"라며 말을 걸더니 나중에는 내가 한 상담 녹음본을 들려주면서 목소리 톤, 내용, 하나하나 지적했다.

실적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아지자 "이럴 거면 일 때려치워! 지금 너희들 때문에 회사 적자만 나잖아! 여태 일하면서 니들 같은 직원들은 처음 본다 참나" 하는 말을 하는 날이 잦아졌다. 하지만 직원들이 진짜로 그만두면 앞으로 TM업계에는 발 들일 생각도 하지 말라고 독설을 했다. 이런 근무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만 늘어가던 나는 8월 3일 일을 그만 두었다.

"기다릴 사람은 기다리고 노동부에 신고할 사람은 신고하세요"

일을 그만두면서 대리는 매월 20일이 월급날이니 그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20일 저녁이 다 되도록 월급은 들어오지 않았다. 대리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를 남겨도 답장도 없었다. 회사에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같이 일했다가 같은 날 그만 둔 언니와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니 언니와 친구도 돈이 안 들어왔다고 했다.

다음 날 대리에게 다시 한 번 전화를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급여부분이 자기 담당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는 대답뿐. 아마 오늘내일 내로 돈이 들어갈 테니 조금 더 기다려보란 말이었다. 자고 일어나 통장 잔고를 확인했는데 돈은 여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오후 장문의 문자 한 통이 왔다.

현재 회사 사정이 어려워 9월 25~30일 경에 월급을 지급하겠으니 기다릴 사람은 기다리고 노동부에 신고할 사람은 신고하세요. 하지만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걸 서류로 첨부해서 노동부에 내면 2~3달은 월급을 안 줘도 무방합니다. 신고할 사람은 신고하세요. 그 대신 신고하는 사람은 11월에 월급 받아보게 될 겁니다.

협박 문자였다. 문자를 받고 친구와 신고할지 말지 상의했다. 노동부에 신고를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고 또 처음이어서 뭔지 모를 두려움이 있었다. 일단은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노동부에 신고한다고 협박해서 돈을 받아낸 사례도 있었지만 이미 신고하라고 문자도 와 있었고 또 신고했는데 돈을 못 받았다는 사례도 많아서 불안해졌다.

같이 일한 언니는 "어차피 한 달 더 기다리면 돈 주는데 뭐 하러 신고해? 그냥 기다리자. 저번에 내 친구가 공장 알바 했는데 그때도 돈 안 줘서 신고했더니 한 달에 2만 원씩 2년 내내 월급 주고 있대. 법적으로 한 달에 얼마 이상 주면 월급 줄 수 있는 기한이 계속 연장되는 그런 게 있어서 아직도 월급 받고 있어. 우리 지금 신고했다가 만약에 내 친구처럼 그러면 어쩔래?" 하며 신고를 꺼려했다. 친구 역시 언니의 말에 동의해 신고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다음 날 노동부에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하고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생각보다 매우 퉁명스러웠다.

"제가 TM업체에서 일을 했는데요. 3일에 그만뒀는데 월급날이 20일이라고 했거든요. 20일 까지 기다렸는데 여태 월급이 안 나와서 지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쭤보려고 전화드렸어요."

"아 그래요? 그럼 뭐 신고하고 말고는 본인 마음이고요. 원래 퇴사하고 15일 내에 월급을 안 주면 신고할 수 있어요. 지금 말씀 들어보면 신고를 안 하면 다음 달에 월급을 준다고 했다는데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으니깐 신고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알바비 못 받은 피해자가 40명... 결국 소송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신고하면 한 달 정도 처리 기간이 소요된다는 등 기본 정보를 말해주었다. 직원분의 조언으로 신고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인터넷으로 민원을 접수했다. 다음 날 8월 26일 지방노동청에서 문자가 하나 왔다.

김정은님 요청하신 정보가 고양지청에 접수완료 되었습니다.(접수번호:#####)

신고를 한 뒤 9월 6일 출석해달라는 전화가 와서 11일에 출석해 진정서를 작성했다.

"지금 40명 넘게 임금을 못 받았어요. 복잡한 상황이라서 골치 아프게 됐네. 지금 회사가 돈이 없어서 체당금 소송으로 받아야 할 거예요 아마."

체당금 제도는 직원의 임금 및 퇴직금을 사업장에서 지급할 능력이 없을 때,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하여 미지급된 임금과 퇴직금의 일부를 대신 지급해주는 제도다. 체당금 소송은 노무사를 사서 소송에 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월급에서 얼마씩 내기로 결정하고 노무사를 고용했다. 10월 22일 노무사에게서 주민등록등본, 통장사본, 주민등록증 복사본이 필요하니 가져오라는 연락이 왔다.

현재 11월 28일, 소송은 아직 진행되지도 않았다. 40명이 넘는 모든 사람들의 진정서와 필수 서류가 있어야 진행이 되는데 아직 서류조차 다 내지 않아서 소송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 일이 진행되면서 귀찮기도 매우 귀찮았고, 돈을 못 받았다는 생각에 앞으로 새로운 알바를 시작할 때에는 잘 알아보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 또한 사회에 한 발자국 발을 디딘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이 경험을 통해 앞으로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태그:#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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