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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부로 걸려오는 전화 가운데 가장 '뜨거운' 내용은 뭘까요? 바로 "편집 원칙이 뭐죠?"라는 질문입니다. 창간 10여년 동안 시민기자와 편집기자 사이에서 오간 편집에 대한 원칙을 연재 '땀나는 편집'을 통해 시민기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얼마 전, '뜨끈한 죽 한 그릇 '뚝딱' 제철 만났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들어왔습니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보도가 있던 터라, 지대한 관심을 갖고 기사를 검토하러 들어간 ㅊㄱㅎ 기자. 웬일인지, 뜨거운 죽에 혀를 데인 것 같은 표정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요?

달콤한 단팥죽으로 이번 겨울나기 해볼까. 단팥죽은 동글동글 빚어 넣은 찹쌀 옹심이를 깨물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가운데 국내 카페업체인 카페OO가 최근 겨울 시즌 푸드로 '팥에 동동 단팥죽 시리즈'를 선보였다.

카페OO의 겨울 디저트 메뉴로 새롭게 등장한 메뉴는 쫄깃한 새알심이 올려진 '순수 단팥죽', 팥죽과 고구마 무스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고구마 동동 단팥죽', 쫀득쫀득한 찰도넛이 어우러진 '찰도넛 동동 단팥죽' 등으로 전 메뉴가 100% 국내산 팥으로 만들어졌다.

팥으로 만든 음식이 팥죽 뿐이겠는가. 덩달아 팥칼국수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혈액순환과 해독에 좋은 진하고 달콤한 팥 국물에 쫄깃한 칼국수면을 넣은 팥칼국수 한 그릇이면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 - 기사 중 일부(* 실제 기사에서는 카페명이 공개되었으나, 이 기사에서는 가려 싣습니다)

볼 때마다 편집기자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홍보성 기사의 한 예입니다. 드라마로 치면 PPL(간접광고)이 심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아시죠? 난데없이 휴대폰이나 음료수병이 클로즈업되고 주인공이 뜬금없이 아웃도어 웨어를 사러 가고… 이런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종종 논란이 되기도 하죠.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워낙 경우의 수가 많아 그 사례를 일일히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초중고 학교 행사, 영업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상가(식당, 카페, 학원 등), 도서·문화·영화·미술·공연·전시, 단순 제품, 각종 단체 행사 등 '널리 알리고 싶은 내용'을 담은 홍보성 기사들은 심심찮게 들어옵니다.

홍보성 기사와 그렇지 않은 기사를 칼로 무 자르듯 판단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때문에 편집을 하는 저희 역시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많은데요. 이런 경우 2명 이상의 편집기자들이 의견을 모아 처리합니다만, "홍보성이 짙어 기사를 채택할 수 없다"는 편집부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시민기자도 있습니다. 홍보하려고 쓴 게 아니라는 거지요. 그런데 어쩌나요. 독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분명 '홍보성'인 걸요.

몇 가지 유형을 들어보겠습니다. ① 뜬금없는 인터뷰. 이런 저런 설명 없이 무턱대고 인터뷰한 경우, 편집기자는 묻고 싶습니다, "왜 인터뷰 하셨어요?" ②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말만 하는 경우. 세상에는 100% 완벽한 제품도, 인물도 없으니까요. ③ 검색형 정보만을 나열한 경우. 검색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을 왜 기사로 쓸까요? 이런 경우는 광고성 기사로 읽힐 수밖에 없으며, 심하면 독자들의 오해를 사게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말만... 오해사기 좋습니다

'널리 알리고 싶은 내용'을 담은 홍보성 기사들은 차고 넘칩니다. 그 가운데 독자를 배려하지 않고 단지 홍보만을 위해 작성된 기사는 정식기사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널리 알리고 싶은 내용'을 담은 홍보성 기사들은 차고 넘칩니다. 그 가운데 독자를 배려하지 않고 단지 홍보만을 위해 작성된 기사는 정식기사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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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기자가 홍보성 기사를 검토하는 원칙은 하나입니다. 일방적이거나, 뉴스가 없거나 혹은 이야기가 없는 기사, 즉 독자를 배려하지 않고 단지 홍보만을 위해 작성된 기사는 정식기사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편집부의 검토를 거쳐 정식 기사가 되면 독자들은 그 내용을 '검증'된 것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사람도 검증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편집부가 신중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럼 어떻게 써야 정식기사로 채택이 될까요?

특정 제품을 알리는 기사를 꼭 써야겠다면 일정 기간, 직접 써보신 뒤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소비자'의 눈높이로, 독자들을 대신하여 제품을 꼼꼼히 따져 기사를 쓰는 게 포인트입니다. 일방적인 찬양은 사양합니다. 맛집 등 가게 소개가 특히 애매한데요. 이런 기사를 쓰는 데 지나치게 친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울 삼암동에 위치한 초밥집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보다 가게만의 사연이나 이야기 혹은 정보, 사람들의 평가 등의 내용이 하나의 정보로서 유의미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기사로 채택합니다. 

사람을 인터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 혹은 추앙에 가까운 글은 독자들이 읽기 불편합니다. 때로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독자 입장에서 질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사전에 고민을 많이 해야겠지요. 아무리 봐도 특별할 것이 없는데, 미사여구가 가득한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을 때는 이런 의문이 듭니다. "왜 인터뷰한 걸까?" 이 질문에 막힘없이 답할 수 있어야 좋은 기사가 아닐까요?


태그:#땀나는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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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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