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난징의 악마>
 <난징의 악마>
ⓒ 펄스

관련사진보기

1937년 7월 7일, 중국 베이징(당시는 베이핑) 남서부 교외 루거우차오 부근에서 중국군과 일본군이 충돌한다. 중일전쟁의 발단이 되는 루거우차오 사건 혹은 7·7사변이다.

이후 일본군은 중국 만주에서 산동성 지난을 거쳐 난징 진격 중에 30만에 이르는 중국인 포로들과 중국인들을 학살한다. 그리고 난징을 점령한 후 4만 2천여 명을 학살한다. 대학살이 일어난 것은 루거우차우 사건 발생 6개월쯤인 1937년 12월 13일 무렵부터 1938년 1월까지, '난징대학살' 혹은 '난징사건'으로 기록된 이 사건은 인류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이라고 한다.

즐비한 어린이들 시체, 어린 아이들과 여성들을 강간한 후 죽였음을 알 수 있는 사진, 시체들로 산을 이룬 모습, 일본 장교들끼리 100인 머리 베기 시합을 벌였다는 당시의 신문기사, 학살 장면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일본군의 모습이나 학살하는 장면, 발가벗겨지고 내장이 도려내어져 팽개쳐진 수많은 여성들과 어린 아기들 모습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난징대학살 근거가 오늘날 엄연하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일본은 아이리스 장(<역사는 힘 있는 자가 쓰는가 : 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기록(원제:The Rape of Nanking: The Forgotten Holocaust of World War II (1997년)>의 저자)과 같은 몇 몇 사람들이 날조한 것이며, 희생자도 몇 명 되지 않는다고 난징대학살을 부정하고 있다. 

일본 제국 군대는 시간을 오래 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단 몇 주 만에 삼십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학살했다. 학살이 끝난 후에는 양쯔강을 건널 때 배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수북이 쌓인 시체들만 밟고 건너면 될 정도였다고. 그들은 굉장히 독창적인 방법으로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난징 청년들을 목까지만 모래흙에 묻어놓고 탱크로 그들을 깔아뭉갰다. 그리고 나이든 여성과 아이들, 심지어 가축들까지 강간했다. 또한 목을 베거나 사지를 절단하고 끝없이 고문했다. 심지어 아기들은 총검술 연습에 사용되었다. 그런 대학살을 겪은 이들이 일본인을 다시 믿겠는가? - <난징의 악마>에서

모 헤이더의 장편소설 <난징의 악마>(펄스 펴냄)는 이 난징대학살을 소재로 한 책이다. 주인공인 나 그레이는 어느 날 우연히 어떤 책에서 난징대학살에 대한 글과 사진을 접한다. 짧은 글이었지만 절대 잊히지 않을, 쉽게 잊을 수 없는 그런 글과 장면들이었다. 그레이는 우연히 읽은 글에 자기도 모르게 자꾸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에 대해 말하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징대학살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그레이를 미쳤다며 정신병원에 감금한다. 참고로, 실제로도 일본의 난징대학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소설의 배경은 일본 도쿄. 9년 7개월 그리고 18일. 그레이가 기다려온 시간들이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그레이는 오직 일본행을 생각하며 돈을 벌고, 최소한의 여비가 마련되자 가진 돈 전부를 털어 일본으로 향한다. 목적은 단 하나. 도쿄 대학 사회학교수인 스충밍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왜? 자신이 어느 날 우연히 책을 통해 알게 된 후 헤어날 수 없었던 글과 장면에 관한 글을 최근 유럽의 어떤 학술지에서 읽게 됐는데, 글을 통해 스충밍이 관련 필름을 가지고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스충밍 교수는 그레이와의 만남 자체를 꺼린다. 필름을 딱 한 번만 보여주면 될 것을... 그레이를 계속 피하던 스충밍은 필름을 보여주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후유키 조직의 대부(오야붕)인 준조 후유키가 불로장생의 명약으로 맹신하며 50년 넘도록 먹고 있다는 것의 실체를 알아내는 것. 그레이는 여비가 떨어져 일하게 된 교토의 고급 클럽에 어쩌다 가끔 들르곤 하는 후유키가 스충밍 교수가 말하는 그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서서히 접근을 시도한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3분의 1정도. 그레이는 스충밍이 찾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그것에 대해 약간의 관심이라도 갖는 순간 자신은 물론 여러 사람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도 모른 채 호스티스 여러 명과 함께 후유키의 저택 만찬 자리에 가게 된다. 그리하여 점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깊은 연관이 있는 비밀스런 그것에 접근하게 된다. 이런 그녀에게 클럽 마담이 충고한다. "후유키의 집에서는 고기만큼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후유키 역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천천히 몸을 틀고 카메라를 향해 무언가를 지시했다. 그리고 두 발을 잡고 번쩍 들어 올린 아기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치 가죽 벗긴 토끼를 살피듯이. 어느새 숨은 멎어있었다. 드디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후유키는 야릇하고 강렬한 표정으로 아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아기가 중요한 질문의 답을 품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또 다른 손으로 고무줄을 꺼내 아기의 두 발을 칭칭 감고 나서 자신의 허리에 매달아놓았다. 거꾸로 매달린 아기는 그가 움직일 때마다 대롱대롱 흔들렸다. 아기가 몸을 살짝 틀더니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순간 나는 움찔했다. 두 손으로는 의자 팔걸이를 움켜잡았다. 그렇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아기의 손은 분명 움직이고 있었다. 입도 몇 번 열렸고 가슴도 솟았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아기는 인상을 찌푸린 채 울부짖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었다. 한동안 필사적으로 바동대던 아기가 후유키의 다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가 홱 몸을 틀자 아기가 떨어져 나갔다.…그는 카메라를 향해 아기를 몇 번 더 흔들어 보였다. 제복으로 덮인 허벅지에 아기가 부딪칠 때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가 동작을 멈추자 아기는 다시 본능적으로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 <난징의 악마>에서(기자 주 : 그레이가 스충밍과 함께 그토록 보고 싶던 필름 영상을 보고 있는 장면 묘사 일부)

소설은 두 갈래. 한 갈래는 그레이가 필름을 얻고자 그것의 실체도 모르면서 스충밍이 시키는 대로 후유키가 먹고 있다는 그 무엇을 쫓아가는 과정을, 한 갈래는 스충밍이 1937년 9월부터 12월까지의 난징을 기록한 일기들을 들춰보며 1937년 난징을 떠올리는 것이다. 난징을 떠나자는 아내 슈진의 말을 무시하고 '일본군대가 설마 민간인들을 어떻게 하랴?'라는 무모한 믿음과 난징을 지켜야겠다는 고집으로 출산을 앞둔 아내와 난징에 남아있었던 스충밍이 겪은 난징대학살 그 처참한 기록들...

마치 수많은 실가닥들을 모아 만든 두 가닥의 굵은 실로 새끼를 꼬듯, 수많은 비밀과 비극으로 된 두 갈래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꼬아가는 작가의 이야기 전개로 독자들이 만나게 되는 것은 1937년 난징대학살 그 생생한 현장 재연이다.

후유키가 불로장생의 명약이라 맹신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스충밍은 왜 후유키의 무엇을  얻는데 50여년을 바쳐온 것일까? 대체 왜 스충밍은 난징대학살 당시의 수많은 일본 장교 중 하필 후유키만을 일생을 바쳐 쫓는 걸까? 스충밍이 일생을 바쳐 후유키로부터 뺏으려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레이의 절박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후유키가 불로장생의 명약이라 맹신하며 50년 넘게 먹고 있는 가루가 무엇인지 알아내 달라는 스충밍의 다소 엉뚱해 보이는 제안에 솔직히 좀 진부하고 유치하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스충밍이 일생을 바쳐 찾아온 것이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밀려왔다.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일어난 전쟁인데도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민간인인데다가, 지난날 수많은 전쟁에서  강간을 당했던 같은 여성이라는 것, 어떻게든 자식을 지켜야만 하는 어미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왜 수많은 근거들이 세상을 향해 존재하고 있음에도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것일까?

함께 읽으면 좋을 아이리스 장의 <역사는 힘 있는 자가 쓰는가: 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기록>
 함께 읽으면 좋을 아이리스 장의 <역사는 힘 있는 자가 쓰는가: 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기록>
ⓒ 미다스북스

관련사진보기

<난징의 악마>는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20개국에서 출간되었다고 한다(일본은 출간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고). 아마도 한국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일본이 끊임없이 부정하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떠올리리라. 또한, 소설을 통해 만나는 난징대학살이 수십 년 전에 일어난 역사의 기록인 아닌, 피해자들의 관용 때문에 지금도 가해자에 의해 계속되고 있는 비극이란 사실에 분노하는 독자들도 많으리라.

나아가 우리의 종군위안부 문제나 일제강점기의 수많은 희생, 그 비극들은 일본이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지는 것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동시에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고 일생을 바쳐 후유키를 심판대에 올린 스충밍의 아프고 고집스런 삶에 연민과 박수를 보내리라. 난징대학살과 난징대학살을 주제로 한 이 소설의 결말을 한국독자들이 가급 많이 알아야 하는 이유들이다. 

덧붙여, 출산을 앞둔 여성들은 어떤 이유로든 이 소설을 절대 읽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리스 장의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 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기록>(미다스북스 펴냄)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덧붙이는 글 | <난징의 악마>|모 헤이더 (지은이) | 최필원 (옮긴이) | 펄스 | 2013-11-04 | 원제 The Devil of Nanking (2004년) |14,800원



난징의 악마

모 헤이더 지음, 최필원 옮김, 펄스(2013)


태그:#난징대학살, #난징사건, #모 헤이더, #아이리스 장, #루거우차오 사건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