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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가 KBS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편에 대해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 단정적으로 보도했다"는 이유로 '경고' 결정을 내렸다. 이 방송은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아무개(33)씨가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혐의를 받았다가 1심에서 무죄를 받은 내용을 다뤘다. 이에 대해 유씨의 변호인인 김용민 변호사는 "화가 난다"며 탄식했다.

국가정보원의 간첩 혐의 적발 → 검찰의 구속 기소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공동변호인단의 반박 → 국정원 직원들, 변호인단에 6억 민사소송 → 법원의 무죄 판결 → <추적60분> 무죄 판결 방송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추적60분> 경고 → 변호인단의 탄식까지 이번 사건을 총 정리했다.

이번 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간을 지난 1월 10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추적60> 예고편
 <추적60> 예고편
ⓒ 신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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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유OO씨 간첩 적발 후 검찰이 구속 기소

사건은 이렇다. 서울시공무원 유아무개씨는 국가정보원의 내사로 시작해 지난 1월 10일 간첩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이 사건이 주목을 받는 것은 유씨가 탈북자 출신 1호 서울시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유씨를 구속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월 26일 "국내 탈북자 신원정보를 수집해 간첩활동을 하던 탈북 화교 출신의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인 서울시공무원 유씨를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으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당시 검찰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중국 국적 화교인 유씨는 북한에서 준의사로 근무하면서 화교 신분을 이용해 불법 대북송금 브로커로 활동하다가, 2004년 4월 중국으로 탈북했다.

그런데 유씨는 중국을 경유해 5회 밀입북을 하는 과정에서 2006년 5월경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으로 포섭됐고, 탈북자 정보수집 지령을 받고 북한 국적의 탈북자로 위장해 대한민국에 잠입했다는 것이다.

이후 유씨는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를 졸업 후 2011년 6월부터 서울시청에서 탈북자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계약직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탈북자 관련 단체 활동, 서울시공무원 업무 등을 통해 수집한 200여 명의 탈북자 신원정보를 3회에 걸쳐 북한에 남아있던 가족을 통해 북한 보위부에 전달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에 내사를 벌이던 국정원은 검찰과 함께 유씨를 적발해 국가보안법(간첩죄, 특수잠입·탈출죄, 회합ㆍ통신죄) 위반, 북한이탈주민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위반, 여권법위반 등을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민변, '간첩 조작' 주장 - 국정원, 6억 민사소송

반면 민변은 다음날(2월 27일) 변호사 7명으로 꾸려진 '탈북 화교 남매 간첩사건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하고 '탈북 화교 남매 간첩사건에 대한 입장'을 통해 "국정원과 검찰이 억울한 간첩 누명을 씌우고 있다"고 "탈북 화교 남매 간첩 조작 사건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민변은 "탈북자를 잠재적 간첩으로 낙인찍는 공안 여론 조성과 탈북자 간첩을 색출한다는 명목 하에 불법으로 구금하는 행태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리고, 억울한 누명을 국민 배심원단이 보는 앞에서 풀어주겠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그러자 국가정보원이 강하게 반발했다. 국정원은 다음날(2월 28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관련 국정원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국정원은 민변이 유씨의 혈연관계인 여동생의 감성을 자극해 진술을 번복케 하고 간첩사건을 '회유나 협박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데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그러면서 "민변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사과하지 않을 경우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 및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민변의 사과가 없자 국정원은 지난 5월 10일 국정원 직원 3명을 원고로, 민변 소속 변호사인 유씨 변호인 3명(장경욱, 김용민, 양승봉)에게 각 2억 원씩 총 6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사과를 요구한 지 12일만에 법적 조치에 들어간 것이다.

국정원 직원들은 "화교 출신 탈북자로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간첩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국정원이 구속한 유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관해 변호인들이 기자회견 방법으로, 국정원 직원들이 회유·협박·폭행·감금에 의해 사건을 조작한 것처럼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국정원과 그 직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서울시공무원 유OO씨 간첩 혐의 무죄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제21형사부(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는 지난 8월 22일 서울시청에서 일하면서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겨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탈북 화교 출신 공무원 유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판결에 대해 민변은 "사회적으로 국가정보원의 탈북자 간첩 조작 여부가 쟁점이 된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가 유씨 여동생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해 오빠 유씨에 대해 간첩, 밀입북, 편의제공 등 국가보안법 위반 공소사실 전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국정원의 간첩사건 조작 의혹에 관한 진상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역사적 판결"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민변은 "법원의 무죄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는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탈북자들에 대해서 탈북 경위 등에 관한 조사를 빙자해 변호인의 조력권 등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차단한 가운데 어떠한 법원의 통제도 받음이 없이 장기간에 걸쳐 간첩수사를 벌이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시급하게 개선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추적60분>, 국정원과 검찰 수사의 허술한 점 치밀하게 꼬집어

이후 KBS-2TV <추적60분>은 지난 9월 7일 유씨가 1심 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 취재한 내용을 방송했다.

<추적60분>은 방송에서 "8월 22일. 서울지방법원의 한 법정. 판사의 판결이 떨어지자 법정이 술렁였다. 피고인석에 있던 남자(유씨)는 흐느끼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특수잠입, 편의제공, 탈출, 회합, 정보 수집 및 제공 등 국가보안법 관련 혐의 모두 무죄!"라고 보도했다.

또 "서울시 공무원이 되면서 탈북자 사회에서 신화 같은 존재였던 한 남자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 만명의 명단을 북한에 넘긴 간첩이 되었었다. 8개월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이제는 탈북자 간첩사건으로는 '최초의 무죄사건'이 되었다"며 "한 개인이 극단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겪어야만 했던 간첩사건의 이면을 확인해 본다"며 방송했다.

방송에서는 국정원과 검찰의 수사가 허술한 점을 치밀하게 꼬집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방통위, 간첩 혐의 유OO씨 무죄 판결 보도한 <추적60분> '경고'

그러자 방송과 관련,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검찰의 항소 계획에도 불구하고 1심 판결에만 초점을 맞춰 피고인(유씨) 측에 편향된 내용을 방송했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아마도 국정원과 검찰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방통위는 지난 21일 전체회의를 열고, KBS-2TV <추적 60분>에 대해 법정제재를 의결했다.

<추적 60분>이 재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후 1심 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 방송하면서, 최종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유씨)의 입장만을 위주로 한 내용을 방송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방통심의위는 ▲ 현재 검찰이 항소 계획을 밝히는 등 재판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피고인의 입장 위주로만 단정적으로 보도한 것은 공정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고 ▲ 향후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 또한 담고 있어 사법권의 독립성을 침해할 위험이 존재한다며 '경고'를 결정했다.

하지만 ▲ KBS가 사법부의 판결내용을 중심으로 사안을 전달했고 ▲ 국정원이 답변에 소극적이어서 입장 반영에 한계가 있었으나, 답변서와 공소장 등을 통해 국정원의 입장을 전달했으며 ▲ 국가기관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공익 및 국민의 알권리와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으나 소수의견에 그쳤다.

김용민 변호사 "쫄지않고 끝까지 무죄 받아내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한 김용민 변호사는 분개했다. 김 변호사는 유씨의 민변 공동변호인단으로 참여해 중국을 수차례 오가며 국정원과 검찰이 제출한 공소사실을 반박하는 자료를 모으는 등 변호인으로 적극 활동했다.

더욱이 김 변호사는 정부기관인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까지 당한 상태였다. 국정원 직원들은 민변 공동변호인단 3명에게 각 2억 원씩 6억 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김용민 변호사는 25일 페이스북에 "재판 중인 사건을 보도했다고 <추적60분>이 징계를 받았다"며 "같은 사건에 대해서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탈북자 간첩이라고 보도했던 KBS뉴스는 징계를 왜 안 받나요?"라고 방통위를 질타했다.

그는 "언론의 자유가 중요하기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한 개인을 간첩으로 단정 짓는 보도와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 중 어느 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며 언론의 자유로 보호할 가치가 있을까요?"라고 따져 물었다.

김 변호사는 "국가는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어야 한다. 언제나 어떤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달라질 이유가 없다"며 "만약 <추적60분>이 피고인을 간첩이라고만 보도하고 국정원 비판이 없었다면 징계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매우 씁쓸하다. 아니 화가 납니다!"라고 탄식했다.

그는 또 "이 재판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라 언급하기 부적절해서 할 말은 많지만 다 못하겠다"며 "내일 국정원이 저에게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변론기일을 앞두고 있어 '욱'하네요"라고 변호인으로서 참고 있음도 내비쳤다.

김 변호사는 특히 "신성불가침의 국정원을 공격하면 언론도 징계를 받고, 변론 중인 변호사도 고소당하고, 검찰총장도 짤리고"라고 씁쓸해하며 "그래도 쫄지 않고 끝까지 무죄 변론하렵니다. 무죄니까 무죄 받아야지요"라며 유씨의 공동 변호인으로써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아내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는 끝으로 "<추적60분>도 힘내시길 바랍니다!"라고 응원했다. 

김용민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김용민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 신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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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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