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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인가, 평화의 역사인가. 이런 질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의 역사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인류는 전쟁과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는가.

브리태니커 사전에는 따로 '전쟁학'이라는 학문은 소개가 되어 있지 않고, '전쟁사'나 '전쟁론'을 설명하는 과정에 '전쟁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전쟁학이 학문으로 정립되지 못하는 이유는 인명을 살상하고 파괴하고 무찌르는 일련의 행위들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현실을 감안하여 군사학이라는 학문이 있을 뿐이다.

수많은 전쟁의 참화를 겪었어도 전쟁학을 두지 않은 것처럼, 평화학이란 학문도 그 소중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낯선 학문이다. 평화학이란 용어조차 생소하다. 전쟁의 위협이 상존하고, 아직도 분단과 분열, 차별과 대립, 빈부 양극화와 학벌사회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필요한 학문인데도 말이다.

평화를 깨뜨리는 전쟁, 가난, 차별, 무책임한 소비를 넘어서
▲ 정주진의 <평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 평화를 깨뜨리는 전쟁, 가난, 차별, 무책임한 소비를 넘어서
ⓒ 다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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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에게 '함께 사는 평화로운 세상'에 대해 얘기하는 책 <평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를 펴낸 저자 정주진이 우리나라 평화학 1호 박사라는 사실은 그래서 반갑고 다행스럽다. 그러므로 이 책은 소위 평화학을 전공한 학자이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실천하는 저자가 펴낸 첫 번째 평화 교과서라고 할 수 있겠다.

평화학 박사가 쓴 글이라서 개념과 이론을 주로 소개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매우 쉬운 언어로 여러 가지 사례들을 많이 보여주면서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하고 있는데, 청소년 뿐 아니라 누구나 읽어도 공감이 되고 배울 점이 많아 평화감수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도 평화를 반대한다고 하지 않지만 평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평화가 오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므로.

평화의 반대는 전쟁?

저자는 질문한다. 평화의 반대가 무엇이냐고.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라고 답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평화의 반대는 '폭력'이다. 물론 전쟁은 가장 직접적이고 위험한 폭력이다. 하지만 전쟁만 없으면 평화로운 것이냐, 하는 물음에 답하기 어려운 건 사회의 구조를 통해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과 사람들의 인식과 편견에서 오는 문화적 폭력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직접적 폭력이야 누구나 금방 알 수 있지만 도리어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폭력은 잘 알아채기가 어렵고 그 영향도 더 심각하고 오래가며, 치료하기 힘든 정신적 고통까지 주기 때문에 이러한 폭력을 제대로 알고 없앨 수 있어야 정말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폭력이 생기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의 차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힘은 신체적인 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이, 성별, 수입, 교육 수준, 지위, 정보, 국적, 인종 등이 모두 힘의 원천인 것이다. 그러나 힘의 차이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름'일 뿐인데, 이 '다름'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은 것과 부족한 것으로 구분할 때 힘의 등급이 매겨지고, 그 힘이 다른 사람에게 작용할 때 폭력이 된다는 것이다.

전쟁은 모두를 패배자로 만든다

전쟁의 진정한 승자가 있을까. 전쟁에 이기고 지는 승부로만 볼 것 같으면 승자와 패자가 있겠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와 막대한 전쟁 자금과 파괴된 세상은 승자냐 패자냐 할 것 없이 모두를 패배자로 만든다. 후유증을 겪는 승자는 패자나 마찬가지다. 20세기 들어 1, 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아프칸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어느 전쟁인들 참혹하지 않은 전쟁이 어디 있으며, 거기에 도대체 승자가 어디 있는가.

생명을 빼앗아 가고 삶을 파괴하는 전쟁은 절대로 예쁘게 포장할 수가 없다. 특히 전쟁 영웅이란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쟁에서 영웅적인 행동을 한 사람이라면 결국 다른 편에 큰 피해를 주고 적을 많이 죽였다는 뜻이다. 전쟁 중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인간을 죽인 행동을 영웅적 행동이라고 칭찬할 일은 아니다. 영화감독들이 전쟁 영웅이 나오는 영화를 더 이상 만들지 않는 이유는 그런 인류애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전쟁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전쟁의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본문 62쪽) 

전쟁에 관한 저자의 분명한 인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에게 평화를 말하면서 가난과 잘못된 소비, 그리고 환경파괴와 차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실상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며, 그렇기에 이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어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음도 분명히 하고 있다.  

가난하면 평화로운 세상도 없다

우리나라의 2013년 시간당 최저 임금은 4,860원이다. 저자는 2012년 7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최저 임금으로 살 수 있는 햄버거(빅맥)는 1.3개라는 통계를 제시하며 이를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 노르웨이는 시간당 최저 임금이 아주 높은 편이지만 물가 또한 비싸다. 그런데도 3개를 살 수 있고, 호주에서는 3.5개, 역시 물가가 매우 높은 영국에선 2.6개, 우리와 경제 수준이 비슷한 일본도 2개를 살 수 있다.

왜 우리나라는 경제규모가 커지고 점점 부자 나라가 되어 가는데도 가난한 사람은 줄어들지 않을까. 반대로 경제상황이 안 좋아질 때도 왜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는 걸까. 저자는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건 부(富)가 제대로 나눠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분배 정의에 대해 언급한다.

가난은 현재의 삶은 물론 미래까지 빼앗아 가는 가장 위험한 폭력이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이 평화롭지 못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사는 사회, 국가, 세계 전체의 경제 구조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잘못된 경제 구조를 만든 책임이 없는데도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평화로운 세상이 되려면 폭력적인 경제 구조가 사라져야 한다. 대신에 모든 사람들이 경제 발전의 혜택을 누리는 평화로운 경제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본문 104쪽)

평화는 불편한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

평화를 말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이러한 폭력적인 경제 구조 문제는 우리에게 평화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님을 새롭게 심어준다. 저자는 또한 환경파괴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이며, 우리가 소비하는 풍요로움 속엔 가난한 나라 아동 노동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음을 함께 지적하며, 폭력의 근원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아동 노동에 시달리는 5∼17세 사이의 아동은 2억 1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아동들은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장에서, 과테말라와 필리핀의 사탕수수 밭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인도의 면화 농장에서, 뙤약볕에 노출되고 농약에 중독되며 가혹하게 착취 당하면서 일한다. 이 어린 아이들의 땀과 눈물로 생산한 초콜릿과 사탕, 면셔츠 등을 우리는 값싸게 먹고 입을 수 있다. 이 아이들의 불행에 우리는 빚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공정무역과 착한 여행이 평화를 앞당기는 길임을, 기후 변화의 결과로 가난한 나라가 먼저 큰 고통을 당하고 있으므로, 탄소를 줄이기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과 함께, 개개인이 일상생활 속에서 에너지와 소비를 줄여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는 일이 평화를 실천하는 길임을 알린다.

그렇게 보면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참 불편한 삶을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선입견에 대해 저자는 도리어 이렇게 답한다. 평화롭지 않아서 불행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겠다고 노력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고. 자신의 나이를 내세우지 않고 어린 친구들에게 공손하게 대하려고 노력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고.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에어컨, 난방기 사용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할 때 더 편안함을 느낀다고.

자신을 유혹하는 초콜릿을 뿌리치고, 십 년이 넘은 면 티셔츠를 버리지 않고 입을 때도, 채소나 생선을 대형마트가 아닌 작은 동네 시장이나 가게에서 사려고 할 때도 편안함을 느낀다고. 이는 같은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평화롭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일 뿐이라고 말이다.

평화는 노력을 통한 배움이며 과정이다

그래서 저자는 평화란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노력해야 얻을 수 있기에, 평화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했다. 폭력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폭력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며, 평화로운 세상이 되려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는 우리를 일깨운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려면 가장 먼저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 폭력을 잘 알고, 폭력을 절대 지지하거나 폭력에 동참하지 말아야 하며, 더 나아가 폭력을 막고 없애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생활하는 가정, 학교, 직장, 마을 등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본문 187쪽)

지금도 우리 사회는 폭력이 만연되어 있다. 경제민주화가 물 건너가면 다시 잘못된 경제 구조로 인한 폭력이 더욱 뿌리 내릴 것이고, 국가 권력의 불법은 일시에 수많은 시민들과 약자들의 평화를 깬다. 지역과 학력 차별은 이미 우리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교사가 학생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지위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불통과 강요의 폭력을 일상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이미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무뎌진 우리의 평화 감수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이제 평화를 배워야 한다. 평화를 연습해야 한다. 평화를 나부터 실천하고 수많은 국가 폭력과 사회구조적 폭력, 이윤추구를 위한 착취의 폭력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평화를 배우는 좋은 기회라고. '평화는 과정'이라고.

덧붙이는 글 | <평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 정주진, 다자인, 2013년 10월 15일, 1만 1천 원



평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

정주진 지음, 다자인(2013)


태그:#평화학 1호 박사, #평화와 폭력, #아동노동, #평화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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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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