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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가 모여 2014년 정부 예산(안)을 검토했습니다. 낭비성 예산으로 선정된 사업을 선별해 알리고, 시민들의 직접 투표도 진행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국회에 예산 삭감을 요구할 계획입니다. 또한 국회의원 '쪽지예산'이나 봐주기 사업들도 감시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말]
알바연대 등 최저임금 1만원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6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가 보이는 경복궁 신무문 앞에서 사용자 단체의 최저임금 동결안을 규탄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알바연대 등 최저임금 1만원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6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가 보이는 경복궁 신무문 앞에서 사용자 단체의 최저임금 동결안을 규탄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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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고용정책으로 '시간제 일자리'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공공부문을 앞세워 민간부문까지 확대하려 한다. 정부 뜻대로 되면 한국은 시간제 일자리 천국이 된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시간제 근로자는 단시간 근로자이면서 비정규직이다. 실제로 2013년 현재, 시간제 일자리 175만8000개 가운데 105만5000개(60%)는 임시직, 53만8000개(30.6%)가 일용직이다. 반면 상용직은 16만5000명(9.4%)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에 공공부분에서 1만6500명을 시간제로 채용(시간제 공무원 4000명, 국가공공기관 9000명, 교사 3500명)할 계획이다. 2011~2013년에는  연평균 5만 명씩 시간제 일자리가 증가했다. 계속 느는 시간제 일자리, 먼저 실상을 통해 현실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시간제 일자리의 실상

고용노동부는 2014년 예산안을 통해 '반듯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강력히 추진할 뜻을 밝혔다. 무려 16만 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국회 예산정책처는 "시간제 일자리를 위해 기업에 인건비·컨설팅·사회보험료 등을 지원하고 있으나 실제 반듯한 일자리 실적은 미미하며 그 계획도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액도 조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2013) 연구위원은 양질의 일자리 기준으로 ▲노동자의 자발적인 선택 ▲지속적인 근무 가능 ▲공적연금 및 고용보험 제공 ▲정규직의 70% 이상인 시간당 임금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의 지위와 노동조건은 어떨까. 비정규직 일자리 중에서도 고용불안, 임금수준, 법적보호 제외 등에서 가장 심각한 상태에 놓여있다.

이명박 정부도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면서 상용직 시간제(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확대하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창출한 상용직 시간제 노동자의 92.3%는 임시·일용직이었다. 이는 시간제 일자리가 사실상 비정규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는 고용률 70%를 목표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내세웠다. 하지만 새로 도입되는 시간제 공무원은 오래 일할수록 전일제 공무원과 비교했을 때 임금에서 '더블 스코어'가 난다.

최근 공공운수노조는 '시간선택제 일반직 공무원 임금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전일제(8시간)와 시간제(4시간) 공무원의 임금(기본급)을 비교 분석한 결과, 전일제 1년 차 임금의 50%인 시간제 공무원의 임금이 10년 차 땐 41%, 20년 차 땐 32.1%까지 추락했다. 

시간제 공무원 채용에서 육아·가사에 따른 퇴직자(주로 여성), 퇴직 고령자 등을 특정하지 않으면 또다른 노동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일반 구직자, 특히 청년 구직자가 대거 쇄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고용률 70%에 급급해 정작 70% 이상의 여성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현실을 외면한다.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 시간제 일자리는 도소매업이나 숙박, 요식업, 교육서비스업,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 등에 몰려 있는 저임금·불안정 일자리이다. 게다가 최저임금 미만 일자리의 63.4%(통계청 부가조사)가 서비스직·판매직·단순노무직에 집중돼 있다.

이런 질 낮은 일자리는 경력이 단절된 30~40대 여성의 노동시장 재진출을 막는 장애요인이다. 따라서 시간제 일자리는 여성을 가장 열악한 노동 조건에 내모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시간제 일자리는 '비정규-단시간-저임금' 일자리다.

고용노동부는 2014년 예산안으로 14조4790억 원을 편성했다. 이 중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창출 지원' 예산은 2013년 대비 122억 원 증가한 227억 원이다. 세부 항목을 보면  인건비 지원 195억 원, 컨설팅 지원 17억 원, 운영비 15억 원이다. 여기에 사회보험료 지원 101억 원까지 합하면,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 예산은 총 328억 원에 이른다. 

이 사업에 대해 국회 예산정책처는 과거 예산 집행률이 저조했고, 신규 고용창출 효과가 미흡하다며 예산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인건비 지원도 집행률이 너무 낮아 실효성에 의문이 간다. 2010년부터 추진되었으나 정부가 의도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추진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11년 139명, 2012년 866명, 올해는 8월까지 859명 지원에 머무르고 있다.

또  예산정책처는 시간제 일자리의 시간당 평균임금(8143원)은 정규직의 시간당 정액급여(1만2863원)의 63.3%에 불과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아님을 따끔하게 지적했다. 

컨설팅 사업도 마찬가지다. 컨설팅을 받은 업체 중 실제 일자리를 창출한 업체 비중이 적어 사업 효과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1~2012년 동안 컨설팅을 받은 사업장 208개 중 실제 일자리를 창출한 사업장은 57개소(27.4%)에 불과했다.

알바연대 등 최저임금 1만원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6월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사용자 단체의 최저임금 동결안을 규탄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이들은 '일자리는 최고의 복지'라는 대형 현수막 위에 '수백억 배당잔치, 조세피난처로 빼돌린 돈으로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이라는 현수막을 펼치며 사용자 단체의 동결안을 철회와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했다.
 알바연대 등 최저임금 1만원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6월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사용자 단체의 최저임금 동결안을 규탄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이들은 '일자리는 최고의 복지'라는 대형 현수막 위에 '수백억 배당잔치, 조세피난처로 빼돌린 돈으로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이라는 현수막을 펼치며 사용자 단체의 동결안을 철회와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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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험료 지원은, 상용형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한 기업에 국민연금·고용보험 보험료의 고용주 분담액을 2년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4년 신규로 101억 원이 편성되었다. 하지만 이도 2014년 정부가 계획한 16만 명 일자리 창출 계획이 너무 과다해(2011~2013년 평균 5만 명 증가)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네덜란드 사례에 대한 올바른 이해

박근혜 정부는 네덜란드의 시간제 일자리 사례를 거론한다. 네덜란드에서 시간제 고용이 높은 이유는 전일제 정규직에 비해 거의 차별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즉 비자발적 시간제 노동이 매우 낮고, 전일제와 시간제 노동의 임금격차가 거의 없다.

네덜란드는 1993년 '동등 처우법'(Equal Treatment Act)을 통해 시간제 비정규직에 대해 노동시간에 비례한 동등 대우의 원칙을 수립했다. 그 이전부터 노동조합은 시간제 노동자에 대한 동등한 처우를 명시한 단체협약을 체결해왔다. 즉 동등 처우 원칙을 노조의 단체협약과 법제도로 보호한 것이다. 여기에 사회안전망이 뒷받침 됐기에 시간제 노동이 확대될 수 있었다.

2012년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서 '취업자를 제외한 15세 이상 인구' 중 '시간제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14.2%에 불과했다. 이는 시간제 일자리를 바라보는 한국 국민들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정부는 시간제를 통한 일자리 숫자 늘리기에 급급할 게 아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우선이다. 우선, 최저임금 현실화, 비정규직(당연히 기존 시간제 일자리 포함)의 정규직화 등 노동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이준협 연구위원은 양질의 일자리 조건 중 하나로 '노동자의 자발적인 선택'을 꼽았다. 하지만 올해 민주노총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시간제 노동자 중 55%는 비자발적으로 해당 일자리를 택했다고 답했다.

노동자의 수요도 저조하지만 기업의 수요 또한 거의 없기도 하다. 저임금 숙련노동자를 전일제로 사용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시장이 넓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해도 기업이 '상용형 시간제 노동자'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정부의 발상 전환과 현실에 기초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안병순씨는 민주노총 정책연구위원입니다.



태그:#비정규직, #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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