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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가을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단풍이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 언니와 4살, 6살 조카와 함께 전주 한옥마을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비 내리는 쌀쌀한 한옥마을을 걷고, 따뜻하고 시원한 콩나물 국밥도 먹었습니다.

한옥마을에 가면 누구나 먹는다는 주전부리도 했습니다. 배는 빵빵하니 불렀지만, 먹어도 먹어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것은 그곳이 여행지였기 때문입니다. 은행나무가 더 이상 노랄 수 없을 정도로 노란 그 곳에서, 그 노란색으로 물든 공기 속에서 먹는 주전부리들. 먹을 수 있는 기쁨, 그 기쁨을 마음껏 누리자.

간병인 아주머니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전주나들이 - 순대국밥
 전주나들이 - 순대국밥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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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오늘은 또 무얼 먹을까' 즐거운 고민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를 돌봐주시는 간병인 아주머니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언니와 제가 여행을 갔다는 걸 알고 계신 간병인 아주머니께서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걸어오셔서 순간 긴장이 되었습니다.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신 아버지는 이미 몇 번씩 위험한 상황에 계셨던지라, 예상치 못한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는 항상 불안한 상상으로 치닫게 만듭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계셨던 아버지가 갑작스런 경련과 함께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경련이 심해서 마비 증상이 왔고, 병원에서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답니다. 보호자를 대기시키라는 얘기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상황을 전해주라고만 했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알수 없는 불안감이 밑바닥부터 스멀스멀 밀려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병원에서 어떤 전화가 걸려올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었지만, 막상 모든 일은 현실이 되어봐야 내 마음의 준비가 헛구름 잡는 식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습니다.

여행을 포기하고 짐을 챙겨 병원으로 가야하는 건지 빠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다시 주치의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래도 뇌출혈이 의심되니 보호자가 허락하면 CT를 찍겠다고 했습니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아버지가 의식도 돌아왔고, 말씀도 하신다고 급하게 병원에 올 필요없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CT를 찍고 MRI를 찍고, 그 결과가 나오는 월요일까지 불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뇌출혈이 심할 경우 아버지의 상황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출근을 하고 24시간 대기조의 상황이 될 수도 있는 만큼 해야 할 일들을 미리미리 해두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삶이란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월요일 퇴근길에 언니랑 통화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극소량의 뇌출혈이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보통 사람은 그 정도의 극소량의 뇌출혈일 경우 그 상태로 굳어버리는데, 아빠는 워낙 혈소판 수치가 바닥이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현재는 지켜보자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전주나들이 - 만두
 전주나들이 - 만두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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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아버지는 건강의 회복보다는 생명유지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입퇴원을 반복하고 계신 아버지는 하루하루 몸이 안좋아지고 그냥 하루하루 버티고 계실 뿐입니다. 하루종일 누워만 계신 아버지에게 삶이란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날 아침, 뒤로 쓰러지시면서 그 순간의 일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문득 짧은 순간의 혼수 상태였지만 그 순간을 경험해버린 아버지에게 매순간 매순간이 얼마나 두려우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을 감을 때도 다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껴도 이대로 또 쓰러져서 다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아버지를 사로잡고 있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내가 눈을 뜰 수 있나, 내가 소리를 들을 수 있나, 내가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나, 얼마나 두려우실까요. 그건, 살아있어도 온전히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삶이지 않은가 하는 주제넘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월요일 나는 살아있어서 출근을 했고, 살아있어서 퇴근을 하고, 살아있어서 걷고, 살아있어서 배가 고프고 살아 있어서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습니다. 밥을 먹는다는 것, 나는 살아있어서 밥을 먹는데, 나는 밥을 먹는데…. 그 순간 언니의 얘기가 뇌리를 '쿵' 쳤습니다.

언니는 아버지가 식사는 잘 하시더라고 전해주었습니다. 영양제를 계속 맞아야하지만 그래도 식사는 맛있게 잘 하시더라고. 순간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버지가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비록 침대에 누워만 계시지만, 그래도 다시 깨어나셔서 너무너무 다행이다.

흰쌀밥, 시래기 된장국, 미나리 나물... 세상과 연결된 아버지  

먹는다는 것. 먹는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과 관계 맺는 수많은 갈래 중에 하나입니다. 아버지는 짬뽕을 좋아하고 엄마는 우동을 좋아했습니다. 동생은 닭튀김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 음식들은 각자가 세상과 관계 맺는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흔히들 맛없다 얘기하는 병원 밥을 드시면서, 여전히 세상과 관계를 맺고 계신 거였습니다. 흰쌀밥을, 시래기 된장국을, 또 미나리 나물을 드시면서 세상과 여전히 연결되어 아버지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전주나들이 - 초코파이
 전주나들이 - 초코파이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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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으로 초코파이를 드시면서, 초코파이를 좋아하게 된 어느 순간의 삶과 여전히 연결되어 그 병원 침대 위에서도 이 지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아버지의 축제를 즐기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을날의 전주에서 먹을 수 있었던 음식들을 즐겼던 것처럼, 아버지는 비록 소박하지만 이 지상에서만 드실 수 있는 음식들을 맘껏 즐기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도 주제넘게 그 삶의 가치를 논할 수 없는 하나의 삶을 살고 계신 거였습니다.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하루라도 더 이 지상의 음식을 드실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상의 음식을 즐기는 것도 삶의 기쁨 중 하나 아니겠냐고. 아직은, 그런 기쁨을 느낄 수 있으니 살아계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에게 먹고 싶은 음식 맘껏 드시게 해드리라고 했던 의사의 얘기. 먹고 싶은 걸 왜 참냐고,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순간이 있다고 했던, 이제는 곁에 없는 동생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먹는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태그:#전주,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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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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