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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앞둔 주말 저녁, 미국 뉴욕의 번화가에서 벤자동차에 장착시킨 스크린 화면을 통해 영상이 방송되고 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거나 눈물을 흘린다. 어떤 영상이길래 그런 걸까? 모피 농장에서 도살되는 밍크, 여우, 라쿤(아메리칸 너구리) 등을 몰래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다.

입과 항문에 삽입된 금속에 흐르는 전류에 감전되어 죽는 동물들. 몸 속을 새까맣게 태워 엄청난 고통을 주지만 모피에는 흔적이 남지 않는, 업계의 이윤을 위한 잔인한 방법이다. 자신이 도살되는 모습을 찍는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동물의 눈망울. 나는 그 눈을 당당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고개가 숙여진다.    

다큐멘터리 <증인>(Witness)의 마지막 장면이다. 주인공 에디 라마(Eddie Lama)는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잔인무도한 모피의류 생산의 증인이 되어주고 그런 고통을 막는 데 참여해달라고 말한다. 참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 자신부터 모피 의류를 구매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는 것이다. 사지 않으면 팔지도 않을 테니까. 블로거 '책공장'의 말마따나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모피에 대한 가장 정직한 시선'일 것이다.

에디는 벤을 개조해서 장착시킨 스크린을 통해 뉴욕 시내에서 모피의 현실을 알린다.
▲ 스크린을 장착한 에디의 자동차 에디는 벤을 개조해서 장착시킨 스크린을 통해 뉴욕 시내에서 모피의 현실을 알린다.
ⓒ TribeofHear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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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시선이야말로 모피에 대한 가장 정직한 시선일 것이다.
▲ 모피의 잔인한 현실에 눈물짓는 뉴욕 시민 이들의 시선이야말로 모피에 대한 가장 정직한 시선일 것이다.
ⓒ TribeofHear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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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의 사람들이 "모피를 입느니 아무것도 입지 않겠다"라고 외치는 해외의 모피반대 캠페인은 더 이상 색다른 일이 아니다. 모피 생산의 잔인함을 전혀 모르던 시절, 나는 그런 캠페인에 대한 기사를 접했을 때 대체 모피가 뭐길래 저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해하기보다는 시위자들이 유별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반대하는 그들의 진정성을 이해한다.

동물보호단체 웹사이트나 유튜브를 통해 모피 생산의 잔인함을 목격한 사람은 그리고 타자의 고통에 최소한의 공감과 연민을 느끼는 사람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 모피반대 캠페인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 연예인으로서 모피 거부라는 쉽지 않은 선언을 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죽을 벗기는 중국 모피의 실태가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된 후, 선망의 대상으로서의 모피의 이미지는 희박해지고 있다.

국내 모피반대 캠페인은 한 벌에 수십 마리의 시체가 달린 모피 코트에 대한 반대를 넘어 옷깃에 달린 장식용 모피까지 반대하는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에 따르면, 장식용 모피는 소비자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구매하게 되어 모피 코트보다 회전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영상 보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 "모피에 대한 정직한 시선"

모피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소, 돼지, 닭을 비롯한 '식용동물'의 고통을 거론하며 "먹으려고 죽이는 거나 입으려고 죽이는 거나 뭐가 다르냐?"고 반박하곤 한다. 얼핏 듣기엔 그럴 듯해도, 세상의 고통을 늘리기보다 줄이자는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한 말이다.

나의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고작 치장을 위해 고통을 주는 행위라도 그만두자는 말에 식용동물의 고통으로 응수하는 태도는 하나의 고통으로 다른 고통을 물타기하는 진정성 없는 행동인 것은 물론, 내 고장 불우이웃을 돕는 사람에게 "전세계 불우이웃까지 전부 도와주지 그래?"라고 비아냥대거나, 폭력에 대한 반대에 대해 "살인도 하는데 폭력이 대수냐?"며 합리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도적인" 모피를 입으면 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인도적인 모피가 정말로 존재할까? 광대한 영역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야생의 동물을 비좁은 우리에 가두어 기르는 것, 종 특유의 본능을 발현할 수 없는 환경에서 기르는 것 자체가 학대다. 그 결과 모피 농장의 동물들은 감금 스트레스로 미쳐버려 우리 안을 뱅글뱅글 도는 정형행동을 보이곤 한다.

도살 방식도 학대이기는 마찬가지다. 앞에서 언급한 전기도살 방식과 중국에서 산 채로 피부를 벗기는 방식은 말할 것도 없고, 일산화탄소로 기절시키는 방식도 고통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일산화탄소가 동물을 잠시 동안만 기절시켜 피부를 벗기는 동안 의식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성학자 오한숙희씨가 "윤리적으로 획득한 모피"라는 표현을 "네모난 동그라미"라는 말에 빗대어 반박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모피 때문에 고통받는 동물의 처지에 개,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을 대입시킨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대할 행위가 '비즈니스'와 '패션'이라는 미명 하에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몇 년 전 어느 의류 쇼핑몰이 고양이 모피 의류를 판매했다가 애묘인들의 극렬한 항의에 판매를 중단했는데, 그런 반대를 모피 전반으로 확산시키지 못한 애묘인들의 의식이 아쉽다. 모피 때문에 희생되는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개, 고양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웨스트 할리우드에서는 모피의류 판매가 금지되었다고 한다. 꾸준한 캠페인을 통해 성숙한 시민의식이 법제도의 변화를 불러온 것이다. 물론 "내가 이 정도는 입는 사람이다"라는 과시욕을 위해 모피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빈약한 자존감은 달리 해결할 문제겠지만, 모피에 대한 시선 자체를 바꾸는 노력을 계속하다 보면 모피가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되어 입고 싶어도 자제하는 풍토가 조성될 것이다.  

'인조모피' 홍보가 모피근절 운동의 대안이 되려면?

인조모피의 적극적인 홍보를 모피근절 전략으로 삼는 동물보호 단체도 있다. 소비자에게 인조라는 대안을 제시하여 진짜를 근절한다는 캠페인의 취지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진짜와 구분하기 어려운 인조모피 홍보에는 모쪼록 주의를 기울여주었으면 한다.

에리카 퍼지는 <'동물'에 반대한다>(사이언스북스)라는 책에서 "모피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사람들이 모피를 입는 데 편안함을 느끼는 한 가지 이유는 진짜모피와 가짜모피를 구별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인조모피는 대안을 제공해주기보다는 모피를 입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동물의 고통에 반대하여 인조모피를 입더라도, 그것을 입은 내 모습을 거리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보았을 때 한 눈에 인조임을 알기 어렵다면, 인조모피는 사람들에게 (진짜 또는 인조 여부에 상관없이) '모피' 자체에 대한 욕망을 부추겨 애초의 목적에 역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피를 '멋'으로 여기는, 특히 그 중에서도 진짜모피의 비윤리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그것이 '인조'라는 사실이 아니라 '모피'라는 사실이기 때문에 진짜모피를 구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진짜와 구별되지 않는) 인조모피를 패션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나도 인조모피 한 벌 사입어야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나도 모피 한 벌 사입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진짜모피를 구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니먼 마커스, 닥터제이스닷컴, 에미넌트 등의 유명 의류업체들이 동물보호의식 상승으로 진짜모피를 거부하는 여론을 의식하여 진짜모피를 인조모피로 속여 판매하다가 적발된 사례가 있다는 사실(관련기사 보기), 그리고 요즘에는 진짜 모피를 염색해서 인조와 구별하기 어렵게 판매한다는 사실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인조모피 홍보의 취지는 인조모피를 많이 입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조모피 판매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진짜모피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피에 대한 갈망은 내버려둔 채 인조모피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모피근절을 위해 유효한가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인조모피가 진짜모피에 대한 수요를 실제로 감소시켰는가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인조모피는 누가 봐도 인조임을 알 수 있는 모피일 것이다. 또는 미래에 진짜모피 생산과 판매가 금지되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된 후에는 인조마저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진짜 대신 인조를 입는 것 자체는 아름다운 선택이지만 우리는 거리에서 진짜와 인조 모피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 임순례 감독의 모피반대 포스터 진짜 대신 인조를 입는 것 자체는 아름다운 선택이지만 우리는 거리에서 진짜와 인조 모피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 PETA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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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서 킹 목사는 "힘이 곧 정의"라는 사고방식으로 유지되는 억압적인 시스템들이 서로를 강화하며 생겨나는 방식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디서 발생하든 불의는 세상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인간 의식이 진보하면서 신분제, 성차별을 비롯한 억압적인 관습이 폐기되고 있듯이, 패션을 가장한 폭력도 인류가 품격 있고 세련된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폐기해야 할 관습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에 언급된 다큐 <증인(Witness)>은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 주소 : http://youtu.be/lTs5NWzs5l8



태그:#모피, #잔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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