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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환불' 쉬어진다? 쉬워진다?
 '보상,환불' 쉬어진다? 쉬워진다?
ⓒ MBC뉴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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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플란트 시술이 400만~500만 원 하는 고가의 시술인데다 시술 후 부작용 등이 있어도 보상과 환불이 쉽지 않아 분쟁이 끊이지 않아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준약관을 마련했다는 2013년 11월 15일자 아침뉴스 화면을 캡처한 것이다. 7시 아침뉴스를 보며 밥을 먹던 고3 딸이 이 뉴스가 나오자마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엄마! '쉬어진다'가 아니라 '쉬워진다'가 맞지 않아요? 쉬워진다고 알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보는 텔레비전이 틀리니, 맞나 틀리나 좀 헷갈리네."

이처럼 묻는 딸에게 "그래 당연히 '쉬워진다'가 맞지. 엄마가 알기론 '쉬어진다'라는 말은 없어. 그러니까 잘못 쓴 거지!"라고 답해줬다.

"네가 우리말에 대한 개념이 있기 때문에 잘못 쓴 것을 잡아낸 거지. 개념이 부족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넘기고 말거야. 그런데 매우 중요한 일이야. 제대로 쓴 건지 어떤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잘 모르는 사람들은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할 텐데 그냥 두면 당연한 것처럼 쓰일 수 있잖아. 알지? 말의 전파력을 말이야."

아울러 앞으로도 이처럼 사소하게 흘려 넘기지 말기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말 씀씀이에 좀 더 신경 쓰고 밝아지기를, 나아가 우리 딸처럼 우리말 사용에 좀 더 신경 쓰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며 이처럼 덧붙이며 칭찬해줬다.

"이윤기? 엄마가 며칠 전에 알려준 사람 있잖아. 딸과 TV 보면서 잘못된 말이 나오면 시시콜콜 따지고 못마땅해 했다는 그 작가 선생님 말이야. 엄마가 읽어준 그 글이 생각난다. 그렇게 많은 책을 낸 분이고, 그렇게 글을 잘 쓴 분이면 TV 보며 못마땅할 때가 참 많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저렇게 쉬운 말도 틀리니 말이야. 그러니 얼마나 많이 보였을까. 엄마가 왜 TV 보며 그렇게 따지는지 이해도 좀 되고."

나의 칭찬에 우쭐해진 딸은 며칠 전 내가 읽다가 딸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읽어준 고 이윤기 작가의 글과, 작가의 딸이 아버지 이윤기(1947. 5. 3. ~ 2010. 8. 27.)의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회고한 이야기가 생각났는지 이처럼 말한다.

김영삼이 '이해주의자'라니, 뭘 이해한다는 거지?

"아마도 우리 팀이 가뿐히 승리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버지는 TV에서 '보여집니다'와 같은 말이 나오면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질색을 했다.

"이럴 때는 '보인다'고 하면 되지, '보여진다'고 할 필요가 없어. 응? 다희야."

질색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버지는 이렇게 곁에 앉은 나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파란 눈의 며느리'같은 방송 속 단골표현도 아버지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키가 180이 넘는 사람을 키 큰 사람이라고 하지 큰 키의 사람이라고 하지 않잖니?"

우리식 표현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지적질은 이어졌다. 맛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리포터가 음식을 맛보고 나서 평을 하려고 하면 아버지는 선수를 쳤다.

"담백하겠지."

상상력과 표현의 부재를, 의미가 광범위하면서 모호한 단어로 대체하는 리포터들에 대한 비아냥이었겠지 싶다. 난 가끔은 좀 조용히 TV만 보고 싶었다.
-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서문(이다희|번역가) 중에서


며칠 전 딸에게 읽어준 책은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웅진지식하우스 펴냄)다. 이윤기 작가의 수많은 글들 중에서 '글쓰기'와 '번역' 및 '말하기'에 대해 쓴 글들만을 간추려 묶어 최근 출간된 책이다.

이윤기 작가의 딸인 번역가 이다희씨가 서문을 썼다. 오늘 아침의 우리 집처럼 TV를 보며 잘못된 표현이 보이면 지적하거나 비아냥거리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 자식은 저러지 말기를 바라는 생전의 이윤기 작가 모습이 지레짐작되어 글을 읽는 중 나도 모르게 웃음이 일고 말았다. 이윤기 작가만큼은 아니겠지만, <오마이뉴스>에 글쓰기를 해온 지난 몇 년 동안 나도 꽤나 보이고 들리는 대로 시시콜콜 따져들곤 했기에 더 와닿았다.

경상도 사람들은 '으'와 '어'를 구별해서 발음하는 데 서툴고 특히 복모음 발음에 취약하다. 잡지사 기자 노릇을 하던 시절, 나는 "선생님, 이젠 그만 쓰겠으요"로 끝나는 부산 여고생의 편지를 받은 적도 있다. (줄임) 경상도 출신의 높은 분이 "우리 경제 이깁니다" 하니까 부하들이 모두 박수를 쳐 그 높은 분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는 농담도 돌았다. 그럴 수 밖에. 높은 분이 "우리 경제 위기입니다"라고 했는데 부하들은 경제가 문제없이 난국을 이기게 되는 줄 알고 외람되게도 박수를 친 셈이니까. 내 아내가 나에게 '이해주의자'가 무슨 뜻인지 물은 적이 있다. 글쎄, 누가 그러던데? 김영삼 대통령. 아, 그 양반은 의회주의자야. 우리 사이에 오간 대화다. 실화다. 고치려고 애를 쓰면 될 텐데 안타깝다. 경상도 사람들은 또 '의'자를 발음하는 데도 서툴다. 그래서 경상도 출신 검찰총장은 국민의 '어흑'을 씻어 주기위해 동분서주하겠다고 한다. 씻어주는 것은 좋은데 기왕에 씻어줄 바에는 '의혹'을 씻어주면 더 좋을 텐데 싶었다.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경상도 사람인 주제에 되게 까다롭게 군다는 핀잔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언어는, 살짝 보수적인 사람들이 이렇게 까다롭게 굴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서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경향이 있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우리말 제대로 표현하고 발음하기' 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라는 것을 알려주고, 딸도 작가의 글을 좋아하길 바라면서, 그리고 딸도 알고 있으면 좋겠단 생각에(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우리말 관련 에피소드를 유독 재미있게 녹여 씀과 동시에 신랄하게 지적하는 '우리말 제대로 표현하고 발음하기(217~227쪽)'란 글을 읽어줬다.

작가 이윤기가 남긴 39편의 에세이 같은 집필노트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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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다른 글도 좀 읽어주면 안 되나?"라며 작가의 지적을 재미있어 했다. 그래서 글과 관련된 서문(먼저 인용한)까지 읽어준 것이었다. 그날 내가 읽어준 글이 딸에게 꽤 인상 깊었나 보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다가 틀린 우리말 표현이 나오자 예전처럼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지적까지 하니 말이다.

경상도 땅에 태어났기 때문에 표준말을 제대로 발음할 기회를 아예 차단당한 입장의 경상도 사람들에게 경상도 사람들의 발음을 가지고 그다지 좋지 못하게 왈가왈부하는 이 글이 다소 껄끄럽게 읽힐지도 모르겠다. 물론 경상도 사람들의 치명적인 발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글의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보다는 우리말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고 지켜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지만 말이다.

이윤기 작가의 고향은 경상도(군위)다. 작가 스스로 '우리말 발음에 치명적인 결점을 원죄처럼 안고 살아간다는' 그 경상도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많은 경상도 사람들이 그렇듯 작가 역시 상경한 후 한동안 '괄호'를 '갈로'로 알고 있어서 놀림감이 되곤 했단다. 이런 놀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고치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했기 때문', 아마도 작가가 경상도 출신이 아니라면 이런 지적은 힘들었으리라.

일반인들이야 그렇다 치고, 작가의 글 속 '우리 경제 위기입니다'를 '우리 경제 이깁니다'에 가깝게 말하는 '경상도 출신의 높은 분'이나 '의혹'이 아닌 '어흑'을 씻고자 '너력'하겠다는 '경상도 출신 검찰총장'처럼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들은 필히 노력해 반드시 고쳐야 할 것 같다. 

때문일까. 경상도 사람들의 치명적인 발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 '갈려고'나 '먹을려고', '웃을려고'처럼 불필요하게 'ㄹ'을 끼워 넣어 말하는 현상 ▲ 공식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다름과 틀림의 혼용문제 ▲ '보여지다'나 '되어지다, 되어진' '…에 있어서'와 같은 이상스런 쓰임새 ▲ R과 L의 우리말 잘못 표기 ▲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은 방송이나 공식 인사들의 잘못된 우리말 씀씀이와 그릇된 표기 등,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그릇된 우리말 쓰임새에 대한 작가의 지적이 글을 쓰는 내게 약처럼 스며든다.

고 이윤기 작가는, 작가의 이름을 딴 '이윤기체'라는 용어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될 정도로 개성 있고 맛깔 나는 문체를 가진 작가로 유명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탁월한 글쟁이로 손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한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이런 이윤기가 남긴 '첫 문장의 설렘과 퇴고의 고뇌'에 대한 '39편의 에세이 같은 집필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말, 어떻게 하면 제대로 맛을 살려 쓸 것인가. 대중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껍진껍진한 입말의 글과 잘 익은 말은 어떻게 쓸 것인가. 글쟁이는 타고 나는가 노력이 만들어 내는 것인가.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은? 직접 읽으며 맛을 느끼는 것만큼 좋은 힌트가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이윤기 (지은이)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3-10-13 | 13,800원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13)


태그:#이윤기(작가,소설가), #그리스인 조르바, #말하기, #껍진껍진, #무지개와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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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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