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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관상을 통계학이라고 말한다. 업(業)이라고 말하는 관상. 쉽게 말해 팔자란다. 내 얼굴에서 풍기는 좋지 않은 관상, 그렇다고 팔자만 탓할 순 없다. 팔자를 고치려면 얼굴을 뜯어 고쳐야지. 어쩌면 이것이 대한민국을 성형 미인의 나라로 만든 현실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관상과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 이는 결국 주어진 운명에 순응치 않고 좀 더 잘 돼 보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부처님 말씀에 '관상은 외도'라고 했다. 신도들은 스님이 관상을 잘 보면 공부를 많이 한 스님인 줄 알고 거기에 현혹되어 매달리는 경우가 많단다. 스님이 부처님 말씀을 전해도 너무 못 알아먹을 때 중생이 떠나지 않도록 깨우침을 주는 데 관상이 이용되었단다. 그런데 그것이 와전되었다.

내 나이 마흔 셋, 나는 관상을 안 믿는다

우리주변에는 관상과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결국 나의 운명을 미리 알아 좀 더 잘되보려는 인간의 원초적 본성이 아닐듯 싶다.
 우리주변에는 관상과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결국 나의 운명을 미리 알아 좀 더 잘되보려는 인간의 원초적 본성이 아닐듯 싶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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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회자되는 관상. 인간의 관상은 성형이 아닌 성찰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가령 표정이 어두운 사람도 열심히 3000배 기도를 하면 좋은 기운이 느껴지듯이 말이다. 내가 아는 스님은 관상을 보러 다니는 것을 두고 "안타깝다"며 이렇게 일러주었다.

"관상을 봐서 좋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안 좋은 말을 들으면 근심만 쌓이니 모든 것은 '집착'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팔자 고치겠다고 관상 보러 다닐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관상을 고치려거든 차라리 거울을 보세요. 거울만 봐도 얼굴이 바뀝니다. 거울 속에 주름살도 세어보고 얼굴이 어두우면 웃는 연습도 많이 하면 관상을 바꿀 수 있는 거죠."

내 나이 올해 마흔 셋이 저물어 간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 때문인지 한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케 한다. 얼마 남지 않은 달력을 보며 어느덧 마흔넷이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인생이 무르익는 40대 중반. 내 인생은 과연 어디로 흘러 가는 걸까?

아내는 한 번씩 뜬금 없이 점을 보러 가자고 졸라댔다. 남들이 다보는 관상이나 사주팔자를 보러 가자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난 단호히 거부했다. 그런 것 믿지 않는다고. 그런 것 보는 사람치고 잘 된 사람 한번도 못 봤으니 싫다고 둘러댔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장모님을 따라 몇 번 점을 보러 다녔단다.

난 미신을 믿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어릴적 기억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몸이 자주 아프셨다. 그러면 어머니는 집 앞 어귀에다 음식을 차려놓고 천지신명께 빌었다. 아버지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내 기억에 약 3일에 한 번씩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던 것 같다. 가끔은 굿도 했다. 하지만 얼마나 그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렇게도 부정하던 교회를 나가게 되면서 우리 집은 더 이상 아프다고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는 일은 완전히 사라졌다.

내 생애 첫 관상을 보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서 '관상 또는 사주이야기'에 대한 기사공모 소식을 접했다. 글을 쓰고 싶은데 남의 말만 듣고 글을 쓸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과감히 첫 시도를 했다. 생애 최초로 관상과 사주팔자를 보게 된 것. 관상도 궁금했지만 그보다는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지난 9일 아내와 여수의 전통시장인 '서시장'을 찾았다. 서시장은 여수의 대표 장터다. 4일과 9일장이 바로 이곳에서 열린다. 장날이면 여긴 별의별 사람들이 다 온다. 특히 다릿가엔 사주팔자를 보는 관상쟁이들이 가끔 목격된다. 이곳 저곳 구경을 하는데 마침 우리가 찾는 스님을 발견했다. 비구니 스님이었다. 망설여졌다. 내가 꼭 이래야 할까. 관상 보려면 돈이 꽤 들텐데. 다릿가를 여러 번 맴돌다 돌아서는데 스님이 막 우릴 불렀다.

"어이 처사님 관상 한번 보고가…. 내가 이 공부 30년 한 사람이여."
"내가 이래 뵈도 명함도 있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과 달라."

호객 행위치고 그럴싸했다. 아내는 사이비 같다며 그냥 가자고 재촉한다. 허나 지금 지나치면 영 못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생에 사주팔자와 관상을 보는 첫 번째 순간은 이렇게 다가왔다.

먼저 복채를 흥정했다. 스님은 처사님들 좋을대로 하라고 했다. 관상을 보더니 스님은 내게 "첫 인상이 참 좋다, 그런데 몸이 약하다, 정성을 좀 하셔야겠다"라고 말했다. 또 "지금까지 젊어서 사셨는데 지극 정성을 더 보여야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수 있다"고도 했다. 그가 말하는 지극 정성이란 "나를 위해 희망하는 것을 정성껏 나를 도와달라고 부처님께 빌 때 무병장수하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라고 일러주었다. 스님께 질문을 던졌다.

"스님, 난 언제나 돈 벌겠소."
"처사님은 3재가 들었어. 작년에 가장 안 좋았고 올해는 그럭저럭 지났는데 내년은 좋아져. 근데 집사람이 밖에서 뭐든 한다고 하면 하라고 해."
"그러다 바람나면 어쩔 거요?"
"겁날 거 뭐 있어."
"아내가 아주 이쁘고 관상이 참 좋아. 당신이 좋으니까 여자가 살지. 이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되는데 당신이 뭐 볼 거 있어?"
"나도 잘 생겼잖아요."
"처사님은 한 가지 밖에 없어, 진실하고 성실해."

'당신 뭐 볼 거 있냐'고 허허, 나참. 웃음이 터졌다. 스님은 거침이 없었다. 나를 좀 무시해서 기분이 영 그랬지만 아내까지 관상과 사주팔자를 보라는 꼬임에 그만 넘어가 버렸다. 수중에 가진 돈이 별로 없었다. 아내와 내 지갑에서 없는 돈을 탈탈 털었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아내도 함께 봤다. 스님은 아내에게 관상이 좋다며 이렇게 말했다.

"보살님은 남편 잘 만났고 사랑도 많이 받고 그러네. 근데 본인이 활동해. 사주팔자에 20년 장사하라고 나왔어. 그러면 20년 후는 더 좋지."
"돈이 없는데요?"
"빚이라도 얻어서 장사해."
"무슨 장사를 하면 될까요?"
"술장사 말고 찻집이나 죽집하면 돼. 누구한테 바라거나 원망하지 말고 남에게 배려하면 복 받아."

언론 쪽으로 팔자가 없다니... 이걸 믿어, 말어

스님이 직접 써 전해준 귀한 말씀 千孝爲光(천효위광)과 光明眞言(광명진언)
 스님이 직접 써 전해준 귀한 말씀 千孝爲光(천효위광)과 光明眞言(광명진언)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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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점을 보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나더러 관상이 좋다고 한 마디 더 거들었다. 그랬더니 스님은 그 사람이 떠나자 육두문자를 해댔다. 완전 '땡초'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님은 우리에게 자기가 쓴 귀한 말씀을 준다며 종이를 건넸다. 스님이 전한 말씀은 두 가지였다.

千孝爲光(천효위광) 효행을 많이 하는 그대들은 몸이 높고 빛이 난다.
光明眞言(광명진언) 생명을 살리는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을 새긴 범어

난 마지막으로 스님께 물었다.

"스님, 제가 언론 쪽 일해서 밥 먹고 살려고 하는데 좀 어떤지요?"
"아니 기술에 종사해. 언론으로 가는 팔자가 없어. 팔자가 안 나오니까 그냥 기술계통에서 편하게 살아. 마누라 고생시키지 말구."

갑자기 이런 기억이 떠올랐다. 내 젊은 시절 아파트에 살 때 시주를 받으러 온 스님이 있었다. 그때 스님께 쌀을 줬더니 스님은 앞으로 내가 기계나 기술계통에서 크게 될 사람이니 그쪽으로 터를 닦으라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오늘 관상을 보니 그 스님의 말씀과 딱 일치했다. 허나 영 언짢다. 내 관상에는 언론쪽으로는 팔자가 없다니….

"이 말을 믿어 말어?"

덧붙이는 글 | '관상' 응모글



태그:#관상, #사주팔자, #공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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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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