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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

글로 처음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경기도 안산에서 거주하고 있고, 1주일에 한 번씩 안양시 수리장애인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봉사를 하고 있는 회사원 주연희입니다.

제가 올해 1월부터 봉사를 처음 시작하면서 선생님의 산문집 <로테르담에서 온 엽서>를 낭독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1월 9일 무사히 낭독을 완료하게 되었기도 하구요. 낭독 봉사를 하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정확한 발음, 듣기 편한 음성 그리고 선생님께서 담으신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전달하고자 나름대로 노력을 해보았지만, 듣는 분들에게서는 어떻게 들리실지 참 송구스럽기도 합니다.

낭독과 함께 저 스스로도 책의 내용에 흠뻑 빠져들어 많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선생님 계신 곳은 더욱 추울듯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며 따뜻하고 아름다운 글 작업되시길 바랍니다.

2013. 11. 11. 주연희 드림.

안흥산골 내 집 뒤뜰에 피었던 원추리꽃
 안흥산골 내 집 뒤뜰에 피었던 원추리꽃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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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저물녘에 내 메일함에 도착한 편지다. 온종일 우울했던 내 마음을 한 방에 날려주는 반갑고 고마운 편지였다.

세상은 살 만한 곳

나는 11일 아침 한 후배에게서 전화를 받고 매우 침울했다. 그는 전업 작가인데 인세수입이 부쩍 줄어들어 살기가 무척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낯익은 출판사가 문을 닫고, 인연을 맺었던 출판사 편집인들이 직장을 떠나는 현실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출판계가 어렵다는 말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요즘은 은 정말 말이 아닌 모양이다.

프로야구 선수가 관중이 많아야 신명이 나는 것처럼, 사실 작가도 책이 팔려야 신명도 나고 글발도 오른다. 하지만 이 시대는 종이책을 점차 멀리하는 세태로 흐르고 있다. 얼마 전 저녁에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무작위로 승객 중 열 사람을 센 뒤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자 여덟 사람은 스마트폰을 쳐다봤고, 한 사람은 신문을, 남은 한 사람은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있었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그 누가 돌려놓으랴.

몇 해 전 한 점자출판사에서 내가 펴낸 책 <길 위에서 아버지를 만나다>를 점자와 큰 활자로 발간한다고 해 다른 여느 책을 내는 것보다 더 기뻤다. 오늘 마음씨가 아름다운 분이 나의 산문집 '로테르담에서 온 엽서'를 정초부터 이제까지 시각장애인들에게 낭독해 주셨다니 정말 글 쓴 보람을 느낀다.

누군가 그랬다. 작가는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고. 그런데 그 독자가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니 더더욱 보람을 느낀다. 그 시각장애인은 내 글의 낭독을 들으면서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오늘 여기에 <로테르담에서 온 엽서>에 실린 글 한 편 소개한다.

누가 깨진 유리창을 메웠을까

안흥 내 집 마당에 피었던 수세미꽃
 안흥 내 집 마당에 피었던 수세미꽃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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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처럼 맑은 졸업식 날이었다. 한 어머니가 꽃다발을 들고 내 자리로 찾아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2학년 때 선생님 담임 반이었던 김 아무개 엄마예요."
"아, 네. 따님 졸업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으로 걔가 고등학교를 잘 마친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따님이 아주 성실했습니다."

어머니는 굳이 꽃다발을 내게 안겨주었다. 

"졸업식이 끝났기에 말씀드립니다만, 걔가 2학년 때 선생님의 칭찬 말씀을 듣고 얼마나 좋아했던지, 진작 찾아뵙고 감사의 말씀 전하려다가 오늘에야 전합니다."
"네?"
"왜 2학년 때 깨진 유리창 창틀을 메운 아이가 ……."
"아! 네, 바로 걔였군요. 저는 지금까지 그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고 지냈습니다."

1982학년도 그해 나는 2학년 문과반 담임을 했다. 학생들이 문과로 많이 몰린 탓에 학급 인원이 무려 70명이나 되었다. 워낙 많은 학생이라 교실도 비좁았고, 학생 면담을 해도 열흘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도 그해는 별로 힘들지 않게 보냈다. 말썽피운 녀석들이 적었기 때문이다. 우리 학급 교실은 1층 운동장 옆이었는데, 이따금 날아온 공으로 유리창이 깨지곤 했다. 그때마다 서무실(행정실)에 보수 신청은 했지만 목공아저씨는 그때그때 보수해주지 않고 미뤄뒀다가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몰아 끼워주었다.

그해 11월 하순, 초저녁에 갑자기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저녁 9시 뉴스에서 '내일 날씨가 갑자기 영하로 내려간다'고 했다. 나는 그때 문득 그날 교실 창문에 유리가 깨진 게 생각났다. 그 무렵은 교실은 조개탄난로로 난방을 할 때인지라 그때까지 교실에는 미처 난로조차 들여놓지 않았다. 첫 추위에다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라고 했는데, 내일 학생들이 등교하면 얼마나 떨까 걱정이 되었다.

이튿날 아침, 집에서 창호지와 풀을 챙겨 가방에 넣고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출근했다. 교문에서 곧장 교실로 가 문을 열자 깨진 유리창틀은 이미 예쁜 종이로 말끔히 메워져 있었다. 누가 새벽같이 학교에 와서 이런 착한 일을 했을까? 교실을 둘러보니 대여섯 학생들이 자습하고 있었다.

"애들아, 누가 창문을 이렇게 예쁘게 발랐니?"
"……"

교실의 학생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웃을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조회 시간에 창문을 바른 사람을 물어도 나서는 학생이 없었다. 나는 그날 하루 참 흐뭇하게 보냈다. 그날 종례 시간에 창문을 메운 학생을 칭찬하면서 착한 일은 하고도 드러내지 않는 게 더 값지다는 말과 함께, 하늘에 계신 분은 남모르게 하는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 말씀 한 마디가 자기들 앞길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날 이후 걔는 더욱 봉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말씀드리는 것도 걔가 알면 엄마는 주책이라고 나무랄 것입니다."
"아, 네. 저도 그날 참 기분이 좋았고, 지금도 지난해 학급 학생들을 무척 좋아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가 어디에선가 남모르게 착한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최근 한 제자가 전한 바, 이 글의 주인공은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지난날 나의 이 글이 그의 인생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나는 교육자로서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있겠는가.

세상은 살 만한 곳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아름다운 사람을 보는 기쁨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다.

덧붙이는 글 | '누가 깨진 유리창을 메웠을까' 이 글은 2003. 1. 2. 오마이뉴스에 '누가 깨진 유리창틀을 메웠을까'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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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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