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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입니다. 11월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수도권입니다. [편집자말]
일본드라마 <천사의 몫>의 한 장면. 도시락 반찬의 스테디셀러는 역시 계란말이다.
▲ 도시락 일본드라마 <천사의 몫>의 한 장면. 도시락 반찬의 스테디셀러는 역시 계란말이다.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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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부터 '도시락파'에 가입했다. 12시 10분쯤 되면, 회사 노조사무실 겸 휴게실에 하나둘씩 모인 사람들이 탁자 위에 준비된 '물건'을 꺼내놓는다. 뚜껑이 열림과 동시에 현란한 젓가락질이 오가고, 악명 높은 요리연구가 고든 램지도 울고 갈 신랄한 품평회가 시작된다. 그 연근은 어떻게 조린 거지? 요 나물은 좀 짜게 무쳐졌네. 우리는 한참을 레시피부터 양념의 비밀, 물가 등에 대해 토론하며 반찬 하나하나를 곱씹는다.

도시락 파에도 나름의 암묵적인 룰이 있다. 인기가 좋은 고기반찬은 두 개 이상 집지 않기, 볶음밥 싸지 않기(반찬을 동반한다면 허용), 여기에 A선배가 2번 이상 일어나서 반찬 집지 말기(근거리만 공략), 혼자만 밥 위에 계란프라이 얹지 말기 등의 권고사항을 추가하면서 규칙은 더 엄격해졌다. 어째 좀 치사한 것 같지만, 이게 다 '나눔'을 위해서다.

그래도 나눠 먹는 덕분에 식탁은 늘 풍성하다. 내가 싸온 건 연근 조림과 계란말이뿐인데, 이쪽저쪽에서 싸온 오징어채볶음과 두부부침까지 먹을 수 있으니 구첩 반상이 부럽지 않다. 같은 두부라도 어느 집에선 소금 뿌려 부치고, 어느 집에선 간장에 조린다. 그래서 엉덩이 들이밀고 다 앉을 수만 있다면,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 또, 책상 위에서는 지위고하 분명하던 선후배 사이도 식탁 위에서는 '오는 용가리치킨에, 가는 우엉조림'의 정을 나누며 끈끈해지는 게 도시락 파의 묘미라면 묘미다.

뭐, 이런 훈훈한 이유 때문에만 도시락을 고수하는 건 아니다. 내가 도시락을 싸는 이유는 이른바 '3 마이너스'에 있다. 체중, 나트륨, 지출을 줄이는 즐거움이 가능한 건 도시락이 '집 밥'인 덕분이다. 내가 고수하고 있는 100% 현미밥 반 공기와 철저히 고기를 제외한 반찬(현재 채식 중)은 오히려 너무 별 게 아니라서 밖에서 돈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것들이다.

회사의 노조사무실 겸 휴게실에 모인 직원들이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점심을 먹고 있다. 쌀밥, 잡곡밥, 현미밥, 혹은 오래돼서 누런 밥 등 밥의 색깔도 제각각, 반찬은 무려 15가지가 넘는다.
▲ '15첩 반상'의 위엄 회사의 노조사무실 겸 휴게실에 모인 직원들이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점심을 먹고 있다. 쌀밥, 잡곡밥, 현미밥, 혹은 오래돼서 누런 밥 등 밥의 색깔도 제각각, 반찬은 무려 15가지가 넘는다.
ⓒ 이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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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9첩 아니라 90첩 도시락 반찬이 펼쳐져 있다 해도, 밖에서 갖은 조미료 넣고 지금 막 조리해서 파는 따끈한 음식이 훨씬 맛있다. 그런데 그 자극적인 음식들은 마치 '나쁜 남자' 같아서 구미를 당기는 매력이 있으면서도, 내 입을 떠나고 난 후에는 늘어난 몸무게로 배신을 때린다. 대개 간도 센 편이라, 내게 남는 건 소금기와 붓기 뿐. 게다가 밀가루에 환장하는 나는 밖에다 풀어 놓으면 꼭 국수나 빵 종류만 탐닉하고 다니기 때문에 통제가 필요하다.

'집 밥'을 근간으로 하는 도시락 반찬은 어느 집이나 대개 거기서 거기다. 한 번은 '도시락 파'에서 스테이크를 싸온 선배가 "그냥 집에서 늘 먹던 것"이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답해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그 뒤로는 꾸준히 멸치볶음을 싸온 걸 보면, 도시락에 담긴 삶은 비슷하고 익숙해서 정겹다. 지금은 기십만 원짜리 냄비를 들고 신들린 춤사위를 보여주며, 400만 원짜리 냉장고를 광고하는 전지현도, 그의 중학교 동창인 내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만날 멸치볶음을 잔뜩 싸와서 나눠 먹던 소박한 소녀였다는 일화 속 '도시락'은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해준다.

여기에 덤으로 얻는 게 바로 '굳은 돈'이다. 한 끼에 적게는 5천 원~1만 원 이상까지 아낄 수 있다. 일주일이면 적어도 2만 5천 원이 절약된다. 도시락을 싸며 아끼고 모은 돈으로 집을 사겠다는 눈물겨운 성공신화를 이루려는 건 아니지만, 다이어트에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데 지출도 줄일 수 있으니 그저 궁상맞은 이야기만은 아니다. 내가 속한 '도시락 파' 멤버들이 도시락을 싸는 이유에도 대개 이 세 가지의 장점이 포함돼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지겹게 싼 도시락...다시 선택하기까지

사실 매일 같이 도시락을 싸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혼자 먹는 거면 아무 거로나 적당히 한 끼 때우고 말겠지만, 아무래도 여러 명이 함께 먹는 거니 반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늘 사찰음식 같은 풀떼기 반찬만 내놓으니 본의 아니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고기를 제외하면서도 나름 그럴듯한 반찬을 매일 떠올리려니, 빈 도시락통을 마주한 나는 빈 캔버스를 앞에 둔 예술가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싶을 만큼 창작의 고통을 겪기도 한다.

'빈대 마인드'도 늘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내가 싸는 도시락은 결국 엄마가 만든 반찬을 그저 '주워담는'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거 조금 저거 조금 집어 담으면서도 가끔은 죄스러울 때가 있다. 또 이게 엄마의 반찬 생산 부담으로 이어질까 봐 맘에 걸리기도 하고.

결혼도 안 한 직장인이 도시락 싸는 주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게 되면서 부쩍 생각나는 사람은 맞벌이하던 엄마 대신 내 학창시절의 도시락을 도맡았던 할머니다. 내가 도시락, 그러니까 할머니 전문용어로 '벤또'를 싸기 시작한 건 예닐곱 살이었던 유치원 때부터였다.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의 한 장면.
▲ 무슨 반찬 싸왔어?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의 한 장면.
ⓒ 메인타이틀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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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기름에 잰 김에 밥을 둘둘 말아 손가락 길이의 '두입거리'로 김밥을 싸주곤 했다. 한입 베어 물면 안에 분홍색 햄이 나타나는 초간단 버전의 김밥이었지만, 어릴 땐 편식습관이 좀 있어서 김으로 싼 밥만 잘 먹었던 내게는 더없이 좋은 메뉴였다. 물론 너도나도 하나씩 집어가는 바람에 늘 가장 먼저 도시락통을 비우고 멀뚱멀뚱 앉아 있곤 했지만.

급식을 시작했던 고등학교 2학년 전까지, 싫으나 좋으나 내내 도시락과 함께해야 했다. 그저 '배고프니 먹는 밥'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 도시락이 지겨웠지만, 싸는 할머니도 참 지겨웠을 거다. 그래도 '할머니 셰프'는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신선한 발상을 담은 반찬이 더러 있었다. 특히 감자에 방울토마토를 곁들여 살짝 볶은 건 할머니의 전매특허였다. 드글드글 손톱만 한 방게를 무쳐서 싸준 걸 징그러워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눈이 어두웠던 할머니가 가끔 머리카락을 데코레이션으로 넣어주는 바람에 난감했던 기억도 난다.  

초등학생 때, 한 번은 도시락을 깜빡 잊고 안 가지고 등교했는데 그걸 할머니가 부랴부랴 들고 학교로 뛰어온 적이 있었다. 불행히도 수업시간이었다. 느닷없이 교실 창문을 연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도시락통을 내밀었다. 밥 따위 안 먹어도 좋았을 걸, 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할머니 따위 없어도 좋았을 걸, 이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싫어하는 반찬은 버리기도 했다. '뽀빠이 먹어야 힘이 난다'며 싸준 시금치는 쓰레기통 직행이었다. 그렇게 할머니 반찬만 먹다가 고2가 되어서야 드디어 마주한 급식은 그야말로 유토피아일 수밖에. 매일매일 고기반찬(당시는 육식인간)에, 따끈하게 데워서 배달되니 입이 호강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비닐에, 스테이플러 심에, 심지어는 애벌레까지 반찬에서 발견되며 그 유토피아도 끝이 나고 말았다. 집 밥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재료(?)들이다.

그렇게 집 밥의 소중함을 깨달았지만, 대학교에 진학하고는 도시락을 쌀 일이 없었다. 직장을 얻고, 발로 뛰던 취재부서에서 내근직으로 옮긴 후에야 십수 년 만에 이렇게 다시 도시락을 싸고 있다.

학교 다닐 때처럼 어쩔 수 없이 싸는 게 아니라 정말 내 필요에 의해 도시락을 선택한 지금은 쌀 한 톨, 깨 한 알까지 아깝고 귀한 걸 안다. 그래서 집에서 그걸 씻고, 다듬고, 썰고, 지지고, 볶았을 엄마를 생각하며 발우공양 하듯 긁어먹는다. 무엇보다, 내가 학교에서 굶고 있을까 봐 큰 맘 먹고 교실 창문을 열었을 할머니의 마음이 뭔지, 도시락을 직접 싸기 시작한 이제야 알 것 같아, 그 '정 맛'으로 도시락을 먹는다. 돈 주고는 사 먹지 못할 맛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난지도 파소도블레(http://blog.daum.net/nanpas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도시락, #반찬, #집밥, #다이어트, #계란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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