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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2500년 전 공자가 <논어>에 처음으로 적은 문구입니다. 2013년 대한민국도 '배우고 익히는' 열기가 뜨겁습니다.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아이들은 보다 나은 성적을 위해, 직장에선 살아남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합니다. 한 마디로 공부에 빠진 대한민국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열심히 배우고 익혔는데 즐겁지 않습니다. 중요한 걸 놓쳤기 때문입니다. 함께 모여 '즐거운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들 사례를 통해 공부가 왜 즐거운지 살펴봅니다. - 기자말

 11살 홍대의 군은 벌써 5년째 엄마의 연주를 지켜보고 있다
 11살 홍대의 군은 벌써 5년째 엄마의 연주를 지켜보고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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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완전 멋있죠? 엄마가 바이올린하는 거 좋아요."

창 너머로 연주를 지켜보던 홍대의(11)군이 엄마를 따라 연습실에 들른 지 벌써 5년째. 1시간 30분의 기다림이 지루할 법도 하건만 대의군은 피곤한 기색 없이 엄마를 지켜봤다. 그러면서 "엄마가 지난번 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며 감상평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5일 저녁, 전북 전주시 완산구 완산동에 자리한 마을 오케스트라 '하니비'(단장 허준태)의 연습 현장을 찾았다. 20대 학생부터 40대 아저씨, 60대 어머니까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조합이었다.

연습이 시작되자 불편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휘자 오른편의 소리가 너무 컸다. 균형이 어긋나 보였다. 그 순간, "천천히 다시 해보죠"란 지휘자의 한 마디. 따로 놀던 소리가 서로의 빈틈을 채워갔다.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무거워 보이던 사람들의 표정에도 화색이 돌았다.

이날 하니비(Honeybee, 꿀벌) 오케스트라 연습실엔 음악이 좋아 모인 30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주부, 회사원, 교사, 공무원, 학원 원장 등 직업 또한 천차만별이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매주 모여 연습한 지도 어느새 7년. 오는 11월 23일, 하니비 19번째 정기 연주회를 앞두고 다들 분주한 모습이었다.

7년 역사, 정기 연주회만 18번... 마을 오케스트라의 힘

  하니비 역사와 함께한 지휘자 김재원
 하니비 역사와 함께한 지휘자 김재원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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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비 오케스트라의 출발도 여느 마을 오케스트라와 다르지 않았다. 지휘자 김재원(51)씨를 비롯해 네댓 명의 사람들이 함께했다. 그마저도 시작과 동시에 두 명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고향, 예향(藝鄕)의 도시 전주를 믿었다. 무엇보다 전주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잘 알고 있었다(재밌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듯 전주는 전국에서 악기 구입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다).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김재원 지휘자는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을 세웠다. 나이도, 직업도, 개인 사정도 묻지 않았다. 그저 '마을 오케스트라 하니비에 가면 제대로 음악할 수 있다'는 사실만 강조했다. 이렇게 2007년 9월, 마을 오케스트라 '하니비 필하모닉'은 시작됐다. 그리고 창단 7개월 만에 '전주예수병원'에서 첫 연주회를 가졌다.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이에 대해 김재원씨는 말을 보탰다.

"오케스트라의 문턱을 낮춰 누가 와도 즐길 수 있는 마을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습니다."

연습 시작 시간 오후 8시 30분이 가까워지자, 널찍하던 연습실 의자가 하나둘 채워졌다. 양복을 입은 채 회사에서 막 퇴근한 아저씨, 후드티를 입고 나타난 청년. 한 어머니는 저녁상을 보고 왔는지 옆을 지날 때 매콤한 김치찌개 냄새가 퍼져왔다. 사람들의 분주한 행렬은 연습 시작 후 30분이 지난 오후 9시까지 계속 됐다.

하지만 단순히 문턱을 낮춘 것만으로 '동네 오케스트라 하니비'를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하니비의 역사를 돌아보면 장장 7년이다. 정기 연주회만 18번을 했다. 하니비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2011년부터 하니비의 단장을 맡고 있는 허준태(64)씨는 말을 이었다.

"어찌 보면 좀 매정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부분을 확실히 유지했기 때문에 우리 하니비가 무탈하게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다른 모임과 달리 멤버들의 애경사를 따지거나 묻지 않아요. 오직 서로의 음악에 대해서만 궁금해 하고 음악으로만 엮여 있습니다."

그랬다. 마을 오케스트라 하니비는 오직 음악으로만 소통하고 있었다. 함께 연주하고 즐기고 나누는 음악 본연의 목적에만 충실히 따랐다. 그 점이 오케스트라 하니비를 있게 한 기초가 됐다.

"오케스트라는 어렵다? 옆집 아줌마도 해냈다"

 오케스트라 '하니비' 단장 허준태씨. 오케스트라 활동을 열심히 하자 그의 몸도 건강해졌다
 오케스트라 '하니비' 단장 허준태씨. 오케스트라 활동을 열심히 하자 그의 몸도 건강해졌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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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비 연습실의 불은 오후 10시가 넘어도 꺼지지 않았다. 가장 늦게까지 남아 연습하는 오케스트라 단장 허준태씨 때문이다.

그는 30년을 교직에 몸담았다. 그것도 미술로만 학생들을 만났다. 평생을 그림으로 소통하며 살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생각을 바꾸게 한 위기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몸에 이상이 생겼다. 대장암이 퍼져 있었다. 30년 교편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수술과 치료로 호흡조차 쉽지 않았다. 그때 병원에서 입으로 부는 악기를 조심스레 추천해줬다. 오직 회복을 위해 악기를 들고 하니비를 찾았다. 그렇게 트럼펫을 잡은 지 5년. 놀라운 건 그의 연주 실력이 늘수록 약해졌던 몸 역시 다시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연습실에) 가장 먼저 나오고 마지막에 나갈 수밖에 없어요. 하니비와 음악이 저를 살렸으니까요. 더 열심히 하고 더 애정을 쏟을 수밖에 없는 거죠."

자신의 악기를 어루만지며 말하는 허 단장의 표정은 푸근해 보였다.

하지만 취재를 할수록 깊어지는 문제가 하나  있있다. '오케스트라'란 단어가 주는 대중과의 괴리감이었다. 장벽을 아무리 낮췄다지만 오케스트라는 여전히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김재원 지휘자는 말을 보탰다.

"지난 7년, 가장 낮은 곳만 보고 지휘했습니다. 박자를 놓치면 맞춰갔고 채워갔죠. 프로가 아니잖아요. 시간을 갖고 고쳐 나갔습니다. 무엇보다 누구나 할 수 있게 편곡했어요."

그는 이 부분에서 '동네'에 방점을 뒀다.

"브라질이 축구를 잘하는 이유가 동네 어디서나 공을 차고 있잖아요.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차분히 기다리면 됩니다. '기'를 살려주면서요. 옆집 아줌마, 엄마 아빠, 삼촌들도 다 해냈습니다."

지휘자 김재원씨의 말처럼 하니비의 회비는 매달 3만 원이다. '음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비싼 레슨비와 운영비를 처음부터 낮췄다. 참가자들의 부담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낮아진 문턱만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동네 오케스트라 하니비의 꿈이 실현됐다.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그곳, 하니비의 공연장

 연습 삼매경이 빠진 오케스트라 '하니비' 단원들
 연습 삼매경이 빠진 오케스트라 '하니비'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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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연습을 지켜보다 뒤쪽에서 조심스레 바이올린을 켜고 있던 어머니 한 분을 발견했다. 49년생, 올해 예순 다섯인 안난영씨였다. 수줍게 말을 이어가는 모습이 기자의 어머니와 다르지 않았다. 안씨는 "50년 전 배운 도레미파의 추억을 잊지 못해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는 음악에 대한 관심은 항상 컸지만 언제 어디서 배워야 할지를 몰랐다. 그런 면에서 동네 오케스트라의 존재는 고마웠다. 수줍어하며 말했지만 안난영씨는 벌써 5년째 매주 화요일이면 버스로 30분을 달려와 연습실을 찾고 있었다. 스스로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계속 즐겁게 연주하고 함께 즐기고 싶다"고 했다.

마을 오케스트라 하니비는 우리 동네, 우리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이 구성원이다. 지금 당장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즐겁게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하니비가 연주한 곳을 보면 대부분이 우리 동네, 우리 마을에서 이루어졌다. 아이들 학교부터 노인 병원, 장애인 복지센터, 다문화가정 문화회관, 종교시설 그리고 전라북도청 대공연장까지.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그곳이 바로 하니비의 공연장이 됐다.

"중요한 건 재미입니다. 혼자선 결코 느낄 수 없어요. 함께 나누고 연주할 때 자연스레 느껴지는 거죠. 서두를 것이 없어요. 천천히 기다리면서 배워가면 됩니다.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게 동네 오케스트라의 장점이자 필요성입니다."

하니비 오케스트라 지휘자 김재원씨의 말처럼 '나도 할 수 있다'란 마음만 먹고 동네 오케스트라를 찾으면 된다. 문턱 낮은 마을 오케스트라는 이웃 사촌을 위해 언제나 열려있다. 마을 주민이 함께하는 한 하니비의 연주도 계속될 것이다. 전주 완산동 마을 오케스트라 꿀벌 하니비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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