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겉표지를 스티로폼과 우드락을 이용하여 만든 퍼즐
▲ 책 표지로 만든 퍼즐 책 겉표지를 스티로폼과 우드락을 이용하여 만든 퍼즐
ⓒ 정민숙

관련사진보기


"목요일 날 놀러 와요."

내게 놀러 오라는 그녀. 그녀와 나는 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이웃사촌이다. 그녀의 큰딸과 우리 집 둘째딸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다. 그 이후로 둘이는 토닥거리기도 하고, 사이좋기도 한 전형적인 친구 관계를 유지하다가, 우리 집이 길 건너로 이사 오는 바람에 서로 다른 중학교에 진학했다. 지금은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육학년 때까지 그녀와 나와 또 다른 이웃의 아이까지 함께 독서토론을 진행한 적이 있다.

퍼즐 조각들이 모두 다르다. 저학년과 고학년들이 모두 재미있게 할 수 있다. 완성답안은 책꽂이에 꽂아져 있는 책 본문 중에 나온다. 그래서 책을 읽은 학생은 더 쉽게 맞출 수 있다.
▲ 책 표지로 만든 퍼즐 퍼즐 조각들이 모두 다르다. 저학년과 고학년들이 모두 재미있게 할 수 있다. 완성답안은 책꽂이에 꽂아져 있는 책 본문 중에 나온다. 그래서 책을 읽은 학생은 더 쉽게 맞출 수 있다.
ⓒ 정민숙

관련사진보기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공동육아의 정신으로 처음에는 내가 제안을 해서 진행을 했고(그 때 독서 토론했던 경험들은 가끔 오마이뉴스 책동네에 기사 (책 재밌게 읽히는 방법 '고민 중') 를 올리기도 했다) 나중에는 세 엄마가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집을 공개하고 지도를 했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지금은 모두 사는 구가 달라 얼굴 보기도 힘든 형편이지만, 가끔 이렇게 전화를 주고받으며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수능이 치러지던 11월 7일 목요일. 초등학교 도서관에 근무하는 그녀에게 편한 시간이 언제인지 물으니 오전에는 학생들의 도서관 수업이 있어 오후 2시 넘어야 괜찮다고 한다. 그녀는 오후 4시 30분에 퇴근한다. 열심히 집에서 일을 하다가 시계를 보니 2시다. 준비하고 3시에 도착하여 학교도서관 책 좀 보다가 퇴근하면서 같이 걸어오면 이야기를 나누면 될 것 같았다. 그녀의 직장에서 집까지는 도보로 약 15분. 자전거로는 5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출판사에서 온갖 정성을 기울여 만드는 책 표지들
▲ 책 겉표지들 출판사에서 온갖 정성을 기울여 만드는 책 표지들
ⓒ 정민숙

관련사진보기


도시 안에 위치한 작은 학교. 1967년에 개교하여 역사가 꽤 깊다. 1학년부터 5학년까지는 학년 별로 두 학급이 있고, 6학년만 세 학급이다. 나는 예전에 이 학교 병설유치원에 와서 구강보건교육을 진행 한 적도 있다. 전체 인원이 300명이 안 되는 학교에서 그녀는 올해로 7년째 사서로 일하고 있다.

교문에서 학교보안관에게 학교에 온 목적을 말 한 후,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고 출입허가증을 목에 걸고 도서관으로 간다. 아이들이 편안하게 소파에 눕거나, 엎드리거나, 앉아서 책을 읽기도 하고, 전자도서관에서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무엇인가를 검색하며 조용히 즐기는 분위기였다.

글 방정환 그림 김세현 길벗어린이 출판
▲ 만년샤쓰 글 방정환 그림 김세현 길벗어린이 출판
ⓒ 정민숙

관련사진보기


그녀가 내게 무엇인가를 보여주는데, 퍼즐이다. 책을 구입한 후 보통 겉표지는 빼고, 표지가 없는 상태로 책을  정리해 놓는데, 그 표지를 이용하여 손수 만든 퍼즐이었다. 책 겉표지를 버리기 아까워서 고민하다가 여러 가지 방법을 이용하여 아주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도서실 입구에는 겉표지를 이용하여 종이 가방을 만들어 붙여놓았다.

책표지를 이용하여 만든 종이가방. 도서관 문을 열면 바로 옆에 있다. 책 제목들이 선명해서 아이들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 한 번씩 보면 기억하기 쉽겠다.
▲ 책표지 종이 가방 책표지를 이용하여 만든 종이가방. 도서관 문을 열면 바로 옆에 있다. 책 제목들이 선명해서 아이들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 한 번씩 보면 기억하기 쉽겠다.
ⓒ 정민숙

관련사진보기

문을 드나들며 오다가다 책 제목을 인식하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다. 또 도서실에서 사용하는 작은 도장들을 모아두는 박스로도 활용하고 있다. 퍼즐은 어떤 용도로 만들었냐고 하니, 도서실에 와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아이를 따로 불러 조용히 시키는 목적과, 한 가지 일에 몰입하게 하는 의도였단다. 그런 학생들이 이 퍼즐을 접하면 잘 하더냐고 물었다. 어떤 아이들은 잘 하고 재미있어 하는데, 어떤 아이들은 그 작은 일에도 집중하기 힘들어하며 결국 완성을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압축스티로폼과 우드락을 이용하여, 책 겉표지 그림 크기에 맞춰 양면테이프나 딱풀을 이용하여 붙인다. 퍼즐 조각 개수를 정하여 칼로 오리면 완성이다. 처음 작품을 만들 때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한 번 만들고 나니 나머지는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수월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본래 업무를 수행하면서 따로 시간을 내어 이런 작업을 한다는 것은 사명감이 있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그런 상황을 말로 안 해도 그녀의 입술에는 과로하면 나타나는 헤르페스가 어김없이 생겨있다.

나도 그 퍼즐을 한 번 맞춰보았다. '만년샤쓰'. 지금 우리 집 책꽂이에도 있는 '만년샤쓰'. 큰 애 작은 애 모두 읽은 책이다. 방정환이 글을 썼고, 김세현이 그림을 그렸다. 표지 그림은 본 문 15쪽에도 나온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아이는 '만년샤쓰' 퍼즐을 잘 맞출 수밖에 없다. 이미 완성된 판의 정답 그림을 알고 있을 테니까.

책 주인공 창남이는 **고등보통학교 1학년이다. 생물 시간에 선생님이 "이 없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는가?"라고 물으면 "이 없는 동물은 늙은 영감입니다"라고 답하여 온 반 학생들을 웃게 만드는 쾌활한 소년이다. 책의 겉표지에 등장하는 장면은 창남이가 평소 결석을 하지 않는데, 그 날 따라 늦게 와서 1교시가 반이나 지나서 학교에 도착해 얼굴이 새빨개 가지고 교실 문을 덜컥 여는 장면이다.

26개의 만년샤쓰 퍼즐조각. 나는 맞추는데 5분 넘게 걸렸다. 은근히 어려웠다.
▲ 만년샤쓰 퍼즐 26개의 만년샤쓰 퍼즐조각. 나는 맞추는데 5분 넘게 걸렸다. 은근히 어려웠다.
ⓒ 정민숙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왜 제목이 '만년샤쓰'인지 내용이 나온다. 15쪽에 나온 그림을 본 후 내용을 다 읽으면 36쪽이 끝인 짧은 단편동화다. 36쪽이 나오면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진다. 처음 읽을 때도 눈물 났는데, 지금 다시 펼쳐서 읽으니 역시나 또 눈물이 난다. '만년샤쓰'가 무엇인지 꼭 책을 찾아 봤으면 한다. 

그녀는 퍼즐 뿐 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만화책 아닌 줄글 책을 읽히게 하기위한 묘안도 짜내 진행하고 있었다. 이름하야 '책 먹는 돼지' 그녀는 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장선생님과 도서담당선생님에게 의논하였고, 교장선생님은 프로그램의 보상인 '간식'을 학교 예산으로 편성하여 준비해놓았다고 한다. 그녀가 진행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도서관에 책이 들어올 때 담겨져 있던 종이박스를 이용하여 6개 학년 것을 만들었다.
▲ 책 먹는 돼지 도서관에 책이 들어올 때 담겨져 있던 종이박스를 이용하여 6개 학년 것을 만들었다.
ⓒ 정민숙

관련사진보기


제목: 책 먹는 돼지

일시: 2013. 11.04(월)~11. 29(금)

대상: 전교생

프로그램 진행목적: 한 달 동안 꾸준한 진행으로 바른 독서 습관을 심고, 20분 동안 집중하여 책을 읽도록 하여 집중력을 향상시키며,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고, 책을 통해 배경지식을 넓히고, 학교 도서관을 편하게 다가오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방법 두 가지: 오전 도서관 수업시간을 이용한다. 1인 1매로 용지를 받은 후, 줄글 도서 20분 이상 읽고 한 줄 느낌 써서 사서인 그녀에게 확인도장을 받은 후 자신의 반에 넣는다. 오후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할 때는 1인 1매로 준비용지 받고, 만화책을 제외한 줄글 책을 20분 이상 읽은 후 한 줄 느낌 쓰고 사서에게 확인도장(1일 1회만 가능)을 받은 후 투입한다.

시상내역: 한 달 후 한 줄 소감을 쓴 용지가 가장 많이 나온 반을 선정하여, 12월 둘째 주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그 반 전체 인원에게 제공한다.

3학년 학생의 한 줄 :비밀의 도서관이 신기해 가 보고 싶다.
▲ 비밀의 도서관 한 줄 쓰기 3학년 학생의 한 줄 :비밀의 도서관이 신기해 가 보고 싶다.
ⓒ 정민숙

관련사진보기


4학년 학생의 한 줄 쓰기 
"누나,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 화요일은 머리 감는 날 4학년 학생의 한 줄 쓰기 "누나,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 정민숙

관련사진보기


현재 아이들의 호응도가 좋아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단다. 내용이 궁금해서 살짝 돼지 안에 들어 있는 쪽지를 꺼내 읽어보았다. 책 제목을 적어야 하고, 책 속 관련 내용을 한 줄 적는 거라 학생들이 부담 없이 할 수 있겠다. 문제는 만화책이 아닌 글이 많은 책을 특히 고학년들이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읽을 수 있느냐 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겠다. 작은 학교의 장점은 전교생을 사서는 모두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서관 안에 들어오는 아이가 나갈 때까지 머무른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파악할 수 있는 상태라 실효성 있게 운영되나 보다.

도서관에 책이 들어올 때 박스에 담겨져 온다. 책을 꺼낸 후 그 박스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 재활용으로 만든 퍼즐조각함 도서관에 책이 들어올 때 박스에 담겨져 온다. 책을 꺼낸 후 그 박스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 정민숙

관련사진보기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 해서라도 책을 읽을 방법을 생각해내고, 직접 책을 읽게 하고, 그 보답으로 교장선생님과 학교가 주는 간식까지 생각한 그녀가 멋있다. 책가방과 겉옷을 한쪽에 모아놓고, 정말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던 아이들은 갈 시간이 되자 그녀와  웃는 얼굴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나갔다. 빠른 손길로 흩어져 있는 책을 모아 정리를 하는 그녀 얼굴에 행복함이 보였다. 뿌듯한 보람, 뭐 그런 표정이다. 

리처드 세넷은 '장인'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능을 향상시켜주는 실습 경험은 결국 세 단계의 시나리오로 진행된다. 첫째로 준비하고, 둘째로 잘못을 체험하고 지속하며, 셋째로 잘못에서 회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서사처럼 밟아가는 과정에서 목적에 맞춘다는 건 나중에 성취하는 것이지, 미리 정해 놓는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손으로 하는 실기 작업 장인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한 사람이 한 가지의 일을 꾸준히 하는 기간이 3년이 되고, 5년이 지나고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장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10년이 지나도 매 번 위에 말한 세 가지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면 그 것은 세월을 놓치는 사람이 된다.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몇 년 전에는 보지 못했던, 이 세 가지를 경험하고 있는 '장인'의 향기를 살짝 맡았다. 사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과 할 수 있는 일들과 볼 수 있는 것들.  3년 지나면 10년이 되는 그녀의 사서생활이 슬프기보다 기쁘게 지속되면서, 더 많은 아이들의 발걸음을, 책 속으로 이끌어 주는 것을 지켜보고 싶다.


태그:#사서, #학교도서관사서, #만년샤쓰, #리처드 세넷 장인, #책 먹는 돼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