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롤러코스터>의 한 장면 <롤러코스터>에서 주인공 마준규 역을 맡은 배우 정경호

▲ 영화 <롤러코스터>의 한 장면 <롤러코스터>에서 주인공 마준규 역을 맡은 배우 정경호 ⓒ (주)판타지오픽쳐스


<롤러코스터>를 타는 데 필요한 선제 조건은 '청력'이다. 학창시절 각종 언어 듣기 평가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았다거나, 남의 말을 못 알아들어 '사오정' 비슷한 별명이라도 들어 본 적 있다면 이 영화에 온전히 '탑승'하기 어렵다. 왜냐고? 이 영화, 참 말이 많은 영화다.

'육두문자맨'이란 영화에서 욕쟁이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하며 단숨에 한류스타로 급부상한 마준규(정경호 분)는 일본에서 터진 아이돌 여가수와의 스캔들로 급히 귀국 비행기에 오른다. 그가 탄 비행기에는 극성을 부리는 아줌마 팬(황정민 분), 욕해달라고 삿대질하는 아이, 육식을 금하라면서 틈날 때마다 씨스타의 '나 혼자'를 불경처럼 외는 스님(김병옥 분), 4차원 신혼부부, 승무원에게 무리한 부탁을 해대는 정장 입은 남자(최규환 분), 타 항공사 회장(김기천 분)과 그보다 더 회장 같은 포스의 여비서(손화령 분) 등이 함께 타고 있다. 제각기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오합지졸은 마준규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게다가 한 시간이면 도착해야 할 비행기는 기상 조건 악화로 좀처럼 착륙을 하지 못해 마준규를 더 정신없게 만들고 있다.  멘탈붕괴 상황에 직면한 마준규의 입에서는 욕이 절로 터져 나온다.

영화는 시작부터 정신없다. 개성 만점 인물들이 상당한 양의 대사를 쏟아내기 때문에 잠시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설계된 웃음 포인트를 놓치기에 십상이다. 서두에 이 영화의 관람조건으로 청력을 언급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청력, 주의력, 이해력. 준비물이 꽤 많다.

그런데 이런 준비물보다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 따로 있다. 바로 자신의 유머코드다. 하정우 감독이 초반부터 캐릭터와 대사를 강박적으로 쏟아내는 것은 이 영화가 추구하는 코미디를 관객에게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사용해 관객이 스스로 이 영화의 코미디와 자신의 유머 코드가 맞는지 '샘플링 검사'를 해보라는 배려다.

사실 알게 모르게 이 배려는 예고편에서 이미 제공됐었다. 코미디 영화의 예고편은 보통 웃기다 싶은 장면은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그 직전 장면이나 우스운 분위기만 맛보기로 풍길 수 있는 장면들로 채우는 것이 관례인데 <롤러코스터>의 예고편에는 과감히 웃긴 장면을 넣었다. 정신없는 안과 의사의 등장이 그렇다. 하정우 감독은 예고편에서 이미 관객들을 향해 이 영화의 유머 코드를 확인하고 영화를 선택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샘플링 검사의 결과가 '하정우식 코미디'의 양성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영화는 흥미진진한 '롤러코스터'가 아닌 '지옥행 특급열차'가 될 가능성이 있다. 영화는 '하정우 취약계층'까지 감싸 안을 만한 '개그콘서트'식 코미디를 선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끝이 없는 언어유희, 황당한 상황 코미디, 차진 욕설, 반복 등이 하정우 감독이 선택한 코미디 요소다. 그중 최고는 언어유희. 소위 '말장난 개그'라 불리는 이 언어유희 코미디에 잘 웃지 않는 성향이라면 과감히 다른 영화를 선택할 것을 제안한다. 이 영화에 맞는 특이 체질들이 이미 키득키득 웃고 있을 테니까.

영화 <롤러코스터>의 한 장면. 욕쟁이 캐릭터를 갖고 있는 마준규에게 한 꼬마가 욕해 다라며 삿대질을 하고 있다

▲ 영화 <롤러코스터>의 한 장면. 욕쟁이 캐릭터를 갖고 있는 마준규에게 한 꼬마가 욕해 다라며 삿대질을 하고 있다 ⓒ (주)판타지오픽쳐스


영화는 방탕한 사생활을 훈장처럼 삼는 마준규가 때아닌 상황들과 황당한 인물들을 비행기 안에서 맞닥뜨리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나열하고 있다. 얼굴에 '극성'이라고 쓰여 있는 아줌마 팬은 자신의 딸부터 같이 수영장 다니는 친구 아줌마들까지 죄다 마준규 팬이라고 신나게 떠들면서도 정작 사인받을 종이도 내놓지 않은 채 사인을 요구한다. 그 와중에 지나가던 꼬마는 욕해 달라며 삿대질을 하고, 정장 입은 남자는 막무가내로 사진을 찍는다. 연예인 마준규가 겪어 내야 하는 황당한 상황들이 유기적으로 합을 맞춘 듯 진행된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이런 상황의 반복으로 채워진다. 사이사이 풍자를 찾아내고, 언어유희를 즐기는 것은 철저히 관객의 능력이다. 아는 만큼 웃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상황의 반복이 강박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달리 말하면 '틈'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나 초반에 몰아치는 대사의 양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이를 다 듣고 웃기가 버겁다. 시력과 청력이 이해력으로 변하기까지의 시간을 영화가 허락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정신없는 말장난 코미디를 지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진짜 정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대사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 티가 팍팍 난다. 사무장의 '불편' 라임 드립이나 부인이 남편에게 헬스를 많이 해서 생각이 유연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 중의적인 표현을 써 '연예인들은 모두 닭이다'(마준규가 식사로 닭요리를 주문한 것을 두고)라고 하는 것 등에서 각본가 하정우의 재능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몇몇 에피소드에는 사회 풍자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회장은 가만히 있는데 오히려 비서가 회장처럼 위세를 부리는 것이나, 한때 문제가 됐던 '슈퍼갑' 사건들처럼 승무원에게 일방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정장 입은 남자 등이 그렇다.

배우들의 연기는 '연기 괴물'이라 불리는 하정우 감독의 지도 때문인지 전부 훌륭하다. 정경호는 기존 이미지를 전복시키며 한류스타 마준규 역을 능글맞게 잘 표현했고 이외에도 스님, 안과 의사, 일본인 승무원(고성희 분) 등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무엇보다 서로 간의 연기 호흡이 매우 좋다.

한 시간 반 동안 영화 속 비행기는 착륙을 못 해 방황하지만, 영화는 큰 방황 없이 무사하게 충무로에 안착한 느낌이다. 앞으로도 계속 연기와 연출을 병행하겠다는 감독 하정우의 다짐이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롤러코스터>에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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