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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해마다 이때가 되면 여러 미디어는 심야시간 즈음에 경쟁하듯 세상을 떠난 두 아티스트의 이름을 불러댄다. 김현식과 유재하. 한국대중음악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이 두 젊은 음악가의 노래들은, 공교롭게도 그들의 기일인 지금의 가을 하늘과 너무나 닮았다.

쓸쓸한 회색빛의 감성으로 다가오는 김현식의 음악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때맞춰 11월이면 TV나 라디오에서는 그의 음악이 일제히 울려 퍼진다. 가객은 멀리 떠났지만, 그의 음악이 없는 가을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그만큼 김현식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하다.

김현식, 그 익숙한 이름

'가객' 김현식
 '가객' 김현식
ⓒ 동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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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의 재능을 처음 알아본 건 가수 이장희였고, 길을 터준 이는 동아기획의 김영 대표였다. 김현식과 함께 활동하거나 본격적인 음악을 시작한 유명 인물도 많다.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과 전태관, 이제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빛과 소금'의 장기호. 공교롭게 똑같이 11월 1일 세상을 등진 가수 유재하 등은 김현식과 함께 밴드 활동을 했다.

가수 윤상은 과거 <여름밤의 꿈>이란 곡을 김현식에게 만들어 줬다. 김장훈은 김현식을 형처럼 따랐다. 김현식은 세상과 작별하기 전에 "김장훈을 스타로 만들어 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김현식은 신촌블루스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나는 하얀색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로 김현식을 처음 만났다. 그때 내 나이 열살 즈음이었다. 김현식이 떠난 1990년 11월 1일 이후 23년이 흘렀으니, 이젠 나도 김현식이 세상을 살아낸만큼의 나이가 됐다.

3집의 성공, 그리고 블루스

김현식 3집 [비처럼 음악처럼]
 김현식 3집 [비처럼 음악처럼]
ⓒ 동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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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의 음악은 말 그대로 '드림팀'이었던 베이스 장기호, 기타 김종진, 드럼 전태관, 키보드의 유재하, 박성식이 함께 작업한 3집 앨범 <비처럼 음악처럼>(1986)에서 빛을 발했다. 창작력이 불타오르던 이 젊은 천재들은 오직 '김현식'이란 이름 석 자에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가장 빛나던 시기. 김현식이 방송 출연을 하지 않았는데도 3집 앨범은 30만 장이 팔렸다. 언더 그라운드에서 오직 공연과 실력으로만 이룩한 성취다. 3집 <비처럼 음악처럼>을 기점으로 김현식의 음악 스타일과 삶은 많은 변화를 겪는다. 

김현식은 1987년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1978년 이후 두 번째다. 1989년에는 신촌블루스와 함께 작업했다. 이 시절 김현식은 '노래를 뱉어내는 블루스'를 선보였다. 누군가 블루스를 '지나가는 사람을 그 자리에 멈춰 서게 하는 음악'이라고 정의 내렸다면, 이때의 김현식은 말 그대로 확고한 블루스 뮤지션이었다. 

1988년 김현식으로부터 독립한 김종진, 전태관은 '봄여름가을겨울' 이름으로 정규 1집을 발표했다. 이들은 연주곡으로 그룹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에 버금가는 퓨전 재즈의 길을 개척했다. 동년에 발표된 김현식 4집 앨범에는 <한국 사람>이라는 블루스 하모니카 연주곡이 실렸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완벽한 독자 노선이었다.  

정규 음악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기타 하나만으로 자신의 삶을 관조하던 김현식. 그에게 블루스는 정원영, 한상원, 김광민, 한충완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버클리 음대 유학파 1세대'들의 재즈곡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딱 맞는 장르였다.

떠나기 전 마지막 노래 <김현식 2013년 10월>

1990년 가객 김현식은 아주 먼 길을 떠난다. 그리고 유작이 된 6집 <내 사랑 내 곁에>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1991년 골든 디스크 대상을 수상한다. 그의 어린 아들 김완제씨가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거리며, 카메라 앞에서 조금은 긴장한 표정으로 대리 수상을 하던 그 장면은 아직도 내 뇌리에 각인돼 있다.

이렇게 엄청난 그의 유작 음반 인기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김현식의 노래를 묶어 1996년 <Self Portrait>라는 음반이 발표됐고, 병상에서 녹음한 곡들을 모아 <The Sickbed Live>(2002)가 세상에 나오기도 했다. 이 앨범들의 곡들도 꾸준한 인기를 얻었고, 김현식을 향한 대중들의 그리움도 지속됐다.

그리고 최근에 발매된 <김현식 2013년 10월>. 그가 세상을 뜨기 이틀 전의 음성까지도 녹음된 음반이다. 병원에서 카세트테이프로 대충 녹음한 노래. 병색이 완연한 음색. 완벽히 다듬기 힘든 음질. 이 '거친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그의 인생에서 음악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11월은 참 쓸쓸한 계절이다. 봄과 여름 무성하던 나무의 잎이 모두 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현식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건, 그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잔인한 일이다. 그렇게 쓸쓸한 11월이 다시 찾아왔다.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들으면, 귀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가객 김현식. 그는 떠나기 직전까지 노래했다. 어쩌면 그는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쓸쓸한 11월은, 그런 김현식의 노래가 있기에 그나마 견딜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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