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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은 행복한 줄 알아야 돼!"
"왜?"
"아내 목욕을 나처럼 많이 해준 남편이 흔하지 않을 거야! 너무 아파도 못해주고, 아프지 않으면 안 해줄 테니!"
"…그러네!"
"언젠가는 이 목욕도 안 해줄 날이 오겠지?"
"……."
"더 나빠져서 못할 수도 있고, 좋아져서 혼자 할 수도 있을 테니까 하는 말이야!"
"그런가?…."
"그때 되면 이렇게 당신 목욕시킨 날들이 생각날 거야. 나도 나쁘지 않네, 당신 사랑했던 추억을 가질 수 있어서!"

토요일, 집사람 목욕을 시키는 날이다. 완전마비가 아닌 환자들은 간이 샤워실에서 의자를 놓고 앉아서 씻을 수 있어서 이틀에 한 번, 어떤 부지런한 가족은 날마다 샤워를 해주기도 하지만 전신이 마비인 아내는 목욕도 장 청소에 맞먹는 큰일에 속한다. 그래서 자주는 못한다. 집사람은 사지마비라 침대목욕밖에 못한다. 어떤 병원은 그나마 그런 목욕용 침대도 없어서 병실 침대에 비닐을 깔고 물을 떠 날라서 침상 목욕을 하기도 했다.

'100, 900, 2700, 7000….' 100은 내가 아내를 직접 씻긴 숫자다. 2년 반 정도 입원해 있는 동안 1년에 52주씩 두 번 반이 지날 동안 아마도 그 정도는 내가 혼자 목욕을 시켰다. 어떤 날은 목욕을 씻기면서 속으로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나 한다. 장염과 방광염증이 재발해서 항생제와 수액을 줄줄 달고 있을 때는 목욕도 제때 해줄 수가 없으니 그나마 시원하게 바가지로 온몸에 물을 쏟아주는 날은 그것도 반갑고 고마울 행복에 들어가게 된다. 이게 진짜 감사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행복이나 행운이란 주위가 얼마나 어두운지, 혹은 직전에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달렸다. 아주 작은 일도 기쁨이 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더 누려지는 보상이다.

그 다음 '900'이란 숫자는 병원에 입원해서 보낸 날짜, 처음 하루는 너무 무서웠고, 다음 열흘은 많이 힘들었고, 다음 일년은 울고 씨름하며 보냈었다, 저 숫자에 얼마쯤을 더하면 마라톤 선수가 이젠 살았다! 싶은 골인테이프를 밀치며 달리기가 끝날까?

다음 '2700' 숫자는 그 900일 동안 밥 떠먹이고, 그 숫자만큼 양치질 시킨 숫자, 처음에는 서툴고 팔이 아프던 일이 이제는 익숙해지고 남들과 이야기하면서 해치우는 수준까지 되었다. 그러나 이 숙달된 일들을 어디다 사용하고 자랑할 수 있을까? 차라리 다시 서투르고 낯설어 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 다음 7000은 정확하지도 않은 숫자다. 그저 대충 헤아려 본 숫자. 하루에 몇 번 씩 받아낸 소변 횟수다. 그냥 화장실을 가서 볼일을 본 숫자가 아니고, 넬라톤이라는 도구로 받아낸 소변 횟수.

정말 이 부분이 회복이 안 되면 집으로 돌아가던 병원 생활을 하던, 혼자 힘으로는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심각한 숙제다. 누군가가 두세 시간마다 손길을 보태야하는 생활은 많은 비용과 함께 여자의 자존심을 꺾고 자립을 막는 벽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꿈을 이루지 못했거나 사업, 자리, 명예가 주저앉을 때 고통스럽다고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먹고, 자고, 내보내는 것이 안 될 때가 더 지독한 고통인 걸 모른다. 그런 점에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행운아다.

단지 숫자들일 뿐인 몇 개를 떠올리면서 그 숫자에 얽힌 무거움을 돌아본다. 더 무거워지는 이유는 이것은 끝난 이야기가 아니고, 추억이 아니고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세상 대부분의 희귀난치병은 '종료'가 없는 계속 '진행'만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 이상해... 눈이 두 개로 보여"

비보험 항암주사제 비용 등 감당하기 힘든 병원비 때문에 국립암센타 사회복지실에서 기독교방송 모금방송에 연결해주셨다. 눈이 망가지는 그 며칠을 생생히 같이 촬영하면서 보냈다. 하기는 몇 년을 차례로 여기저기 망가지고 있었으니 언제 촬영했어도 한두 가지는 직접 목격자가 되었으리라.
▲ 2010년 5월 CBS 수호천사 모금방송 비보험 항암주사제 비용 등 감당하기 힘든 병원비 때문에 국립암센타 사회복지실에서 기독교방송 모금방송에 연결해주셨다. 눈이 망가지는 그 며칠을 생생히 같이 촬영하면서 보냈다. 하기는 몇 년을 차례로 여기저기 망가지고 있었으니 언제 촬영했어도 한두 가지는 직접 목격자가 되었으리라.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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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상해, 물건이 두 개로 보여…."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 휴대폰을 꺼내 눈앞에서 흔들어보였다.

"이거 보여?"
"응 두 개로 보여, 하나는 제자리에, 그 위로 대각선으로 3센티 쯤 위에 또 하나…."

부랴부랴 국립암센터 담당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자리에 안 계셔서 전달을 부탁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직접! 전화를 주셨다.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병원으로 오라고 하신다. 마침 방송을 위해 나와 계시던 CBS 기독교방송 '수호천사' 프로그램 피디님이랑 같이 동행해서 병원을 갔다.

그러나 복시현상(두 개로 보이는 것)이 줄었는지 검사에서는 뚜렷하게 이유가 나타나지 않는다. 간 길에 선생님과 피디님의 방송용 인터뷰도 마치고 다시 재활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오, 하나님! 이걸 어떻게 하면 좋아요?' 눈동자가 눈의 가운데서 풀려서 움직이지 않는데 너무 무섭다. 오른쪽 눈이 위아래 돌아가는 중에도 왼쪽 눈동자는 물 위에 뜬 공처럼 한가운데 정지해 있다. 눈 두 개가 따로 따로 논다. 그러니 사물이나 사람이 하나는 수직 하나는 대각선, 사선으로 보이나보다.

바로 엠뷸런스로 응급실로 출발했다. 어지러워 견딜 수 없다고 해서 한쪽 눈을 거즈로 덮고 종이 반창고로 봉했다. 다시 검사들이 줄을 이었다. 몇 시간을 기다려 MRI, 엑스레이에서는 폐렴이 보인다고 하고, 호흡기내과 선생님을 데리고 와서 살피더니 조영제를 넣고 다시 CT촬영, 그리고 각종 검사를 위해 동맥에서 채혈 정맥에서 채혈, 그러기를 무려 여섯 번. 산소포화도가 80%대라 코에는 산소호스를 끼고, 응급실에 누운 채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다시 척수액을 등에서 뽑는 작업을 시작했다. 옆으로 눕혀놓고 긴 바늘을 등뼈 사이로 찔러서 척수 속에서 물을 빼내는 고통스런 시술, 결과는 척수액 속 단백질 수치가 세 자리, 40대 이하라야 정상인데, 지난달 응급실 왔을 때 299 세 자리를 기록해서 선생님이 쇼크를 받으셨던 적도 있었다. 세 자리는 지금까지 지나간 환자 중에서 보기도 처음이라면서.

5월 5일 오후 1시 40분인가 기독교방송 '수호천사' 프로그램에 집사람과 나의 소망들이 방송 된다. 그때까지 집사람이 눈이 더 안 나빠져서 그 방송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리막에는 끝이 없다?

다시 들이닥친 재발에 눈조차 '망막 동맥폐쇄'와 '제3시신경마비'라는 두 가지 동시 공격에 무참히 무너진 모습, 복시에 너무 어지러워 급히 가리느라 당장 손에 잡히는 종이로 눈을 덮었다. 사람이 얼마나 취약하고 아플 곳을 많이 가지고 살아가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 눈이 망가진 아내 다시 들이닥친 재발에 눈조차 '망막 동맥폐쇄'와 '제3시신경마비'라는 두 가지 동시 공격에 무참히 무너진 모습, 복시에 너무 어지러워 급히 가리느라 당장 손에 잡히는 종이로 눈을 덮었다. 사람이 얼마나 취약하고 아플 곳을 많이 가지고 살아가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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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왼쪽으로!"
"여기?"
"아니 조금 위로! 거기 거기!"


아내는 내가 거울 없이 면도기를 사용하면 가끔씩 깎이지 않은 수염을 지적해주곤 했었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창가 병실 침대에 앉아 그렇게 위치 추적을 해주는 아내와 면도기를 옮기며 면도하는 재미가 행복했었다.

그런데 이제 좀 힘들게 되었다. 한쪽 눈동자가 마비되어 안 움직이기 때문이다. 사물이 둘로, 그것도 사선으로 보여 어지럽다고 아예 한쪽 눈을 봉해버렸다. 그러니 그 재미있던 면도놀이도 더는 못하게 되었다. 돈도 안 들어가고 이쪽저쪽 찾아가며 면도가 끝나면 "야, 깨끗하다! "나 아직 괜찮아?" 그러면서 킥킥 거리던 행복도 끝이 났다.

5월12일, 기어코 완전히 안보이기 시작했다. 누워있으면 한참 뒤에 다시 드문드문 보이고, 다시 국립암센터로 달려갔다. 검사 진찰 결론은 눈으로 가는 동맥이 막혔다는 것. '망막중심 동맥폐쇄증' 일명 눈 중풍과 비슷하다는데 별 병이 다 있다. 좀 더 전문적인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 안과로 가지 않으면 치료와 검사가 안 된다고 암센터 안과 담당선생이 진찰의견서를 써주셨다.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안과에 예약을 했다.

5월 13일, 오전 11시가 예약시간인데, 가야하는데 아내는 새벽부터 열이 펄펄 오르기 시작하더니 39도에서 내려오지를 않는다. 얼음찜질, 해열제 수액주사 다하다가 소변검사에서 또 방광염증이 높게 나왔다. 아! 그 지겨운 방광염증. 결국 예약을 5월 17일 월요일로 변경하고 항생제 주사 5일 치료에 들어갔다. 눈은 하루가 급한데 그렇다고 이렇게 열도 오르고 밥 한 숟가락도 못 먹고 토하는 사람을 데리고 이동할 수가 없어서.

눈은 가리고 열에 지쳐 잠인지 까무라친건지 늘어진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본다. 그래도 아내가 안쓰럽다. 이것도 사랑의 한 종류인지 헷갈린다.

어떤 시인이 그랬다. '그만 둘 수 있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은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 두지 못하여 죽음 이후까지 안고 가는 종신형 벌 같은 거라고….

덧붙이는 글 | 2010년 2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일산 재활전문병원에 입원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태그:#희귀난치병, #기독교방송, #수호천사, #투병,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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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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